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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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및 서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성경에 부르심을 받은 많은 분들이 있는데요
먼저 성경에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경 창세기 12장 1-2절입니다. 찾아 보겠습니다.
왜 부르셨습니까? 잘알고 있죠. 세가지 믿음의 조상으로 삼을려고, 큰 민족을 이루려고, 땅을 주려고, 결국 축복하려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또 부르셨죠. 왜 부르셨죠..
창세기 22장에 시험하려고 부르셨습니다. 그 시험을 통과를 해야 더 큰 축복을 줄수 있으니깐요
구원 받은 사람을 부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의 결국 축복을 주실려고 부르신것입니다.
여기 계신분들은 모두다 부르심을 받은 분들입니다.
어떠한 부르심을 받으셨습니까? 교사로 다 부르심을 받으신것입니다.
그 부르심을 받았을때 순종 하였기에 이자리에 있는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부르심에 대한 이유가 반드시 있습니다. 나를 왜 교사를 불렀을까?
각자가 생각을 해보셔야 합니다.
결국은 축복입니다. 그리고 나를 귀하게 더 쓰실려고 부르셨을것입니다.
출애굽기의 장본인 모세를 불렀습니다.
출애굽기 3장 2-5절 말씀을 보면 모세를 부르신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의 부르심은 지금 모세의 상황이 어떠한 상황이었습니까?
모세는 죽을뻔한 운명에서 주님의 섭리속에서 40년간 애굽의 왕자의 신분으로 살았었고.
그리고 나의 힘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볼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오히려 독이 되어 살인자로 도망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양을 치는 목동으로 지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모세가 의기 양양 기세 등등 했을때는 주님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낮아질때도 낮아진 그 때 하나님은 모세를 찾았죠. 그리고 부르십니다. 모세야..모세야.. 이렇게 부르십니다.
양을 치면서 충분히 하나님을 찾을수 있었지만. 모세는 찾지 않고 그냥 그대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먼저 모세를 찾아오신것입니다.
5절 말씀에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이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잘알고 있듯이 죄악된 행위와 성품을 벗으라는 의미가 됩니다.
신은 우리가 이 땅.. 이 세상을 밝고 지나갑니다. 신에는 여러가지 것들이 묻어 올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세상과 구별되어야 하기에 이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곳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길은 거룩한 길이기이고 깨끗한 길이기에 우리가 신고 있는 그 신을 벗고 따라야 하는것이 맞는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여호수아 5장 15절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4장 22절도 벗어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그길이 경주하는 길인데.. 그 길 역시 벗어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입니다.
첫째 죄악된 행위와 성품을 벗으라고 말씀을 드렸고.
그리고 신을 벗는 행위는 지금까지 가지고 걸어온 나의 생각과 방법을 버려야 합니다.
생각을 해보면 신을 오래 신은 밑장이 어떻게 되나요. 낧아 지잖아요. 그리고 그 밑창이 구멍이 나거나 맨들맨들해지잖아요.
그것을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별됨이 없이 살다보면 나의 마음과 생각이 누구로 향해 갈까요? 이 세상의 것으로 향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무 감각이 없고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게 되는것입니다.
내가 오랫동안 붙잡고 살았던 낡은 생각과 자기의 방법을 버려야 합니다.
교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것은 나의 생가과 자기의 방법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분반 아이들이 온전히 서게 될것입니다.
만약 나의 생각과 나의 방법으로 아이들을 캐어하게 된다면 아이들이 온전하게 설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는 주님의 방법으로 아이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신발의 의미의 마지막은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종들은 신을 신지 않고 맨발로 다녔습니다.
신발은 주인들만 신을 수 있었습니다.
신을 벗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복해야 한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구원받고 우리의 위치가 아들이자 종의 위치인것입니다 .
우리는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인것입니다. 그러니깐 모세가 부르심을 받을때 처럼 우리도 신을 벗고 종의 위치에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도 부르셨습니다.
사도행전 9장 1-9절 을 보면 사도바울을 불렀을때의 장면이 나옵니다.
구원받기 전의 사도바울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사울은 초대교회당시 복음의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습니다. 사도 바울 본인이 이렇게 소개 하고 있잖아요?
