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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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변명하다

24. 3.12 수요일 새벽예배
[기도]
기도하시겠습니다.
[찬송가 138장 새 151장]
[통성기도]
우리 이시간 예배를 위해서
선포될 말씀을 위해서
우리 마음 밭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코로나 전염병과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전쟁 속히 종식시켜달라고 기도하시고
몸이 불편한 우리 산성 식구들과 장기 결석하는 식구들 위해서 우리 나라를 위해서
주여 한번 부르짖고 기도합니다.
오늘 함께 나눌 성경 말씀은
사도행전 24:10–24 NKRV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말씀입니다.
고발한 자들의 거짓말을 지적하다(10~13절)
사도행전 24:10–13 NKRV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지난 본문에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고용된 더둘로는 법정에서 바울에 대한 사형성고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바울이 로마제국의 법을 어기고 가는 곳마다 폭동과 반란, 심지어 무장봉기까지 꾀하는 정치범인 것처럼 그를 몰아가면서 고발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더둘로의 그러한 거짓 고발에 대해 바울이 반박하고 변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24:10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0절에 보면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고 말하는데 총독 벨릭스가 머리를 까딱해서 바울에게 말하라고 지시합니다.
이러한 총독의 모습을 보면 총독의 권한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어떻게 통치해왔는지 알 수 있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둘로는 총독 벨릭스가 백성에게 태평성대를 가져다준 위대한 지도자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사실 벨릭스는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기로 유명한 불의한 총독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있다는 말로 자신의 변호를 시작합니다. 이때가 벨릭스가 총독으로 있는지 6년째쯤 되었습니다.
11절에 보면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몇일 있었는지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변호를 합니다.
사도행전 24:11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바울이 벨릭스 총독의 법정에서 선 그날은, 그가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12일 정도 된 날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를 만났고, 그 다음 날부터 야고보와 리더들의 권면에 따라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결례를 시작하여 7일째 되는날 마쳤습니다.
바로 그날 마치고 나오다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성전에서 보고 이방인을 성전에 데려 왔다고 하며 바울을 모함하여 바울을 잡아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 상황을 모르는 로마 천부장 루시아가 바울을 잡아서 로마군 안토니오 요새 안의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 후로 바울을 채찍질을 해서 심문하려고 했는데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천부장은 두려워하면서 8일째 되는 날 바울을 유대인들의 산헤드린 공회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9일째 되는 날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암살 음모를 바울의 조카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날 밤 즉시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65마일 정도 떨어진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 벨릭스에게로 보냅니다.
그 다음 날인 10일째 되는 날 가이사랴에 도착한 바울은 그날부터 헤롯궁에 갇혀 있게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난 지 5일 만인 13일째 되는 날 총독의 법정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이렇게 예루살렘에 온 지 12일 밖에 안 되었다는 것을 강조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오고나서 12일동안 더둘로가 말한 로마 제국을 위협하는 어떤 폭동이나 반란을 계획하는 것 자체가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일주일만 예루살렘에 있다가 잡혀서 이리로 왔는데 그 일주일동안 어떻게 로마에 반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반란을 일으킬 음모를 계획한다는것이 말이 안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더둘로가 고발한 내용이 정황으로 보아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반란이 쉬운것도 아니고 폭동을 일으키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닌데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인데 쉽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바울이 1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24:12 “12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바울을 고소한 자들이 무리를 소동하고 잘못된 일을 한 것을 본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동하거나 폭동을 일으킨걸 본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고발한 자들은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간 것은 성전에 예배하러 간 것이라는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부활의 소망을 선포한 바울(14~16절)
사도행전 24:14–15 NKRV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왜 자기를 법정에 세워서 자기를 죽이려는지에 대해서 말합니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유대인들이 이단이라고 말하는 것을 믿고 말하고 전하고 있다는 것을 총독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에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말하면서 부활을 말합니다.
그냥 부활이 아니라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5:28–29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성경은 아주 강력하게 말합니다. ‘죽은 후에는 의인과 악인 곧 모든 사람의 부활이 있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으며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은 이유중에 하나는 예수 부활에 대한 증언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외친 복음의 핵심은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이였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다 “예수 믿고 천국가자”가 아니라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우리가 그 증인이다.”라는 것이 그들의 메시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15절에 말한 것처럼 성경은 의인이나 악인이다 다 부활할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5:10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부활은 의인이나 악인이다 다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착한일을 조금하는 도덕적 선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있느냐 아니냐입니다. 성경에서는 철저히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부르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저러하며 사는 사람을 ‘악인’이라고 부릅니다.
로마서 2:5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계시록 20장에 보면, 마지막 때 하나님의 크고 흰 보좌에 심판대가 있는데 그 앞에 생명책이 펼쳐 있습니다. 그 앞에 큰 자나 작은 자나 할 것 없이 죽은 자들이 서서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12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그 ‘행위’는 단순히 착한 일을 조금 하고 말고 하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인으로 믿고 따르며 살았는가 하는 믿음의 행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의인과 악인 모두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20:13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3.   무죄를 증거하다 (17~21절)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7-18절)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한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온 이유 중 하나가, 큰 흉년을 당한 예루살렘 사람들, 특히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마게도냐 그리스도인들의 구제헌금을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주변 유대인들에게도 구제하도록 가져온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야고보의 권유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7일 동안 결례를 행했는데,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를 이단아라고 오해하니까 ‘아니다. 나는 정통 유대인이다.’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성전에서 의식을 행하게 했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다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쳐 죽이려 했는데 그것은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에 3년 동안 아시아의 중심지인 에베소에 있으면서 두란노 학당이라는 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에베소는 이미 우리가 아는 것처럼, 고대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아데미 여신의 신전이 인간을 압도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게 다 돈입니다. 엄청난 돈이 들어왔습니다.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 에베소였고, 그래서 수많은 에베소 사람들이 아데미 신전을 이용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우상을 만들어 팔던 은장색들이 대표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에베소에서 바울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고 전한다고 하여,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격분해서 바울을 그냥 둘 수 없다고 하며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죽이려 했고, 그때 바울을 배교자로 여기고 있던 에베소의 유대인들도 그들과 합세해서 바울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변호했습니다.
그리고 억울할 수 있는데 사도 바울은 그 상황에서도 억울함 보다는 자신의 상황을 변호할 뿐이었습니다.
억울하다는 것보다는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순응할 뿐이었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억울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고 여러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기억하여서 복음 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참 이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살아갑니다.
우리에게도 여전히 그 부활 소망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다시 사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어지고 그 부활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믿음이 살아남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을 보고 믿습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을 믿습니다.
그 말씀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증거가 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증거입니다.
[찬송가 265장새 516장]
성예용 권사님
우리 이시간 주여 한번 더 부르짖고 각자 주신 은혜 붙잡고 기도하시다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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