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가스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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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
금요기도회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 산성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하시니라
이에 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그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바알의 제단이 파괴되었으며 그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제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것이 누구의 소행인가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이르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고 그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하니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다투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다투는 자는 아침까지 죽임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의 제단을 파괴하였은즉 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 하니라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였으므로 바알이 그와 더불어 다툴 것이라 함이었더라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이것만 없으면 정말 좋을텐데, 이것만 없으면 내 삶이 편안할 것 같은 것이 있는가? 학생들 경우에는 등교만 안하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직장인은 출근만 안하면 좋을 것 같을 수 있고, 어떤 이들은 불편하거나 꼴보기 싫은 사람만 없으면 좋을 것 같고, 어떤 힘든 상황만 없으면 딱 좋을 것 같고 뭔가 편안하게 살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무언가가 각자마다 있을 것이다.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어떠한 불편한 것들, 힘들게 하는 것들이 없으면 삶이 평안하고 행복할까?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인생을 평균수명에 3분의 1정도 살아본 짧은 삶이지만, 당장 문제가 해결되거나 없어진다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평안한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살아왔던 삶에서도 마찬가지고, 인생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며 역사적으로도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다. 또 예수 믿으면 삶에서 힘든 일이 안개가 없어지듯 사라지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믿겠다고 결단하면 문제가 사라지는가?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상황이 몰아치듯이 오는 경우를 맞딱뜨리게 된다.
오늘 말씀에서 기드온의 상황도 이와 같은 것이다. 지난 주에 기드온이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바위에 고기와 무교병과 국을 완전히 불태워버리는 하나님을 만났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가까이 함께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사건이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나님을 의심하고 시험했던 기드온이 여호와를 대면하고 만났으나 죽지 않고 오히려 두려워하지 말라고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그곳을 제단을 쌓고 여호와 샬롬이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기드온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을 경험한 그 날 밤에 여호와가 기드온에게 명령하는 것이다. 그 명령은 무엇이었는가 하면 기드온의 친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수소를 가져오라는 것이다. 또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친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바알의 제단과 그 옆에 있는 아세라 신상을 깨부수라는 것이다. 왜 수소를 가져오라 했을까? 수소는 바알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그러면서 그 성에 산 정상에서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고 바알을 상징하는 수소를 잡아서 하나님께 예배하라는 것이다. 아세라 신상이 나무로 되었던 것인지 그것을 제물의 뗄감으로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기드온의 집안은 어떤 집안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독실하게 여호와만을 섬기는 집안이었는가? 아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곳이었다. 기드온이 살았던 오브라 성읍에서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기드온의 집이었다. 미디안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도 바알을 숭배하는 문화가 당연했던 시대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아버지와 성읍에 사는 사람들이 아끼는 바알 제단과 아세라 신상을 부수라는 것은 해도해도 너무한 제안이었던 것이다. 이 제안은 아버지에게 맞아 죽기만 하면 다행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싫어할 것이고 죽이려도 달려들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봤을 때 바알 숭배를 제거하는 것이 바로 샬롬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건이기 때문이다. 기드온은 성읍에서 유일하게 바알을 섬기는 일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알과 아세라가 아버지 집에 있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드온은 바알이 무능력하다는 것에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바알과 아세라를 없애버리라는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게 된다.
그렇게 기드온이 종 열 명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드온은 너무나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자기 가족과 성읍의 사람들이 볼까봐 무서워서 낮에는 못하고 밤에 몰래 바알과 아세라를 없애기로 하는 것이다. 바알의 단은 실제 크기가 7-8m에 높이가 1.3m 정도 된다고 한다. 그것도 무거운 돌들을 진흙으로 고정시킨 단이었다. 그러한 바알의 단에서 바알을 상징하는 수소를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한밤중에 하늘 높이 불길에 타고 있는 바알의 모습을 보면 어떨까? 나는 왠지 그 곳에 같이 있으면 짜릿하고 누가 올까봐 스릴이 넘칠 것 같다. 불타는 제단을 보면서기드온의 대화도 그때 어떤 대화를 10명의 종들과 이야기했을까 상상하게 된다.
자, 다음 날 아침이 되었고 완전히 불장난처럼 잿더미가 되어버린 바알의 제단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정말 얼떨떨했을 것이다. 성의 사람들은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알고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를 찾아가서 아들 기드온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다. 순진한 줄만 알았던 기드온이 성읍에서 하루만에 금쪽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놈이 이딴 짓을 했으니 빨리 내놓으라고, 당장 죽여버릴 것이라면서 화가 엄청난 것이다. 그러나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화가 잔뜩난 성읍의 사람들에게 획기적인 제안을 하는 것이다. 만약 바알이 진짜 신이라면 자신의 제단을 박살낸 기드온을 그냥 내버려두겠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알이 스스로 기드온을 죽일 수 있게 놔둬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기드온은 어떻게 되었는가? 아주 멀쩡하게 잘 살고 있었다.
