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해, 늘 새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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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여러분의 삶을 짜릿하게 만든 건 뭔가요? 여러분은 새로운 것들을 좋아하나요? 저는 헬스입니다. (아이들하고 소통) 우리는 새로운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하나에 꽂히면 한 가지만 2-30년간 주구장창 파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 조차도 새로움을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의 삶에 매번 짜릿함과 신선함을 주는 것은 SNS일거에요. 매일매일 어쩜 그리 재밌는 영상들이 많이 올라오는지, 유행하는 밈,짤,웃긴댓글,뇌절영상 등등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이 올라오죠? 우리 지인들의 일상도 매일 새로운 것들이 올라오니까 우리가 SNS를 쉽게 끊어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늘 새롭고 짜릿하니까.
우리의 매일의 삶도 항상 새롭고 짜릿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일이 얼마나 기대가 되고 설레고 즐거울까요?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새로운 것들을 찾아 나섭니다. 누군가는 콘서트를 보러 가거나,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속에 좋고 재밌고 신나고 즐거운 것들을 굉장히 많이 넣어주셨어요.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가장 먼저 새로움을 느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느껴야할 새로움은 무엇인지 본문말씀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전서 새번역 (13장)
1 그 날, 백성에게 모세의 책을 읽어 주었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2 그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맞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서, 우리가 저주를 받도록 빌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 저주를 바꾸어 복이 되게 하셨다.”
3 백성은 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섞여서 사는 이방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모두 분리시켰다.
느헤미야가 백성에게 모세의 책을 읽어주는 장면입니다. 모세의 책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겠죠. 그런데 그 책에서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합니다. “암몬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암몬이라는 동네의 사람들과 모압이라는 동네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총회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암몬과 모압의 사람들은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 깊은 의미로 들어가보자면, 그들은 하나님에게 인맥정리를 당한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대체 왜 그러셨을까요? 그 다음 2절 말씀 함께 읽어봅시다. 시작!
성경전서 새번역 13장
2 그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맞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서, 우리가 저주를 받도록 빌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 저주를 바꾸어 복이 되게 하셨다.”
암몬자손이 지은 죄는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을 음식과 물을 나눠주지 않았어요. 가난하고 굶주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돕기를 거부한 것이죠. 굉장히 차갑고 정이 없는 행동을 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굉장히 싫어하시는 행동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기주의와 냉소주의를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 중 하나는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레위기 말씀 두 구절만 찾아서 읽어볼까요?
성경전서 새번역 19장
10 포도를 딸 때에도 모조리 따서는 안 된다.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 두어야 한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또 한 구절 읽어볼까요?
성경전서 새번역 23장
22 너희가 밭에서 난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에는,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이지 말고, 또 거두어들인 다음에, 떨어진 이삭을 줍지 말아라. 그 이삭은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이 줍게 남겨 두어야 한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굉장히 세심하고 배려가 깊은 말씀으로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기주의, 극심한 개인주의를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그런데 이기주의와 냉소주의에 쩔어져서 나밖에 모르고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사람들이 암몬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암몬 사람들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민족인 모압 사람들이 지은 죄는 뭘까요? 발람을 고용했다는 것입니다. 발람이라는 사람이 이스라엘을 향해서 저주를 하게 만듭니다. 발람은 그 당시에 특별한 존재였어요.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네가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내가 안다’고 믿었다. 그래서 발람은 자연스럽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어요.
그런 사람을 고용해서 이리저리 떠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를 내렸다는 것이죠. 이 말씀을 발견한 겁니다. 암몬사람과 모압사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혀서 하나님으로부터 인맥정리를 당했었다는 말씀을 읽은 것이죠.
이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백성들 안에서 섞여서 살고 있는 모든 이방 무리들을 분리시키기 시작합니다. 모압, 암몬 등 다른 이방 사람들을 분리하기 시작해요.
여기까지가 오늘 성경 본문 말씀입니다.
사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기는 했으나, 그건 그때 일이고, 지금 암몬사람들이나 모압 사람들하고 가족을 이루기도 하고 친구를 먹기도 하며 분명 잘 지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들이 과감하게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들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닌 무리들을 모두 걸러내기 시작합니다. 인맥정리를 하는거죠. 쉽게 예를 들어보자면 이런겁니다. 우리가 지금 잘 지내고 있잖아요? 우리 산성교회 청소년부가 너무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역사책을 쭉 읽어보니까 저의 고조할아버지와 여러분의 고조할아버지들이 싸웠어요. 그래서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았어요. 이 내용을 역사책에서 읽은 제가 갑자기 여러분과 인맥정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을 손절하기 시작해요.
