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2 새벽기도회: 사무엘상 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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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85장 찬송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잠을 깨우고 새벽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참으로 죄는 너무나도 무섭습니다. 죄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합니다. 저희는 매번 죄 앞에 무너지고, 죄를 지음으로 매번 하나님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너무나도 연약하고 악한 자들입니다. 이런 저희를 용서하시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히 씻어주셔서 하나님과 같이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말씀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 하실 줄 믿으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상 27:1-6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저마다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바라건대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내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 하니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아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한 주의 마무리를 하는 오늘 시작을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든든하게 세워가는 것은 말씀과 기도일줄 믿습니다. 잠시 기도하기 전에 잠깐 말씀을 같이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자신을 죽이고자 쫓는 사울을 피해 블레셋으로 망명한 다윗이 등장하는 본문입니다. 보통 망명을 하면 망명 국가에 복속되어 거기에서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기란 굉장히 힘듭니다. 현대에도 망명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요. 그때마다 망명하려고 하는 사람은 망명국가의 법에 따라야 하고, 본국에 있을 때보다 소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블레셋으로 망명한 다윗도 마찬가지였을까요? 블레셋으로 망명한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다윗은 앞장인 26장에서 사울과의 만남 이후 자신이 이스라엘에 계속 남아 있는 한 사울은 1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울의 손에 파멸할” 때까지 계속 자신을 쫓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다윗의 깨달음은 마치 사울이 숨바꼭질의 끈질긴 술래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사울의 이런 병적인 숨바꼭질을 끝낼 유일한 해결책은 블레셋 땅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에 다윗은 자신의 추종자들과 가족들과 함께 북쪽에 멀리 떨어진 블레셋 땅인 가드로 향하게 되고, 2절에서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망명합니다.
사실 이전에 한번 다윗이 아기스에게로 도망간 적이 있었습니다. 21장에서 그때도 사울을 피해 도망갔었는데, 아기스의 신하들이 자신의 땅에 다윗이 오자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노래를 아기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홀로 무장한 상태로 있었고, 이것은 아기스에게 위협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 아기스는 사울과 다윗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침을 흘리며 미친 체하여 위기를 벗어났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이번에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의 적이며 마치 사울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찬탈자의 모습과 같이 아기스에게 비춰졌습니다. 그래서 아기스는 적의 적은 나의 편이라고 생각하였고, 사울의 정적인 다윗을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다윗을 받아주게 됩니다.
이렇게 다윗은 아기스에게 망명하게 되고, 3절에서는 이때 다윗은 자신의 추종자들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왔음을 보여줍니다. 가족들까지 데리고 온 이유는 아마 이스라엘에 가족들이 남아 있었다면 사울에게 위협을 받을 수도 있고, 다윗이 가족들과 동행하고 싶어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윗이 가드로 망명했다는 소식을 사울이 듣게 되자 사울은 더이상 다윗을 쫓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다윗은 아기스에게 안전하게 망명하게 되었고 그는 마치 이제 블레셋과 친화적인 삶을 살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은 사울을 피해 비록 블레셋에 망명했을지라도 동화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점 때문에 그럴까요?
