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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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사실 “영적”이라는 의미에는 좀 복합적인 뜻이 있다. 1) 신령한 2) 합당한. 분명한 것은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마음으로 받으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을 의식하는 경건
사람을 의식하는 경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사람을 향한 예배가 적지 않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그렇다.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배에 의식과 절차 이런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과 그 뜻이다. 절차에서 사람의 견해가 더 중요해도 안되며, 서로 사람을 미워하게 해서도 안된다. 그런데, 본문에서 사람들의 문제는 자기들 기준으로 눈에 보이는 경건을 강요하고, 또 구분 짓고, 미워한다는 점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율법
사람이 만들어낸 율법
오늘 말씀 금식 논쟁.
사실 금식이 뭐가 나쁜가? 얼마나 좋은가?
금식은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이 있을 때 드리는 것인데, 문제는 다른 것 의지할 것이 나무 것도 없고 주님만 의지하고 구한다는 것인데, 이게 무엇이 문제인가? 그게 자랑이 되고, 다른 무시하는 조건이 되면 안된다. 밥만 굶으면 안된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사람이 만든 율법이 문제다.
안식일 - 하나님의 명령이 분명한데, 사람의 규정을 만들었다. 몇 미터를 가야,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그러나 원래 정신은 힘들고 불쌍한 사람들
하나님의 뜻은 늘 분명하다, 불쌍한 사람의 그 불쌍한 이유를 고치고 회복시켜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초청하시는 것이다.
사람을 쫓아내는 율법
사람을 쫓아내는 율법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따지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는 선생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행동 규칙이 있었다. 같은 기도문을 외고 그러한 배경에서 주기도문이 나온 것이고, 얼마에 한 번 금식하고 이런 것을 행동 강령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이상했다. 매번 잔치 자리였기 때문이다.
33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금 이 말씀하는 바로 앞에, 이 이야기가 나왔던 것 기억하는가?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러나 우리는 교회에서 여러 기준을 만들어서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들을 배척하는데 익숙하다. 여러 예배나, 봉사나 섬김이나 예물인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하지만 그러나 내가 하는 행위가 다른 이들을 깎아내리고 우습게 보고, 결국 공동제에서 배제하기 위해서라면 매우 심각한 일이다. 말씀으로 비추어 보자 하나님께 칭찬받을 일을 희안하게도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나만 옳게 보이려는 이상한 일로 바꾸어 놓지 않는가?
사람을 부르시는 예수님.
사람을 부르시는 예수님.
그러나 예수님은 모두를 부르신다.
이전까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했던 이들을 부르신다.
지금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더불어 잡수시고 계셨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성경에는 준비되지 못하고, 도저히 그 앞에, 신랑 앞에 설수 없었던 신부의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온다 이사야에도 나오고, 계시록에도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우리가 만약 다른 조건을 자랑한다면, 지금의 나를 모르고, 예전의 나를 모르는 것이다. 예수님은 여러 사람이 모인 교회를 신부로 초청하고 계시는데, 심하게 이야기하면 “주제 파악”이 안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준비되었네 준비되지 않았네 손가락질 하고 있다.
교회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혼자 할 수 없어 예수님이 부르셨다.
죽어가는 것을 살려서 불러 주셨다.
6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이사야에서 이스라엘게, 지금의 나에게.
주님이 어찌 부르셨는지 알면, 그리스도의 신부. 준비된 신부의 모습이 저절로 갖추어 진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이 많다. 그리고 진정한 금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