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율법이 이끄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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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양심과 율법이 이끄는 곳
본문 : 롬2:12-16
(롬2:12) 율법 밖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또한 율법 밖에서 멸망하고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율법으로 심판을 받으리니
For as many as have sinned without law shall also perish without law: and as many as have sinned in the law shall be judged by the law;
(롬2:13) (이는 율법을 듣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아니하고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For not the hearers of the law [are] just before God, but the doers of the law shall be justified.
(롬2:14) 율법을 소유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본성을 통해 율법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행할 때에 이런 사람들은 율법을 소유하지 않아도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For when the Gentiles, which have not the law, do by nature the things contained in the law, these, having not the law, are a law unto themselves:
(롬2:15) 이런 사람들은 또한 자기 양심이 증언하며 자기 생각들이 서로 고소하고 변명하는 가운데 자기 마음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이느니라.)
Which shew the work of the law written in their hearts, their conscience also bearing witness, and [their] thoughts the mean while accusing or else excusing one another;)
(롬2:16) 이런 심판은 하나님께서 나의 복음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이루어지리라.
In the day when God shall judge the secrets of men by Jesus Christ according to my gospel.
양심
성경적인 용어라고 생각되지 않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양심”
모든 사람은 처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은 양심이라는 것이 작동하는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 안에서 계시되는 하나님을 밀어내고
양심의 반응을 밀어내고 죄를 지어 지옥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 탓이 아닙니다.
지옥에간 부자는 하나님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물을 원했을 뿐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형제들이 지옥에 가지 않게 해주길 원했습니다.
율법으로 구원받았다고 할 때의 문제점
(롬2:12) 율법 밖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또한 다 율법 밖에서 멸망하고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다 율법으로 심판을 받으리니
For as many as have sinned without law shall also perish without law: and as many as have sinned in the law shall be judged by the law;
성경을 믿는 사람들 중에 일부는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았고, 신약 시대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모세가 율법을 받기 전 1,500년 동안 율법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 전까지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하거나,
이 주장에 큰 헛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두 번째 율법은 이 땅에서 가장 작은 히브리 민족에게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가장 적은 수를 가진 히브리 민족에게만
율법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다른 민족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전 4,000년 동안은
모든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율법없이 살아왔는데
그들이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불공평한 것입니다.
세 번째 율법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중 아무도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면 그런 주장은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담은 율법을 어겨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 하나를 불순종한 것으로 죄인이 된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둘 다 자신들의 죄를 위해 하나님께 희생 헌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죄인지도 모르고 죄를 짓습니다.
어린 아이가 하나님이 해서는 안된다는 죄를 지었다면,
그것이 죄가 되는지 알지 못하고 지었다고 해도 그것은 죄가 됩니다.
한 단계 더 들어가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장난감을 갖고 싶어서 훔칩니다.
그때 자신의 행동이 어른 들에 의해서 들키게 되면,
대부분의 아이는 자기가 빼앗은 장남감을 돌려주거나
아니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 변명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아이가 한 행동은 양심때문에 일어나는 행동입니다.
노출이 심한 여성의 반응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이 다른 사람의 눈길을 의식해서
치마를 내리거나 가슴이나 어깨의 노출을 가리려고 하는 행동도
그녀 안에 남아있는 양심이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자신의 모습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 안에 있는 양심을 일깨우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속 중 교통 경찰을 볼때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고속 도로에서 과속을 하다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경찰차를 발견하게 되면 깜짝 놀라며 속도를 줄입니다.
자신의 행위를 제제할 권한을 가진 심판자가 등장함으로 해서
숨어있던 양심이 살아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죄인이 되는 것은 율법 때문만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율법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식을 넣어 주셨는데
사람들이 그 분별의 지식을 범함으로 인해서 죄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이 잘못인지를 몰랐다면 죄를 범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록된 말씀이 없이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경을 믿지 않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물건을 누군가 훔쳐가면 화를 낼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 속 어딘가에는 의의 기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멸망은 죽는 것 이상입니다.
요한복음 3장 15절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멸망은 그냥 죽는 것 이상입니다. 즉 하나님의 정죄 아래서 죽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멸망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에게는 지켜야 할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멸망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율법을 몰랐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알아야 할 율법이 주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멸망하게 되는 것은 양심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에
반응해서 용서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에 양심에 반응하지 않은 것을 물으실 것입니다.
율법을 행해야 의롭게 됩니다.
(롬2:13) (이는 율법을 듣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아니하고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For not the hearers of the law are just before God, but the doers of the law shall be justified.
이제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살펴봐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통해 살인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마음속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와 같은 동일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그것을 알고도 행동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모두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에 하신 말씀이 무엇일까요?
이방인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너희에게는 빛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빛에 반응하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에게는 더 크고 선명한 빛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빛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를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좀더 선명하게 보았을 뿐 이방인이 본 것도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의롭게 되는 지점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롬2:13) …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 but the doers of the law shall be justified.
