룻기 3 - 선택(들었으므로 일어나 돌아오려 하여)
Notes
Transcript
[도입 서론] 기도 및 인사
[본론]
1.선택
1-1 들었으므로
룻기 1장 6-10절을 찾겠습니다.
지금 계속해서 룻기를 배우고 있는데요 오늘은 선택에 대해서 살펴 보려고합니다.
방금 읽은 말씀을 보면 나오미의 행동이 보입니다.
6절에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들었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두 자부와 함께 뭐 했죠. 일어났죠. 그리고 돌아오려 하여..
있던 곳을 우선 떠나서 길을 행하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먼저 들었고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음에 돌아갈려는 마음이 정해지니깐 길을 행한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보았을때 여러가지가 묵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들었습니다.
1-1 나에게 역사하신 하나님(내가 들었을 때)
우리가 구원함을 받을때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구원함을 받을때.
이 우주만물을 창조 하실때 우리는 누구를 보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보게 된것입니다.
보고 아 난 죄인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럴때 내 마음에 무슨 마음이 생깁니까? 돌아갈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
어떤 사람은 돌아갈려는 마음은 생겼는데 내가 이렇게 큰 죄를 짓고 살았는데 나를 구원해 주실까.
하고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오미도 본인의 상황은 아주 처참했습니다. 남편이 죽고 자식들도 죽고요..
하나님과 멀어진 상태에서 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권고 하셨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습니다.
양식을 주셨다는 것 그것은 나오미에게는 복음이었습니다.
1-2 나오미의 경우는
그때 나오미는 비록 이방 땅인 모압땅으로 내려갔으나, 자신들을 애굽에서 건져주시고,
광야생활 가운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켜 주신것을 기억하고,
또한 가나안 정복전쟁 가운데서 함께 하셨던 주 여호와 언약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나오미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신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마음이 들었을때. 우리는 무엇을 했습니까.
우리는 마귀의 나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회개를 했죠.
뉘우치고 주님께로 돌이키는 것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로 향하게 되었잖아요.
그렇게 했을때 주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잖아요 그렇죠.
1-3 탕자이야기
그리고 돌아온 탕자이야기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성경 찾겠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1,13,17-20절
돌아온 탕자 이야기 인데요!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라는 녀석이 아버지가 돈이 많이 있는것을 알고 아버지 죽으면 나에게 줄 재산 미리좀 주쇼. 이렇게 말을 했고
그래서 아버지는 못이기는척 재산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이 아들은 이 돈을 가지고 어디로 먼 나라로 갔습니다.
거기서 잘 살아야 하는 허랑방탕한 생활을 한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 재산이 똑 떨어지는 것이었어요.
돈이 있을때에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서 좋았는데 돈이 없으니깐 친구들이 주변에 없는 거에요.. 얼마나 외로워요.
그리고 돈이 없으니깐 돌아갈 염치는 없고 돼지 치는 곳에 가서 저 여기서 일하게 해주세요. 겨우 일하게 되었는데 먹을것도 없고
그래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먹을려고 했는데 그것도 없는거에요.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래서 이 탕자는 이 둘째 아들은 여기서 죽을 바에 그냥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아버지 아들하지 말고 종이라도 되자 그럼 배는 굶주리지 않겠지
그러고 어떻게 했습니까. 20절에 돌아가니라. 돌아가니깐 아버지가 반겨주었습니다.
1-4 돌아온 분에게 큰 축복이 임한다
나오미와 의 상황과 돌아온 탕자 상황, 그리고 우리가 구원받을때의 상황이 비슷하죠.
성경은 이렇게 알려 주고 있는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하나님에게 돌아가면 사랑으로 감싸주신다는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호세아 6장 1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돌아가면 우리를 낫게 하실것이고 상처를 싸메어 주실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인애와 언약에 대한 메시지를 듣고 우리가 해야 할일은 무엇입니까.
돌아가는 것뿐 없습니다.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것입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품으로 돌아갈때 더 풍성한 회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2. 아쉬운 선택
하지만 나오미의 아쉬운 선택을 한 부분이 있습니다.
룻기 1:7-13절입니다.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했지만 그녀가 직면한 문제는 우선 이방여인 두 며느리였습니다.
이 며느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을것입니다.
데리고 갈것인가? 그냥 여기 머무르라고 할것인가? 이 두가지의 선택의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그냥 그들의 고향에 머무르라고 했습니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인간적인것입니다. 며느리의 장례를 위해서 결정한것이니깐요!
며느리들이 이방인이기 때문에 과부의 몸으로 과부가 된 시어머니를 따라 낯선 땅으로 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거니깐요.
그렇기에 나오미는 인간적으로 훌륭한 시어머니 역활을 한것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이 결코 합당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한것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잘한 선택일지는 모르겠지만 신앙적으로는 어떤 선택입니까? 잘한 선택입니까? 생각해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단순히 고향 땅에 머물게 하는 결과만 만드는 것이 아닌것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나오미를 통해서 봤던 하나님을 보았던것을 보여집니다.
