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시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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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
도입부
지난 시간에 이어 성령의 임재로 시작된 복음의 시대에 대한 메세지를 나누겠습니다.
이전 시간에 나눈 성령님의 임재 시 나타나는 바람과 불의 혀와 함께 지난 시간에는 방언 즉 성령의 언어로 나타나는 권능과 증인에 관한 설교를 나눴습니다.
오늘 본문의 오순절 성령임재 사건은 앞으로 이어질 사도행전 전반에 걸쳐 4번의 오순절을 더 맞이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첫 오순절날 일어날 엄청난 변화와 많은 가능성에 대해 살펴 볼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세가지의 주제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삶의 방식의 변화를 촉구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시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서론
서론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복음의 시대를 활짝 연 엄청난 사건 입니다.
복음의 시대의 특징은 하나님의 영, 즉 성령께서 본격적으로 역사하시는 시대를 말합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베드로는 당시 오전 9시쯤으로 추정되는 오순절 아침 성령이 임재하시어 강력하게 역사하는 이 사건에 대해 요엘의 예언을 인용 합니다.
베드로가 대중 앞에 담대히 서서 외칠 수 있는 것과 그가 요엘서의 예언을 떠올리는 것도 성령님의 역사였습니다.
요엘서가 요하스왕 초기 쯤에 기록되었으니까, 주전 약 850년 쯤으로 추정 합니다. 베드로는 850년전의 예언을 오늘 자신이 경험하는 성령강림 사건과 연결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삶의 궤적과 그의 지식수준을 고려한다면 베드로가 할 수 없는 탁월한 해석이며 정확한 적용이니, 사람의 의도나 지혜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와 요엘서의 예언에서 하나님은 이 시대의 특징에 대해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는 시대”로 규정 합니다.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는 시대”
모든 육체
말세에 …
사도행전 2:17 (KRV)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
1. 말세-오순절 부터 재림까지
1. 말세-오순절 부터 재림까지
첫번재로 우리가 살펴볼 것은 “말세” 라는 시대적 특징 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이 말은 지금으로 부터 2000년 전에도 쓰이던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세”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세상이 악해졌을때, 이제 세상이 갈때까지 갔구나! 싶을때 클리세 처럼 사용하는 말이 말세 입니다.
이 말을 조금만 깊히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언젠가는 종말이 온다 라는 것을 많은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인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시간관이 존재 합니다.
원형적 시간관
직선적 시간관
하나는 윤회로 대표되는 원형적 시간관 이고
또 하나는 역사는 지속적으로 진보 한다는 직선적인 시간관 입니다.
기독교의 시간관은 어느 쪽일까요?
좁게 보면, 원형적 시간관 이고 넓게 보면 직선적 시간관 이라고 할 수 있지만 꼭 그렇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사는 죄를 짓고 다시 돌아오고 죄를 짓고 다시 돌아오는 원형적이고 순환적인 역사의 반복 입니다. 그 와중에 하나님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으니, 직선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생각하는 직선적 시간관에는 지속적인 발전 이라는 허망한 비전이 숨겨져 있습니다. 말세를 염두에 두지 않은 직선 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달력에는 마지막 장이 존재 합니다.
우리 주님은 말세의 징조에 대해 감사하게도 여러가지로 말씀 해주셨습니다.
마지막 때의 징조들
거짓 그리스도
전쟁과 분쟁
기근과 지진
사랑이 식어짐
거짓 그리스도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2020년 조사에 따르면, 자칭 하나님 20명, 자칭 재림 예수 50이고 그외에 통계에 잡히지 않은 자들은 더 있을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큰 사기꾼은 얼마나 많을까요?