그것은 다윗은 쫓기고 망명한 상황일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관심 있었기 때문입니다. 5절부터 보시면 다윗이 아기스에게 요청합니다.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내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 하니”
다윗의 이 말을 아기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엄청 겸손해보입니다. 하지만 겸손해보이지만 다윗은 사실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다윗과 함께 한 자들의 수가 많아 가드 주민들에게 불편을 가져다줄 수도 있었기 때문에 가드 주민들로부터 미움을 사 자신과 함께 한 자들이 핍박당하지 않기 위해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제일 중요한 것은 블레셋은 어찌됐든 이스라엘의 적이며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왕과 함께 하는 곳에서 지내는 것이 굉장히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다윗은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왕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았습니다. 아기스를 찾아가 자신과 함께 온 자들을 보호하려고 한 모습에서 이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 왕이 해야 할 의무라는 점을 다윗은 너무나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기스로부터 가드에서 멀리 떨어진 ‘시글락’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글락은 그냥 블레셋의 한 지역이 아닙니다. 시글락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시므온과 유다 지파에게 분배된 땅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정복해야 할 곳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시글락을 정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글락이 이스라게의 땅이 되는데요. 바로 지금 블레셋으로 망명한 다윗에 의해 정복되어 이스라엘 땅이 됩니더. 그래서 6절 끝에서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바로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어 그들이 정복해야 했던 이 시글락을 유다 지파의 왕인 다윗이 정복하게 됩니다. 이 시글락을 정복하여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비록 이스라엘로부터 추방당하고 망명한 위치일지라도 이 시간 동안 이스라엘이 연약하여 이루지 못한 가나안 정복을 하는데 힘쓴 참된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은 계속 이어집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아니지만 8절을 보시면 다윗과 추종자들은 그술, 기르스, 아말렉인들을 공격하였습니다. 다윗은 아기스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아기스가 보지 못하는 시글락에서 이 기회를 활용하여 유다 지파에게 할당된 구역 중 하나인 그술 족속의 땅을 공격하였습니다. 이 그술도 마찬가지로 이전에 이스라엘이 얻는데 실패한 지역이었는데, 다윗이 정복하게 됩니다. 또한 그술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족속을 멸절하라고 이전에 명령하셨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이 아말렉 족속을 공격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멸절하지 않고 사울의 눈에 보기 좋은 것들을 살려두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고 어겼습니다. 하지만 이 사울과 대조적으로 다윗은 하나님 말씀대로 아말렉인들을 멸절하였습니다. 기르스 족속에 대해서는 달리 알려진 것은 없으나 다른 두 족속과 함께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라는 말씀으로 보았을 때 그술 족속과 아말렉 족속과 마찬가지로 유다 지파의 땅에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세 족속을 공격함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은 참된 이스라엘 왕으로서 이스라엘이 이전에 실패한 정복을 완수하게 됩니다. 그것도 쫓기고 망명한 상태임에도 말입니다.
그리고 이 족속들을 공격하여 얻은 전리품들을 아기스에게 가져다주는데요. 아기스가 어디를 공격하였냐고 묻자 다윗은 10절에서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라고 거짓으로 말합니다. 이 지역들을 이스라엘이 지배하고 있는 영토로서 다윗이 지금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빼앗은 것으로 거짓으로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다윗이 이렇게 거짓말 했다는 것을 보았을 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결코 율법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의도는 무죄한 생명을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이전에 20장에서 요나단이 다윗을 보호하기 위해 아버지 사울에게 거짓말을 한 것과 똑같습니다. 다시 말해 다윗은 지금 아기스에게 거짓으로 고한 것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는 것을 아기스가 믿게 만들어 다윗을 비롯하여 다윗과 함께한 많은 자들이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를 만나 목숨을 잃는 일을 피하게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동족상잔의 죄를 막아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 다윗이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뛰어난 계략에 아기스는 걸려들었고 아기스는 12절에서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 그는 영원히 내 부하가 되리라”라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비록 사울에게 쫓기고 망명한 자였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사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그리고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망명인 신분으로 있음에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자였습니다. 블레셋에 있었지만 블레셋을 적국이라 생각하였고 결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 다윗이 가리키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을 공격하고 죽이려고 하는 많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다윗처럼 피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굴복하신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자들이 있음에도 언제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만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우리는 사울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실패하는 자들입니다. 사울처럼 영적 아말렉 족속인 죄를 정복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다윗보다 더 뛰어나신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조차 하지 못한 영적 아말렉 족속인 죄를 십자가에서 정복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오로지 하나님 말씀에만 관심 있으셨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길 바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 중 다윗, 그리고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따를 때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오늘 이 사실을 기억하며 삶 속에서 세상에 쫓기고 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이스라엘에서 추방 당하고, 블레셋에 망명했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 다윗은 바로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그리스도께서는 영적 아말렉인 죄를 정복하신 참된 왕이십니다. 우리가 이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사울과 같은 저희를 극복하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게 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입니다. 최선을 다 해 한 주를 살았는데, 마무리하는 오늘 말씀 안에서 힘차게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을 두고 기도하시고 각자가 가지고 오신 기도제목으로 기도하신 후에 자유롭게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