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75 views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Notes
Transcript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나님의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출3장 1-5절]
1.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인사말-도입]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들에게 나타내시고 심지어는 인간이 되어 오셨다고 합니다. 그 어떤 세상의 종교도 신이 인간에게 먼저 와서 대화하는 인격적인 경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종교의 신은 인간의 필요에 의하여 만들어 졌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신을 열심히 섬기고 노력을 다하면 복을 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오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계시의 종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스스로를 알려 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창조주에 대해 알 수도 없고 세상과 우주의 기원에 대하여 접근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가져온 제목을 보면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라는 모세의 의문이 나옵니다. 자연적인 상황이 아닌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사자, 하나님이 그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떨기나무 같은 인생에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서론]
오늘의 주인공 모세는 인생을 삼등분 하여 살았습니다. 출생에서 애굽의 왕자로 살았던 40년의 시간과 양치기로 광야에서 살았던 40년,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40년의 광야의 길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모세가 80년의 삶을 살아가는 마지막 즈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입니다..애굽에서 왕자로 살았던 모세는 자신의 동족을 위해서 애굽 사람을 죽이는 범죄를 범하고 그 사실이 발각되자 모든 것을 버리고 도주하여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양 떼를 치는 목동이 됩니다. 히11:24-25,’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아마도 모세는 히브리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애굽 왕가에 소속되어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동족의 고통과 신음을 참을 수가 없었고 해결하려는 생각을 품었는지도 모릅니다. 40년을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그러나 광야로 도망 온 40년동안 애굽에서 배웠던 모든 선진학문과 과학과 경험은 세월속에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양을 치는 단조롭고도 어찌보면 지루한 40년이 흐른 시점에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 오십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찾으신 이유는 오늘 읽은 본문의 앞장 후반부에 나옵니다. 출2:23-25,’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3가지 정도의 이유입니다. 모세를 찾아 죽이려던 바로 왕이 죽었으며 이스라엘의 고통을 긍휼히 여기셨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세운 언약을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노예생활에서 구원하는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을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는 장면입니다.그렇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통해 일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순종하는 한 사람을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의 본문도 하나님을 만나고 순종한 한 사람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자유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 구속의 역사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은 결국 하나님이 이 땅에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 하시고 대속하시는 사건의 계시입니다. 그 계시의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구약성경은 많은 계시를 담고 있습니다. 그 결론이 신약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로 종결됩니다. 따라서 구약 성경의 결과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신약성경을 읽어야 하고 신약성경의 결과의 원인은 구약성경을 읽어야 드러납니다. 구약과 신약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합된 말씀입니다. 모세를 만나신 하나님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된 구원을 통하여 여러분과 저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찾아 오시는지를 본문을 통해 몇가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수련회나 기도원 그리고 특별 집회를 가면 항상 듣는 말이 있습니다. 강사 목사님들이 ‘여러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셔야 합니다. 오늘 이 밤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시는 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그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오늘 이 밤 하나님 알기를 원합니다. 성경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다고 계시하여 주시고 제가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여러분들은 이런 경험들이 있으시지 않나요? 다들 한번쯤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우리를 찾아 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까요?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않는고? 라는 호기심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첫번째,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비워질 때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마음이 비워진 다는
것은 낮아 진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40세의 모세는 이집트 왕자로 자신의 동족을 위하여 큰 일을 해보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40의 나이는 뭔가 해보려고 하는 나이입니다. 배울만큼 배웠고 힘도 있고 친구도 있고 세상 돌아가는 일도 깨우치는 나이입니다. 40세를 논어 위정편을 보면 ‘불혹’ 이라고 합니다. 미혹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큰 뜻을 품고 노예 생활로 고생하는 동족의 모습을 보며 아파했던 모세는 자신의 동족을 핍박하는 이집트인을 죽이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80세의 모세를 보십시오! 출3: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장인에게 의탁하여 장인의 양을 치는 양치기의 모습입니다. 물이 빠져도 너무 빠졌습니다. 종일 단조롭고 반복적인 일상으로 40년을 보냈습니다.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십시오! 출4: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13절’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왜곡된 태도가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에 보면 예수님이 어떤 이들을 찾아 가십니까? 세리와 창녀와 죄인들의 벗이라고 불리지 않습니까? 스스로를 의인으로 생각하는 자들을 찾아가시지 않았습니다. 눅18:9-14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마21장 31잘 후반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사업이 실패하고, 건강이 나빠지고, 관계에서 파탄이 일어나고 도저히 내가 할 수 없다고 했을 때 그때가 하나님을 만나는 때 입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갈6: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말하며 예수님은 막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자 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가치하고 무능력하며 우리의 능력과 의지조차 아무 소용이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철저히 부패한 죄인임을 고백할 때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인가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두번째,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떨기나무는 광야에 특별한 도구가 아닙니다. 쉽게 볼 수 있는 관목입니다. 호렙산이 하나님의 산이라는 것은 그곳이 특별한 지형이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산인 것입니다. 