전쟁과 분쟁
마태복음 24:6 (KRV)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마태복음 24:7 (KRV)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
인류 3421년만 따져 보면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286년 뿐이니, 92%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쉼 없이 전쟁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근세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미 북미 할 것없이 전세계에서 전쟁과 분쟁이 일어나는데, 자세히 보면 같은 나라 사람이 서로 죽이고 원래 한 뿌리였던 사람들이 서로를 학살하는 사건이 대부분 입니다. 프랑스나 영국 같은 제국들이 식민지 나라를 독립 시키면 같은 민족끼리 나라를 독립 시킨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끼리 땅을 나눠 갖게 하고 소수민족을 지도자로 세워서 분란을 조장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들어난 사실 입니다. 이것을 “Divide and Rule” 나눠서 분쟁하게 하고 힘이 약해지면 다루기 쉽다 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은 재전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 입니다. 남 북으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나눠진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류는 싸울 수 밖에 없는 이기성과 죄성이 있기에 말세가 될 수록 전란의 소문은 많아지고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http://www.imr.co.kr/2040/종말심판/data/말세의%20징조(1).htm
기근과 지진
마태복음 24:7 (KRV)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국제기아대책기구의 보고에 의하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가난한 나라에서는 1분에 20명이(이중 18명이 어린이입니다) 굶어 죽는다고 합니다. 1시간에 1,400명, 하루에 3만 5천 명, 1년에 1천 300만 명이 굶어죽고 있습니다. 지난 5년 동안에 굶어죽은 사람만 해도 무려 지난 150년에 걸쳐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전쟁과 유혈투쟁, 유혈혁명으로 죽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세계 곳곳에 지진과 스나미가 또 화산폭발이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원전이 파괴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고 지금도 그 복구문제때문에 주변국과 갈등하고 있고 아이티는 2010년 지진의 피해에서 지금도 벗어나지 못해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진흙으로 쿠키를 만들어 먹을 정도로 나라 자체가 붕괴 되었습니다.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어떠십니까?
반박할만한 징조가 없지 않습니까? 어쩌면 그야말로 말세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은 이게 끝이 아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징조는 징조이고 진짜 말세 그야말로 끝날이 오는 것은 다른 징조가 있다. 즉 예수님이 재림 하시는 날은 이 징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세계 2만 4천여 개의 종족 중, 개종률이 2% 미만인 종족을 미전도종족unreached Group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예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비개척종족(UUPG: UNENGAGED UNREACHED PEOPLE GROUP)
1989년에는 복음을 받지 못한 미전도 종족이(UUPG) 11.000이었는데, 2001년에는 8000여 종족, 2004년에는 6000여 종족, 2006년에는 3600여 종족, 그리고 2008년에는 3300여 종족으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https://gap4ftt.org/미개척종족/
미전도종족(unreached Group) 개종률 2% 이하
비개척종족(UUPG: UNENGAGED UNREACHED PEOPLE GROUP)
2023년 기준 몇개 종족 일것같습니까?
이제 100여개 종족만 남았다고 합니다.
주님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입니다.
초대교회 시대, 첫 오순절, 첫 성령강림절의 그날은 이 역사의 시작점 이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강림한 사건은 말세가 시작 되었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자들이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는 역사가 2000년 동안 성령님을 통해 이뤄지고 있었고 지금도 그 역사는 교회를 통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거룩한 사역들은 조용히 또 강력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는 벅찬 감동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이 세대의 마지막 씬이 시작되었다.
그 증거가 바로 오늘 너희가 경험한 성령의 역사 이다.
그토록 우리 민족이 고대하던 메시야를 우리는 지난 33년간 눈으로 보았고 이제 850년 약속하신 하나님의 영이 이제 우리에게 임했다.
세상은 이제 종말로 향해 갈 것이다. 형제들아 이제 어찌하겠는가?
우리는 지금이 말세 임을 정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노아의 때, 사람들은 원래대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세가 시작되었으니, 말세에 맞는 삶을 살자 외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 믿고 구언 받은 자라면,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예수님의 삶이고 사도행전의 삶 입니다. 말세를 살듯이 살아야 합니다.
100년 살기도 힘든 인생이 마치 영원할 것처럼 살면 안됩니다.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얼마나 값지게 살 수 있을까요? 오늘을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한 또다른 기회로만 사용하거나 내일로 가는 징검다리로 삼기에는 오늘 자체가 너무나 귀중한 순간 입니다.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오늘 내가 할 일은 명확해집니다.
