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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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기에 좋았더라(6)
보시기에 좋았더라(6)
창세기 1:26~28
우리는 지난 5주 동안 성경 전체를 관통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피조물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살펴보았습니다. 1) 하나님께서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질서있게 땅과 하늘과 바다를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 모든 생명체를 만드시어 사랑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2) 그러나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지 않고 스스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왕이 되려고 했던 인간의 타락이 모든 것을 망가뜨렸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를 망가뜨렸을 뿐 아니라, 세상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망가뜨렸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질서가 깨지고 망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심화되고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처음 창조를 회복하는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땅에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반영하는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결국 땅을 잃어버렸습니다. 4)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을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구원의지는 꺽이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형상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시고 가르치시고 직접 살아내셨습니다. 만물을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5)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공동체를 형성하여 함께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살아내며 드러내고 선포하는 사람들은 장차 종말의 날에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처음 창조가 완전히 회복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예배하며 앞당겨 그 나라를 살아내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지난 5주 동안 나누었던 이야기의 요약입니다.
오늘은 다시 처음 창조 이야기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실행하시고 싶어하신다는 이야기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재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 지점이 다른 피조물과 인간이 다른 점입니다. 인간도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이지만, 동시에 그들과는 구별되는 특별함이 있다는 선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①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임받았다는 말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왕은 자신이 통치하는 지역 곳곳에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바로 자신의 통치권이 미치는 범위를 정해놓은 것입니다. 심지어 그 형상이 진짜로 그 땅을 다스린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고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존재, 혹은 세상이 미치는 하나님의 통치를 상징하고 드러내는 존재라는 의미로 통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26절과 28절에는 ‘다스리다’는 동사가 나옵니다.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 28절은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형상이 바로 이 단어와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은 이 땅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왕적인 존재입니다.
고대 중동의 창조 이야기와 비교해보면 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수메르 신화나 바벨론 신화의 경우에도 흙으로 사람을 만든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이 신화들에서 보여주는 것은 신들이 자신들이 하는 하찮은 노동을 시키기 위해서 신을 만들었거나 신들이 싸움을 통해 인간을 만들었고 신들을 위해 봉사하고 노동하는 존재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대 중동에서 신은 인간을 자기 마음대로 부리고 통제하는 존재이고 인간은 평생을 신을 위해 노동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사실 이것은 당시 왕들이 자신의 통치권에 신적인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일반 백성들을 착취하고 이용하여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구약 성경이 전하는 창조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인간이 신들의 싸움이나 변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말하며, 여러 신들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또한 고대 세계에서 신이라고 여겼던 모든 존재들, 해, 달, 별, 바다, 용 등은 사실 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할 뿐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신(왕)을 위해 노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왕과 동일한 신의 대리인으로 이 땅을 통치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노동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돌보고 유지하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특권과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피조물을 다스리라고 해서 인간이 그 모든 것의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땅과 하늘, 그 안에서 존재하며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은 여전히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인간은 주인이신 하나님을 대리하여 다스리라는 위임을 받은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다스리라는 말은 인간이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하라는 말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맡겨주신 주인이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반영되도록,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처럼 다스리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의 청지기로 존재합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에 동참하도록 초대받은 존재인지가 분명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라면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의 원리로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고 드러내야하는 존재임을 기억합시다.
②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한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본성이 그 안에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닮아있고 하나님을 반영하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성경이 일관되게 드러내는 하나님의 본성은 인자와 공의입니다. 사랑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시편이 찬양하는 하나님의 본성이 바로 인자와 긍휼, 사랑과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은 하나님의 본성이 무엇인지 반영하는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또한 거룩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레위기의 말씀은 “너희는 처음 만들어진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며 살아가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살아가는 방식은 세상 나라 백성이 살아가는 것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 방식이 아니라 처음 하나님이 만드신, 그리고 장차 완성될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공의와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이 거룩한 삶으로 연결됩니다.
골로새서 1:15은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보았습니다. 고후 4:4도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는 말씀도 역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표현합니다. 빌립보서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본체, 하나님과 동일한 분으로 묘사합니다. 고린도전서 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는 부활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예수께로 연결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드러난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형상으로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존재가 회복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르치셨고 선포하셨고 보여주셨던 삶의 방식을 배우고 살아냄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 땅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롬 8:29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다스림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십자가와 고난,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로움과 자비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는 ‘섬김’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인 공의와 사랑, 자비와 긍휼, 그리고 거룩의 모습이 예수님에게서는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죄인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성육신, 이것이 진정한 섬김의 모습입니다.
서로 높아지려고 경쟁하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27)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어서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도 섬김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는 것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을 몸소 보여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예수께서는 유월절 전에 자신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사랑과 섬김의 도를 어떤 행위를 통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그러나 섬김의 극치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에 나타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받아야 할 진노와 심판을 대신 받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 죄인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온 땅과 만물을 구원하기 위해, 만물을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다스림입니다. 사랑과 공의, 자비와 긍휼을 섬김의 모습으로 드러내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온 세상을 섬김으로 사랑과 공의, 자비와 긍휼, 그리고 거룩을 드러내야 할 책임이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모든 피조물을 다시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는 청지기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석교 공동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