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낭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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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4:3–9 NKSV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나병 환자였던 시몬의 집에 머무실 때에,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는데, 한 여자가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그런데 몇몇 사람이 화를 내면서 자기들끼리 말하였다.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나무랐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만두어라. 왜 그를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낭비와 사치
낭비와 사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실은 어떤 사람도 자기 자신이 돈을 낭비하고 사치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낭비하지 않고 필요한 것에 돈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낭비는 나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고, 남에게만 해당이 되는 신기한 단어라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우리가 본 말씀에 이 ‘낭비’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 배경을 함께 말씀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2. 복음서에서 나오는 다른 모습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창녀 혹은 죄많은 여인이라고 표현된 여자가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붙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은 사건과는 전혀 다른 사건입니다.
많이들 헷갈려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3km정도 떨어진 베나니에서, 나병으로 고생하다가 예수님이 고쳐주셨던 시몬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예수님이 식사하시게 됩니다.
예수님이 식사하고 계시는 중간에 한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와서 향유 한 옥합을 가져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사건에 대해서 기술할 때에, 정확히 이 사건에 해당인물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여자라고 표현된 여인은 마르다의 누이 마리아이고, 여인에게 낭비한다고 비난한 제자는 바로 예수님을 판 “가룟유다”였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다르게 발에 향유를 부었다고 표현하는데, 일반적으로 향유를 담은 옥합은 300ml정도의 용량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에 머리에만 붓기에는 많습니다.
아마도 머리에도 붓고 발에도 부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각 성경의 표현이 조금씩 다릅니다. 어디에서는 머리에, 어디에서는 발에 부었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런 향육옥합을 깨서 드리는 아름다운 사건에 대해서 비난하는 제자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통해 한번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2:4–5 NKSV
예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장차 예수를 넘겨줄 가룟 유다가 말하였다.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이렇게 말하면서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표현을 합니다.
요한복음 12:6 NKSV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는 도둑이어서 돈자루를 맡아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것을 훔쳐내곤 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향유를 깨뜨려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했던 마리아를 왜 가룟유다는 비난 할까요?
예수님은 이런 비난의 말을 들으시면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마가복음 14:8 NKSV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마리아가 향유를 깨뜨려서 예수님께 부은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자신의 장례 때에 할 일을 마리아가 지금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장례’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떤 사건일까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한 템포 쉬고)
여러분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사건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어떤 사건을 고르시겠습니까?
자신의 외아들인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주시고, 죄를 대신 지게 하신 십자가 사건입니다 .
그렇기에 ‘십자가 사건’ 그 ‘장례’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놀라운 일입니다.
3. 사랑과 사랑의 만남
오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서 말씀을 가만히 보십시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자신이 시집갈 때나 쓸 수 있는 귀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예수님께 깨서 드립니다.
여기서 깬다는 것은 땅에 던져서 깬다는 것이 아니라, 목이 긴 향유의 목부분을 깨서 사용했다는 의미입니다. 한 번 열면 다시 닫을 수 없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옥합’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사랑을 향유를 드림으로 주님께 표현했고,
그 향유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십자가의 죽음’의 준비하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놀라운 사랑이 서로 연결되는 사건이 바로 향유 옥합을 드리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보고 가룟유다는 뭐라고 했습니까?
마가복음 14:5 NKSV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나무랐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물질적인 돈’으로 계산했습니다.
가룟유다가 이 사건에 이어서 한 일은 무엇일까요?
마가복음 14:10 NKSV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를 넘겨줄 마음을 품고, 그들을 찾아갔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십자가의 죽음’의 가치도 돈으로 계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또한 그 사랑의 행동을 돈의 가치를 생각해보신적이 있으십니까?
엄마가 자녀를 ‘사랑해’라고 말하며 안아주는 행동은 돈으로 얼마의 가치입니까?
부모가 매일 매일 이를 악물로 일터에서 고생하면서 일하며 자녀들을 양육하는 사랑의 행동은 “돈으로 얼마의 가치가 있습니까?”
아마 이런 질문 자체를 들으면서, “제 정신인가? “라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사랑과 사랑을 위한 희생을 ‘돈’으로 계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사랑’이 없으면 돈으로 계산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가룟유다의 모습입니다.
또한 이 세상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물질들’을 비교하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이 소유한 것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비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효율성’을 따지고, ‘합리성’을 따집니다.
사랑은 사라지고, 효율적인 신앙생활, 편안한 신앙생활을 추구합니다.
무엇이 더 나에게 맞는지만을 생각합니다.
사랑이 없기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다른 가치로 바꿔서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 사랑의 대상이 나에게 가장 큰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한 제물로 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큰 사랑을 입은 자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런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우리가 해야할 것은, 우리도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는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음만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행동으로 그 사랑을 표현하고, 그 사랑에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대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사랑이 만나는 장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과 상관없이 이 땅의 가치가 더 우선시 되는 장입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그 사랑을 품고 구원을 얻은 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답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향유 옥합이 한번만 사용할 수 있듯이, 우리의 삶도 단 한번 뿐입니다.
이 삶은 나를 위한 삶으로만으로 쓸 수 있고, 주님을 위한 삶으로 만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낭비가 아닌 사랑입니다.
사랑을 없기 때문에 이것이 낭비로 보여지는 것 뿐입니다.
거룩한 장례인 ‘십자가의 희생’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사순절의 마지막에 와 있습니다.
내가 얻은 구원이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표현임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우리의 삶이 ‘주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 담긴’ 향유옥합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삶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향유옥합같은 삶임을 기억하는 하루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주심을 기억하고, 오늘 하루 주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반응하는 축복된 하루 되게 하옵소서. 나를 사랑해주셔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찬양그룹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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