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누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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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렇게 고백해 보겠습니다. “말씀으로 충분합니다. 복음으로 충분합니다. 예수님으로 충분합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복음인 예수님이 내 삶에 아름답게 일하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모든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부터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으로 들어갑니다. 공생애, 기독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인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공생애의 반대말은 사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아가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금식 후 마귀 유혹에 승리한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큰 은혜를 입게 되었는지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누가복음 4장 1절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충만하게 역사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성령이 함께 하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어떻게 했다고 이야기합니까? 광야로 갔다고 이야기합니다. 40일을 금식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왜 40일이었을까?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숫자가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생활, 이스라엘이 왜 40년 광야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까? 불순종의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서 새로운 땅을 주시기로 합니다. 그 새로운 땅은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이들은 불안했습니다. 그 땅을 차지하러 들어갔다 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말입니다. 12명의 정탐꾼을 보내 가나안의 형편을 확인합니다.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그곳에는 키가 두 배는 큰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다. 들어갔다가는 뼈도 못 추린다. 이렇게 말입니다. 딱 두 사람 여호수아 갈렙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땅을 밥으로 주셨다.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의 말을 들었을까요?
백성들은 그때부터 밤낮 울기 시작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에게 소상히 알립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정탐한 4일 곱하기 10년으로 해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 다 죽을 것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결국 궁극적으로 보면 출애굽을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모세조차 말입니다. 성경에서 40년의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상징합니다.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죄로 부패한 인간인지 보여주는 세월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왜 예수님이 40일 금식이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0년 동안의 불순종으로 결론이 난 우리의 인생은 끝은 무엇입니까? 사망입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우리의 인생의 빛이 임하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의 문제나 상황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때로는 가족이나 친구들조차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곳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문제를 위해 40일을 주리며 목마르며 나아가셨습니다. 어찌 지금 삶의 문제를 외면하겠습니까? 문제와 상황에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할 때 저 옆에 십자가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저 십자가와 같이 따뜻하게 감싸는 예수님의 사랑 빛이 우리를 두를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 2절입니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40일 동안 마귀에게 테스트받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뜻이 아닙니다. 40일 동안 예수님은 금식하시면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 바로 무엇이 시작됩니까? 마귀가 시험을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은 모두 시험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어 성경을 보면 마귀에게 시험이 아닌 유혹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야고보는 하나님이 무엇을 하지 않으신다고 이야기합니까? 시험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시험하지 않습니까? 원어로 보면 시험이 아닌 유혹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다시 시험을 유혹으로 고쳐서 읽어볼까요? “사람이 유혹받을 때 내가 하나님께 유혹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서 유혹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유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죄를 짓게 만드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무척 미워하십니다. 어느 정도 미워하십니까? 죄와 짝하여 살아가는 것을 보지 못하시고, 죄와 떼어내기 위해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놓을 정도로 싫어합니다. 죄에 유혹당하고,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상황을 만드냐고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죄에 유혹은 누가 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분별하셔야 합니다. 마귀가 하는 것입니다. 반면 진짜 시험 테스트가 있습니다.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0절입니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여기에서 나오는 시험이 바로 테스트, 시험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시험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자기를 굽습니다. 도자기를 구우면 바깥에서 볼 때는 안에 금이 간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햇빛에 빛을 비추면 도자기에 금이 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는데 믿음의 균열이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하는 방법이 바로 테스트 시험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생각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테스트의 목적은 영적 실력을 확인하고 부족한 분을 채우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테스트가 가지는 방향성은 더 나음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죄의 유혹이냐? 하나님이 믿음을 성장시키는 테스트냐?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때 대응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오늘은 테스트를 어떻게 구분하냐? 보다는 어떻게 마귀의 유혹에 승리하느냐? 하는 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누가복음 4장 3절입니다.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마귀의 첫 번째 유혹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을 떡이 되게 명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몰라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유혹은 어떤 유혹일까요? 마귀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것을 굳이 알려줄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 네가 그냥 돌을 떡 덩이가 되게 만드는 정도로 사람들에게 네가 어떤 사람인 것을 알려줄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귀가 어떤 방식으로 무너뜨립니까?
출애굽기 16장 2~3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통해 자유를 준 것을 감사하는 시간이 잠시였습니다.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합니다. 그 불만은 이제 거짓말까지 하면서 이루어집니다. 애굽 땅에서 고기와 떡을 배불리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하는데 무슨 고기와 떡을 그렇게 배불리 먹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굶겨 죽이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원망의 마음을 누가 넣었을까요? 그렇습니다. 마귀가 찾아와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넣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만나를 하늘에서 넘치도록 내려주십니다. 이 만나를 내려주었으니 이제 만족을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고기를 달라고 합니다. 고기를 주니 만족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렇게 마귀가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하면 당했습니다. 우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어떤 것을 끊임없이 채운다고 채워질까요? 이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중독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간들이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당한 이 일에서 승리합니다. 어떻게 승리합니까? 누가복음 4장 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사실 이 말씀은 신명기에 말씀을 예수님이 인용한 것입니다.
