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에 관하여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70 views
Notes
Transcript
안녕하세요!
작년에 뵙고 다시 보니깐 반갑습니다.
작년에는 우리가 하나가 될수 밖에 없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죠.. 하나가 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열매를 맺기위해서 이죠!
하나가 되면 자동으로 열매를 맺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잘 읽어보면 복음의 역사가 일어날때를 자세히 보면 하나가 되었음을 볼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안성교회 청년회는 하나입니까? 이천교회 청년회는 하나입니까?
네 우리는 하나여야합니다. 그리고 후반기에는 열매에 대해서 교제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셨나요!
작년의 안성교회 부서가 하나부와 열매부였죠.!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천교회는 작년에 부서가 충성부와 사랑부였습니다.
얼마나 많이 교회에 충성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지냈는지 잠시 생각해봐도 좋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한해는 이천교회는 부서가 열매부와 소망부입니다.
안성교회는 부서가 어떻게 되나요?
은혜부 소망부
이번 한해는 2024년은 정말 부서의 이름대로 목표를 세운대로 그대로 이루지길 소망합니다.
오늘은 올바른 소망에 대해서 같이 말씀을 배워볼려고 합니다. 본문 말씀을 찾겠습니다.
1.소망은 누가 품는것인가?
에베소서 1장 18절 말씀을 찾겠습니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오늘 우리는 올바른 소망이라는 주제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올바른 소망은 과연 무엇일까요?
올바른 소망이 있다면 올바르지 않은 소망이 있는 거죠..
오늘 같이 말씀을 배우보면 이러한 것이 올바르지 않은것구나 알수 있을것입니다.
형제 자매님은 어떠한 소망을 품고 살고 계십니까?
소망을 품을수 있는 있는 자격이 있을까요?
방금 읽은 말씀은 바울사도가 에베소 교회에 있는 형제 자매를 위해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의 눈이 밝아 져서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했습니다.
1) 부르심을 받지 못한자-소망이 없다
이 18절을 통해서 알아볼것들이 있습니다.
그의 부르심이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부르지 않은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다는것을 말할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 말씀에 보면
그 때에는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주의 부르심을 받지 못한 모든 사람은 소망이 없는 자입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소망이 있는 자입니까? 소망이 없는 자입니까?
불신자.. 믿지 않은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왜 믿지 않은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일까요?
잠언11장 7절에 보면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
저 죽음이후의 소망이 없는 사람은 이 땅에서 죽음이 찾아오면 모든 소망이 끊어 지는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지옥에 간 사람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 땅을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몇년 짜리 소망입니까? 70-80년짜리 소망이지 않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에게는 소망이 있고, 악인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말이 맞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을 이렇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항구 없이 떠돌아 다니는 배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제가 필리핀 마닐라를 올해 초에 다녀왔습니다. 거기는 날씨가 따뜻하잖아요.
그럼 어떠한 분들이 많이있냐면 그냥 거리에서 주무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분들을 보면 정말 돌아갈 곳이 없이 이곳저곳 해매는 사람들인것입니다.
2) 부르심을 받은자 소망이 있다.
그러면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구원받을때 부터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벧전 3장 15절 말씀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 이라는 말씀대로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신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지 않은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영원한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까?
보이는 것입니까? 아니면 보이지 않은 것입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은 것을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윗은 어떠한 것에 소망을 두고 살았던 믿음의 선진이었을까요?
다윗의 일대기를 보면 소망이 없었다면 그렇게 살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윗은 전에 사무엘로 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앞으로 너가 왕이 될것이라는 언약을 해준것이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선지자가 하나님께 받아서 약속을 한것이기에 순적하게 이루어져야 하는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음을 우리가 너무 잘알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로부터 죽을 위기도 있었고 또한 광야에서 사울을 피해서 10년간 고난과 환란속에서 있었는데 믿음을 지킬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시편 39편 5-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다윗은 무엇을 위해서 살았던 인물입니까?
썩어질 이 세상에 것에 소망을 두고 산것이 아니고 어디에 소망을 두었던 것입니까?
다윗은 썩어지지 않은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았기에 다윗의 생애가 영원히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벧전 3장 15절 말씀에 소망에 관한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대답할 말을 예비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여기 앉아 있는 분들이 먼저 어떠한 소망이 있는지에 대해서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합니다. 그렇게 해야지 나부터 그러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지 나로 부터 영향역을 끼칠수 있지 않을까요?
청년의 시기부터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주를 섬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나의 목적이 되어야 하고 이것이 나의 삶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하나씩 알아보겠습니다.
2.소망의 종류
1)산소망
구원받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소망은 어떠한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요?
여기에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어떠한 소망을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망은 죽은 소망일까요? 산 소망일까요?
이루어지지 않을 소망일까요? 반드시 이루어 지는 소망일까요?
벧전 1장 3절 말씀을 찾아 보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산 소망이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산 소망.. a living hope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소망은 어떠한 것일까요?
대부분은 희망을 떠오를 것입니다.
영어로는 WISH 희망이죠..
그런데 우리는 소망인것입니다.
잠시 넌센스 퀴즈를 하나 하고 가겠습니다.
