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0 수요예배

수요예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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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십니까?

빌립보서 4:10–13 (NKRV)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오늘 수요예배에 오신 성도님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이 변하는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예배에 오신 성도님들께 질문할테니 속으로 답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아니면 불행하십니까?
그렇다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021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GDP 기준 경제규모는 3년 연속 세계 10위를 기록하였습니다. 경제규모로는 선진국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은 행복하지 않다’고 합니다.
2023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국민들이 스스로의 ‘삶의 질’을 평가해 측정한 행복 지수에서 10점 만점에 5.951을 기록하여 조사했던 137개국 중 57위에 머물렀습니다. 선진국 그룹중 하나인 OECD 에서는 38개 회원국 중 35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이뿐 아니라 그로벌 여론조사 기관이 입소스가 공개한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 ‘모든 상황을 종합했을 때 행복한가’ 라는 질문에 ‘행복하다’고 응답한 한국인은 57%였습니다. 조사대상이 32개국이었는데 한국이 31위에 해당했습니다.
또 OECD가 발간하는 ‘삶의 질 보고서’에서도 한국인들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평가한 항목에서 조사 대상 33개국 중 32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한국인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한 종합연구’를 했는데 여기서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도 조사했습니다.
그중에 1위는 ‘좋은 배우자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
2위는 건강하게 사는 것
3위는 돈과 명성을 얻는 것
4위는 소질과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
5위는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도님들은 이중에 몇개에 해당되십니까?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입니다. 다시말하면 성경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바울을 보면 앞에서 말한 5가지중에 해당되는 것이 없습니다.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건강하지도 않았고 돈과 명예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소질과 적성에 맞는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여가생활을 즐기는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기뻐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행복의 조건을 소유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오히려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빌립보에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 그의 상황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뻐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도바울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 본문 11절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다” 바울은 자족 할 수 있었습니다.
자족의 뜻은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삶을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 했듯이 바울의 삶을 보면 만족 할 수 있는 상황이 절대 될 수 없었습니다. 고린도후서에 11장에 보면 파란만장한 바울의 삶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고린도후서 11:23–27 (NKRV)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뿐 아니라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서 거짓선지자로 오해를 받으며 비난받았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은 만족한다 자족한다 고백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바울은 절대 행복 할 수 없습니다. 자족할 수 없습니다. 만족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자족, 바울이 고백하는 자족은 단순히 긍정적인 생각의 수준이 아닙니다. 물 반컵을 보며 물이 반이나 남았네~! 감사하다. 좋다 이정도의 수준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자족은 단순히 긍정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물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보며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자족이 아닌 것입니다.
불교사전에도 자족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원불교 사전에 자족을 이렇게 정의 합니다.
세상의 물욕을 끊고 의식주 생활에 청렴하고 담백하여 항상 스스로 만족하는 생활
부족해도 넉넉하다고 생각하면 항상 여유가 있고, 넉넉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항상 부족하다.
불교사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내가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족, 단순히 나의 생각을 바꾸어 만족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자족은 무엇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자족은 세상의 자족과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빌립보서 4:11–12 (NKRV)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러면서 13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NKRV)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것이 사도바울의 자족의 비결입니다. 사도바울이 자신의 상환과 환경에 자족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삶에 동행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동행하시는 그리스도가 그의 길을 인도하시고, 때로는 그 환경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능력까지도 주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는 사도바울의 고백은 자기가 바라고 원하는 모든 희망사항을 예수님 안에서 다 이룰 수 있다가 아닙니다.
식당 같은데 가보면 이 구절을 액자로 걸어 놓은 곳이 있습니다.
그 식당의 주인이 벽에 그 말씀을 걸어놓으며 생각한 능력은 아마도 “온 동네 식당이 불경기로 다 망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식당은 망하지 않을 줄 믿습니다” 하는 능력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 하고자 하는 주님이 주시는 능력은 어려운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고 추월하는 차원에서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식당 벽에 걸린 이 말씀은 이런 뜻이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환경을 초월하는 주님의 능력이 함께 하기 때문에 제가 운행하는 이 식당이 망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못 할 것이 없으신 그 주님이 나의 삶을 이대로 끝내지 않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말하는 자족이고 우리가 살아내야 할 자족입니다.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환경과 상황에 집중을 합니다.
그러기에 결과에 집중을 합니다. 때문에 좋은 대학을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사업이 날로 번창하는 능력에만 집중을 해서, 그렇게 될 때만 삶을 만족을 하고 감사를 합니다.