신명기 8장 3절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기를 원합니다. 탐욕을 멈추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중독에 빠져 있습니까? 요즘 가장 많이 빠지는 것이 SNS 중독입니다. 그 밖에 관계, 술, 성, 게임 수많은 중독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생명의 말씀을 읽고 순종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누가복음 4장 5~7절입니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첫번째 마귀의 유혹이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갑니다. 굴하지 않는 마귀의 두 번째 유혹이 시작됩니다. 예수님 앞에 세상 모든 만국을 다 보여줍니다. 나를 경배하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권위와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입니다. 즉 세상에서 가장 많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갖도록 해주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한 마귀의 유혹 중 하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에게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 산으로 올라갑니다. 그 틈을 마귀는 놓치지 않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 바로 내려올 줄 알았는데 며칠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 당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사실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입니다. 그 일이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32장 1절입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착각하는 것이 인도할 신이라는 말은 진짜 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죽었으니, 누군가는 인도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런 조형물이라고 만들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된다.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해 아론도 동의하게 됩니다. 그 결과 무엇을 만듭니까?
출애굽기 32장 4절입니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송아지 형상을 만듭니다. 이 송아지 형상은 모세를 대신해서 만들게 한 존재가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마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송아지 상을 표면적으로는 모세를 대신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완벽한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사람은 아무것도 안 믿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라도 믿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신에게 경배를 드리며 산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정확하게 이야기합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불안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살아갑니다. 가장 많은 정신병이 불안으로부터 발생합니다. 불안에서 자유한 길이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4장 8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귀가 자신을 경배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겨라, 이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셨습니까? 사실 마귀가 어떤 존재였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였습니다.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 경배를 천사들에게 대신 받음으로 하늘에서 버림당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예수님의 이야기는 마귀에게 일격을 가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런 말입니다. 네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아서 이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니냐? 지금이라도 돌이켜 하나님께 대항하지 말고 하나님께 엎드리고, 섬기라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을 제시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존중과 감사를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존중과 감사를 자주 고백할 때 불안이 사라집니다. 누가복음 4장 9~11절입니다.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마귀의 두 번째 유혹도 보기 좋게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마귀는 가장 강한 공격을 준비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갑니다. 뛰어내리라고 이야기합니다. 무엇에 대한 마귀의 유혹일까요?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니 거부하라는 유혹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저하게 이 유혹 앞에 무너졌습니다.
민수기 20장 1~3절입니다.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이 말씀에서 죽게 되었다는 말을 몇 번 하는지 세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세 번입니다. 그만큼 죽음의 공포가 그들을 둘러 덮친 것입니다. 그럴만합니다. 지금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이 없습니다. 광야에 날씨는 40도를 오르락내리락합니다. 목이 타들어 간다는 말이 이런 상황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실은 죽음입니다. 이번 주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죽음에 대해서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님이 지금 나를 부르면 감사합니다. 하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내가 갑자기 죽으면 아내는 어떻게 살지? 대호 하음이는 아빠를 많이 그리워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나는 죽음이 준비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을 그냥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막상 나의 상황으로 결부하면 두렵습니다.” 그것을 왜 마귀가 모르겠습니까? 마귀는 마치 죽을 것 같은 상황을 만들어 사람들을 무너뜨립니다.
예수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성전의 꼭대기에 세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내리라 하고 말입니다. 천사들이 너를 바쳐줄 것이라고 말입니다. 마귀가 지금 어떤 상황을 이미 예고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훗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께 도와 달라는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철저하게 죄로 버려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네가 천사에게 도움을 구해서 죽지 않을 수 있잖아하고 예수님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누가복음 4장 12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하나님을 유혹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금 마귀가 유혹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예수님입니다. 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너무나 두려운 죽음을 이길수 있을까요?
신명기 6장 16~18절입니다.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삼가 지키며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지키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가 있다고 이야기합니까? 아름다운 땅을 차지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순종하는 길을 걷다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죽어서 예비하신 땅 천국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천국의 소망이 분명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반면 천국의 소망이 분명하지 않으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완전히 패배한 탐욕, 두려움, 죽음에 문제에 완전히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리를 감탄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승리는 지금 가정과 직장과 학교에서도 이루어지는 현재형 승리입니다. 이 승리를 붙잡고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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