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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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했던 장소 (24년 1월 11일 32구역 모임/24.1.12 31구역)
[도입 및 서론]
본문말씀 : 마태복음 10장 16절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벌써 24년의 한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세웠던 목표들은 잘 지키고 있나요!
혹시 작심 삼일이 되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우리는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신앙을 회복하기도 하고 결단과 결심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책을 보았는데 습관이 생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적혀져 있었습니다.
습관을 바꾸려면 21과 66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습관을 바꾸려면 최소 21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 시간이 바로 뇌에 각인 시키는 단계라고 합니다.
그리고 행동이 습관으로 자리 잡는데 걸리는 시간이 66일 걸린다고 합니다. 이 시간은 몸에 각인시키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66일이면 약 두달입니다.
습관으로 바꾸려면 고비가 있는데요.. 바로 3일 7일 14일의 고비가 있다고 전문가들이 말하는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습관들을 잘 만들어갈 필요가 있는것 같습니다. 하나의 습관이 나의 신앙생활을 흔들수도, 성장할수도 있기때문입니다.
[본론]
오늘은 새해를 맞이 하여 그리고 1교구 전도집회를 위해서 마태복음 10장 16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나누어 볼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 찾겟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보라! 이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16절 전에 보면 열두제자를 부르시고 전도할때 이렇게 하라고 예수님이 알려 주시고 있고, 그 다음 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앞절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겠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것입니다.
1.전도의 각오 및 마음의 자세.
그리고 나서 제자들에게 각오를 다질 수 있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 같다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를 보내는 것이 지금 양을 이리들이 있는 변두리도 아닌 중심으로 우리를 보냈다고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쉬운 길이 결코 아님을 말씀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하러 가는것이 지금 어떠한 마음으로 가야 하겠습니까? 그냥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그러한 마음으로 가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양이 이리를 이길 수 있습니까? 절대로 이길 수 없는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초자연적인 힘이 필요한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 혼자가 아닌 주님이 함께하고 교회가 함께하면 능히 이길수 있는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것을 나 혼자 하겠다고 하면..처음을 가능할 수 있지만 힘이 빠져서 결국은 잡혀 먹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도움으로 가야 하고 교회의 도움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잠언 19장 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가난한 자가 누구입니까? 여기에 앉아 계시는 형제 자매님은 가난한 자입니까? 부자 입니까?
우리는 영적으로 부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자 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가난한 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입니다. 그분들을 우리가 불쌍히 여겨야 하는것입니다.
비록 이리이지만.. 우리는 그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하는것입니다 .
만약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할것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전도로 이루어져야 할것입니다
그때 부터 누가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일을 하시는것입니다 .
왜냐하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있는것이 여호와께서 내가 꾸이는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일을 하시면 이것은 역사가 일어납니까? 일어나지 않습니까? 일어나게 되어 있는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그러한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다고 전도 하지 않아야지.. 그렇게 생각하면 불순종 인것입니다.
왜냐하면 전도는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후서 4장 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이렇게 명령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전파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도집회의 자리까지 참석했습니다. 나는 그 영혼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없을지 몰라도, 여기 앉아 있는 구역식구 형제 자매님이 그 영혼에 대해서 사정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알수 있을까요! 기도부탁이라는것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기도부탁을 하고 사정을 알수 있기에 그 영혼을 두고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주님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협력이고,,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이지 않을까요!
우리가 하는 전도는 혼자 하는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양이고 이리 가운데 우리는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담대한 마음과 그리고 가난한 영혼을 구하자라는 간절한 기도가 합해지고, 또한 형제 자매님 함께 하시면.. 두세사람이 있는곳에 나도 있겠다고 했으니.. 형제 자매님이 함께 하면 주님이 같이 하시는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한 영혼을 건질 수 있는것입니다.
왜 전도가 않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수 없는것입니다.
시편 133편 1절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결국은 영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를 깨는 것이 있으면 그것부터 멀어져야 합니다.
하나를 깨는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모난 돌을 생각해보면 될것입니다. 나의 모난 돌 때문에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나의 모난 돌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맨들맨들하게 만들어가야 할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산위에 있는 돌은 어떻게 생겼나요! 모난 돌처럼 생겼습니다. 해변가에 있는 돌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맨들맨들 합니다.
높은데 있으면 나의 돌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왜냐 다 똑같거든요! 그리고 높아졌거든요! 난 그렇게 해도 괜찮아!
그렇게 치부해 버린다는 것이 문제 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고 높은 산에서 점점 내려 오잖아요. 그러면 돌들이 점점 둥글글해 집니다. 결국 해변가에 있는 돌처럼 맨들맨들해 집니다.