가장 가치 있고 위대한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하나님을 내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여 전파하고 증언 하는 삶을 사는데 오늘을 쓰는 것보다 더 값어치 있는 일이 이 세상에 있을까요?
복음의 시대, 이 시대의 시대정신은
이제 가장 값어치 있는 일에 온 인생을 걸어야 하는 끝날의 신앙의 다짐이 요구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을 요구 합니다.
2. 우리 모두를 위한 성령
2. 우리 모두를 위한 성령
복음의 시대에 대해 우리가 살펴봐야 할 두번째 특징은
아주 특별한 소수에게만 임했던 성령이, 이제 우리 모두에게 임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시대에는 아주 특별한 소수의 사람만이 성령의 임재를 받아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오래전 부터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 시작점 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주시겠다
이 모든 육체 라는 것은 신분의 고하나 남여노소의 제한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베드로는 오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되고 하나님께 거룩한 예배를 인도하는 제사장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어르신들은 꿈을 꾸는 신령한 은혜가 충만한 시대가 열렸다’고 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이 임하시면 다윗처럼, 레위처럼, 엘리야나 이사야 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고 권능 받고 증인되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기사와 땅의 징조
그날 오순절에 하늘로 부터 바람소리와 불의 혀와 같이 갈라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하늘의 기사 입니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성령에 충만한 120문도가 방언으로 전도하니 사람들이 놀라고 베드로와 사도들이 설교하여 전파하니 그 자리에서 3000명의 사람들이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땅에 징조 입니다.
전설처럼 듣던 이야기들이 실제로 눈 앞에서 일어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 합니다.
이제 모든 민족으로 복음이 전파되면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땅에 징조 중에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세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피와 불과 연기 입니다.
이 세 단어는 제사를 통한 죄사함의 필수 요소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하나님의 징계의 불이 성령을 통해 제물에 임하고
태워진 제물의 향기로운 냄새가 하늘의 성부께 다다르면 죄사함은 열랍됩니다.
피는 예수의 보혈 입니다.
불은 성령을 의미 합니다.
불탄 제물의 연기는 하나님께 올려지는 전달체 입니다.
땅과 하늘의 연결하는 매개체 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말세에 나타나는 땅의 징조 인데,
쉽게 말하면, 피와 불과 연기의 역사는 온 열방의 죄인이 하나님께 돌아와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을 의미 합니다.
이 말세에 시대는 두 가지 얼굴이 있습니다.
복음을 들었으나 믿지 않고 구주를 영접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어둡고 달이 피빛으로 변하는 공포의 날이 될 것입니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하지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어 그 날은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복음의 시대는 이제 구원이 문이 활짝 열린 시대 입니다.
복음의 시대는 누구든지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며 꿈을 꾸는 시대 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성령의 세례를 받아 피와 불과 연기의 역사로 죄사함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시대 입니다.
우리는 모두 일명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원래 구원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고 주님의 사역에 동참 할 수 없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구원을 주심과 함께 성령을 부어주시어 영광스러운 증인의 삶도 허락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날을 할 수만 있다면 앞당기기 위해 한 명이라도 더 주께로 인도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3. 케리그마-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
3. 케리그마-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
예수 복음이 결국은 권능의 핵심 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전도했던 이야기 -”예수”를 전했더니 믿더라
성령의 역사는 항상 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그 복음의 전초기지가 세워 가는 과정을 우리는 지금 본문을 통해 목도 하고 있습니다. 그날 회심한 3000명과 사도들이 설립 멤버가 되고 그 후에도 예루살렘에서만 10000이 넘는 사람들이 회심 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의 25%에 해당하는 아주 큰 무리 입니다.
그렇다면 이 큰역사를 이룬 사도들이 전파한 복음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그 많은 사람들을 회심 시켰을까요?
사도행전에는 베드로 8회, 바울 9회를 포함한 24번의 설교와 연설이 포함 되어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성령이 임하셨 다는 것입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원의 내용이 거의 유사하게 반복적으로 전파 되고 있습니다.