그런 좋은 결과가 있을 때 간증을 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믿음의 삶이란 날개를 펼쳐 저 높은 곳에 단숨에 날아오르는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걸음씩 계속 걸으며 나아가지만 지치지 않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한번 받은 은혜로 단숨에 내 모든 환경을 뛰어넘는 탁월한 능력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한걸음 한걸음 고난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지치지 않는 삶,
환경에 영향받지 않는 삶, 넘어졌다가도 다시 벌떡 일어나는 삶을 사는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도님의 삶에 자족하십니까?
지금 나의 삶속에 내의 상황과 환경가운데 만족함이 있으십니까? 만족함을 넘어 감사함이 있으십니까?
내게 능력주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지금의 시련이 더이상의 시련이 되지 않는 삶.
내게 능력주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지금의 슬픔이 더이상의 슬픔이 되지 않는 삶. 그것이 자족하는 삶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만으로 우리가 자족 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중에 누구는 자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고, 누구는 상황과 환경가운데 불평과 불만과 두려움과 떨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자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비결은 능력주시는 그분을 신뢰하는 믿음이 우리안에 있어야 합니다.
다시말해 못하실 것이 없으신 그 주님이 믿어져야 우리는 자족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못하실 것이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주님이 우리의 모든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이 믿어지면 자족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선하신 하나님이 나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이 믿어지면 자족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능력있으신 분이 나를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사실이 믿어져야 우리는 자족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시편의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시편 23편입니다.
23편4절 이후에 보면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오늘하지 않을 것은
또 5절을 보면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데 어떻게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또 내 생명을 노리는 원수가 앞에 있는데 내가 그 앞에서 어떻게 평안하게 차려진 상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고난과 환란의 상황에서 어떻게 내 잔이 넘친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 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시편 23편을 푸는 열쇠는 1절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인것이 믿어지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인 것이 믿어지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다 할지라도 평안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인 것이 믿어지면, 내 생명을 노리는 원수가 내 앞에 있다 할지라도 평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인 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내가 지금 쉴 만한 물가에 있고, 나를 해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푸른 풀밭에 있을 지라도 불안한 것입니다.
내 통장에 잔고가 많고, 편안하고 어떤 질병이 없을 지라도 여호와가 나의 목자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 불안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심이 믿어지는 순간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는 주님 안에서 자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중요한것은 내가 어느 상황 가운데 있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어느 사람을 만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인것이 믿어지는냐 믿어지지 않느냐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정말 구해야 할 것은 주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정윤선 디자이너 이분은 윤선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여러가지 디자인 사업을 통해 선교를 하는 참 귀한 분입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교회에는 무료로 디장인을 해주고, 때때마다 미자립교회 이모양 저모양으로 돕는 분입니다.
그분의 글입니다.
남편이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때
포도를 사가지고 이마트에 서있었는데
그날 소매치기를 당하고.
남편을 보고온날, 집에는 도둑이 들었습니다.
9개월이 된 큰아이를 재우고
혼자 거실에서 엉엉 울다가
그소리에 깬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가
토닥이며 재우는데.
처음으로.
"자족"하다...
라는 의미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토닥일 수 있는 제 손이 보이는데
아.... 그래도 내게는.. 이 손이 있구나..
순간, 덮고 있는 이불마저도..
아..감사하네.... 이불이 있네..
아이가 있어서.. 얘때문에 숨구멍을 내어주셨나보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늘 웃고만 있으니..
그모습에 나도 다시한 번 웃게 하시는구나.
내겐 발도있고..말할 수 있는 입도 있고..
어쨋든.. 지금까지 나를 먹이고 재우시고 입히셨구나..
난 흙이구나..
그런데. 지금 이렇게 은혜를 입고
살고 있는..거였네..
하며..
사랑하는 성도님들 자족의 조건은 환경이 아닙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자족의 조건은 선하신 하나님이, 그 능력의 하나님이 나의 삶을 이끌고 간다는 그 믿음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되시는 것을 믿은 그 믿음이 있으면 자족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 삶속에 감사가 사라지고 불평과 불만과 상황과 환경가운데 두려움이 찾아 올 때, 이것을 싸인으로 여겨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을 목자로 믿고 있지 않구나.
믿음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자족하는 삶의 조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능력의 주님이 그 선하신 주님이 나의 삶을 이끌어가십니다.
그분이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자족 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 3:17-18 의 말씀을 다함께 읽으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결단하시고 선포하시길 바랍니다.
비록 무화가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풀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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