우리는 깍일것이 많이 있는 돌들입니다.
이것 하나만 명심해야 합니다. 나의 행동 하나 하나가 하나됨을 깨뜨린다면 그것을 하루 속히 고쳐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고치는것이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저도 작년 중순부터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형제 자매님의 장점을 찾을려고 노력하고 단점은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단점만 보게 되면 하나를 깨뜨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판단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끼리 비교하면 않됩니다. 우리끼리는 비교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와 비교해야 합니까? 주님과 비교해야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하나가 될수 있을것 입니다 .
하나가 되면 전도하면 이 말씀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렇게 되는 성령의 역사를 보게 될것입니다.
2.뱀처럼 지혜롭게
그러면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예수님이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시는것입니다. 전도하려면 뱀 같이 지혜롭게 해라..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뱀 하면 생각나는 성경이 있나요?
창세기 3장에 보면 하와를 유혹했던 뱀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그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했을때를 잘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지혜롭게 했냐는 것입니다.
뱀도 하와를 유혹을 했을때 막무가네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지혜롭게 하와를 넘어뜨렸습니다.
어쩔때는 막무가네로 할때도 있습니다.
다 상황과 여건을 보고 하는것은 맞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와보라! 그렇게 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하지만 지인들 오랫동안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혜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것이 지혜로운것일까요!
창세기 3장의 내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3절입니다. 몇번의 대화로 지금 하와는 넘어지게 됬습니까? 바로 두번의 대화만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한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2.1관찰의 지혜
사단 마귀는 하와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관찰의 지혜를 적용했습니다.
사단 마귀도 세심하게 계획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볼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누구만 하십니까? 바로 하나님만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마귀는 우리는 넘어뜨리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고 있고, 어떠한 것을 반복적으로 하는지 유의하게 보는 것입니다.
욥기 1장 8-9절을 보면 하나님이 사단에게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물었을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한것으로 보아!
사단도 우리를 유의하여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은 무엇을 노립니까?
틈과 기회를 노리지 않습니까? 사단은 하와가 틈과 기회를 찾을려고 세밀하게 관찰하고 보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전도할때 그 사람을 유의하여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것이 약점이고 어느것을 좋아하는지를 잘 살펴 봐야 하는 것입니다.
방법을 찾기를 계속 기도해야 하는것입니다.
관찰을 할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대화도 하고 사귐을 가져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독불장군처럼 행동하면 않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 대상을 결정하는 지혜가 필요한것입니다. 관찰을 통해서 알수 있는 것입니다.
전도 대상을 잘못 결정해서 시간만 잡아 먹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 어떤 사람은 아예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는데 다른것에 잔뜩 관심이 잇는데.. 난 그사람만 전도 해서 넘어 뜨릴꺼야 하는 잘못된 생각을 가질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 드린다고 그 사람도 전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골로새서 4장 5절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모스 6장 12절을 찾아 보겠습니다.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공법을 쓸개로 변하며 정의의 열매를 인진으로 변하며
말들이 바위에서 달릴수 있습니까? 가능하지 않죠, 그리고 바위다가 소가 밭을 갈수 있습니까? 그것도 가능하지 않은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지혜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전도 대상자를 잘 관찰할 필요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사단이 하와를 넘어 뜨리는 것이 아니라 아담을 넘어뜨리려고 했다면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께 직접 말씀을 받았으므로 넘어 뜨리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반에 하와가 더 넘어뜨리기 쉽다고 여겼을 수 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지혜롭게 해야 겠습니다. 세월을 아껴야 하는 것입니다.
2.2 매게체를 잘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매게체를 잘 선택했야 합니다.
사단이 생각한 메게체는 바로 뱀이 었습니다..
에덴동산때에는 짐승과 소통이 가능했던것을 보아집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뱀의 모습이 지금의 모습이었다면 하와가 접근이라도 했을까요?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와가 보았을때 거부가 없었고.. 이야기를 할 정도 친근한 동물일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때 매게체를 잘 사용해야합니다.
제가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어느 지역에 은장회자매님인데 전도를 너무 잘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전도 하냐고 물어보니깐! 한 명을 전도하기 위해서 그 사람이 하는일을 잘 살펴 보았다고 합니다.
청소하는 일을 하면 지나가다 도와 주면서 전도하고, 운동을하는 사람이면 운동을 같이 하면서 전도하고, 이 은장회 자매님이 탁구는 치지 못해서 목사님에게 부탁해서 전도의 기회를 삼았다고 하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이것이 맞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우리는 전도를 할려면 그 사람을 잘 살펴보고 그 사람에게 친근감을 줄수 있는 메게체를 잘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그 사람과 신뢰가 쌓여야 합니다. 신뢰가 없다면 전도할수 없는것입니다.
