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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
긍휼
하나님의 긍휼
그리스도인을 위한 통독 주석 시리즈: 빌립보서 (본문 주석) 2. 겸손하게 같은 생각으로 (2:1–4)
“자비”(오이크티르모스)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성품으로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다. 바울의 어휘 사용과 신학은 자신의 것이 아닌, 구약성경과 예수전승을 충실히 이어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히브리어에서는 이 단어가 ‘레헴’인데, 여성의 자궁을 어원으로 한다. 태아를 품고 있는 엄마의 자궁, 그 근원적인 감정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이해한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만, 이런 여성성이 강한 묘사를 자유롭게 사용함으로써, 어느 한 성(gender)에 국한되지 않는 분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유대인들에게는 중요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우화적인 이야기를 담아 놓은 책이 있습니다.
이 책 속에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기 직전에 먼저 천사들을 창조하시고 그 천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천사인 ‘의의 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천사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창조하고 그 세상에서 가장 으뜸 되는 피조물로 인간을 창조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의의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인간을 창조하지 마십시오. 그 인간들은 온갖 불의로 이 세상을 더럽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천사인 '거룩의 천사'라는 이름의 천사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거룩의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인간을 창조하셔서는 안됩니다. 그 인간들은 이 세상을 더러움으로 가득 채워 놓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 천사인 ‘빛의 천사’를 불러 또 다시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빛의 천사는 “하나님, 절대로 인간을 창조하셔서는 안됩니다. 인간들은 이 세상을 어두움으로 만들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번째 천사인 ‘긍휼의 천사’를 불러서 또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인간을 창조하려고 하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긍휼의 천사는 다른 천사와는 전혀 다르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인간을 창조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 이 세상은 불의하고 더러워지고 어두움에 잠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 불의와 더러움과 어두움 속에 있는 인간들에게 저는 기어이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새로워지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사람들이 되도록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과 긍휼로 돌보시며 아직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상대하고 싶지 않은 그 사람까지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를 향해서 다가오시고 기다리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디도서 3: 5)
[출처] 긍휼(주제별 예화모음)|작성자 빛
화자 1 00:05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표현하는 건 어렵고 벅찬 일일 수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신비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던 성경 저자들은 그분의 성품을 항상 이렇게 표현했죠. 극렬하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이 풍성한 분 여기서 첫 번째 단어는 긍큘한 또는 히브리어로 라홈인데요. 명사형인 라하민 또는 긍큘로 사용되기도 하죠. 매우 흥미로운 점은 이 두 단어 모두 모태를 뜻하는 히브리어 레햄과 관련이 있다는 거예요. 즉 히브리어의 금혈은 인간의 근본적인 부분을 다룬다는 거죠. 또 이 단어는 어머니가 자신의 연약한 아기에게 느끼는 다정한 감정을 떠올리게 해요. 이렇듯 라홈은 강한 정서를 전달하는 말이죠. 때로의 단어는 심히 마음 아파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요.
화자 1 01:00
솔로몬 세상이 이제 아기를 낳은 두 여인을 만나는 이야기에서 슬프게도 한 아기가 죽어요. 그런데 두 여인 모두 살아있는 아기가 자기 아기라고 주장하죠. 솔로몬은 그들을 시험하려고 아기를 둘로 잘라 두 엄마에게 반씩 주라고 해요. 그러자 진짜 엄마가 심히 마음 아파하면서 자기 아기가 죽는 걸 보느니 차라리 다른 여인에게 주라고 하는데요. 바로 이 긍큘함이 그녀가 진짜 엄마라는 걸 드러내주죠 그러나 라 홈은 단지 감정의 차원을 넘어 행동도 수반하는 말이에요. 그리고 놀랍게도 이 단어는 하나님이 그분의 감정이 동기가 되어 행동하시는 것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죠.
화자 1 01:43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통받고 압제당할 때 하나님이 그들의 절규를 들으시고 마음의 금률 즉 라하밍이 생겨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처럼요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이 위험한 광야를 지나면서 배고프고 목말라 할 때도 하나님은 라홈 하셔서 그들을 그분의 자녀처럼 돌보세요.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음식과 물과 입을 것을 공급하시고 친히 그들을 인도하시죠. 그러니 여호와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의 성품을 드러내실 때 맨 먼저 금유란 분이라고 하신 건 놀랄 일이 아니죠. 하지만 여호와의 끊임없는 라함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해서 그분을 배반해요. 여호와의 긍휴를 거부하고 도리어 다른 신들에게 충성을 맹세해요. 또한 서로에게 긍휴를 베풀기보다 오히려 폭력을 가하죠. 이러한 반역의 결과 그들은 결국 포로가 되어 전 세계로 흩어지고 말아요.
화자 1 02:38
이스라엘 역사의 이 어두운 순간에 우리는 이사야서에서 여호와가 자신을 자기 아기를 향한 나하미 가득한 어머니에 비유하시는 구절을 보게 되는데요. 그분은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자식을 긍혈 또는 라함임 하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잇는다 해도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 말씀하세요. 어머니와 같은 궁흘로 가득한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실 거예요. 그리고 이사야설을 더 읽다 보면 이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이 인류의 고통에 직접 참여하실 거라는 걸 알게 되는데 이는 예수님이 등장하실 때를 미리 가리킨 것으로서 그분은 바로 여호와의 깊은 궁율이 인간이 되신 것이죠. 헬라어로 긍큘은 오이크티르모스인데요. 예수님은 병든 자들을 품으시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시며 인간의 고통에 심히 마음 아파하세요.
화자 1 04:28
이로써 우리는 우리가 아파하거나 다른 이들이 고통받는 걸 볼 때 하나님이 마음 아파하시며 반응하시고 깊은 궁율로 우릴 만날 주신다는 걸 확신할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