디모데 전서 1장 13절 말씀에 나오잖아요? 내가 전에는 구원받기 전에는 그 말인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울이 주님을 만나고 어떻게 변했나요? 성경 14권을 기록한 사도로 변했습니다.
복을 전하는 복음전도자로 변했습니다.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을 다시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9장 4-6절..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사울은 영광중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직접보고 목소리도 직접 들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12사도들 중에서 잘 보시면 예수님을 보지 않은 사도 있습니까?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사도 있습니까 없죠..
사도의 조건으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본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낮추시고 굴복 시키셨습니다.
4절 말씀에 땅에 엎드려져 들으매
사울은 외부의 강압에 의해서 엎드려진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빛 앞에서 앞도당해서 스스로 땅에 엎드러진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연약함을 알게하시고 굴복 시키는 것은 더 큰 일을 맡기기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그리고 누구냐고 물었을때. 예수님은 어떠한 대답을 하는것이 맞을까요? 저의 생각으로는 난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스도다 그렇게 말씀할수도 있는데.. 주님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시고.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셨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즉 나사렛의 예수라고 말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그 말을 들었을때 사도바울은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고 메시아이구나 그리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그것이 다 연결되어 이해 하게 되었을것입니다.
이 절이 중요한 부분중 하나인것입니다.
우리도 예수가 누구인지 연결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가 그냥 예수면 의미가 없지요. 하지만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의미가 커집니다.
왜냐하면 그냥 나사렛 예수면 어떻게 되냐 피조물이 되는거잖아요. 그냥 사람이 되는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어떻게 되냐.. 나를 구원하실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되시는 분이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부분을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사도바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만나고 어떻게 변했습니까?
사울에서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사울의 이름의 뜻은 간구하는자라는 뜻이지만 이스라엘 초대 왕이 사울이기에 큰자가 되라는 의미였을수 있습니다. 왜냐 사도행전의 사울은 어디 사람이었냐면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고 초대와 사울 역시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바울의 이름의 뜻은 무슨 뜻인가요?
작은자라는 뜻입니다.
이름을 바꾼 진짜 이유는 사울은 유대인식 표기 법이고 바울은 로마식 표기법입니다. 이방인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이방 이름이 필요했을것입니다.
우리도 똑같잖아요? 외국에 나가 있는 선교사님보면 한국 이름 따로 있고 외국 이름이 따로 있는것 처럼 그렇게 했을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삶을 살았습니다.
세명의 신앙의 위인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사도 바울. 이렇게 세 사람 모두 하나님.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어떠한 행동을 취했습니까? 그냥 그대로 머물렀습니까? 아니면 주님이 그 들에게 부어준 사명을 위해서 열심히 달려 갔습니까? 열심히 달려 갔습니다. 즉 동행하는 삶을 다들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불렀습니다.
우리 각 사람을 일일이 다 아시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0장3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신다고 말씀하셨고
11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고 예수님을 소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4-15절에 선한목자는 결국 나의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목자 되신 주님께 돌아온것이 되는 것입니다.
벧전 2장 25절 말씀에 영혼의 목자 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사람을 일일이 다 알고 계시고 우리의 모든 삶과 마음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왜냐 여호와는 무엇을 보십니까? 중심을 보기 때문에 마음을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열왕기상 8장 39절
(왕상8:3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유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인생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여기에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다 개명을 하신 분입니다.
성경의 개명의 의미들이 있습니다. .
시몬 베드로도 계명했죠.
아브람도 계명했죠.
야곱도 계명했죠.
사도 바울도 계명을 했잖아요.
그 계명의 의가 있습니다.
사람의 이름은 단순히 누구를 부르는 호칭만을 의미하는것이 아닙니다. 이름이란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과 생애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히브리 사회에서 개명은 그 사람의 생애에 중요한 변화가 왔으며 이후 완전한 삶이 달라질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개명 해 주실때 단순한 호칭의 변화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개명을 했습니까?
성경 사도행전 11장 26절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무엇으로 개명을 한 사람들이냐. 그리스도인이라 개명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받고 나서의 삶이 달라질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뜻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이름의 걸맞게 살아야합니다.
