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를 위한 물 한 그릇, 기쁨의 생수(막 9: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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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상을 보면 다양한 모임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위 동호회라고 해서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 만남을 가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연령, 출신과 학력, 그리고 지위 그리고 재물에 따라서 서로를 구분짓는 것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사회의 갈등요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대간의 갈등은 더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학력으로 인한 차별도 존재합니다. 어디 출신인가도 따져서 끼리끼리 뭉쳐서 문제가 되고요, 소위 있는 사람들이라고, 소위 끝발좀 날린다고 사람들 무시하면서 분노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교회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에서처럼 연령, 출신, 학력, 지위, 재물, 능력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사회의 갈등과 문제를 유발하지만, 교회는 신기하게도 그러한 갈등이 수면위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교회와 사회는 다릅니까? 오늘 본문은 그 이유를 우리에게 잘 말해 줍니다.
먼저 교회는 주님의 몸으로서 그분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은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해 사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것이라면 그 지체인 성도들을 일단 잘 섬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 38절에서 요한은 그들과 함께 다니지 않으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 쫓는자의 행동을 금지했습니다. 왜 금지했습니까? 그는 제자의 지위에 대한 권위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뿌리깊은 엘리트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요한을 향해 그는 우리를 위하는 자이니 그러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속한 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이 상받을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다른 성도의 생활을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서 그를 섬기려고 합니까? 아니면 우리 자신의 입장에서 누구를 판단하고 정죄하며 실족시킵니까? 혹시 우리의 모습이 후자와 같다면 우리는 급히 돌아서야 합니다.
두번째로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시키면 예수님은 지옥에 가야한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누군가를 실족시킨 것은 예수님을 배척한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어떤 교회들에 가보면 서로 미워해서 안달입니다. 그냥 교회에서 보기 싫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청년들이나 아이들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놓고 무시하거나 교회의 어떤 중요한 결정에 소외시킵니다. 오늘날 젊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나이가 어리다고, 아는 것이 적다고, 나보다 약하다고, 내맘에 들지 않는다고 무시당하고 소외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실족해서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청년들 만의 일이겠습니까? 모든 성도들이 이런 경험쯤은 한 번쯤 다 해보는 것 아닙니까? 중요한 것은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면 예수님은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라도 우리에게 그런 경험이 있다면 우리는 손발을 찍어 버리듯 통회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손발을 찍어내고 눈을 빼서라도 영생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누군가를 실족시키지 않으려고 조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화목에 힘써야 합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제안한 일이 내게는 탐탁지 않다하더라도 죄짓는 일만 아니면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에게 필요한 것이 내게 있다면 그것을 나눠줄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큰 일을 해 주어서가 아니라 동의해 주는 마음 때문에, 베풀어 주는 마음 때문에 서로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실족’이 무엇인지 잊고 지내야 합니다. 섭섭한 마음이 들려 하거나 원망이 찾아올때 상대를 이해해 주고 품어 준다면 그것 역시 아름다운 섬김입니다. 주님은 죄인인 나를 살리시려고, 우리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자신을 비워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영생의 선물을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섬김이든 감당할 수 있습니다.
내 곁의 성도가 주님의 몸으로 보여야 합니다. 주님이 내게 붙여주신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주는 물 한 그릇은 내 자신과 주님을 위한 기쁨의 생수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