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5 금요기도회: 사무엘상 4:1-11
Notes
Transcript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언제나 저희와 교제하길 원하시는 분이심을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저희가 이 금요기도회 시간을 단지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의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교제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기뻐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이 곧 저희의 마음이 되게 하셔서 우리 주변에 있는 자들도 저희와 교제함으로 하나님이 얼마나 따뜻하신 분이신지 알게 되는 놀라운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상 4:1-11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언약궤를 빼앗기다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추운 겨울 동안 우리를 지켜주시고 따뜻한 햇살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좋겠습니다. 금요기도회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봄보다 더 따뜻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시간이 되길 소원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제목을 삼으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블레셋과 전쟁하려는 이스라엘의 이야기입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대적 중 대적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인 민족이 바로 블레셋입니다. 새벽기도회 때도 제가 이야기했지만, 이 블레셋은 창세기 10장부터 등장하여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괴롭힌 민족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 블레셋과 전쟁하고자 오늘 본문의 1절에서 에벤에셀에서 진을 치고 블레셋은 이에 맞서 아벡에 진을 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당시 전쟁은 종교와는 동떨어진 현대와는 좀 차이가 있는 전쟁이었는데요. 바로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을 넘어서 신과 신의 대결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의 신이 전쟁에서 패배한 국가의 신에게서 승리하고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고대 근동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곧 그 신이 승리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도 중요한 승리이니 너무나 중요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 때부터 가나안을 정복한 민족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이긴다고 장담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집니다. 2절을 보니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패배하였고 전사한 군사가 무려 사천 명쯤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블레셋에게 이스라엘에 대패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당연히 이긴다고 생각했던 전쟁에서 대패하였습니다. 그래서 3절에서 다시 진영으로 돌아와 왜 패배했는지 생각합니다. 3절입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하면서 자신들이 블레셋에게 패배했지만, 전쟁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가만 생각해보니 이길 방법이 생각났는데, 바로 방금 읽은 구절에 이어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고 말합니다. 바로 이들이 생각했을 때 패배한 이유는 이전에 여호수아처럼 언약궤가 있어야 승리하는데 언약궤가 없었기 때문에 패배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곧바로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고 실로에 있던 언약궤를 이스라엘 군대 진영으로 가져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5절에서 이제 큰 소리를 외치며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함성을 외칩니다. 그 함성 소리는 땅을 흔들 정도의 아주 큰 함성이었다고 합니다.
이 이스라엘의 함성 소리는 저 블레셋 진영까지 울려 퍼집니다. 같은 시각 이스라엘 함성 소리를 들은 블레셋 진영은 깜짝 놀라며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아, 여호와의 궤가 진영으로 들어온 것이구나”라고 깨닫게 됩니다. 그러자 블레셋인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첫 번째 반응은 “두려움”입니다. 7절을 보시면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라고 하며 이어서 8절에서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궤인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들어와 블레셋 진영에 두려움이 생긴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일하신 역사를 블레셋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역사는 바로 본문에서처럼 애굽을 하나님께서 치신 역사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10가지 재앙으로 내리심으로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애굽이 하나님 앞에서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블레셋은 이전에 애굽에서 벌어진 일들을 알고 있었고 애굽의 신들을 무력화시킨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언약궤를 통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의 전쟁에선 큰 승리를 거머쥐었지만, 언약궤가 들어온 이후에는 패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과 함께 다른 반응도 있었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 진영에 언약궤가 들어온 것에 대한 두 번째 반응은 “싸울 것을 결심”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블레셋은 여호와로 인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반응도 드러납니다. 9절입니다.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바로 블레셋은 두려움과 동시에 전의를 다지며 대장부 같이 되어 이스라엘과 맞서 싸울 것을 다짐합니다. 여기서 그들이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울 용기가 생긴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9절 중간에서 말하듯이 이스라엘을 종으로 부렸던 블레셋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계속해서 압제 받았었습니다. 사무엘이 나타나기 전 사사였던 삼손을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항상 잡아먹기 위해서 먹잇감을 기다리는 맹수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전부터 이리저리 마음대로 휘두룰 수 있었기에 그들은 겁먹지 않고 맞서 싸우기로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전의 전투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바로 직전에 이스라엘의 군사 4천명을 죽인 대승을 거두었기에 그들은 겁먹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은 용감하여졌고 대장부와 같이 되었습니다.