지금 맡으신 교사의 직분도 그리스도인의 이름에 걸맞게 해야 하는것입니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에게 구원을 받았으면 그리스도인 답게 사는 법을 나의 몸으로 알려주어야 하고 만약 구원받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중요한 일을 맡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봉사하는 이것은 주님이 억지로 맡기신 것입니까?
아니죠.
이 봉사는 주님이 다 하실수 있는데 우리에게 축복을 주실려고 나를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실려고 부르셨다는것을 생각하면서 봉사 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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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부르심을 받은 위인들이 많이 있는데 몇분만 살펴 보았습니다.
그 분들 모두다 부르심에 no 하지 않고 yes 했던 분들입니다.
그 yes가 자기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탄탄 대로일지 가시 밭길일지 아무것도 모른체 그 부르심에 따라서 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다. 영광과 축복을 받으셨잖아요.
우리도 같습니다. 우리도 부름을 받습니다.
그런데요 우리는 누구의 부름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는데 주님의 일을 하라고 부름 받았는데 나의 사정 나의 형편을 먼저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지만 그 전에 우리의 위치는 종의 위치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주님의 피값으로 샀으니깐요. 그래서 이 일을 좀 해라 그렇게 말을 하면 종의 위치는 군소리 하지 않고 하게 되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름을 그냥 교회에서 시키는 일로 생각하면 불평이 나오고 불만이 나오는것입니다. 나의 형편을 생각하게 되는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마태복음 말씀처럼 그의 나라 주님의 나라의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직분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볍게 여기면. 그냥 알바하는 것처럼 내가 하기싫으면 관두는 그러한 일처럼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부름에 불순종하는 것 아닐까요. 주님은 우리를 충성되이 여기어서 이 직분을 주셨는데 알바처럼 생각하면 절대로 않되는것입니다.
이것은 내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우리가 하는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을 우리가 하는것입니다. 이 엄청난 일을 우리에게 맡긴것입니다.
이러한 직분을 하찮게 여기면 그것이야 말로 불 충성인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데요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은 하기 싫은데요. 내 인생에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이거 어떻게 생각하신가요. 모순아닌가요.
제가 회장님은 아니 대통령님은 존경하는데요 회장님, 대통령 말은 들을수 없습니다. 듣기 싫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 그 회장님은 그렇게 말한 직원을 어떻게 할까요. 짜르시겠죠.
그렇죠..
내가 직분을 게을리 한다는 것은 하나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될수 있습니다.
회장님 말은 듣는데. 하나님의 말은 듣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게을리하고 소명감이 없이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사람은 신앙생활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교회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사람은 교회에 마당만 밟고 살지 않을까요? 교회에 오고 싶으면 오고 오기싫으면 오지않고.
그러한 생활을 하는 사람인것입니다. 어떤가요 직분을 게을리한다. 누군가는 그러더라고요.
난 교사와 맞지않아. 내가 주신 이 직분이 나랑 맞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생각을 다시해야합니다.
내가 과연 하나님과의 관계 형성에서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지 생각해봐야합니다.
나에 대해서 누가 가장 잘알까요? 하나님이 나에 대해서 잘 아실것입니다.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것입니다.
그분이 나에게 맡긴 봉사이고 나에게 맡긴 직분인것입니다
그런데 나랑 맡지 않는다는 말은 이것 또한 모순이지 않을까요?
얼마나 내가 그 직분 그 봉사에 대해서 헌신하면 해보셨습니까?
얼마나 주님께 그 직분 그 봉사에 대해서 물어 보셨습니까?
주님은 나에게 합당한 직분과 봉사를 주십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직분과 봉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하고 내가 난 이 봉사와 맞지 않아 난 이 직분과 맞지않아.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것이야 말로 교만이지 않을까요?
우리는 항상 무엇을 생각해야 하냐면 주님을 먼저 생각하면은요 모든 봉사 모든 직분을 할수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헌신하신 주님을 생각하면요 난 무엇을 못할까요?
다 할수 있습니다. 내가 못해야지 내가 능력이 없다고 생각이 들어야지 누구에게 매달릴까요?
