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병이어로 사천명을 먹이시다(막 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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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배고픈 사람들을 먹인 이적은 복음서에서 두가지가 소개됩니다. 하나는 오병이어기적이고 또 하나는 오늘 우리가 다룰 칠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은 4개 복음서에 모두 나오지만, 칠병이어의 이적은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만 나옵니다. 두 기적 모두 사람들을 먹인 이적이란 점에서 같지만, 그 대상이 다릅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인 갈릴리 서편 유대인 지역에서 일어났다면 칠병이어의 이적은 갈릴리 동편 이방인 지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유대인들만의 나라가 아닌 이방인까지도 살리시는 나라임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배경이나 숫자나 오병이어 이적이 일어날 때 상황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오병이어 이적때와는 달리 지금의 무리들 가운데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이방인인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고, 여기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리고 데가볼리 지방을 거쳐 갈릴리 호수에 이르러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중증 장애인을 치유하셨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이 놀라운 치유 사건을 전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을 들은 사람들이 ‘멀리서부터’ 예수님을 찾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들이 예수님과 사흘이나 함께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 사람들이 광야에서 꼬박 삼일을 있었다는 것인까? 남자만 4천면이 넘는 사람들이 사흘 동안 광야에서 줄곧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냈다는 말인가? 아니면 처음에는 각자 가지고 온 음식을 먹다가 사흘째가 되어서야 멀을 것이 없어 배고프게 되었다는 말인가? 왜 예수님은 이들과 사흘동안 함께 하셧는가? 여러가지 질문이 생기는데요,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마가는 이런 세세한 사항을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마가가 말하고자 하는바는 다른데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의 우둔함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이 광야 어디에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앞서 예순임이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실 때는 날이 저물자 제자들이 먼저 “여기는 빈 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사람들을 해산시켜서 각자 인근 농가나 마을로 가서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십시오”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수님이 먼저 제자들에게 무리의 배고픈 상황을 이야기하시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심 오병이어의 이적을 본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저번처럼 이 사람들을 다 먹이실줄로 믿는다는 대답을 기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대답을 보십시오! 오병이어의 기적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 일을 잊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제자들의 이 심각한 건망증에 체념하신듯, 예수님은 다른 말씀을 하지 않고 “너희가 떡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라고 물으시고 무리들을 먹이십니다. 이런 제자들의 모습은 하늘의 만나를 맛보았지만 애굽 땅에서 먹던 고기를 그리워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시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닮아 있습니다. 즉 이 이적은 예수님께서 사천명을 먹인 것도 중요하지만 제자들의 우둔함이 두드러지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 그리고 기적을 경험하면서도 또 우리 앞에 놓인 문제 앞에서 걱정하고 근심하고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 아닙니까?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과거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이 번에도 도우신다는 확신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과거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걱정하고 이번에도 설마 도우실까라는 의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오늘 본문의 제자들의 우둔한 모습과 우리가 별반 차이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예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면 제자들 처럼 우둔해지지 말고 반드시 도우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기뻐하시며 어떠한 상황에도 우리를 구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6절에서 무리를 명하셔서 땅에 앉게 하십니다. 그러나 오병이어 이적때처럼 제자들을 시켜 무리를 정렬시키지 않으시고, 자신이 직접 명하여 땅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떡과 물고리를 나누는 일은 두 개의 이적 모두에서 제자들이 담당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배부르게 먹었고 남은 조각을 거두니 일곱 광주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로부터 받으신 빵은 일곱개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빵조각을 거두었을 때도 일곱 광주리에 찼습니다. 여기서 숫자 7은 이방인을 상징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때는 먹고 남은 것이 12광주리에 찼다고 말씀합니다. 12광주리는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칠병이어의 기적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생명의 떡이 되시고, 유대인은 물론 이방인들까지 천국으로 인도하실 분임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이방 지역까지 확대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만의 메시야가 아니라 만 백성의 메시야기 되심을 이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