이 말씀은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의롭게 되었다고(과거) 말씀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이 말씀은 나머지 신약 성경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은 양심에 따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에 반응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좀더 많은 것을 보여주십니다.
유대인은 율법에 반응하고 율법에 순종하는 행동을 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좀더 밝은 빛을 주셔서 좀더 의로운 지점으로 이끕니다.
그러나 이방인은 자신의 양심에 반응한다고 해서 의롭게 되지 못하고,
유대인들은 율법에 반응한다고 해서 의롭다함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의롭게 될 것입니다.
그 시점이 언제냐 하면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고,
그분을 통해 의롭다 함을 얻게 될때 의롭게 될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가르칠 때
주일 학교에서 어린이들이 처음 부터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배우는 것이 뭔지 모르지만
선생님이 가르치는대로 따라서 배우게 됩니다.
형과 언니 오빠들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배워갑니다.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을 듣고 하나님이 제시한 길을 따라갑니다.
그러다 어른들이 침례를 받는 장면을 보면 자신들도 받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구원은 아니지만 그들은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결국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과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교지에 가면 사람들은 여러분으로부터 이런 편지를 원합니다.
우리는 이곳에 2주간 머물렀고 94명이 구원을 받았으며
새로운 교회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들이 그곳에 도착하기전
누군가 이미 밭을 갈아 놓았고 씨를 심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그곳이 복음이 불모지였다면, 여러분이 기대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여러분을 쫓아내지 않는 상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조금씩 여러분을 친절하게 대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이 그들이 조금씩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움직이는 현상일 것입니다.
선교사들은 하나님이 정말 그들의 마음을 다뤄주시길 기도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비춰질때
그들의 양심이 빛의 방향으로 조금씩 움일일 수 있게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율법과 양심으로 의롭게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의롭게 되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율법을 받아들고 그것을 지키려고 한다면
그 결과는 그 율법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율법은 죄에 대한 지식입니다.
율법은 히브리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훈육교사였습니다.
그럼 양심은 무엇인가요?
그 양심은 기록된 율법만큼 명확하게 가르치지는 않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양심과 율법,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 한 지점에서만 의롭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유대인도 율법을 통해서 오도록 했고
이방인도 양심을 통해서 오도록 하셨지만,
이 둘은 결국 다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곳에서는 구원자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발 앞에 서게 됩니다.
이것이 이 구절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율법을 소유하지 않아도 자기에게 율법이 된다
(롬2:14) 율법을 소유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본성을 통해 율법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행할 때에 이런 사람들은 율법을 소유하지 않아도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For when the Gentiles, which have not the law, do by nature the things contained in the law, these, having not the law, are a law unto themselves: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에게 스스로가 율법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다.
성경이 없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유상종
(롬2:15) 이런 사람들은 또한 자기 양심이 증언하며 자기 생각들이 서로 고소하고 변명하는 가운데 자기 마음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이느니라.)
Which shew the work of the law written in their hearts, their conscience also bearing witness, and their thoughts the mean while accusing or else excusing one another;)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승인해 줄 사람들에게 끌리게 되는 법입니다.
죄를 짓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죄를 변명해 줄 친구와 교회를 찾아서
돌아다니게 됩니다.
한편, 만약 누군가가 옳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면,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이렇습니다.
(롬2:15) 이런 사람들은 또한 자기 양심이 … 자기 마음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이느니라.)
Which shew the work of the law written in their hearts, their conscience …
사람들의 양심이 활발하고 생생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이 이방인들을 먼저 다뤄보겠습니다.
이방인들은 허영심과 어리석은 우상 등을 신뢰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창3:6) 여자가 보니 그 나무가 먹기에 좋고 눈으로 보기에 아름다우며 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이므로 그녀가 그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한 자기 남편에게도 주매 그가 먹으니라.
And when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make [one] wise,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gave also unto her husband with her; and he did eat.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주신 말씀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그리고 그 열매는 먹지 말아라.”
가 전부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떠졌고 그들은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죄를 짓는 순간 전에는 필요 없던 양심을 그들에게 주십니다.
누가 벌거벗으면 안된다고 말해준 사람도 없었습니다.
죄에의해서 사람의 눈이 떠지는 순간 인류가 멸망하는 것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무언가를 넣어주신 것입니다.
(창3:7) 그들 두 사람의 눈이 열리매 그들이 자기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고는 무화과나무 잎을 함께 엮어 자기들을 위해 앞치마를 만들었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aprons.
남자와 여자가 자신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고 뭐라도 어떻게 하려는 순간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여기 너희를 덮기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죄를 짓자마자 양심에 따라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필요한 덮을 것을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죄에 대해서 그들 안에 생겨난 양심이 반응했던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들 스스로는 찾을 수 없고, 얻을 수도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현장을 찾아와 제공해 주신 것입니다.
