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장 21-43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53 views
Notes
Transcript

열두 해를 보내며

예수님께서는 바다 건너 이방인의 땅인 동편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라사인들이 살고 있는 지방이였고, 그곳에 군대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 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귀신에 들려 미쳐있었고,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무덤가에 살며 그곳에서도 사람들이 멀리하는 부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군대 귀신을 돼지에게 들어가게 하고 이방에 한사람을 자유케 해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 이방 지역의 사역을 마치고 다시 배를 타고 배를 타고 출발했던 가버나움으로 돌갑니다. 바다를 건너 도착하여 배를 정박합니다. 항구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예수님을 보기위해 만나기위해 사람들이 몰려 들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주변에 모여든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었을 까요?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격고 있는 사람들 영적으로 악한 영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 육체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모여든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 가운데 계시며,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하며, 그들의 고통을 덜어내어 주듯이 부두에서 무리들과 함께 하며 잠시 그곳에 서계십니다.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아픈 이가 있다면 손을 얹어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그곳에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모여 있던 한쪽이 열리며 한 사람이 급히 예수님께 다가 옵니다. 그리고 이네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간절한 목소리로 예수님께 말합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집에 오셔서 손을 얹어 병을 고쳐 주십시오,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해 주십시오.”
그 사람은 야이로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회당장중 하나였고, 한 가문에 이름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 지역에 유지가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간절함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믿음 때문인지 야이로의 집으로 향합니다.
죽어가는 한 어린아이를 위해 아이가 있는 집으로 향합니다. 큰 무리가 예수님을 애워 싸고 그 무리를 뚫고 예수님은 야이로의 뒤를 따라 그와 함께 가고 있습니다. 야이로의 조급한 마음도 알아 주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그 길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그 무리들이 얼마나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에워싸고 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죽음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좀처럼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야이로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했을 까요?
예수님과 야이로는 인파에 갇혀 힘겹게 길을 열며 새명을 살리기위해 길을 열고 있을때, 그곳에 있던 한 여인도 자신의 생명을 위해 사람들 틈사이를 헤집고 예수님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여인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뒤로하고 오늘 자신의 모든 고통과 한을 오늘 하루 해결 하겠다는 듯이 예수님께로 향해 다가 가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 여인이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야이로와는 달리 이름도 기록되어 있지 않고, 지위도 없으며, 그의 보호자 조차 함께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인 이었고, 혈루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구약에 기록된 율법대로 그 여인은 부정한 상태였고, 그가 접촉하는 물건이나 사람 모두 부정해진다는 것입니다. 12년동안 그 여인은 부정한 사람으로 살았고, 사회적으로 소외 당해야 했습니다. 마을에도 나올수 없었고, 집에 격리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남편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남편은 그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고, 자식이 있더라도 기피하고 멀리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율법이라는 사회적인 큰 질서도, 여인의 사황을 듣는 우리로 하여금 아타까움과 연민을 느끼게 합니다. 오히려 율법의 손을 들어 주기 보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한 여인의 손을 들어 주게 됩니다.
그 여인은 병을 고치기 위해 수많은 의원들을 찾아 다니고, 돈이면 돈 물건이면 물건 다 가져다가 치료하기 위해 허비했지만, 아무 효과도 없고, 오히려 더 병음 깊어져만 갔습니다.
해도해도 안되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해봐도 해결이 안되는 상황들이 여러분 가운데에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오롯이 개인이 그짐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들이 생기게 됩니다.
자신이 할 수있는 모든 것을 다해봐도 소용이 없던 이 여인을 움직이게 하고, 용기를 예수님께 가고자 결단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정도 까지 왔으면, 이런 마음이 먼저 들었을 것입니다. 야 다해봤어, 안되는건 안된는 것야, 그정도 했으면 대단한거다.
그 여인의 심장을 뛰게 하고 용기와 결단이 주었던 것은 27절에 기록된 것과 같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소문은 그의 마음에 믿음이라는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면,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씨앗이 여인의 좋은 받에 떨어져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라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여인은 오늘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을 안고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느 삶들을 뚫고 예수님 뒤로 갑니다. 그리고 망설일지도 않고 예수님을 만졌습니다. 여인은 복음서에서 스스로 예수님을 만지 첫사람이었습니다. 보통은 예수님께서 찾아와 손을 얹고 치료해 주시지만, 이 여인은 반대로 자신의 손으로 예수님을 만져 치유된 첫 사건 인것입니다.
여인은 28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의 온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그리고 그의 혈루의 근원이 곧 말라 버렸고, 여인은 자신의 병이 치료됐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알수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갔다는 것을 알고,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옷을 만진 사람을 찾습니다.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제자들은 어리 둥절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사람이 한두명이 아닐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누굴 찾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옷을 만진 여자를 찾기 위해 둘러 보십니다. 그리고 여자는 두려워 하며 예수님 앞에 나와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이야기 합니다. 여자로서, 그리고 혈루병을 앓는 부정한 사람으로 이제는 그 댓가를 치뤄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여인과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인자한 목소리로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사람들과 사회적인 시선을 뚫고, 율법이라는 질서를 뚫고, 예수님의 옷을 만진 여인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딸이라고 불러 주십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