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2 금요기도회: 사무엘상 29:1-11

금요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 views
Notes
Transcript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금요기도회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희에게는 항상 말씀과 기도가 너무나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저희에게 이것들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자신을 알 수 있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인인 저희는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기 위해 말씀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 시간 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말씀을 듣고, 또 이 말씀을 토대로 저희의 간구와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서 저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셔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더라도 죄를 능히 물리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 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상 29:1-11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무엘상 29:1–11 NKRV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과 더불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요즘 날씨가 다시 추워진 것 같습니다. 건강 관리 잘 하시고 언제나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먼저 말씀을 함께 듣고 기도제목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앞에서 사울을 피해 블레셋으로 도망친 다윗에게 위기가 찾아오는 본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핍박하는 사울을 피해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 도망쳤음에도 거기서도 결코 쉽지 않은 순간은 마주하게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블레셋 군대로 참전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는데요. 이 순간을 다윗은 어떻게 벗어났을지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절부터 보시면 블레셋과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대적이었듯이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전쟁하기 위해 아벡에 진을 쳤고 이스라엘은 이스르엘에서 진을 쳐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에는 사울이 있었고, 블레셋에는 다윗이 있는 가드 왕 아기스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블레셋에 다윗이 있다는 겁니다.
2절에서도 보시면 블레셋 군사들이 이동할 때 저자는 다윗과 추종자들이 아기스와 함께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중점은 블레셋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처럼 보이지만, 이 전쟁 속에 있는 다윗이 중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함께하는 블레셋 군대 참 신기한 모습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앞에서 아기스에게 환심을 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27장에서 이방민족을 공격하여 빼앗은 전리품들을 아기스에게로 가져왔었습니다. 그런데 아기스에게 이야기 할 때는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빼앗은 걸로 속입니다. 이것은 사실 거짓말에 중점이 있다기보다는 거짓말이 잘못이어서 해서는 안된다고 해도, 이스라엘 왕으로서 사울이 하지 못한 이방 민족을 멸절시키는 것을 다윗이 했다는 것과 이스라엘의 대적인 블레셋을 다윗이 기만함으로서 자신과 추종자들이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는 것을 피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일을 통해 아기스는 다윗이 자기 민족에게 쫓김을 당하고 있고, 자기 민족을 공격하여 미움을 사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아기스 자신에게 선물을 바치는 영원한 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고 다윗을 철저히 신뢰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을 자신의 경호원으로 삼기까지 합니다. 28장 2절을 보시면 “내가 너를 영원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은 경호원으로 삼는다는 뜻이고, 경호원은 왕 바로 옆에서 목숨을 지키는 자이니 아기스가 얼마나 다윗을 신뢰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아기스는 다윗을 대동하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러 출정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블레셋 군대 지휘관들이 아기스를 찾아와 묻습니다. 3절입니다.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블레셋 군대 지휘관들은 블레셋 군대와 같이 온 히브리인들이 딴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은지 지금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기스가 대답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아기스는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면서 전혀 딴 마음을 품고 있지 않았다며 변호해줍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아기스는 다윗이 그럴리 전혀 없다며 철저히 신뢰하고 있습니다.
이에 다시 블레셋 군대 지휘관들이 따집니다. 블레셋 지휘관들은 왜 히브리인인 다윗과 추종자들을 의심하는 걸까요?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그들이 이야기합니다. 4-5절입니다.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않겠나이까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
바로 다윗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같이 참여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며 그들이 아기스에게 따진 이유는 이스라엘과 전쟁 도중에 다윗이 배신하여 이스라엘로 참전하여 블레셋에게 맞서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블레셋 군인들의 표현은 3절의 “히브리인”이라는 표현입니다. 그전에 블레셋은 지금 자신들이 걱정하고 있는 배신을 당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14장에서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했었습니다. 그때도 블레셋 군대 중에는 히브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4장 21절에서 블레셋 군대에 있던 히브리 사람들이 돌이켜서 사울과 요나단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에 합류하게 되었고 블레셋은 이런 혼란 가운데서 자기편을 수 없이 많이 죽여 쓰디쓴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과거에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히 블레셋 군대가, 특히 지휘관들이 히브리인들은 있어서는 안된다고 하며, 더 나아가 왕에게 명령조로 이야기하면서까지 격렬하게 반대할만도 합니다.