100,200,300,400 그럼 문제 나갑니다. 400다음은?
답 401입니다.
100에서 1을 빼면 얼마입니까? 99가 아니고 0이 되고요
0에서 1하나를 더하면 100이 되는 것은 그 한개가 무엇일까요?
1이 없으면 0이되고 1이 있으면 100이 되는것이 무엇일까요?
그 하나가 바로 바로 하나님이 인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붙잡고 있으면 다 가진자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놓으면 다 놓은것이 되는 것입니다.
희망은 이루어 지면 좋은 것이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는것 그러한 것들이 바로 희망인것입니다.
희망은 또한 이러한 의미도 있습니다.
어느 그림이 있는데요 이 그림은 하프는 7줄로 이루어져 있는 관현악 악기입니다.
그런데 이그림은 눈 먼 여자가 6줄이 끊어지고 1줄에 의지해서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이름은 바로 희망이라고 합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 그림을 보고 희망의 메시지 준 그림이라고 찬사를 보냈다고 합니다.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고 남은 한가닥에 희망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거죠..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러한 희망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한가닥도 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죠..
그레서 희망인것입니다.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 그래도 살아보겠다는 희망..
하지만 우리는 희망을 추구합니까? 소망을 추구합니까?
우리는 소망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만약 1가닥이 남아있다면 그 1가닥은 누구 입니까? 절대 끊어지지 않은 예수님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6가닥은 없어도 되지만 절대 이 1가닥 만큼은 붙잡고 놓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요셉의 이야기를 해볼려고 합니다.
요셉의 인생을 보았을때 희망이라는 것이 있게 보입니까? 그냥 암울한 인생이지 않습니까? 형들의 의해서 구덩이에 빠지고 그리고 노예로 팔리고 그리고 보디발의 집으로 팔리고 11년동안 열심히 지냈었는데.. 이제 살만했을것입니다. 비록 노예지만 이제 나에게 빛이 찾아오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을것입니다. 점점 희망이라는 그림처럼 처음은 7가닥이 있었는데 한가닥이 끊어져서 그 나머지 6가닥의 희망을 붙잡았는데..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보디발의 아내의 무고한 신고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되었죠.. 그리고 거기서 심지어 죽을 뻔 했죠.. 그곳에서 오랬동안 감옥생활을 하게 해준 꿈이 이었거든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왕자 2를 보면 YOU KNOW BETTER THAN I OST를 보면 감옥의 한줄기의 빛이 비추거든요..
거기서 나무를 심지 않습니까? 그 나무가 자라는 것..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낙담이 되더라도 우리는 주님이라는 소망을 붙잡고 있으면 노래의 재목처럼 당신은 나보다 더 잘아신다는것을 우리는 그것을 믿고 소망을 품고 살면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낼수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망은 반듯이 이루지는 것입니다.
단 그 때와 그 시기는 아무도 모르지만요!
하지만 반드시 이루어지는 소망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저 천국에 대한 소망이 아닐까요?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천국에 갑니까? 가지 않습니까?
혹시 모릅니까?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계시잖아요! 저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비록 지금 하고 싶은 꿈이 없다라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괜찮은 것입니다.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혹시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분 계십니까?
이땅에서 잘되는것, 이땅에서 잘먹고 잘사는것, 좋은 차, 좋은 집에 사는것.
그런한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 분 계십니까?
이땅은 어떠한 땅입니까?
이땅은 장망성입니다. 이땅은 없어질 성입니다.
우리는 바라보고 살아야 집.. 본향은 바로 저 천국인것입니다.
보이지 않은 것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니깐 어렵죠.. 눈에 보여야지. 추구하고 살텐데요.. 그렇죠..
그런데 성경은 산 소망이라고 말씀하고있습니다.
산.. 살아있는 소망인거잖아요~!
소망이 살아있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반대 되는 말은 무엇입니까? 소망이 죽어있다라는 말이 되잖아요
우리가 생각해 봅시다. 소망이 죽어 있습니까? 소망이 살아 있습니까?
소망은 죽어 있는것이 아닌것입니다. 만약 죽어 있다면 우리의 구원도 죽어 있는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 보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망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살아있으니깐 구원받은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때문에 살아 있는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으면 모든것이 탄탄대로입니까? 갑자기 일확천금이 떨어집니까?
갑자기 아픈것들이 사라집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은것은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세상은 어떠한 세상입니까? 장망성이고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니깐 우리가 사는 세상은 힘든 세상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품어야 것이 딱 하나가 있는것이 바로 소망인것입니다.
2) 복스러운 소망 = 재림의 소망
그럼 우리가 품고 있는 소망들은 어떠한것을 품고 있을까요?
디도서 2장 13절에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복스러운 소망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복스러운 소망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소망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영광스러운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것이 바로 재림에 대한 소망입니다.
