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선한 목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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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한복음 10:11-15(신약 162쪽)
설교제목 : 예수님은 선한 목자입니다.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요한복음 통해 나타나는 예수님의 자기소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어제는 예수님이 자신을 ‘양의 문’ 곧 양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이는 양이 양의 문을 통과하여 안전한 우리에 들어갈 수 있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보호받고 구원받을 수 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이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 이 표현은 아마 우리에게 많이 익숙한 표현일 것입니다.
어제 말씀드렸지만, 양은 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동물입니다. 또 성경에서 약 500회 이상 등장하는 동물로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동물입니다. 이는 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 양을 우리의 소처럼 친숙하고 소중한 가축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에서도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종종 양과 목자의 관계로 소개하곤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양으로 비유하고 우리를 다스리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목자로 비유하여 이야기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에서 예수님은 특별히 스스로를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덧붙여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존재임을 말씀하십니다. 또 선한 목자는 양들을 ‘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히브리어 야다를 헬라어로 번역한 말인데 기노스코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야다는 성경에서 이렇게 번역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매’ 다시 말해 선한 목자가 양을 아는 것은 마치 부부가 서로를 아는 것처럼 깊은 관계의 앎을 가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바 된다는 표현처럼 우리를 세밀하게 알고 계심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일컬으시면서 삯꾼과 구별하고 있습니다. 이 차이에 관해 이렇게 설명하시는데, 삯꾼은 양을 헤치려는 이리가 오면 도망가지만, 선한 목자는 양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분입니다. 삯꾼은 돈을 주고 고용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의 관심은 사실 양 떼에 있지 않고 얼마나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그래서 양들을 헤치는 이리가 올 때 양을 보호하기 보다는 양을 버리고 도망하기에 이릅니다. 양보다 자신이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이익에 관계 없이 양을 소중히 여기고 돌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100마리 양 중에서 잃어버린 1마리 양을 찾아 떠나는 목자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일전에 곽희명 전도사님이 이에 관한 설교를 한 바가 있는데, 이러한 목자의 태도는 어리석은 것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경제적으로만 보면 다시 말해 이익의 관점에서 보면 99마리 양보다 1마리 양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마리 양을 위해 99마리를 방치하고 떠나는 목자의 태도는 어리석게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목자가 이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양을 사랑하기 때문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목자는 기꺼이 1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에 99마리의 양을 잠시 내버려 두고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선한 목자이시다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보통의 품삯을 받고 일하는 목자들은 이익에 따라 양을 버리고 도망갈 수도 있지만, 예수님은 1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라도 손해를 감수할 수 있듯이 우리를 이리의 위협으로부터 건지시고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걸만큼 우리를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보통의 목자들 특별히 삯꾼의 목자와는 다른 선한 목자입니다.
또 선한 목자인 예수님은 양들을 안다고 하셨는데 이는 앞에서 말했듯이 부부가 서로를 아는 것처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자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깐 선한 목자인 예수님은 그의 양들인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것이 삯꾼 목자와 달리 양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어떤 목사님이 그분이 쓴 책에서 이렇게 소개하였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인용해서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자신은 과연 성도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지를 물으면서 스스로 이렇게 답합니다. “어쩌다 감동이 되어 제 목숨 가져가시고 저분 좀 살려 달라고 기도할 때는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께서 ‘좋다, 내일 네 목숨을 가져가고 그 사람을 살려주마’ 하시면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 꼭 내일이라야 합니까? 그래도 손자 손이라도 잡아 보고 나서 데려가면 안 되겟습니까? 할지도 모른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이분은 서울에서 이름난 교회 담임목사님입니다. 그래서 이 분의 이야기가 더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자신이 적당히 선한 목자인척 얘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양심에 거슬릴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임을 말해줍니다. 그분의 솔직함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도들은 그 얘기에 좀 실망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고백처럼 나는 감히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 그분은 특별한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목자 옆에서 양을 모는 개로 비유하였습니다. 자신은 감히 예수님처럼 목숨을 내걸만한 위인은 못되지만, 예수님을 도와서 양을 돌보는 일을 맡는 개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참 솔직한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목숨을 아깝다 여기지 않겠습니까? 목사도 사람인데, 자신의 목숨이 아까운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물론 때로는 성도를 위해 희생을 각오하며 사역에 임하지만 막상 그러한 순간이 닥쳤을 때는 고민하게되는 것이 또한 인간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선한 목자가 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겠구나하고 말입니다. 기꺼이 양들이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적어도 우리의 본성과는 맞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살기를 바라지 죽기를 바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는 일은 참으로 특별한 일이고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에서나 가능한 일었지 않을까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씀하신대로의 삶을 살아내셨습니다.
이를 통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지를 좀 더 깨닫게 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그저 양들을 잘 돌보는 착한 목자로 여기질지도 모릅니다. 또 돈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나 품꾼과는 다른 좀 더 성실하고 좋은 분이라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반대에 있는 삯꾼을 비겁하거나 한심하거나 무능한 존재로 여기고 마땅히 예수님과 같이 선한 목자가 되어야함을 강변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중 누가 과연 예수님처럼 할 수 있습니까? 어느 누구도 예수님과 같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차마 신발끈을 풀기에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한 존재이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셔서 십자가 달려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분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우리가 그 분을 어찌 믿고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우리가 그분께 속하여 있을 때 우리는 이리와 같은 악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해지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우리가 선한 목자되신 주님을 믿고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위해 그렇게 목숨을 내어줄 분이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참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는 안전해지고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우리가 선한 목자되신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온전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