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자를 고치시는 예수님
홀리틴즈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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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여러분, 혹시 최근에 가장 아팠던 적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우리는 누구나 한번쯤 아프거나 다쳐본 경험이있을 거예요. 이때 우리를 바라보시는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아프지 않도록 약도 주시고, 할수만 있다면 대신 아파주고 싶어 하시겠지요. 부모님은 자녀가 아파하는 것을 보며 함께 힘들어하고, 할 수만 있다면 당장 고쳐주고 싶어 하셔요. 실제로 자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고자 사랑을 실천했던 어머니가 계세요. 브라질에 사는 루시아나 리벨로는 어느 날 암 판정을 받게 되었어요. 다시 건강해지기 위해 열심히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함암치료를 받을 정도로 병이 나빠졌어요. 그리고 머리카락도 한 움큼씩 빠졌지요. 리벨로는 결국 머리를 모두 삭발하기로 결심을 하고 삭박을 마친 순간, 자신을 간호했던 자신의 어머니 고메스도 면도기를 집어들고 본인 머리를 밀기 시작했어요. 고메스는 말없이 삭발을 마친 후 딸을 안아주었지요. 어머니는 딸의 병을 고쳐줄 수 없으니 그 아픔에 공감하며, 고통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예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어머니 고메즈와 같이 우리에게도 언제나 아프지 않고 강건하게 살아가기를 그 누구보다 바라시는 분이 계세요. 바로 예수님이세요.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아픔을 알고 계시고, 공감하시는 분이세요. 그리고 우리의 아픔, 고통, 질병을 고쳐주시기 원하시는 분이세요.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한 구원 사역뿐만 아니라, 우리를 고통 속에서 치유해주시는 치유 사역도 함께 이야기해요. 그래서 예수님의 행적이 담긴 복음서에는 치유 사역에 대해 기록이 많이 나와요.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께서 그분의 손길이 필요한 한 사람에게 다가가셨어요.
산상수훈을 마치고 돌아오신 예수님께서는 마을에서 나병환자와 로마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 주셨어요. 이후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독자의 시선을 예수님의 제자에게로 돌렸어요. 바로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예요. 어느날 예수님과 제자들은 베드로의 집으로 향하였어요. 베드로는 당시 아내와 장모 그리고 자신의 동생인 안드레와 함게 살고 있었어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집에서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을 만나요. 이 말씀을 같이 읽어 볼가요?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자 다음 그림을 볼까요? 말씀에 나온 것과 같이, 베드로의 집에는 열벙으로 앓아 누운 장모가 있었어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장모를 불쌍히 여기시고, 병을 고쳐주시기 위해 손을 잡아주셨어요. 그러자 그녀에게 있던 열병이 모두 곧바로 나았어요. 그녀는 병에서 낫자마자 바로 예수님의 수종을 들어요. 여기서 수종을 든다는 것은 예수님게 식사를 대접한다는 것이예요. 장모는 병을 치유해주신 예수님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예요.
여러분, 베드로의 집에 중한 열벙을 가진 장모가 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나 환경이 있어요. 장모와 같이 몸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친구나, 몸의 연약함만이 아니라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갖고 있는 친구들, 상처를 갖고 있는 친구들, 가정 안에서의 문제로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도 있을 거예요. 베드로는 앓아 누워있는 장모님께 예수님을 모시고 갔어요.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녀를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 믿음이 결국 그의 장모가 예수님을 만나고 고침을 받고록 도와주었지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오늘 나에게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해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에요. 우리를 도우시려는 예수님의 마음은 이 장면에서 엿볼 수 있어요. 우리 함께 말씀을 읽어보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예수님이 장모의 병을 고치실 때 손을 잡아주었다고 기록이 있어요. 그 때 당시에 랍비가 자신의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을 손으로 만지는 것은 바리새인의 규정을 어기는 것이였어요. 또한 열벙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손을 대는 것 또한 금지 되었어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도움이 필요한 장모를 보았을 때, 고민하지 않으시고 곧바로 장모의 손을 잡고 그의 병을 치유해주셨어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치유하기 원하시는 분이세요. 그분이 이 당에 오신 이유가 바로 우리를 돕기 위해 오셨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죄의 결과로 이 땅에 들어온 모든 고통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려 이 땅에 오셨어요. 그 모든 고통의 문제들은 우리가 이 땅에서 겪고 있는 육신의 고통, 마음의 고통을 뜻해요. 이러한 모든 고통의 문제를 단번에 끊으신 예수님에 대해 마태는 이렇게 설명해요. 마태는 베드로 장모의 병이 낫게된 이야기를 하며ㅕ, 구약 성명의 본문을 들려 주었어요. 우리 그부분을 함께 읽어봅시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태는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 모습을 보며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였어요.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사역은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었어요. 예수님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어 예쑤님게 나아오는 이들의 병을 고쳐주셨어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영적으로 병들어 죽어 있는 우리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셨어요. 성경은 병든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한 것처럼 예수님은 영적으로 병든 죄인을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영적인 의사로 오신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종교적으로 의롭다고 자처하면서 늘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에요. 그들은 영적으로 그들이 건강하다고 생각해서요. 스스로 하나님께 택한 받은 백성이고,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사실 선민, 할례, 율법과 같은 요소들은 우리가 얼마나 죄인이고 얼마나 예수님이 필요로 하는 영적인 환자인지를 알게 하는요소였어요. 내가 얼마나 영적으로 병든 자인지를 인식하게 만드는 도구로서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소망하게 하는 도구였어요. 그런데 이들은 그 도구들로 자신들을 의롭다고 여기고 의사이신 예수님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던 것이에요.
이렇게 예수님의 시대에도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였던 사람들과,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나누어져 있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아직 예수님을 믿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예쑤님없이 살 수 있다고 믿으며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에요.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나아가지 않고 다른 방법들을 찾는거죠.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예수님을 나의 영적인 의사로 보지 않은 것이예요. 여러분, 예쑤님은 언제든지 우리를 도와주시길 위해 기다리고 계세요. 그리고 우리가 그런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할 때에 반드시 우리를 고쳐주신다는 것이예요.
병 고침을 받은 장모는 이후에 바로 예수님의 수종을 들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여기서 수종을 든다는 것은, 예쑤님을 대접하고 음식을 준비하였다는 것이에요.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장모가 낫자마자 예쑤님의 수종을 들었던 장면을 기록하며, 장모의 병이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순식간에 그리고 완벽하게 고쳐졌다는 것을 보여주었어요. 예수님은 우리가 도움을 요청할 때에 어설프게 고치시는 분이 아니예요.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리를 고치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세요.
사랑하는 은혜숲교회 친구들,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자, 우리의 몸과 영을 치유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예요.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여러분이 오늘 나에게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제목이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내가 가진 어려움, 상처들, 아픔들을 모두 가지고 예수님께 이야기 해보세요. 그 이야기를 들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고,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예요. 사랑하는 은혜숲교회 친구들도 그렇게 우리의 의사되시는 예수님께 손을 내미는 멋진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소망하고 축복해요.
전도사님이 기도하고 마칠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