설교는 여러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설교학적으로 크게 두가지로 말씀 드릴 수 있는데,
케리그마(kerygma)와 디다케(didache)
디다케(didache)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훈들
케리그마(kerygma) “메시지” 또는 “선포”
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로서, 신약에서는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증거하는 핵심적인 기독교적 선포를 가리킵니다.
디다케(didache)만 있는 설교는 참된 설교 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가장 영적이고 선교적인 설교의 예는 사도행전의 설교들이라고 말하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모든 설교는 성령의 이적과 기적이 나타난 후 사도들이 나와 예언의 말씀과 어떤 관련이 있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적용하는 형태를 가졌기에 더욱 강력한 능력을 발휘 했습니다.
현대에도 가르침을 주는 디다케적인 설교도 훌륭하고 필요하지만
빠지면 안되는 것은 예수의 이름이 전파되는 경험이 담긴 설교 입니다. 또한 우리의 삶과 온전히 연결되어 있어 하나님의 역사와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은 간증이 연결 설교가 가장 케리그마적인 설교 입니다.
그렇다면 왜 케리그마적 설교가 선교현장과 교회에서 더 필요 할까요?
나타난 성령의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게 되면,
실질적인 결신이 이루어지기 때문 입니다.
본문 1장과 2장 초반에 기록된 성령의 임재와 방언을 통해 하나님의 큰 일을 전하였을때,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지만 회심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케리그마가 전파되었을 때, 3000명이 회심을 합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의 담대한 선포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예수를 전파해야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이것저것 중요한 프로그램들을 운용하고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전하여 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너희가 예수를 못박았다.
너희가 못박아 죽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단순하고도 강력한 메세지가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 강력한 메세지에 대한 반응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
영어로 찔린다는 단어는 “Stab” 송곳이나 칼 같은 것으로 찌르다
신경쓰이고 캥기는게 있는 정도가 아니라, 칼로 찔리듯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케리그마가 그들의 심령을 찌른 것입니다.
생선 자르는 칼이 있고 소잡는 칼이 따로 있고 전쟁에서 쓰는 칼이 있듯이, 영혼을 찌는 칼은 오직 복음의 칼, 말씀의 칼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영혼을 회심시키고 구원으로 이르게 하는 죄사함을 위해서는 이 칼을 써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령의 역사를 믿지 않고 전하던 자들의 출신을 들먹이며 의혹하고 조롱하던 이들이 심령 깊숙이 찔려서 내가 죽게 되었으니, 내가 어찌할꼬 엎드려 진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으로는 절대 구원을 못받습니다.
깨달음으로 인간의 죄성은 꺽이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만이 죄를 밟아 이길 수 있고 죄의 심장에 날카로운 칼을 찔러 넣을 수 있습니다. 그 죄를 도려낼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이 말씀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깨달음을 주는 디다케로만 들리십니까? 아니면
내 영혼을 살리는 예수의 복음의 케리그마로 들리십니까?
또한 나의 인생을 한 편의 설교로 쓴다면
그곳에 예수님이 차지하는 분량은 얼마나 됩니까?
우리는 말세를 살고 있습니다.
말세는 일시적 휴거가 일어나는 사건이라기 보다는 성령이 임재한 그날로 부터 주님이 오시는 재림의 날까지의 기간 입니다.
말세를 사는 사람답게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증언하고 전파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 한 생명이라도 더 예수께 인도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전파하고 인도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부터 청년과 어르신 까지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꿈꾸게 하시는 성령을 사모 하십시오!!
나이의 많고 적음도 배움의 많고 적음도 빈부의 차이도 성령의 사역에 동참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없습니다.
복음의 시대, 말세를 살아가는 복받는 성도는
가장 값어치 있고 고귀한 일에 온 인생을 헌신해야 합니다.
그것은 희생도 아니며 손해도 아닌 오히려 가장 영광스럽고 복된 삶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성도님들이 이런 복과 영광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기도합시다.
성령을 주시옵소서. 충만히 부어 주시옵소서!
찬양 “성령이 오셨네”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넓으신 은혜와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하심과
성령의 감동감화 역사 하심이
우리교회와 주님의 귀한 자녀들과 그들의 생애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찌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