이방인 아비멜렉의 반응
아브라함이 남쪽 지방으로 이동하면서
그랄 왕 아비멜렉을 만나는 상황이 생기게 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아내를 아비멜렉에게 넘겨주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창20:1-2)
(창20:3) 그러나 밤에 하나님께서 꿈에 아비멜렉에게 가셔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데려온 여인으로 인해 너는 죽은 자가 되었나니 그 여인은 한 남자의 아내이니라, 하시니라.
But God came to Abimelech in a dream by night, and said to him, Behold, thou [art but] a dead man, for the woman which thou hast taken; for she [is] a man’s wife.
(창20:4) 그러나 아비멜렉이 그녀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민족도 죽이려 하시나이까?
But Abimelech had not come near her: and he said, Lord, wilt thou slay also a righteous nation?
(창20:5) 그가 내게 이르기를, 그녀는 내 누이라,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또한 그녀도 스스로 이르기를,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순전한 마음과 무죄한 손으로 이 일을 행하였나이다, 하매
Said he not unto me, She [is] my sister? and she, even she herself said, He [is] my brother: in the integrity of my heart and innocency of my hands have I done this.
(창20:6) 하나님께서 꿈에 그에게 이르시되, 참으로 네가 순전한 마음으로 이 일을 행한 줄을 내가 아노라. 나 역시 너를 막아 내게 죄를 짓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이런 까닭에 네가 그녀에게 손대는 것을 내가 허락하지 아니하였노라.
And God said unto him in a dream, Yea, I know that thou didst this in the integrity of thy heart; for I also withheld thee from sinning against me: therefore suffered I thee not to touch her.
지금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이방인은
하나님이 다른 사람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그 어떤 기록도 주시기 전에
'그녀가 결혼한 줄 알았더라면 그녀를 데려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런 기준을 어디에서 들었을까요?
적어도 창세기 20장까지는 어디에도 '간음하지 말라'는 구절이 없습니다. '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말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로마서 2장은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양심을 두셨다고 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평상시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억제해 오다가
우리가 선포하는 말씀이 그들의 양심을 자극하는 두 번째 목소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가진 양심
(창42:21) ¶ 그들이 서로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에 관하여 참으로 죄를 지었도다. 그가 우리에게 간청할 때에 우리가 그의 혼의 고통을 보고도 들으려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는도다, 하매
¶ And they said one to another, We [are] verily guilty concerning our brother, in that we saw the anguish of his soul, when he besought us, and we would not hear; therefore is this distress come upon us.
(창42:22) 르우벤이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그 아이에게 죄를 짓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들으려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보라, 우리에게 그의 피도 요구하는도다, 하니라.
And Reuben answered them, saying, Spake I not unto you, saying, Do not sin against the child; and ye would not hear? therefore, behold, also his blood is required.
창41장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유괴가 잘못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그것이 죄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양심이 그것이 죄라고 말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르우벤이 형제들에게 하는 말을 보세요:
"이렇게 하면 안 돼, 죄야.”
그리고 그들은 서로에게 "왜? 난 괜찮을 것 같은데"라며 의논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셉에게 한 일은 우리가 잘 한일이라고 서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못된 사람들과 어울려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서 도와야 합니다.
(전7:2) ¶ 애곡하는 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이는 그것이 모든 사람의 끝이기 때문이라. 살아 있는 자는 그것을 자기 마음에 두리라.
¶ [It is] better to go to the house of mourning, than to go to the house of feasting: for that [is] the end of all men; and the living will lay [it] to his heart.
전도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해 아래서 살게되는 삶에 대해서 기록한 책입니다.
사람들은 멀지 않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이고,
양심이 그들을 매우, 매우 슬프게 만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그것이 모든 사람의 끝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끝에 참여하는 것이 애도하는 집에 가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하루가 끝나면, 친구들이 와서 성경을 읽어주거나,
예수님과 함께 할 날들에 대한 소망의 찬양을 부르게 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앉아서 후회를 곱씹습니다.
그들은 평생 아무 잘못이 없는 것 처럼 큰 소리치고 살았지만
그들은 삶의 마지막에 내면에서 강력하게 요구하는 소리에
답변해야할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드신 분들에게 다가가서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그들의 죄의식을 드러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하나님이 주신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이에 하고 그들의 내면의 후회를 빛으로 이끌어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인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과 함께 영원히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죽음을 앞 둔 많은 사람들이 늙으면 죽어야지 하면서도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자금과 시간을 동원해서 좋은 약을 찾아다니고
좋은 부적을 사용해서라도 삶에 집착하려고 합니다.
그들의 양심때문에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행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롬2:13) (이는 율법을 듣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아니하고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For not the hearers of the law are just before God, but the doers of the law shall be justif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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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4:1)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법규와 법도를 듣고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주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것을 소유하리라.