이런 지휘관들의 격렬한 반대 앞에 아기스는 엄청난 고민을 했을 겁니다. 다윗과 함께 온 이스라엘 사람들도 블레셋 군대로 편성해야 할지 말지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자기가 봐온 다윗은 결코 배신할리 없기에 데리고 가고 싶다고 생각까지 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3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여러 해 동안” 다윗을 관찰하였고, 27장에서 다윗의 말에 의하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기스는 군대를 이끌어야 했고, 지휘관의 분열은 곧 군대의 분열로 이어지기에 전쟁을 앞둔 상태에서 사기 진작을 위해 결국 지휘관들의 손을 들어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절에서 다윗을 불러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지도자들에게 밉보이지 말고 있어라”라고 말한 것이죠.
한편으로 아기스는 아쉬워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신뢰할만한 사람이고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충분한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기스의 판단은 큰 오판이었습니다. 사실 사무엘서의 저자는 블레셋 왕인 아기스에 대해 서술한 것을 들여다보면 의도적으로 사울과 겹쳐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아기스는 다윗을 자신의 경호원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22장 14절에서 다윗을 “호위대장”으로 삼습니다. 두 왕 모두 다윗을 자신의 경호원으로 삼습니다. 또한 모두 다윗에게 감동했고, 특별히 다윗의 뛰어난 전투 능력에 감동했는데, 결국 모두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다윗을 자기 군대에서 축출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더 나아가 제일 중요한 것은 유감스럽게도 둘 다 다윗을 오해하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불구대천의 원수, 반드시 없애야 하는 존재로 여겼으나 다윗은 사실 아히멜렉의 말처럼 사울에게 있어서 가장 충성되고 충실한 신하였습니다. 다윗은 단 한번도 왕위에 대한 사심을 품은 적이 없고, 사울을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서 존중했습니다. 이에 반해 아기스는 다윗을 가장 신뢰하는 신하로 여겼으나, 사실 다윗은 아기스의 가장 위험한 대적이고, 내부의 적입니다.
더구나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원한 다른 모든 나라가 가졌던 것과 같은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길 이스라엘이 바라지 않기 때문에 좋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울과 아기스가 유사하다는 점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은 왕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두 왕을 하나로 묶고, 여기에 연결 고리로 다윗을 저자가 사용하는 것은 다윗과 이 두 사람에 대한 대조로 곧 바로 이끕니다. 이런 대조에서 다윗은 우월하며, 세 사람 중에 유일하게 하나님 마음에 맞는 진정한 왕의 모습을 가진 인물로 나타납니다. 다윗은 기름부음은 받았으나 공식적인 왕이 되지 못하였고 공식적인 왕인 아기스와 사울 앞에서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서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아기스 앞에서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의 어떤 면모가 드러난 것일까요? 계속해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블레셋 군대에 합류하지 못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아기스의 명령에 다윗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8절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바로 다윗은 불쾌하고 억울한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심이 아니었고 척만 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당신의 종에 대하여” 어떤 불만이 있기에 자신이 “가서 대적들과 맞서 싸울” 수 없게 만드는 것인지 아주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표현하기 위해 오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윗이 싸우기를 원하는 대적은 “내 주 왕”의 대적이었는데, "내 주 왕”이라는 표현이 언틋 보면 아기스와 대화하고 있고 블레셋으로 망명한 상태이기 때문에 “내 주 왕”이 아기스를 지칭하는 말로 볼 수 있지만, 이 말은 굉장히 모호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진심을 담아 “내 주 왕”이라고 말한 사람은 사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쫓고 있었던 때인 24장 8절에서 다윗이 사울을 부를 때 “내 주 왕이여”라고 말합니다. 또한 비슷한 상황인 26장 17절에서도 “내 주 왕이여”라고 사울을 불렀습니다. 따라서 다윗은 아기스에게 “내 주 왕”이라고 말하면서도 은밀히 사울을 자신의 주와 왕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새벽기도회 때도 살펴봤듯이 다윗은 망명한 블레셋에서도 이스라엘이 전에 정복에 실패한 땅들을 정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윗은 아기스에게 자신이 있긴 하지만, 자신에게 유일한 왕은 사울,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인 사울이 자신의 주와 왕이라고 여겼을 겁니다. 쉽게 말해 다윗은 지금 “아기스 너는 지금 내가 망명했기 때문에 너가 나의 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오직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사울만이 나의 주인이요, 나의 왕이다.”라고 마음 속에서 말했을 것입니다.
