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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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1:31–34 “31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 32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나 주의 말이다. 33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34 그 때에는 이웃이나 동포끼리 서로 ‘너는 주님을 알아라’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
요즘에는 계약서를 잘 써야 한다. 청년들이 전세계약을 잘 못했다가 평생 괴로운일을 당하고 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전세집을 얻어서 계약을 하고 돈을 지급하는데 얼마나 두렵고 떨렸는지,
아내 앞에서 무섭다고 말은 못하고 인생의 첫번째 수천만원을 거래하는 계약서를 해 냈다. 그 뒤로 몇번의 그런 계약서는 조금 익숙해져갔다.
직장에 들어가서 연봉계약서를 쓰게 될때 그 떨림은 잊을 수 없다. 연봉개념이 도입된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그 일을 경험한 선배도 별로 없었다.
인사담당 임원, 사장님이 있는 방앞에 몇몇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호출이 오면 계약서를 들고 들어갔다.
자신이 얼마를 받기 원하는지 쓰고 이제 회사 도장을 찍으면 된다. 얼마나 떨리는지
너무 많이 써서 짤리는 것은 아닌지, 너무 작게 써서 동기들보다 적게 받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아예 계약서 필요없이 나가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인생의 첫 연봉계약서를 통해 그 다음 계약서들은 익숙해져 갔습니다.
우리 인생은 계속 계약서를 통해서 사회생활을 해간다.
회사들도 계약서를 통해서 일한다. mou라고 하는 것을 많이 한다. 양해각서, 이 약속은 법적책임이 없는 약속이다. 이왕이면 이렇게 거래하자고 하는 약속이다.
근로계약, 연봉계약, 전세, 구입계약 등 계약을 잘못하면 몇년을 묶여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도 오늘 우리와 약속으로 인류를 시작하셨다.
16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이 약속을 행위계약이라 부른다. 약속한 행위를 지켜야 되고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 율법을 통해 행위계약을 했다.
두번째 약속은 은총의 계약이다. 율법이 계약을 마감하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약속을 한다.
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약속, 복음의 시대에는 이 약속이 우리에게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오늘 말씀에서는 새언약을 세우는 장면이다. 뉴 커버넌트! 율법시대에 새언약을 말씀하신 유일한 말씀일 것이다.
600년 후에 오실 메시야를 통해 복음의 언약이 이루어질 것을 말한다.
그리고 예레미야선지자가 멸망을 앞둔 남유다가 회복할 것을 약속한다. 백성들에게 그 약속을 5가지로 보증을 한다.
영원한 사랑이다. 예레미야 31:3 “3 나 주가 먼 곳으로부터 와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주었다. 나는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고, 한결같은 사랑을 너에게 베푼다.”
백성들의 끊임없는 배신에도 하나님은 이 약속으로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사랑하신다.
해방이다. 포로에서 해방 예레미야 31:8 “8 내가 그들을 북녘 땅에서 데리고 오겠으며, 땅의 맨 끝에서 모아 오겠다. 그들 가운데는 눈 먼 사람과 다리를 저는 사람도 있고, 임신한 여인과 해산한 여인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 이 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로 인한 것의 대해 죗값을 치르고 용서를 받아서 다시 하나님의 약속안으로 다시 들어오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인데 그러면 해방의 기쁨을 주겠다는 것이 이 약속이다.
부모된 자들의 위로이다. 예레미야 31:15 “15 “나 주가 말한다. 라마에서 슬픈 소리가 들린다. 비통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울고 있다. 자식들이 없어졌으니, 위로를 받기조차 거절하는구나.”
라헬은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다. 많은 눈물을 쏟으며 낳은 자식이다. 그 뒤로도 눈물로 자식을 얻으며, 그 자녀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하나님게서 자녀들이 죄로 인해 벌을 받아 고통하는 것을 어머니가 슬퍼한다. 하나님도 아파한다. 하나님이 어미들의 기도를 통해 자녀들의 장래를 지키신다.