Now therefore hearken, O Israel, unto the statutes and unto the judgments, which I teach you, for to do [them], that ye may live, and go in and possess the land which the LORD God of your fathers giveth you.
하나님이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그들이 그것을 간직하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게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것들을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행했다면, 그들은 왕국에 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땅에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 그 땅에 머물 수 있었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땅에서 쫓겨나고 포로로 잡혀갈 때도 그들에게는 율법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만 있고 행하지 않는다면 아무 유익이 없었던 것입니다.
(레18:4) 너희는 내 판단의 법도를 행하고 내 규례를 지켜 그 안에서 걸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
Ye shall do my judgments, and keep mine ordinances, to walk therein: I [am] the LORD your God.
(레18:5) 그런즉 너희는 내 법규와 내 판단의 법도를 지킬지니 사람이 그것들을 행하면 그것들 가운데서 살리라. 나는 {주}니라.
Ye shall therefore keep my statutes, and my judgments: which if a man do, he shall live in them: I [am] the LORD.
풍성하고 좋은 삶은 법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법에 쓰인 것을 실행하는 것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약4:17) 그러므로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곧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죄가 되느니라.
Therefore to him that knoweth to do good, and doeth [it] not, to him it is sin.
알고 있어야 할 것을 알고도 행동에 옮기지 않는다면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약1:22) 오직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너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But be ye doers of the word, and not hearers only, deceiving your own selves.
교회에 와서 성경을 듣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고 삶에서 행하지 않는다면 죄책감만 생기게 됩니다.
(눅11:28) 그분께서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But he said, Yea rather, blessed [are] they that hear the word of God, and keep it.
누가 복을 받는다고 하셨나요?
말씀을 듣고, 계속해서, 지키는 자들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있지만 지키지 않는 사람은,
성경을 읽지 않고도 그 안에 있는 것을 행하는 사람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누가 유죄인가요?
(눅12:47) 자기 주인의 뜻을 알고도 자기를 예비하지 아니하고 주인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그 종은 채찍을 많이 맞되
And that servant, which knew his lord’s will, and prepared not [himself], neither did according to his will, shall be beaten with many [stripes].
(눅12:48) 알지 못하고 채찍 맞을 일들을 한 자는 적게 맞으리라. 누구든지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요구할 것이요, 사람들이 많이 맡긴 자에게 더 많이 달라고 하리라.
But he that knew not, and did commit things worthy of stripes, shall be beaten with few [stripes]. For unto whomsoever much is given, of him shall be much required: and to whom men have committed much, of him they will ask the more.
이제 우리가 로마서 2:16에 도달했을 때 일어나는 심판이 있습니다.
(롬2:16) 이런 심판은 하나님께서 나의 복음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이루어지리라.
In the day when God shall judge the secrets of men by Jesus Christ according to my gospel.
율법에 반하여 죄를 짓는 유대인과, 양심에 반하여 죄를 짓는 이방인 중
누가 유죄인가요? —> 둘 다 입니다.
판단의 날에 더 큰 벌을 받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보다 큰 빛을 받았던 사람이 더 큰벌을 받지만
어느 누구도 심판에서 면제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빛이 크던 적던 처한 상황을 벗어나기에는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요13:17) 너희가 이것들을 알고 그것들을 행하면 행복하니라.
If ye know these things, happy are ye if ye do them.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해당됩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 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강해를 다 해주는 교회에 다니는데
행복하지 않은 것은 행복은 지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지식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어느 순간 행복하지 않게 되었다면,
그것은 그들이 성경 공부를 멈췄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을 행하는 일이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이기를 힘쓰라는 말씀을 행하기를 멈추고
교회를 떠나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해줄 교회들을 찾아다닙니다.
자신의 행위를 변명해 줄 사람들을 찾아다닙니다.
(살전2:13) 이런 까닭에 우리가 또한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를 드림은 너희가 우리에게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들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그 말씀이 또한 믿는 너희 안에서 효력 있게 일하느니라.
For this cause also thank we God without ceasing, because, when ye received the word of God which ye heard of us, ye received [it] not [as] the word of men, but as it is in truth, the word of God, (멈춤 1)which effectually worketh also in you that believe.
잠시 멈추고 한가지 묻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몇분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계시나요?
“그 말씀이 또한 믿는 너희 안에서 효력 있게 일하느니라.”
여러분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만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단지 말씀을 듣는 자가 되어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단지 알고 싶어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여 행복해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를 바랍니다.
유대인들의 삶이 처참했던 것은 그들에게 율법이 있었지만
율법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의 삶이 처참했던 것은 그들에게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 양심대로 살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든 양심을 통해서든
그들이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을 잘 순종한다면,
그들은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런 사람으로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