모세는 양치기의 일을 내려놓고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일상속에서 일상적인 환경과 사건속에 특별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떨기나무가 타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2-3절’ 2.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우리는 교회에 나와야 하나님을 만난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말씀을 읽어야 그 가운데 하나님을 만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시공간과 사람에 의하여 제약 받지 않으십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은 우리가 가장 오래 머무르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간의 때에 하나님을 만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곳은 바로 일상입니다. 학교이고 직장이고 가정입니다. 익숙한 곳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와서만 성경책을 펼치시지 마시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회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속으로 읊조리고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4절말씀을 보세요! ‘4.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모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하나님이 봤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뜻을 찾고자 돌이켜 말씀으로 나아가는 순간 하나님은 모세야! 태형아! 하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자리에서 우리에게 오시기도 하시지만 일상의 자리에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 나누시는 은혜로 충만한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세번째, 호기심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태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않는고? 하는 물음에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호기심이 묻어 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메시지는 5절 말씀입니다. 5.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을 연구하고 조사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그런 객관적인 자세를 버리고 네 발에서 신을 벗고 네가 있는 곳에서 내게 순복해라! 하나님은 말씀 하십니다. 5절 본문 말씀은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떠한 태도로 서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호기심은 어떤 일의 시작에 있어서 훌륭한 동기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이 줄 수 있는 축복을 진심으로 알고 싶다면, 우리는 그 복음에 대한 호기심 대신 순복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이스라엘의 선생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 왔을 때 이런 태도로 왔습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이 말씀 하십니다. 요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을 ‘나는 너와 토론할 대상이 아니다.우리는 동등한 사람이 아니다. 내려가서 네 신을 벗어라! 너의 접근 태도는 아주 잘못되어 있다’ 라는 의미입니다. 왜 하나님의 문제에 있어서 태도가 중요합니까?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복음은 계시의 문제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철학과 세상 종교가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인간에 대하여 이 세상에 대하여 생각해 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무언가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입니다.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우리를 찾아 오시는 하나님, 갑자기 친입해 들어오시는 하나님입니다. 오늘의 본문도 그렇지 않습니까? 기독교 신앙이 하는 일은 우리에게 신학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적인 지식이 풍부해도 하나님을 모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하는 일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관한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복음은 관념이나 개념 등 철학적인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다가오시는 그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을 벗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오늘날 성령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섰다가 잘못된 길로 빠지는 모습을 쉽게 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현상이나 기이한 힘이 아닙니다. 그분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여기서 신을 벗는다는 의미는 여러가지인데 과거의 실패와 경험을 버리라는 의미도 있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는 태도를 버리는 것도 포함 됩니다.
[결론]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 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계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찾아 오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만날 수가 있습니다. 오늘 같이 살펴본 바와 같이 첫째,우리가 낮은 마음, 우리 자신을 비우고 나아가야 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어떠한 기대감도 가지지 않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를 통해 그분의 위대한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두번째, 우리 삶의 일상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예배의 자리나 교회라는 특정한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물론 그곳 에서도 우리를 만나주시지만 우리가 더 오래 자주 머무는 곳, 가정과 직장과 학교와 관계속에서 하나님은 찾아 오십니다. 사람을 통해,관계를 통해, 환경을 통해 항상 말씀해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연구와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와 그분 자신을 진심으로 구할 때 우리 가운데 찾아 오십니다.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의 삶은 변화됩니다. 항상 차선을 선택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소모적인 삶에서 최선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모세는 어쩔수 없는 양치기라는 삶으로 인생이 끝나는듯 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지도자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차선의 선택, 차악의 선택을 따라 위험을 피하여 살아가는 인생에서 가장 좋은 최선의 삶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세상의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거룩한 땅을 디디고 살아가게 됩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끝임없이 피곤한 감정 소비의 인생을 떠나 자기방어와 합리화의 삶을 벗어나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정직하게 직면하게 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의 의미를 삶에서 체험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선하게 사는 인생에서 거룩한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나의 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상처받고 다시 노력하여 자신의 바벨탑을 쌓는 반복적인 인생에서 벗어나 은혜로 살아가는 복음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고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반드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 가운데 찾아 오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 가운데 침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저녁 우리 가운데 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의 기도로 나아가시고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고 그분의 초자연적인 행사가 아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구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모세를 만나고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 자리에서 있기를 간절히 축복 드립니다.
[마무리]
우리 말씀을 기억하며 찬양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