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죄인입니다(롬 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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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죄인입니다(롬 3:9-18)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미국의 한 목사님이 있습니다. 큰 교회를 목회하시고, 제목만 들어도 알만한 책도 여러 권 쓰셨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많은 사랑 받는 비결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강단에서 절대로 죄인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 사람들이 싫어하는 말을 입에 담는 설교자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이런 설교를 들으면 기분은 좋아집니다. ‘나도 괜찬은 사람이구나!’ ‘나도 하면 되겠구나!’ ‘이제 잘 할 수 있어!’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한국교회에만 기복신앙이 있는 것이 아니고, 미국교회에도 있습니다. 이들은 복(福)만 이야기하지, 성도로서의 바른 믿음과 삶을 말하지 않습니다.
로마서를 벌써 아홉 번째 설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기억하십니까? 「죄」 「진노」입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로마서 초반부는 인간의 「죄」 때문에, 「진노」하시는 하나님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아내와 대화 중에 「당신 요즘 너무 죄인이라고 말하는 거 아닌가요? 성도들이 불편해하지 않겠어요?」라는 대화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앞에서 말한 미국의 한 목사님처럼, 좋은 말만 불편하지 않은 말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은 "다 죄 아래에 있다"(3:9)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3:10) 그래서 "모두가 죄인입니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어딘가가 많이 아픈데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습지만 아주 단순합니다. 「내가 죽을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본인 몸의 실체를 보게 될까봐 두려워서 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다 죄 아래에 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사정없이 발가벗겨 놓고, 약한 것 부끄러운 아픈 것드러내하나님의 진단입니다.
왜냐하면 「영혼과 육체의 의사」이신 하나님은, 로 인하여 타락하고 부패하여 중병(죽을 병)에 걸린 우리 인간들에게 그저 듣기 좋은 말만 하실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을 전제 하는 대표적인 것이 심리치료입니다.
심리치료는 '너는 좋은 사람이야, 너는 문제없어! 환경이 문제고 다른 사람들이 문제야'라고 합니다.
교회에도 그러한 세상의 접근방법인 '내적 치유'가 한때, 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실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
예수님은 모든 사람죄인으로 보셨고, 죄인으로 다루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부끄럽지만 아프지만 그것이 사실이고 그것을 인정해야 우리가 무서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화목할 길열리고 하나님의 자녀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다 죄 아래 있습니다(9).
본문 9절의, ‘다 죄 아래 있습니다(다 죄인입니다).’라는 말은 비종교인이든, 타종교인이든, 신앙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든 거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 「그래 나는 아니다!」 혹은 「그래도 나 정도는 괜찮지!」’라고 믿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9上)라고 묻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편지를 쓴 바울과 이 편지를 받는 로마교인들 그리고 지금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들입니다.
우리’라고 지칭되는 로마교인(그리스도인)들듣고 싶은 말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방인)당연히 죄인이고, 「우리는 아니다」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인인 우리들도 유대인들이나 헬라인보다 나은 점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없었다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9下)말합니다.
죄 아래 있다’는 것은 죄의 지배 아래 있다, 죄가 권세를 가지고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인율법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죄인이라고 정죄하셨으며, 이방인들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우상숭배와 온갖 불의를 행하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이렇듯 죄의 지배아래 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은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2. 의인은 없습니다(10-12).
그리고 바울은 죄의 지배아래 있는 세상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10)고 말합니다. 이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기준에서 볼 때, 기준에 도달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죄」와 「죄들」이라는 말을 구분하였습니다.
복수인 「죄들」은, 인간이 범하는 「여러 가지 악행들」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들(어린이, 시골 오지에 사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이 죄들을 덜 범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윤리적 문화적으로 개방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이 죄들을 더 범합니다.
세상에는 죄들을 덜 지은 사람은 있어도, 죄들을 안 지은 사람은 없습니다.
단수인 「죄」라고 말할 때는, 「죄의 실체」「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2)사탄」을 말합니다.
그래서 「다 죄 아래 있다」는 말은, 단순히 죄인이다! 죄 짓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죄의 실체인 어둠의 권세에 지배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죄 아래 있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기준에 맞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10)는 것입니다.
결국 「죄 아래 있는 사람」은, 「죄들」을 「범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릅니다.