이런 각 진영의 상황 속에서 이 전쟁에서 누가 승리할까요? 더 나아가 어느 신이 이 전쟁에서 승리할까요? 애굽에서 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블레셋을 무찌를 여호와 하나님이실까요? 아니면 전에 이스라엘에게서 승리하였고 이스라엘을 종으로 부리는 블레셋 다곤 신일까요? 여기까지만 본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기실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도 똑같이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10절을 보시면 마침내 두 번째로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하게 됩니다. 두 진영이 전쟁하였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스라엘이 다시 한번 블레셋에게 패배하고 맙니다. 그리고 심지어 대략 4천명쯤 죽은 이전의 전쟁보다 더 큰 피해를 입게 되는데요. 이전에는 군대가 와해되지는 않았지만, 패배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갔고, 블레셋 군대가 무자비하게 도륙하여 죽은 군사가 3만명이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아주 처참하게 패배한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은 첫 번째 전투에서 블레셋에게 패배한 이유를 언약궤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가져왔고 대승을 거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전보다 더 나아진 것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심한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군대는 와해되었고, 3만명의 군사가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리고 11절에서 이스라엘이 이것만 있으면 승리하리라고 확신했던 언약궤는 빼앗기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이를 통해 여호와께서 블레셋의 신인 다곤보다 약한 신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것은 결코 다곤보다 약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으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패배를 허락하셨습니다. 여기에도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은 당시 사사 시대로 사사기에서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던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우상을 섬기거나 자기 마음대로 제사장을 세우는 등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3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실 때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다는 것이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할 정도로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제사장 엘리 또한 3장 2절에서 눈이 점점 어두워졌다는 것이 단지 신체적 눈이 어두워진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의 영적 상태가 좋지 않아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음성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통해 이스라엘의 직분자까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한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아 승리하려고 하였고, 그것이 바로 언약궤만 있으면 승리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여호수아 때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앞세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언약적 관계 안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신 것이지 결코 언약궤가 승리를 가져다주는 어떤 주술적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이 되는 관계 안에 있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에게 패배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두 번째 이유는 4절에 있습니다. 4절 끝에 보시면 언약궤와 함께 있던 자들이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였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이스라엘의 속죄를 맡은 아주 중대한 직분자인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고,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가로채는 아주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직분자들입니다. 이렇게 타락한 직분자를 치리하고 권징해야 하는데, 오히려 전장에 참여하도록 부릅니다. 이렇게 타락한 직분자가 함께하는 전쟁에 어떻게 승리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블레셋과 싸우는 전장에 홉니와 비느하스가 함께 하는 언약궤가 왔을 때 이스라엘은 패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원래 언약궤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기억나게 하고 그 위에 제물의 피를 뿌려 속죄하게 하는 용도입니다. 그럼으로써 언약궤를 통해 이스라엘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이러한 사실을 망각한 채 언약궤를 이스라엘에게 주술적 힘을 가져다주는 수단으로 전락시켜버렸고, 타락한 직분자가 함께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큰 패배를 안기셨고, 11절에서 이스라엘이 오용하는 언약궤를 빼앗으셨으며, 전에 말씀하신 엘리의 집을 향한 심판을 실행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한번 비춰봅시다. 오늘 본문은 약 3천년 전에 펼쳐진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매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연보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익숙해져 우리 마음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당연히 지켜주시고, 복을 주실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꼐서는 우리를 지켜주시고 복을 베푸시길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 사람과 교제하지 않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력이나 능력 등 좋은 점만을 취하길 원한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은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좋은 것만 빼먹는 아주 나쁜 관계라고 생각할 겁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기보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좋은 것들만을 원할 때 우리는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의 죄는 날마다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과 같이 우리의 대적들에게 패배하고 죽어 마땅한 존재입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이스라엘을 바르게 세우시기 위해 사무엘을 부르셔서 다시금 회복시키셨듯이 사무엘보다 더 탁월한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우리를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기적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과 진정으로 교제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4:48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여전히 인간은 그리스도의 기적에만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와의 관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에 전혀 관심이 없는 우리를 회복시키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셨습니다. 마태복음 27:54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바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아닌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또 에베소서 1:5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바로 그리스도 덕분에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 바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 구주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좋은 것들, 그리스도의 기적만을 원하는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과 같은 존재이지만, 우리와 교제하고 싶으신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의 이런 죄를 뛰어넘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의 언약적 관계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더라도 하나님과 너무나도 교제하고 싶어질 겁니다. 아무리 나에게 좋은 것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없다면 그것은 나에게 쓸모 없는 것이 될 겁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지 않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고 타락한 직분자를 치리하지 않고 전장에 내보내는 큰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대패하였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서 언약궤를 빼앗으시고 타락한 직분자를 심판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줍니다. 이런 우리의 죄와 연약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관계를 맺고 싶으신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인 그리스도를 보내시기까지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알 때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과 교제하길 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새순교회가 오늘 말씀을 꼭 기억하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음으로 그 교제 속에서 나오는 풍성한 복을 누리는 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두고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은 크나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않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좋은 것들만 원하는,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는 실수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죄는 날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보다는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좋은 것들만 원하게 만듭니다. 이 시간 이런 우리의 죄를 회개합시다. 우리가 이런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키신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또한 이런 하나님과의 관계를 토대로 우리도 우리 주변에 있는 형제들을 수단으로 삼지않고 그들과 교제하는 것을 기뻐하는 자들이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이 두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