사울에게 쫓기고 망명한 상태로 있을지라도 다윗은 굳건히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며, 그분이 세우신 왕인 사울만이 나의 주인이요, 나의 왕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다윗은 사울과 아기스와는 전혀 다른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은혜를 다윗에게 베푸시는데요. 바로 오늘 직접적으로 보이시진 않지만, 블레셋 군대가 이전에 히브리인들이 배신한 과거의 사건으로 이번에 다윗을 비롯하여 다윗과 함께 온 자들이 블레셋 군대에서 축출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이들이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죄를 범하지 않도록 막으셨습니다. 다윗 또한 블레셋 군대에서 축출되었을 때 불쾌하고 억울한 척을 했지만 속으로는 이스라엘을 공격한 죄를 범하지 않게 되었다고 기뻐했을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직접적으로 나타나시진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죄를 범하지 않도록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망명한 순간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나의 왕으로 삼는 다른 두 왕과는 다른 차별된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시고 다윗이 이 전쟁에 참전했다면 장차 이스라엘 왕이 될 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해야 할 자가 도리어 죽여야 할 상황에 빠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앞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도 죽이지 않았던 그 사울을 이번에 죽여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죽이는 죄를 범할 수 있었을 겁니다.
망명한 땅에서조차 하나님을 유일한 왕으로 모시고, 또 그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이런 아름다움 모습이 이방 땅인 블레셋에서 펼쳐졌습니다.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시고 그가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의지는 심지어 이스라엘의 대적인 블레셋에서도 여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다윗 간의 이런 관계 너무나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모습이 다윗보다도 더 아름답게 이루어진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시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항상 자신의 아버지이신 성부를 따르고자 하셨고, 성부께서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사랑하시고 지키고 계셨습니다. 다윗에게 펼쳐졌던 아름다운 모습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 속에서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펼쳐졌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아버지와의 아름다운 관계로써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형제들을 공격함으로 죄를 범하는 것을 막으신 것처럼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게 만드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오히려 다윗보다 더 뛰어나게 죄에서 아예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다윗은 위기를 모면하여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보다 더 뛰어난 방식인 죄를 완전히 정복하심으로 우리가 더이상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또한 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어떠한 순간 속에서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나의 유일한 왕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윗처럼 죄를 범할 수 있는 상황 가운데 언제나 놓여있습니다. 우리 자신만 놓고 본다면 우리는 죄를 범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에 넘어지기 쉬운 너무나 연약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를 완전히 정복하신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우리는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다윗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신 것처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언제나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도록 막아주고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그저 구원만 하고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신 분이 아니라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자들과 같이 죄로부터 언제나 지키시고 보호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가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다윗처럼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과 왕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가능합니다. 이 세상은 다양한 것들이 왕이라고 나섭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울과 같이 자신들이 보기 좋은 왕을 세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계시기에 돈과 권력과 다양한 모든 것들이 주인과 왕의 행세를 하고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우리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나의 주, 나의 왕이심을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 속에 우리도 포함시키셨습니다. 성부께서 그리스도를 지키셨듯이 성부께서는 우리를 지키십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죄를 정복하며 하나님만이 나의 주, 나의 왕이심을 고백하는 새순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비록 망명자로 있었음에도 아기스가 아니라 하나님을 자신의 유일한 왕으로 고백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보호하셨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관계가 우리에게도 펼쳐집니다. 어떻게 펼쳐집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펼쳐집니다. 그리스도가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왕이라고 고백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가 있기에 우리는 죄에 넘어지지 않고 오히려 정복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시간 기도합시다. 살아가면서 그리스도를 따라 죄를 정복하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하여서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시며 왕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되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이 두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