룻기 1장 17절 말씀을 보면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어머니 나오미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오미는 신앙은 버리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국
룻기 1장 15절 말씀을 보면은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동서는 오르바는 그 백성 모압백성에게 돌아 갔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그 신에게 돌아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섬겼던 우상을 섬기던 신앙으로 돌아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의 육신적인 행복을 주려고 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육신적인 행복보다 더 중요한 영혼의 행복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오르바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모압땅에 계속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따라간 룻은요 누구의 계보까지 간것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나오미가 육신적으로 이방이었던 며느리들의 처지를 생각해서 돌려보는 선택은 감상적이고 육신적이고 불신앙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선택을 하면 않됩니다.
영혼이 잘되는 선택을 해야하는데 육신적인 행복을 위해서 선택을 할 경우들이 있습니다.
학교 시험기간때.. 교제와 공부.. 둘중 선택할때가 될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합니까?
십일조 관련할때.. 내가 쓸것과 주님께 드리는것을 선택할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합니까?
직장 선택할때.. 신앙생활과 돈버는 일 을 선택할때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합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때 반듯이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 있을때가 많이 있습니다.
2-1 오르바의 선택(잘못된 선택)
두 며느리 선택을 통해서 교훈을 받아보려고 합니다.
먼저 오르바 선택의 경우에 대해서 생각 해보겠습니다
룻기 1장 14절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오르바는 시어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가다가 중간에 시어머니가 가라고 돌아가라고 권면하니깐 어떻게 했습니까.
그 권면을 받아 드려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습니다.
오르바는 그 선택으로 다시 고향땅 모압땅으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그의 신 우상숭배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 경우를 생각해 보니 우리가 집회떄 권면해서 말씀을 듣고 했는데 결국 어디로 세상으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꼭 오르바의 경우가 이같은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2-1-1 세상을 사랑하는자
딤후 4장 10절 말씀에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데마는 사도바울과 열심히 복음 전하는 동역자였는데 결국 데마의 최후의 선택은 이 세상 데살로니가를 선택해서 거기로 가버렸습니다.
한순간의 선택으로 영원한 축복을 받을수 있었는데 그 길을 걷지 못하게 된것입니다.
2-1-2 돈을 사랑하는 자
바울에게 전도를 받았던 벨릭스도 그 경우입니다.
사도행전 24장 24-26절
24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벨릭스는 사도바울을 불러서 예수그리스도가 하신일에 대해서 들었고 그것을 알게 되었고 믿어질려고 하니깐 두려워서 믿기 싫다고 하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시방은 가라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겠다. 했는데 결국 26절을 보면 자주 불러 이야기를 했는데 결국은 돈을 바라고 불렀던것이었습니다.
결국은 구원받지 못하고 벨릭스의 최후는 폼페이에서 죽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클 때, 하나님을 찾던 길에서 돌아서는 사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2-1-3 환란 역경에 버리는 사람
그러한 사람들이 마태복음 13장 씨뿌리는 비유를 보면 4가지의 마음의 밭이 있는데 그중에 돌밭에 해당이 됩니다.
말씀을 받고 신앙을 갖는 것 같았지만 그러나 그 말씀과 그가 선택한 신앙 때문에 환란이나 역경, 어려움이 찾아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앙을 포기 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말씀을 잘 듣다가 다른 사람들이게 우리교회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듣고 말씀듣는것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볼때 너무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내 삶에서 고난을 당할때, 혹시 신앙에서 멀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즉 내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고난이 찾아오든지 어려움이 찾아 오면, 제일 후 순위가 신앙이 된다면 제일 처음이 나에게 찾아온 고난을 이겨볼려고 내 힘으로 하는 사람들은
오르바같은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난의 시간에 여기서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라고 신앙을 더욱 생각하고 내가 이 선택을 하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
영원한 세계 속에서는 나는 어떻게 될까. 라고
생각한는 사람은 오르바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된 신앙을 끝까지 견디는 신앙입니다 .
시 119편 43-44절
43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44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 없이 지키리이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영어로 Forever and ever 입니다. 영원히 영원히 끝까지 주님의 율법을 주님이 내게 명령하신 규례를 지키겠다는 다짐인것입니다.
형제 자매님의 끝까지 지키겠다는 규례는 무엇입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누군가는 이말씀을 주님오실때까지 붙잡고 가신분이 있을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이말씀을 붙잡고 가시는 분들도 있고,
어떤 분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 아들 믿는 믿음 안에서 살겠다 라고 하신 분들도 있죠..
이렇게 각자가 자기가 끝까지 이 말씀은 붙잡고 살겠다라는 말씀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 이말씀이 내 말씀이 되실것입니다.