신뢰가 무엇입니가? 믿음직 스럽고, 친절하고, 정직한 사람을 보고 말하지 않습니까?
난 얼마나! 나의 지인에게 믿음직 스럽고, 친절하고, 정직한 사람입니까? 나를 돌아볼 필요가 있을것입니다.
2.3존중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매게체는 바로 존중입니다.
사단이 하와를 어떻게 해 주었습니까. 존중했습니다.
그 마음에 높아지게 하는 마음을 넣어 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절에 보면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뢰되.. 하나님이 참으로... 그 다음이 중요한데요.. 너희더러..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여기서 너희더러가 사단이 넘어뜨리는 방법인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아담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와는 아담에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하와를 아담과 동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 높아지게 하는 마음을 생각을 넣어 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3장 5절에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된다.. 이렇게 높여주었습니다.
사단은 하와를 능숙하게 유혹하였습니다. 처음이 너희더러 부터 시작해서 어디까지 갔습니까? 하나님까지 간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하와는 나도 모르게 거기에 넘어가서 따먹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전도할때 상대방을 존중해주어야합니다.
말씀을 한번 들어 보자고 했을때.. 당연히 듣지 않는다고 하던지, 시간이 없다고 하겠죠.. 그것 또한 생각하고 가야지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일관성이 있게 할수 있는것입니다.
강압적으로 하면 않됩니다. 그 사람의 감정을 건들어서 집회 말씀을 듣게 하면 한번은 들을 수 있는데.. 그것이 여러번은 지속될지 의문이 듭니다.
전도할때는 나는 없는 사람이고 그 사람을 위해서 모든것을 다 맞추어야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복음이 싸구려가 아니라는 것은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교회를 모욕하고 복음을 모욕하면 그때도 그 사람을 존중해줘야 하겠습니까?
정확하게 그때는 말을 해야합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요.. 우리의 복음이 귀하다라는 것을 알려줄 필요는 있는것입니다.
2.4의심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네번째는 의심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사단은 하와에게 의심을 넣어 주었습니다. 어떻게 넣어 주었냐면 참으로 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첫 질문에 참으로 라는 말을 사용하여 교묘하게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 너희더러.. 먹지말래..
만약에 진짜 아담보고 먹지말래.. 이렇게 물어 봤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지만..
의심과 존중을 같이 하고 있는 교묘한 질문인것입니다.
우리도 전도하는 그 영혼에게 의심을 넣어 주어야 합니다. 이세상이 끝이 아니라는 것.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것, 그리고 돈이 많으면 행복하지 않다는것,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계속 이야기 해줘서 이세상에 대한 의심을 갖게 해줘야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복음이 들어갈수 있습니다.
2.5결정타입니다.
마지막으로 결정타를 날려야합니다.
계속 관계를 갖고 의심을 넣어주고, 존중해주고 끝나버린다면 그것은 의미없는 행동이지 않을까요!
결정타를 날려야합니다.
사단도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3절 후반부에 죽을가 하노라 ..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것입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결정타를 사단은 날린것입니다.
어떻게 날렸습니까?
4절 결코 죽지 않는다. 그리고 진실도 살짝 섞었습니다. 어떻게요 선악을 알줄 하나님이 않다.. 죄를 지으면 선악이 생기게 된어서 하나님처럼 된다라는 교묘하게 흔들리게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단이 확신이 찬 상태에서 말을 했을까요? 그러니깐 하와가 넘어가게 된것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할때 어떻게 전해야 할까요? 숙스러워서 담대하지 못하게 전해야 할까요! 그러면 않됩니다. 힘있게 우리의 복음의 메세지가 강력하니깐.. 힘있게 확신에 찬 말로 전해야 합니다.
확실한 증인의 말은 힘이 있다고 잠언에 나와 있지 않스니까? 힘있게 전해야 합니다. 그 확신에 찬 말을 들었을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유창한 말.. 전도집회를 다 한다고 해서 오는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 안에 확신의 찬 말로 힘있게 담대하게 전했을 때 그 영혼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결정타를 날리기 보다는 그 사람을 잘 관찰하고 존중해주고, 친숙한 매게체로 접근을 해서 의심도 넣어 주고 확신에 찬 말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어떻게 외쳐야 합니까? 복음을 어떻게 외쳐야 할까요? 담대히 외쳐야 합니다.