그 상태는 우선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11)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으려 하는 자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은 ‘삶의 동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는 모든 일에서 도데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뜻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으려는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상태가 “다 치우쳐”(12a)입니다. 「치우쳐」는 ‘빗나가다’ ‘떠나가다’는 의미로, 『하나님으로부터 고의적으로 다(모두) 빗나가고 떠나가는 상태』입니다.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인생‘의지’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고의로 완전 반항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죄란, 의지적으로 하나님 뜻이 아닌 것을 선택하는 자기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성품이(삶의 동기와 의지가) 고장난 상태가 되기 때문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12)라고 말합니다.
모든 인생은 죄 지배아래 있기에, 하나님 앞에서 무익(무능력)하고, 결코 하나님의 기준에 부적합하기 때문에 10절과 똑같이 「선을 행하는 자=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3. 죄의 양상(13-15)
바울은 이어지는 13–15절에서 「죄의 양상」;‘죄 지배아래 있어서 고장난 성품의 사람들’이 행하는 여러 죄들의 모습’을 말합니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13上) 열린 무덤에서 악취가 나듯이 목구멍에서 악한 말이 나온다.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13中) 말끝마다 아첨과 사기치기를 일삼는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13下) 말에는 사람을 살리는 말이 아니라 죽이는 이 있다.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14) 입에는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다”(15) 행동은 죄 짓는데 빠르다.
바울은 죄들을 말하면서 말(목구멍 혀 입술 입)로 짓는 죄들강조합니다.
유대인들은 마음은 심장에 있고, 마음의 출구는 이기 때문에, 부패한 마음입으로 악한 것을 쏟아내고 더 나아가 행동으로 옮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듯 로 부패한 우리 인간입과 행동으로 쉴 새 없이 많은 죄들을 짓습니다.
4. 죄의 결과는 단절입니다(16-18).
그렇다면 이 죄와 죄들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바울은 심각하게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지나치게 관대니다. 살다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네, 그렇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는 방치되면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우선 바울은 이러한 죄의 결과사람 사이의 관계를 단절한다고 말합니다.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다”(16)“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17)라는 표현을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파멸’은 ‘파괴, 폐허’를 뜻하고, ‘고생’은 ‘비참함, 불행’을 의미하고, ‘평강’관계가 회복되어질 때 주어지는 참된 평화입니다.
그런데 서로에게 피해를 입힙니다. 그래서 사람 사이의 관계파괴함으로 평화를 무너뜨려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18) 이것은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 단절시킴으로 오는 빗나간 자신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예사로 죄를 짓는 이유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떨 줄 모르는 것만큼 불행한 인생은 없습니다.
죄가 무서운 것은, 모든 것으로부터 나 자신을 단절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 시켜 삶의 샬롬을 무너뜨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 시켜 이 땅에서와 영원한 하나님의 샬롬을 얻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이 가장 어려워하는 일 중의 하나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운 것이고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전히 나는 죄인이 아니라는 신념에 붙잡혀, 나의 능력으로 충분히 살 수 있고, 내가 노력하고 좋은 일 많이 하면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믿기를 원한다,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그 죄 때문에 부패하고 무능한 자기 실존에 대하여 절망해야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구원의 손이 나를 압도하시며, 나를 거듭나게 하는 성령의 역사가 내 심령 깊은 곳에서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일정시간이 채워지면, 세례도 받을 수 있고, 교사도 될 수 있고, 봉사자도 될 수 있고, 직분자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오래 다녀도, 세례 받고 직분자로 세워졌어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가슴 깊이 와 닿지 않는다면, 아직도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혹시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혹은 찬양대찬양단으로 예배위원으로, 아니면 교회 곳곳을 청소하고 주방에서 방송실에서 예배와 교회를 섬기고 있다고 안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렇게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교회에 봉사하면, 가정이 잘 되고, 자녀가 출세하고, 봉사한 만큼 천국이 가까이 오고, 헌금한 액수만큼 천국의 좋은 맨션을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주님과 교회를 섬기고 헌금하고 봉사하는 동기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격하는 것아니라면 회개해야합니다.
이 시간, ‘다 죄 아래 있다’ ‘모두가 죄인이다’라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진지하게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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