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7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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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로
주님께로
시편 55:1–15 (NKRV)
1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2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하지 못하여 탄식하오니
3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때문이라 그들이 죄악을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4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5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6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7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8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9 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주여 그들을 멸하소서 그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
10 그들이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 중에는 죄악과 재난이 있으며
11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속임수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아니하도다
12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13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14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15 사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하여 산 채로 스올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그들의 거처에 있고 그들 가운데에 있음이로다
고난은 사람의 한계와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한다. 고난 속에서 시인은 기도한다. 그는 현재 겪는 일들을 통제할 수 없기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한나미께 간구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상황을 통제하고 두려움을 종식하실 수 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고난은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능력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된다.
사람이 도시를 형성하고 성을 쌓는 이뉴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 내기 위해서 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적이 성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안전과 평화가 있어야 할 성벽 안에 죄악과 재난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힘을 모아 적을 막기 위해 쌓은 성안이 오히려 서로를 싸우게 만드는 악독과 압박과 속임수가 거리마다 가득하다고 시인은 고백하고 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사랑의 대상 일 뿐이다. 우리가 실망하는 이유는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망하는 이유는 그 사람을 믿기 때문이다.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이 땅의 것들 중에 믿을 수 있는 대상은 아무것도 없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내 옆의 사람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것이다.
오늘 다윗이 이처럼 힘들다고 고백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얼마나 당당한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골리앗 앞에 당당하게 섰던 다윗은 없다. 근심으로 편하지 않다고 하고, 마음이 심이 아프다고도 하고, 사망의 위험이 이렀다고도 표현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렇게 용감했던 다윗이 두렴고 떨려 공포스럽다고까지 고백한다. 그래서 날개만 있으면 지금 이 상황을 피해 도망가고 싶다고 말한다. 이 말은 지금 이상황에서 도망가지 않고서는 날아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보며 마음의 위로가 된다. (다윗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며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윗과 같은 사람도 이러한 어려움을 고백하고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우리가 다윗이라는 사람을 볼 때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속에서 다윗을 롤모델로 삼기도 한다. 그 어린 나이에 골리앗을 믿음으로 이겼다. 그리고 그 수많은 죽음의 순간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아갔던 인물이 바로 다윗이다. 한 나라의 왕이 자신을 죽이겠다고 따라다녔지만 그 안에서 믿음으로 끝까지 버티고 견뎠던 사람이 바로 다윗이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다윗도 무서웠고, 고통스러웠고 떠나고 싶다고 한다고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위로가 된다.
저 큰 다윗도 어려움 앞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구나, 다윗도 사람이구나, 다윗도 쓰러지고 넘어질 수 있구나를 알게 되니 용기가 난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다. 여러분들이 정말 위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도 삶속에 낙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지금 내가 낙심하고 어려워하는 상황과 환경이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오늘 다윗은 지금의 상황속에서 힘들어하고 있다. 이처럼 다윗이 힘들어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 본문을 읽다가 깜짝놀랄 반전이 바로 이것이다. 다윗을 그토록 힘든 이유는 사람 때문이고 이토록 힘들게 하는 사람은 그동안 다윗이 원수처럼 여기며 살았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 12-13절을 한번 보겠다.
시편 55:12–13 (NKRV)
12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13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놀랄만한 반전이다. 다윗이 이토록 괴로워하는 이유가 다름아닌 다윗의 동료요 친구 였던 사람의 배신인 것이다. 그러면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를 책망하는 자가 원수 였다면 내가 참을 수 있었다. 자기가 나보다 잘났다고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이 원수 였다면 그들을 피해 숨어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지금 다윗을 힘들게 하는 것은 원수가 아니라 그동한 두터운 우정을 나누며 하나님의 집을 드나들곤 했던 둘도 없는 사이의 사람이었다는 것이 다윗을 이토록 힘들게 하는 것이다.
오늘 시 편 55편은 정확히 언제 기록되었는지 어떤 상황속에서 쓰여졌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다윗의 고백으로 인해 많은 학자들이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이 예루살렘을 도망쳐 나오는 그 때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배경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다윗이 이토록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너무나도 믿었고 사랑했던 그래서 함께 하나님의 집 다시말해서 성전에도 같이 다니는 정말 좋은 관계를 가졌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본 사람은 알아요. 정말 말도 안되게 힘들다는 것을, 모든 것들이 부인된다.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른다. 정말 말로 할 수 없다. 내가 그동안했던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그 기분 이건 정말 말로 설명이 안된다. 정말 힘들고 정말 고통스럽다.
지금 다윗이 그러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자신의 자녀가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따라온다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아낌없이 다 줬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이 자신에게 해를 입힌다면…
기대 했던 사람에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도 마음에 상처가 되고 두고두고 기억이 나는데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그 사람이 자신에게 해를 입힌다면 그 마음은 정말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괴로움이 들 것이다. 나를 부정당하는 그 느낌… 정말 너무 싫다.
그런데 그러한 배신을 당한 유명한 분이 계신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먼저는 12명의 제자중에 한사람인 유다에게 배신을 당했다. 3년동안 따라다니며 누구보다도 예수님에 대해 알았던 그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였다. 정말 말 그대로 예수님을 팔았다. 이유는 자신이 생각한 메시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겠는가?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아셨다.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이라는 것을 아셨다.
그것만이 아니라, 예수님이 어디에나 데리고 다니셨던 베드로도 자신도 예수님 처럼 십자가에 죽을것이 겁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하였다. 그것도 마지막에는 자신이 예수님과 상관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수님을 향해 욕까지 하며 예수님을 부인했다.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묵묵히 그 길을 가셨다. 그누구에게 단 한마디도 원망하지 않으셨다. 왜 그런지 아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온전히 사랑하셨기에 원망하지 않으셨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주님은 우리를 믿지 않으신다. 믿으셨다면 우리가 지금 이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자신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를 만나 처음 한 것이 무엇인가? 베드로야 너 나 사랑하니? 이렇게 물으신 것이다. 이 말은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베드로의 마음을 다시한번 표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님은 주신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 옆의 사람을 믿지 말아라.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상황과 환경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애초에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상황과 환경이 변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사람을 믿어서도 기대해서도 안된다. 그저 품어주고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덮어 줘야 한다. 그 사람의 상황과 환경이 변하면 사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말 고난의 시간 속에서 다윗이 선택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지금 읽고 있듯이, 자신의 고통과 억울함과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와 주님께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정직하게 힘든것들, 억울한 것들, 슬픈것들 자신의 모든 상한 마음을 다른 곳이 아닌,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왔다.
우리가 어디를 갈 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물을 때 여러가지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속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올바른 방향.
믿음은 방향이다. 방향만 올바로 된다면 시간이 오래 걸린수는 있지만, 분명히 도착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못하실 것이 없는 하나님 앞으로 그 모든 고통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이 좋은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가리켜 믿음이 좋다고 말 할수도 있겠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정말 믿음이 좋은 것은 무슨 일이 있던 그것을 주님앞으로 가지고 가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주님께 맡기는 것이다. 맡긴다는 것은 내가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다윗은 정말 어려운 순간에 그 모든 것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 주님께 맡긴다.
여러분이 무슨 고통을 당했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그것이 재정의 문제이건, 인간관계의 문제인건 그게 무엇이든지 주님께 맡기길 바란다. 그러면 못하실 것이 없는 그 주님이 여러분들의 그 어려움을 맡아 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상상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인도해주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