이사야 58장 1절 처럼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 그 허물을 야곱집에 그 죄를 고하라
우리는 크게 외쳐야 합니다. 내 목소리를 아끼지 말고 나팔같이 큰소리로 외쳐야합니다.
파수꾼의 역활을 적이 쳐들어 왔을때 힘껏 나팔을 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힘껏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 해야 하는 것입니다.
2.6 아담의 넘어짐. 인정
그리고 아담이 넘어 질때는 별 많은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무엇입니까?
인정입니다.
우리도 인정이라는 것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때가 있습니다.
가까운 지인.. 그리고 부모.. 형제 간은 인정이라는 것을 사용해서 넘어뜨려서 말씀 앞으로 오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러한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까?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누가복음 16장 9절에 나와 있습니다.
재물이라는 매게체를 전도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인정에 못이겨서 말씀앞으로 나오게 되고 구원받은 역사로 이루어 질수 있는것입니다.
선물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어쩔때는 울어야 할때도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영혼에 대해서 꾸준히 찾아 뵙고 신뢰를 쌓아가는것이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 인것입니다.
우리는 한 영혼을 말씀 앞에 나오게 할 때 다른것도 방금 전에 배웠던 말씀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전도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서두에 말씀 드린것 처럼 그 마음이 중요한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러면 하나님이 일을 하시깐요.. 반드시 그 영혼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전도할때 예산을 넉넉히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적당히 이정도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예산으로는 내가 먼저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먼저 포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전도하다가 여러가지 시험을 올수 있음을 알아야 하는것이고, 전도하다가 그 사람과 멀어질수 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까지 다 예산에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철저한 준비속에서 한 영혼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결론]
3.비둘기처럼 순결하라
그리고 24년도는 어떠한 삶을 살야합니까?
순결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주님은 그것을 말씀하고 계시는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는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바탕에는 우리의 순결한 삶이지 않을까 합니다.
순결은 섞이지 않은 순수한 때묻지 않은 이러한 말을 입니다.
빌립보서 2장 15절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우리는 흠이없는 자녀로 세상 가운데 빛을 나타낼 필요가 있는것입니다.
세상 사람과 동일하게 똑같이 죄를 지으면서 전도는 할수 없는 거잖아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목적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는 것 입니다.
어제 수요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라고 말씀하셨고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메세지를 어제 배웠습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 말씀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29절에 하나님의 보내신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영혼들에게 복음전파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중요한 메세지는 바로 순결.. 거룩인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 3-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세상에 살면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말은 죄에 대해서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지 순결할 수 있습니다.
3.1비둘기와 까마귀
비둘기는 어떠한 동물입니까? 순결한 동물이지 않습니까?
노아홍수때 방주에서 제일 먼저 보낸 새가 무엇 이었습니까?까마귀 였습니다.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먹을것 들이 있었고 쉴곳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까마귀는 부정한 새에 속합니다. 썩은 시체도 먹는 잡식성이기에 노아 홍수 당시 많은 동물과 사람이 죽었기에 돌아오지 않고 계속 거기에 머물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 보낸 새가 어떤 새입니까? 그것은 바로 비둘기인것입니다.
비둘기는 레위기에 정한 새이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제물로 사용되었던 새이었습니다.
비둘기는 더러운 곳에는 앉지도 않고 썩은 것들은 먹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까마귀는 구원받은줄 알았는데.. 그냥 세상에 머무는 새인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중에서 데마가 생각이 났습니다.
까마귀도 방주안에서 구원을 받았는데.. 결국 세상에 풀어 주니깐.. 어떻게 되었습니까? 방주로 돌아왔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세상으로 나아가버렸습니다.
우리는 여기 앉아 있는 분들은 구원받은 분들 아닙니까? 우리는 주님을 떠나서 악취나는 썩어져 가는 이세상에 머물면서 살아 갈수 있나요..
주님을 떠나서는 우리는 살수 없는것이 그리스도인 아닙니까? 떠났더라로 결국은 먹을것이 없고 쉴곳이 없어서 다시 방주로 돌아올수 밖엔는 없는게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비둘기 같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비둘기인 것입니다.
24년도에는 조금더 죄에서 멀어지는 생활에 힘써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내 마음이 점점 세상과 가까워 지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곳이 어떤 곳인지 한번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비둘기라는 것을 생각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머물곳이 없고 우리가 머물곳은 방주인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있을때 우리는 안식을 얻고 힘을 얻을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는 전도를 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교회안에. 그리스도 안에 있을때 우리는 열매를 맺을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 8절 읽고 마치겠습니다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