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꾼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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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매주 여러분들 얼굴을 보는 것이 참 감사하고 행복한 것 같습니다. 저번주는 특별찬양예배로 인해 청년부 예배가 없어서 너무 아쉬웠어요. 여기 학생들이 없어서 여러분들은 체감이 별로 안되지만 제가 학교를 다니고 있다보니 방학 중에 여유롭게 있다가 이렇게 개강을 하면서 밀려오는 과제들을 보니까 참 암담한 것 같습니다. 엄청난 무게의 짐을 걸어간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이예요. 지금 2주가 지나서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3월 첫주에 제가 민수기 1~2장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구조사를 하고 조직을 개편한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광야로 들어가기 전에 어떤 삶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민수기는 1장부터 10장 10절까지 광야로 떠나기 전의 준비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서 오늘은 아까도 말했지만 레위 지파의 준비를 통해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우리 앞에 놓인 광야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지 같이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따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민수기 3장에서는 레위 지파의 인구조사를 통해서 성막에서 하나님 앞에 봉사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계수합니다. 그리고 레위의 자손들을 크게 4개의 가문으로 분류해 게르손, 고핫, 므라리, 아론의 가문으로 성막의 동서남북 이렇게 거주하게끔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읽어보면 레위 지파, 그 중에서도 고핫 자손들 광야를 이동할 때 해야 할 일과 맡아야 할 일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3장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 하자면 레위의 아들인 고핫, 게르손, 무라리 이렇게 세명의 아들들의 자손들 중에 오늘 고핫의 자손들이 레위인으로써 하나님 앞에 어떤 일들을 하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지 같이 살펴 보면 좋겠습니다. 3~4장에 레위 자손들의 인구조사를 두번 하게 됩니다. 3장의 첫번째 인구조사에는 1개월 이상 된 남성의 인구 조사를 하게 됩니다. 지금은 출산후 생존율이 높지만 그때 당시에는 한달은 지나야지 사망하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1개월 이상 된 아이들만 인원에 포함시킬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 인구조사는 4장에 각 자손별로 한번씩 더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3절에 보면 “레위 자손 중에서 고핫 자손을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집계할지니 곧 삼십세 이상으로 오십세 까지”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30세부터 50세까지의 사람들을 계수할까요? 바로 이어서 기록하고 있는데 바로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해서 라고 말하고 있어요. 민수기 1장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인구를 계수 할때는 20세 이상의 모든 남성들을 계수했고, 3장에 레위지파를 계수 할때는 1개월 부터, 그리고 오늘 4장에서는 30세 이상 50세 이하의 남성들의 수를 계수하라고 하는 것이죠.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30세부터라고 하는 점이예요. 보통 이스라엘 민족이 전쟁을 위한 일이나 큰 일이 있을 때 사람을 뽑을 경우 20세부터 인구를 계수하는 반해 고핫 자손들은 30세부터 50세 이하의 사람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왜 그럴까? 라는 의문을 한번 가져 봅시다. 그리고 회막의 일, 즉 성막에서의 일이라고만 이야기 하고 아직 언급을 하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4절에 “고핫 자손이 회막 안의 지성물에 대하여 할 일은 이러하니라”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웃긴 것은 5절부터 14절까지의 내용은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 기록하고 있어요. 뭐라고 이야기를 하냐면 진영이 움직일 때, 이동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지성물을 어떻게 포장해야 하는 내용이예요. 가죽을 덮고 그 위에 보자기를 싸고 또 채를 꿰고 그것을 틀 위에 올리고 어째 저째 이야기를 서술하다가 드디어 15절 말씀에 고핫 자손이 해야 할 일을 기록하고 있어요. 15절 말씀 “진영을 떠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라고 말이죠. 한마디로 아론과 그 아들들이 다 싸놓은 지성물들을 옮겨 매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고핫 자손들의 역활은 짐꾼이였습니다. 그리고 레위의 다른 후손들인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도 동일하게 짐꾼의 역활을 맡았습니다. 여러분 어떠신가요? 레위 자손이라고 뭔가 조금 다르게 대우 해주는 것 같고 자신의 다른 동류인 아론과 그 아들들은 제사장으로써 일을 하고 있으니 그들과 뭐 비슷하게 일을 할 줄 알았는데, 웬 걸 다른 일은 없고 오직 짐만 지고 옮기는 역활을 맡은 것이였습니다. 오늘날로 따지만 블루 칼라인것이죠. 흔히 생각하기를 고된 노동을 통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육체 노동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동남아지방이나 인도 같은 나라에 가면 짐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참 쉽지 않은 삶이죠. 고핫 자손의 경우도 얼핏 보면 진영의 방어를 막고 전쟁을 대비하는 타 족속의 군인들과는 비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동할 때 무기나 갑옷 대신 두 어깨에는 무거운 짐들이 있고, 적을 경계하는 두 눈 대신 연신 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고핫 자손들의 노동은요. 다른 임무 만큼이나 중요한 것입니다.
