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2장 35-44절 “거짓 종교인과 참 신앙인” / 찬212장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69 views
Notes
Transcript

주제 | 자신을 드러내는 종교인과 자신을 던진 신앙인(과부)의 대조를 통해
누가 참 제자인가? 참 제자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이미 알고 있던 지식에 참 지식이 없고, 지금껏 존경하던 신앙인이 단지 종교인인 모습을 발견하면 아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서기관의 모습입니다.
이와 반대로 으레 지나쳐온 소자가 성자임을 깨달았을 때 허탈함과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한 여인의 모습이지요. 한 예로 약 10여년 전 최춘선 목사(맨발의 천사 최춘선 할아버지)의 걸음이 교회 안에 크게 회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길만 걷고, 모두가 주목하는 사람만 바라보다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놓치기 쉽습니다. 출발은 신앙인이었어도 중간에 종교인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종교인이 아닌 신앙인으로 끝까지 살길 원하십니다. 이 새벽 저와 여러분 모두가 변치 않는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참 제자가 되려면,
1. 익숙한 지식에서 깨어나라
권위 있는 성전에서 성전의 권위를 무색하게 만드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계속됩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중심으로 고착된 그들의 지식에 틈을 내시고, 그 속을 헤집고 들어가 날것 그대로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러고는 결코 비켜갈 수 없는 주제 앞에 그들을 세우십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주려고 작정이라도 하신 듯, 시편 110:1을 인용하여 메시아의 개념을 다윗의 자손을 뛰어넘는 주, 곧 하나님 의 위치로까지 확장시키십니다.
본문의 서기관(바리새인-마)에게 그리소도는 누구인가?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럼 왜 시편을 통해 다윗은 그리스도를 “내 주”라고 칭하는가? 질문으로 확장합니다.
서기관들뿐 아니라 종교지도자들은 다윗의 자손을 통해 메시아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생각은 변하지 않아 메시아의 실체를 대면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에 대해 익히 안다 하면서 엉뚱하게 헛발질하진 않습니까?
다윗의 계통을 통하여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모든 만유의 주심을 깨닫지 못하는 그들의 한계를 이야기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을 알되 “힘써 알아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메시지처럼 “힘써 여호와를 아는”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완전하지 못함을 인정하며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는 광명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참 제자가 되려면,
2. 종교인의 위선을 삼가라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지식만큼이나 서기관들의 행위도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대놓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상태입니까?
마가복음 12:38–39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존경과 따름의 대상이 아닌 경계와 주의의 대상 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특별한 위상을 맘껏 뽐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종교성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한 거짓 위선에 불과했습니다.
심지어 40절을 보면 과부의 가산을 삼킨 그들은 후일 예수의 생명까지도 삼킬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도구로서 마땅히 본을 보여야 할 자들이 본은 커녕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고 약자들을 갈취한다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위선과 외식으로 회칠한 종교인이 많습니다. 높은 자리를 차지할수록 잠재되어 있던 교만이 고개를 듭니다. 그들을 경계하고 조심하십시오.
참 제자가 되려면,
3. 값진 헌신을 주목하라
예수님의 시선이 한 여인에게로 향합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거액의 헌금 을 투척하는 부자들 사이로 몸을 수그리고 조심스럽게 두 렙돈을 드리는 여인에게로 말입니다.
마가복음 12:41–42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제자들을 불러 모아 가르칠 정도로 예수님은 여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두 렙돈은 하루 품삯의 1데나리온의 64분의 1밖에 안되 는 지극히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늘 하루를 굶더라도 헌신을 마다치 않은 가난한 과부의 희생에서 그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에게서 발견하지 못한 순수한 헌신에 눈을 떼지 못하셨습니다.
머지않아 예수님도 친히 온전한 희생의 완성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마음이 담긴 봉헌(헌금, 헌물, 헌신)만이 주님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과 많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서기관들…
외식하는 서기관들
가난하지만 전부를 드리는 한 여인의 마음
참된 제자는 이처럼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여인입니다.
예수님 주변에 서성이면서도 그분이 누군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 때 마음을, 소유를, 삶을 드리는 참 신앙인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목하면서 끝까지 그 길을 가시길 바랍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