이 사건을 통해 바알은 스스로 지킬 수 없는 무력한 존재였다. 이로 인해 바알의 아무런 능력이 없음을 마을 사람들에게 입증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바알과 아세라를 제거한 기드온의 별명은 ‘여룹바알’이 된다. ‘바알로 싸우게 하라’, 또는 ‘바알로 고소하게 하라’, 또는 ‘바알로 하여금 그와 다투어 토론하게 하라’는 뜻을 가진 별명이다. 더 재밌는 것은 기드온의 이름의 뜻은 ‘신상을 찍는 자’이다. 자신의 이름처럼 바알의 단과 아세라 신상을 찍고 없애버린 다음에 ‘여룹바알’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는데, 이 별명은 곧 하나님의 능력과 바알이 능력없음을 늘 생각나게 하는 이름이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영적 가스라이팅’이다. 가스라이팅의 뜻은 위키백과에서 뛰어난 설득을 통해 타인 마음에 스스로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모태신앙의 가스라이팅을 드러내는 사건이 있었다. 코로나 때 예배를 국가에서 전면통제했을 때 많은 이들이 주일예배에 교회에 안가도 별일이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이를 통해서 교회에서 또는 가정에서 주일예배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이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마치 예배를 안드리면 지옥에 가거나 교통사고나서 죽거나 재수없는 일이 생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주일 예배를 열심히 드린다고 천국가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구원을 받는가? 오직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의 나타나는 행동은 무엇인가? 예배라는 것이다.
우리는 또 세상에 나가면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가스라이팅을 당하게 된다. 학교에서는 성적이 낮으면 망한다라는 이야기나 대학을 좋은 곳에 가야한다는 이야기, 대학에 들어갔더니 좋은 교수님과 좋은 성적과 인맥과 스펙이 좋아야 취업에 잘된다는 이야기. 취업을 했더니 직장 상사에게 잘해야지 실적이 좋아야지 승진하고 좋은 자리에 앉는다고 이야기하고, 그러다가 연애를 해야하는데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을 잘해야한다는 이야기. 결혼을 우여곡절해서 자녀를 잘 키워야 자식농사 끝나고 거두어갈게 많다는 이야기. 그러다가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 은퇴하면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라며 노후 삶을 잘해야 나머지 인생을 재밌게 살다가 간다는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이 입아프도록 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세상의 사람들은 누구만 기억하는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것이다. 작년 수능 만점자는 뉴스에 나와도 2등, 3등은 조명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책임져줄 것도 아닌데, 자꾸만 불안감을 조정해서 세상의 기준대로 성공하지 않으면 실패자의 인생처럼 가스라이팅을 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가면 문제가 없는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문제가 없어지는가? 승진을 잘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고 해서 계속 행복한가? 좋은 사람과 연애한다고 해서 매일 설레는 일만 가득한가? 결혼을 잘하고 자식을 잘 낳으면 만사형통인가? 자녀가 부모의 생각대로 자라나는 것이 쉬운 일인가? 은퇴하고 노후의 삶을 잘 준비한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없이 살 수 있겠는가? 어느 누구도 아무리 잘 산다고 하더라도 문제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국에 많은 사람들이 돈이 엄청나게 많아 부러워하는 이건희 회장이 죽었을 때, 그가 가져간 재산이나 재물이 있는가? 죽을 때 그는 하나도 자신의 소유를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사람은 이 세상의 것을 노력해서 소유한 것 같아보여도 결국 인생 끝에는 사람이 소유한 것들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오직 하나님이 온 땅에 주인이시라는 증거이다.그래서 전도서에서 솔로몬이 인생에 하나님이 없는 인간 삶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세상 모든 일이 헛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을 생각해보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특별히 한 가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동물은 절대 미래에 대해서 상상하거나 생각할 수 없다.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나 경험들에 의해서 현재에 대한 행동은 하지만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강아지가 자녀를 못낳을 것 같다고 고민하면서 한숨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나 이제 뭐해먹고 살지라는 고민은 하는 강아지가 있는가? 이제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생각은 사람만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서 어떤 감정으로 살아가는가? 근심하고 걱정하며 염려로 살아간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근심, 걱정, 염려하지말라고, 복음서에서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아무리 걱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에 달라질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감히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분명한 한 가지 미래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고, 하나님이 나라는 영원하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근심, 걱정, 염려가 아니라 소망으로 기대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하는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예수님이 명령하시는 것은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기도는 누구만 할 수 있는 기도인가? 하나님의 자녀만이 구할 수 있는 기도이다! 왜인가? 예수님이 약속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게 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겠다고,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세상의 부자들도 연명하려고 그렇게 노력했으나 결국에는 돈으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영원히 기쁨과 자유 안에서 누릴 뿐만 세상에 어떤 강한 사람도 능력있는 사람도 부자도 갖지 못하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러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나는 일제 시대에 독립운동가들이 전했던 한 마디가 마음을 떨리게 한다. ‘새벽에 우는 닭의 목을 치더라도 아침은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예수님과 싸워나갑시다. 예수를 따라가는 일은 쉽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무엇이라 표현하는가?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도’라고 표현한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행복한 일들이 가득하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거나 신앙생활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는 그럴 때일 수록 세상의 가스라이팅에 벗어나 말씀 안에서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내기를 소망한다. 예수의 이름에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