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신다 2024 0317 창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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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 384장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창세기 40:1–8 (NKRV)
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2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4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요셉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오기 전까지는 단순히 꿈꾸는 자였다. 비전을 보는 자. 그런데 여기 감옥에서는 그러한 꿈들을 해석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요셉 스스로도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창세기 40:8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성경은 요셉이 어떻게 그러한 능력을 가졌는지, 혹은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요셉에게 꿈의 해석을 알려주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이 능력은 실로 위대한 능력임을 본문은 이야기하고 있다. 형들과 아버지도 요셉이 꿈을 꾸는 것 - 여기서 꿈은 단순히 잠을 자면서 꾸게 되는 잠재의식 속의 발현이 아님 - 을 굉장히 마음에 두고 있다.
애굽=이집트라는 제국에게 있어서도 꿈을 해석하는 것은 신비롭고 힘이 있는 행위였다. 두 관원장이 꿈을 꾸었으나 그 꿈, 환상에 대해 올바른 해석이 필요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이 일로 말미암아 바로의 앞까지 가서 꿈을 해석해내고 미래를 분별하게 되는 요셉. 제국은 그러한 능력을 지닌 요셉을 통한 하나님이라는 새로운 통치 질서를 맛보게 된다.
이 꿈들은 과거를 이야기하는 꿈이 아니다. 오히려 미래적이다. 그리고 그 미래가 우리의 노력과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요셉은 감옥에 갇혀있었으나 오히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꿈의 해석을 통해 자유롭게 미래를 내다보았다. 좀 더 큰 관점에서 보자면, 바로의 통치와 그 제국의 법률 하에 감옥에 갇힌 요셉과 관원장들이지만, 그들의 미래는 오직 하나님의 통치세계에 종속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 만이 우리의 미래를 아시고, 하나님 만이 우리를 미래를 책임지신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사람인 요셉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창세기 40:8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요셉은 그 해석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에게 그것을 말해달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본문에서 말하는 꿈과 요셉의 관계에 대해 한 주석가는 이렇게 말한다. “꿈은 이 특별한 사람 안에 머물러 있는 하나님의 기이한 주권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된다.” 즉, 아무리 제국이 현실적인 힘을 갖고 있더라도, 그들의 미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해석하고 나타내는 이 요셉에게 그들의 흥망을 좌우하는 힘이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갇혀있는 요셉

그런데 40장 전체로 봤을 때, 아직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 하나님의 주권을 담당한, 제국의 흥망을 좌우할 꿈을 해석할 힘을 가진 요셉이,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다. 술맡은 관원장의 복직을 예고했고, 그대로 되었지만, 요셉은 그에게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요셉은 잊혀진채로 차가운 감옥에 여전히 갇혀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 하나님이 동행하여주시고, 기억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람.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인간적인 도움이 필요한 비참한 상황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냐는 말이다. 우리 신앙인들의 고민 아닌가? 세상을 살면서 신앙적으로는 계속해서 희망을 말하고 소망을 말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능력이 일어날 것 같은데, 막상 현실은 그대로라는 것. 그래서 조금만 자칫 잘못 생각하면, 예수 믿어도 소용없네라는 생각으로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라. 우리 인간의 신실함은, 우리의 믿음은 이러한 부조화 속에서 발휘되어야만 한다. 요셉이 꾸었던 꿈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형제들의 볏단이 자신의 볏단을 향해 절을 하고, 해와 달과 별들이 자신을 향해 절하는 그러한 꿈을 보고 형제들은 우리가 너를 섬기느냐고 화를 냈다. 비전을 가졌는데, 꿈을 꾸었는데, 현실은 애굽에 팔려가고 있다. 억울한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혀 있다.

형통의 다른 의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꿈은, 비전은 세상이 이야기하는 형통하고는 조금 결이 다르다. 우리는 그러한 현실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동행하심을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요셉의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고 계심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형통하게 하시므로 보디발의 집이 평안하여졌고,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감옥에서도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감옥에서 사람에게 잊혀진 그가 기대하고 기다릴 것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계심이라는 사실이다. 현실의 절망적인 상황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찬란한 비전,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라는 부조화 속에서 우리는 신실한 우리의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기다려야 한다. 이 또한 성령이 함께 하셔야 한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사람에게 잊혀지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다.
기다림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그 기다림, 인내를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중 하나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 참음은 성령이 충만할 때 열매로 주신다. 오늘도 나의 절망적인 현실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든 성도님들, 성령의 충만을 기대하라. 성령께서 도와주심을 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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