고리도 전서 15장 58절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는 그리스도인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2 룻의 선택(잘된 선택)
2-2-1 하나님을 붙잡는 선택
우리는 룻이 결정했던 선택 처럼 선택해야합니다.
아무리 나오미가 돌아가라고 권면해도 나오미에게서 보이는 하나님을 끝까지 붙잡아야 합니다.
붙좇았더라는 두개의 물체가 딱 달라 붙어 떨어지지 않는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쉬운 번역에 보면 오히려 시어머니 곁에 더 달라 붙었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끝까지 붙잡고 쫓아 가면 그의 결국은 축복이 있는것을 우리가 이 말씀을 룻기를 보면 느낄수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붙잡고 가야할 분은 누구입니까?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인신것입니다.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것이 있습니다.
나의 인생의 길에서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선택하고 있는가?
편리를 따라 선택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선택하는가?
육신의 쾌락과 기쁨을 위하여 선택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선택하는가?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할때 가장 먼저 선택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오르바처럼 육적인 것들을 가장 먼저 선택해야할까요, 세상의 것들을 먼저 선택해야할까요.
룻처럼 장차 올 고난의 길, 역경의 길, 주님의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의 답을 내 자신이 하고 있을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선택을 항상 하면서 살아야 할것입니다.
그래서 그 선택의 길에서 잘 선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 선택으로 영적 세계 나의 신앙생활이 주님 앞에서 떳떳한가? 이것을 생각해 봐야하고
그 선택으로 나로 하여금 영적인 영향을 얼마나 미쳤을까? 얼마나 전도해서 구원을 받게 할때 도움이 될까? 라는 생각을 해보고요
그리고 마지막은 이 선택으로 내가 지금 투자하고 있는게 나를 부를 축척하는 투자하는 것일까 영적 부를 축척하는대 투자 하는 것일까?
고민하면 조금더 주님 쪽으로 선택을 할수 있을것입니다.
2-1-2 롯의 선택을 통해서 교훈(삶의 우선순위)
우리가 롯의 선택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고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 창세기 13장에 나오는 롯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13장 8-13절 읽겠습니다.
롯은 본인 눈으로 보기에 더욱더 아름다운곳을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을 다녀와 보니 이제 텐드 생활이 지겨운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택한게 소돔과 고모라였던것있습니다.
그 최후는 어떻습니까. 비참하죠. 롯과 그 자녀 2명만 겨우 소돔, 고모라성에서 나오게 되었잖아요.
한번의 선택이 이러한 비참한 결과를 만들게 됩니다.
그럼 롯은 선택을 통해서 보았을 때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사람들은 선택을 할 때 보통 자기가 가치를 두는 것에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익숙함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항상 선택했던 것들 내가 많이 아는 방법으로 내가 봐았던 방법으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교제속에서 말씀을 들으면서 나의 선택의 길을 생각해봐야합니다.
이것이 주님안에서 형제 자매님이 추구하며 올바른 선택을 해야합니다.
성경에 우리가 잘 선택할수 있게 주님이 알려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34절입니다.
다들 잘 아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의 우선순위는 어디가 먼저입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이 아닌 저 하늘의 있는 것을 먼저 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21절에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
하나님은 보이지 않은신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점점 저 하늘에 있는 것을 생각하기 보다는 이 땅에 있는 것을 더 많이 생각하고 마음에 담고 있는 것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들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은 것들은 영원한 것임을 명심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보이지 않은 영적인 것이고 먼저 믿음으로 받아야 하는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고는 영원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바라지 못합니다.
고린도 후서 4장 18절 말씀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은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은 것은 영원함이니라
우리는 여기 눈에 보기에 좋은 것 그리고 애굽에서 보았던 익숙함을 추구 하게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롯은 멸망의길을 걷게 된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쪽을 선택을 할지 세상쪽을 선택할지 골라야합니다.
두가지 모두 선택 할수 없습니다. 반드시 내 마음이 하나로 가야 합니다.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어디를 선택하실렵니까?
우리 마음속에 세상의 것이 들어와 있고 자리를 크게 잡고 있으면 하나님의 편보다 세상편을 쉽게 선택하게 됩니다.
[결론]
3. 잘 선택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의 편을 선택하기 위해서는요
말씀과 가까이 해야하고, 교제에 잘 참석해야 합니다. 교제에 그냥 오는게 아니고요 적극적으로 참여 해야합니다. 기도도 주님께 내 마음을 토해 내는 심정으로 기도를 해야합니다. 그냥 습관적인 기도는 누구나 할수 있습니다. 이 세가지가 충족이 될 때 우리는 전도하러 다녀야 합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말기교전에 마음을 다하고 열심을 내어야지 우리의 선택들이 하나님의 편을 더 많이 선택할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명심해야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앞의 것을 선택하지 말고 멀리 있는 미래를 바라보고 선택해야합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미래는 어떠한 미래입니까?
저 천국의 있는 영원한 상급을 바라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갈 때 우리는 축복의 길을 선택할수 있는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