만약 제가 이렇게 행동하면 여러분들은 그래 뭐 그래라 할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완전 어이 없는 사람이네?’라고 생각할 겁니다. 아니 고조할아버지들의 일하고 우리들 관계하고 뭔 상관인데…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난 번에 나눴던 말씀처럼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한 명도 예외없이 모든 인류를 사랑하세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육체적인 핏줄이 어느 핏줄이냐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도 그렇고 요셉도 그렇고 굉장히 위대한 성경 속 믿음의 인물들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민족의 사람과 결혼했거든요. 이방인과 결혼한 것입니다.
심지어 성경에 ‘룻기’라는 책을 보면 ‘룻’이라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모압’ 백성입니다. 발람이라는 사람을 고용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를 내리게 했던 모압이라는 동네의 사람들의 핏줄이 ‘룻’입니다. 그런데 룻은 다윗의 족보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거룩한 계보에 이방인이 들어와있단 말이죠.
룻은 '당신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당신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겠습니다'라고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의 신앙의 진정성을 인정하고, 이 젊은 과부가 '그 날개 아래' 피난 온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에 기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방인들하고 관계를 다 끊어버리라고 했던 이유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 이외에 다른 민족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지내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하게 타협하고 하나님의 뜻을 적당하게 왜곡시켜서 자기들 입맛에 맞게 맞춰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그 가운데 섞여서 사는 이방인들을 다 끊어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거리를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하는 존재들을 과감하게 끊어냈다는 의미입니다.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이 드시나요?
이 말씀을 오늘 날 우리의 삶과 연결해봅시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있어서 방해하는 것들,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과감하게 끊어낼 용기가 있나요? 아무리 새롭고 짜릿한 것들이 가득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멀어지게 한다면 과감하게 끊어낼 자신이 있나요?
여러분에게 늘 새롭고 짜릿한 것들을 제공하는 SNS, 끊어낼 수 있나요? SNS에는 시간을 굉장히 많이 투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자고 하면, 저 학원이랑 뭐랑 뭐랑 해서 시간이 없어요. 저 진짜 놀 시간도 없이 공부만 하고 살아요. 그런데 스마트폰은 하루에 1시간이건 2시간이건 마음껏 사용하지는 않나요?
다르게 말해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서 여러분이 그렇게나 열심히 하는 공부, 끊어낼 수 있나요? 공부는 하루에 5시간 6시간 죽어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단 5분도 6분도 읽을 시간을 내줄수는 없는걸까요?
우리 삶에는 우리도 모르게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공부가 될 수도 있고, SNS가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연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무엇에 가장 시간을 많이 쏟아 붓는지를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것들이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거리를 계속해서 멀어지게 만든다면, 여러분들은 그것들을 과감하게 끊어낼 자신이 있나요?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진정한 새로움과 진정한 짜릿함을 느끼며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2절 말씀 읽어볼까요?
성경전서 새번역 13장
2 그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맞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서, 우리가 저주를 받도록 빌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 저주를 바꾸어 복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다보면 부딪히게 될 무기력함, 아픔, 고통, 슬픔,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 그 모든 것들을 바꾸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저주를 바꾸어 복이 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 삶에 커다랗고 깊은 가시가 박힐 수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아름다운 복으로 바꾸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보다 더 짜릿할 수가 있을까요?
내 삶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어와 있는 이기주의라는 저주, 개인주의라는 저주, 남들을 향한 손가락질하며 저주를 하는 저주,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으면 결코 스스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등불이라고 표현합니다. 등불은 무언가를 비추는 역할을 합니다. 등불을 들면 어둠이 물러가게 되고 모든 것이 밝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자칫잘못하면 남들의 행동과 남들의 삶의 태도만 보게 될 수 있습니다. 마치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나를 비춰보지는 않고 다른 사람의 흠을 잡는데만 최선을 다하고 살아가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정 먼저 우리의 삶을 비춰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비출때 내 안에 드리워진 죄의 모습, 어둠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암몬사람들처럼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 빠져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알게될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모압사람처럼, 발람처럼 서로를 향해 축복의 말을 건네기보다는 저주의 말을 건네며 손가락질하기 바쁜 삶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내 삶에 깊숙히 스며들은 저주의 모습이 아무리 흉악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복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시다.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쓴 뿌리를 싹 뽑아내어 새로운 삶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해요.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새롭고 짜릿한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뚜렷한 목표를 갖게 해주는 것들도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새롭고 짜릿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나아와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읽기 위해 교회로 나아와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에 나아와 말씀으로 나를 비추면 내 안에 있는 어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은 내 안에 있는 어두움도 밝은 빛으로 바꿔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내 삶에 진정으로 새로워져야하고 진정으로 짜릿함을 느껴야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들의 삶이 새롭게 변화되기 위해 과감하게 결단해낸 것처럼, 우리 청소년부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세상이 우리 안에 살도록 내버려두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늘 짜릿하고 늘 새롭습니다. 이건 읽어본 사람들만 알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