지친자들을 만족케한다. 예레미야 31:25 “25 나는 지친 사람들에게 새 힘을 주고, 굶주려서 허약해진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겠다.”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면 그들이 사랑하는 성전이 있는 시온산에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살게 될 그 도시에 하나님이 만족하는 삶을 주시겠다는 보증이다.
번영을 약속한다. 예레미야 31:28 “28 내가 전에 그들을 뽑아내고 부수고 무너뜨리고 멸망시키고 재앙에 빠뜨리려고, 감시를 늦추지 않았으나, 이제는 내가 그들을 세우고 심으려고, 감시를 늦추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
가문을 통해 내려오던 죄를 끊어주겠다는 약속이다. 29절에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기 때문에, 자식들의 이가 시게 되었다는 에스겔서 18:1의 말씀을 인용한다. 이것을 오해할 수 있다. “가계의 저주”, 가문에 흐르는 저주, 포로 상황의 이야기로 잘 해석해야 한다. 부모의 불순종으로 포로생활, 그러나 자녀도 그 포로생활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자녀들이 어쩔수 없이 살아가는 포로생활속, 이 생활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죄가운데 있는 것인데, 자녀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들 역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있다. 그러나 자녀들이 회개하면 그들이 죄를 책임을 지고 부모가 빠뜨리게 한 이 고난을 회복시켜 주신다.
5섯가지의 보증(사랑, 해방, 위로, 만족, 번영)을 말씀하시고 이제 새 언약을 세우신다
하나님과 MOU를 맺는 시간이다. 복잡한 계약이 될 수 있다. 계약서를 쓰기 위해서는 관련 율법이 근거가 되어야 된는데 율법이 얼마나 많고 복잡한다. 출애굽때 심계명으로 율법을 주셨는데, 모세를 통해서 보충하고 추가한 율법이 모세오경에 가득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레미야 31:33 “33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마음에 율법을 새기라고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새기라고 하신다.
오늘 우리 신앙의 모습이, 어떤 율법이나 종교적 의무로 근근히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의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나님 앞에 나와야 될 이유가 율법, 종교적 의무, 이런것이 아니라는 것. 내적동기, 진정한 하나님의 대한 사랑으로 신앙생활할 수 있겠느냐하고 물으시고 이제 그렇게 하자고 새 계약서를 쓰길 원하신다.
또 한가지 계약에 덧붙인다. 이런것을 특약조건이라 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제 거의 없다. 하나님의 대해 말하라하면 왠만하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런일을 행하시고… 지식적으로 줄줄 아는 사람이 넘쳐난다. 호세아서 6장에서 하나님을 알자, 힘써 알자 그렇게 강조했는데, 이제 그런말 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알아야 된다고 서로 말하지 말아라. 알아야 될 것은 그저 단 한가지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고 그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계약에 덧붙이는 조건이다. 하나님의 계약은 이렇게 사랑이 넘친다.
이제 새 계약에 싸인을 해야 한다. 싸인을 하기 앞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마지막 만찬을 마치고, 유다가 배신하고 어둠속으로사라지고 새 약속을 주신다.
요한복음 13:34–35 “34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새롭게 하나님의 약속을 해석하시면 우리에게 복잡하지 않게 새약속을 주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왜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하실까.
요한복음 15:13 “13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라고 말씀하셧을까.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가장 완결은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를 통해 계약을 맺으신 조건은 이제 단 하나이다. 사랑하는 것이다. 형식적인 율법도 소용없고, 지식도 소용없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면 된다. 또한 그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면 된다. 이 약속을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에게 싸인을 해서 계약서를 내미셨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하나님은 먼저 계약을 이행하셨다. 먼저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가 사랑하기 전에 먼저.
이 십자가 사인을 앞에 두고 당신은 펜을 들고 있다. 사인을 할 것인가? 조건은 사랑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감사하게 계약의 날짜가 주님오실때까지 매번 이 예배를 통해 계약을 열어 놓으셨다.
우리가 이 사랑의 계약앞에 사인하자. 서로 사랑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