곧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3절에 보면 회막의 일 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여기서 말하는 “Work”라는 단어는요 히브리어로 “전쟁에 임하다. 전투에 나아가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낱 짐을 메고 옮기는 일 같지만 전쟁에 나가는 사람들과 같은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메고 가는 물건들은요 보통 물건들이 아닙니다. 회막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사용되어지는 물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는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고 누구는 하찮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서서 보면 모두가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교만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고핫 자손의 역활에 우리의 신앙 생활을 비추어 본다면 3가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짐꾼의 일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광야 생활은 성막 중심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백성들의 영적 생활을 가능케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 공동체로 묶어주는 중요한 역활을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광야 생활은 어느 한 곳에 정착되고 안정된 삶이 아니라 계속 이동해야 하고 불안전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막도 같이 이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 짐꾼의 역활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고핫 자손들을 부르시고 세우셨습니다. 만약 그중에 누구 하나라도 “나는 갑옷도 입은 멋진 군인이 하고 싶어, 아니면 나는 나서서 거룩한 제사장 일을 하고 싶다” 하였다면 온전히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는 짐꾼이 필요합니다. 외로운 광야 길을 묵묵히 자신의 짐을 지고 걸어가는 고핫 자손들 처럼 거룩한 사명감을 가지고 남들이 하고 싶어하지 않은 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일들을 묵묵히 감당하는 일꾼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면 그 일을 감당하겠다는 순종하는 영적 성숙함이 있을 때, 그 공동체는 건강하게 세워질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역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머리만 하겠다고, 아니면 모두 꼬리만 하겠다고 한다면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험한 길을 온 몸을 던져 걸어가는 두 발과 먼저 탐색해야 하는 두 손과 같은 존재들도 있어야만 온전한 몸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와이프가 가끔 저에게 그런 말을 합니다. “당신 두 다리는 나중에 복 받을거야. 그 무거운 몸을 지탱해야 하니까” 라고 말이죠 ㅎㅎ 공동체를 섬기는 일은 그것이 어떤 일이든지 귀중한 일입니다. 마치 지성물을 옮기는 고핫 자손들이 그 귀한 사명을 감당했던 것처럼 말이죠.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는거, 요즘 누가 그렇게 한다고 알아줍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공동체를 지키고 세워가기 위해서 그 일을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짐꾼은 짊어진 물건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짐꾼의 역활은 철저하게 주어진 짐을 들어서 옮기는 데 있습니다. 그 물건에 대한 권리를 주장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핫 자손들이 맡은 물건은 성소 물건들 중에서도 지성물들이었습니다. 지성소 오직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으며, 대제사장도 함부로 들어갔다가 죽어 나오는 곳에 있는 물건들입니다. 그렇기에 고핫 자손들은 그것을 포장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인 대제사장들이 다 포장해 놓으면 그것을 단지 어깨에 메고 옮길 뿐이었습니다. 15절 하반절에는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라고 경고하는 말 또한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옮기기만 해야 하는데 만질 수 없다’ 만약 옮기다가 지성물에 손이라도 닿으면 그 자리에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어깨에만 짊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왠지 억울하죠?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선이라는 것입니다. 내 어깨에 매었다고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해있는 공동체인 교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결코 우리가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오래 있었다고, 많이 안다고, 그리고 장로라고, 목사라고, 전도사라고 결코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꺼라고 생각하는 순간 욕심이 생겨버립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공동체에서 있을 때 겸손한 마음으로 섬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그 발걸음을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보호 하실 것이라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짐꾼은 진 짐의 가치가 높을 수록 존재가치가 올라가게 됩니다. 중요하고 귀중한 짐을 진 짐꾼은 그 자체로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막을 옮겼던 레위자손은 경호 대상 1순위였습니다. 그래서 이동할 때도 대열의 가운데 위치해 있었으며 멈춰있었을 때도 12지파의 호위를 받으며 안전하게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고 있는 일, 즉 그들이 메고 있는 짐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순절 가운데 묵상할 말씀을 위해 마가복음을 읽고 있는데 마가복음 15장에 보면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때 구경하다가 억지로 끌려와 예수님 대신에 십자가를 지게 됩니다. 그럼으로 인해 자신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지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것은 이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메었던 십자가가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훗날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 13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이게 무슨 관계 있느냐. 갑자기 루포는 누구냐 라고 물어본다면
마가복음 15:21-22 (NKRV)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 (번역하면 해골의 곳) 에 이르러
라는 말로 보아 한 순간에 지었던 십자가로 그 사람의 삶이 바뀌고 가족들 역시 복음의 역사에 참여하게 되 사도 바울의 감사를 받게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짐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지 짐을 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가장의 짐, 학업의 짐, 생업의 짐등 무겁기는 다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은혜숲교회 청년부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이 공동체에 있는 짐을 같이 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이러한 짐꾼에게는 반드시 목적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짐을 내려 놓는 순간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고핫 자손들에게는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곳에 들어간 이후 다시 짐을 지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도피성과 열개의 성읍을 분배받아 생활하게 됩니다. 우리의 가나안 땅인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분명한 것은 과도한 짐이 아닌 우리가 감당할 만큼의 짐을 허락하시고 그에 대응하는 은혜를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주님을 신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광야같은 생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 공동체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십자가를 , 나의 짐을 지고 걸어가는 믿음의 짐꾼이 될 수 있는 우리 은혜숲교회 청년들이 되길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제가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