주님에게 매달릴수 있습니다. 내가 겸손해 질수 있는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직분과 봉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고 임해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소명과 사명감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직분과 봉사를 어디서 하는것입니까?
우리가 하는 곳은 바로 교회입니다.
이 성경이 사실입니까? 창조가 사실입니까? 그럼 교회에 주님이 계신다는 것이 사실인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일을 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인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2000년 역사를 지닌 교회에서 봉사하고 직분을 맡고 하고 있다는 것 감사해야할 일 아닙니까?
이천교회가 생기고 오랜시간이 흘러서 지금의 교회로 성장을 했습니다.
만약 교회에서 직분을 맡으신 분들이 기분이 좋으면 봉사를 하고 기분이 좋지않으면 잠수타고 본인이 원하는데로 교회를 운영했다면 지금의 교회가 있을수 있을까요? 절대로 있을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운영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울면서 씨를 뿌렸기에 그러한 일꾼들이 이 교회에 있었기에 그 충성되이 임했기 때문에 지금의 교회로 성장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교회안에서 성장하여 이러한 직분을 이러한 봉사를 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교회를 잘 이끌어야 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 에베소서 4장 12절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
이제 여기 계신 분들의 역할이 큰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어져온 역사를 계속 이어야 되잖아요.
교사라 부름받았잖아요.
우리에게 맡겨진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도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처럼 봉사를 하고 직분을 맡고 주님의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가 먼저 보여 주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보여 주어야 합니다.
신앙의 우선순위를 먼저 보여 주어여 합니다. 몸으로 행동으로 먼저 보여 주어야지 선생님을 보고 그 길을 따라 가지 않을까요?
저도 교회학교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가 따라가고 싶은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 선생님의 생활을 보고 나도 저 선생님처럼 살아야 겠다 그러한 마음이 든적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이러한 것 아닐까요?
나를 통해서 주님의 모습이 보여야지 않을까요?
벌들은 향이 나야지 그 꽃으로 날라갑니다. 우리도 향기를 내야지 주님의 향기를 내야지 우리에게 맡겨진 아이들이 주님쪽으로 마음과 행동을 나타나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귀한 직분을 맡은 분들입니다. 우리의 위치에서 성실히 행해야합니다.
이사야를 불렀을 때. 여호수아를 불렀을 때, 모세를 불렀을 때. 사무엘을 불렀을 때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분이잖아요.
사도바울은 이방인의 복음 전하는 자로 불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목숨을 받쳤다 잘 알잖아요.
그 부름을 받은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생활은 어떠했나요? 대충 했나요 아니면 목숨을 걸면서 했나요? 여기 앉아 있는 분들이 더 잘 알것입니다.
요나를 한번 볼까요? 요나를 보면 위로가 됩니다.
요나서 1장입니다 주님이 요나를 부르시고 소명을 주십니다.
2절에 보면 니느웨에게 가서 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어떻게 했나요 그 부르심에 반대되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파도가 강하게 불고 결국 바다에 던짐을 당하게 되고 물고기 배속에 들어가게 되었잖아요.
그리고 거기서 회개를 하고 결국 니느위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잖아요! 주님이 주신 소명을 이행하게 되잖아요. 순종하면 힘들지 않게 갈수 있는데 불순종 하니깐 결국 돌아서 가게 되는 운명을 보게됩니다. 우리도 같습니다. 주님이 주신 소명에 응답했으면 그대로 행하는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대로 응답하지 않았더라고 주님은 우리에게 두 번째 다시 소명을 주십니다. 3장 1절을 보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그때 요나는 순종하여 갔습니다.
교사의 직분 모든 직분에게 주님이 바라는것은 바로 순종인것입니다.
그것도 끝까지 순종하길 바랍니다. 순종하지 않고 딴길로 새면 때려서 다시 순종의 길을 가게 만드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두번째 나타나십니다. 우리가 각자를 돌아보면 두번째 나타나신 주님을 만난 분도 계시고 그러지 않은분도 계실것입니다.
저 역시 주님을 두번째 만나게 되었고 그 때 순종의 길.. 주님의 길로 갈려고 지금까지 노력하면 살고 있습니다. 왜냐 혼나기 싫거든요..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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