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가장 사랑하는가(막 10:13-22)

매일성경(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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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시는 것과 재물이 많은 사람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얼핏 보면 두 본문이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오늘 본문은 상반된 두 종류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13-16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셨던 일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오날날과는 달리 이 당시에 아이들은 하찮은 존재요 온전치 않은 인격체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이 감히 예수님께 나아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사람들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을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보신 예수님은 노하시면서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란 무릇 ‘이런 자의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잘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으면 결코 거기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와 같다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순진무구함부터 떠올리지만 여기서 말하는 의도는 순진무구함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즉 절대적으로 부모를 의지해야 하는 나약한 존재가 바로 아이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하기만 하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고 어떤 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합니다. 또한 그들의 정체성도 부모님에 의해서 좌우가 됩니다. 그러니까 어린 아이와같은 사람들이란 어린아이가 전적으로 그의 부모를 의지하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린 아이가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순진무구한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들이 되라고 강조하십니다.
사실 말은 쉽습니다. 이 너무 많이 들어서 익숙하고, 때로는 식상하게도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귀에 따갑도록 들은 이 말을 실천하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하나님 아니고도 의지할 것들이 많아 보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의 비빌 언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할때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전에 불렀던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라는 가사처럼 하나님 나라는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이 되기 원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나의 것, 세상의 것이 천국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굳건히 믿으며 오늘도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천국의 시민이 되는 세상 최고의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정말 쉬운일일까요? 오늘 말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재물이 많은 사람의 사례를 통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가 흔히 아는 부자 청년이야기의 그 청년을 의미합니다. 그는 유대 사회에서 나름의 지위가 있었고, 어릴때 부터 십계명을 다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십계명을 다 지킨 이유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을 지킨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말로 표현하면 십계명을 지켰지만 구원의 확신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다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길에 나가실때 달려와 무릎을 꿇고 질문할 만큼 영생을 얻고자 하는 강한 바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계명을 알지 않느냐며 계명을 열거하십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있게 이 모든 것을 어렸을때부터 지켰노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지금까지 십계명을 지켜온 것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며, 그 부족함을 채워 온전하게 하는 방법으로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시며 그리고 와서 자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청년은 재물이 많음으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씨뿌리는 비유’에 나오는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처럼 처음에는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지만,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때문에 결실을 맺지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청년이 그동안 아예 구제를 행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청년에게 재산의 일부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라고만 하셨다면, 청년은 이미 나는 그렇게 살고 있노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유대교에서 말하는 의는 구제, 금식, 기도를 실천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실천하지 않은채 내가 십계명을 지켰노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분명 재산의 일부를 구제에 썼습니다. 이 청년이 예수님의 요구에 순종하지 못한 이유는 자신의 재산 가운데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청년은 모든 계명을 지켰지만 그가 가진 재물을 포기할 수 없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어린아이들처럼 하나님은 온전히 믿고 의지하지 못하고, 자기가 가진 것들을 더 사랑하였기에 예수님께서 직접 기회를 주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것이 말이 쉽지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절대적 인정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없다면 재물을 포기하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예수님을 믿는 즉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 줏는 것이 예수님이 청년에게 하신 말씀을 실천하는 기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자기 것을 나눠주는 삶, 주님께 내 놓는 삶, 즉 내 삶의 모든 것에 대한 처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요구하실때 기꺼이 포기하는 삶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살아야 할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둘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예수님 한분만으로 만족한다고 고백하는 것이 믿는자들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많아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어떤 것을 포기하지 못해서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그 것조차도 내려놓고 하나님만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어린 아이들과 같은 사람이 되어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하루도 나의 것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따르는데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함으로 우리의 것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만 사랑하고, 그분으로 인해 만족하고, 그분의 길을 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기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인정하시며, 우리를 통해 세상 속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도리 것입니다. 이런 복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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