왜 위로가 됩니까
주님이 재림하면 우리는 어디에 갑니까? 처 천국에 가니깐 위로가 되는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재림의 소망을 마음에 새기면서 살게 되면 핍박과 고난 중에 위로의 근원이 됩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1장 6-10절
6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0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이 말씀을 읽으면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나에게 핍박하고 어렵게 하는 자에게 나중에 주님이 갚아 주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르는자 복음을 복종치 않은자에게 형벌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내가 힘들고 어렵지만 묵묵히 참고 기다리고 인내하면 누가 다 갚아 주신다고 하는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감사하지 않습니까? 이러한것이 산 소망인것입니다.
그리고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으면 지금 우리가 봉사하는데 있어서 큰 힘이 됩니다.
고린도 후서 5장 8-10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봉사하는 큰 힘이 된다고 고린도 후서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를 기쁘시게 되는 자 되기를 힘쓰면서 살다보면 내가 행한 각각에게 해한 그대로 주님이 갚아 주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한 일들.. 영원한 삶을 위해서 하는 모든 일에대해서 다 갚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짐엘리엇이라는 선교사가 있습니다.
1927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출생으로 명문 휘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짐 엘리엇을 비롯한 5명이 선교사들이 남미 에콰도르 아우카부족에서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1956년 1월 8일 다섯 명 모두 창과 도끼에 의하여 순교를 하게 된다. (당시 짐 엘리엇의 나이는 29세)
1년 이후 그의 아내들이 그곳에 들어가 (아우카부족은 남자는 죽이지만 여자는 죽이지 않음)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영접하였고 10년 후에는 남편을 죽인 “키모”라는 사람은 아우카족 최초의 목회자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순교한 선교사들의 자녀 중 2명은 그들의 아버지가 순교의 피를 흘린 팜 비치 강가에서 “키모” 목사에게 침례를 받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 중에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이다. 하지만 남편 짐 엘리엇 선교사를 잃어버린 아내는 남편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보았다.
“짐 엘리엇” 대학 2학년 때 일기장에 남긴 글 중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이 있다.
"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that which he cannot lose"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영원하지 않는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삶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영원한것을 얻기위해서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것들이 바로 하늘에 쌓아두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사람을 사냐면 주를 앙망하며 사느 것입니다.
그래서 주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 처럼 올라간다는 이사야의 말씀처럼
독수리처럼 올라가는 신앙을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우리에게 주신 소망은 하늘에 쌓아둔 소망.. 이것은 무엇입니까? 상급에 대한 소망이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산 소망.. 또한 보지 못한 것을 바라는 소망 이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저 천국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복스러운 소망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재림의 소망을 우리에게 주신것입니다.
3)재회의 소망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원받은 우리에게 주신 소망은 바로 재회에 대한 소망이 있는것입니다.
여기 앉아 계신 형제 자매님은 성경의 롤모델이 있습니까?
저 천국에 가서 꼭 만나뵙고 싶은 분들이 계십니까?
우리가 저 천국에 가면 같이 교제 하고 싶은 분들이 계실것입니다.
그러니깐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신앙을 더 단단하게 하면서 지내야 되지 않을까요?
시편 17편 15절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내가 자고 깰때에 주님의 형상을 보게 되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는 다윗의 소망의 대한 말입니다.
그리고 계시록 22장에 보면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게 되면 모든것이 위로가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이 힘들고 어려워도 나를 가장 잘 알고 나를 가장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게 되면 모든것이 눈 녹듯이 위로가 되겠지요
우리가 이세상에서 힘들고 지칠때 그래서 소망을 품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품어야 할 소망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주님과 같은 신령한 몸이 되어서 영원한 기쁨과 평안가운데 천국에서 죽지 않고 사는 것, 그리고 주님이 주신 상급 속에서 여기에 계신 형제 자매님과 같이 영원한 영광을 누리며, 영원히 주님이 얼굴을 바라보며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품어야 하는 소망인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는 소망에 대해서 살펴 보았고 이러한 소망을 주님이 주셨는지 알았다면 그 다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소망을 어떻게 단단하게 할수 있을까요?
로마서 15장 4절 말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는 가운데 우리는 소망을 가질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사람들 아닙니까?
그럼 성경에서 소망을 바라보고 사는 위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대표적으로 사도 바울도 무엇을 바로 보고 사셨습니까? 저 천국에 있는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살았지 않습니까?
여기에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어떠한 소망을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영생에 대한 소망, 천국에 대한소망, 재회의 소망, 상급에 대한 소망 어떠한 소망을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한번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아무런 소망없이 산다면 그 것만큼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은 없을것입니다.
3.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가?
1)하나님에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소망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합니까?
소망을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두고 살아야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두고 사는 삶들이 복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46편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고,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어야지 복을 얻을수 있는것입니다.
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야 합니까?
하나님은 변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 봐야 합니다.
시편 41편~42편을 보면 나라는 단어가 몇번이 나오느냐 51번 나옵니다. 낙망하고 있을때는 누굴 보고 있는 것입니까?
나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중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무엇에 집중해야합니다.
하나님에게 집중을 해야하는데 가끔 나를 집중할때가 있습니다.
저 형제는 나에게 왜그랬을까? 사람과사람에게 집중을 하게되면 꼽씹게되면 어떻게 됩니까?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대인기피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야로 무엇을 묵상해야합니까? 성경을 묵상해야하고 146편에 있는것처럼 누구에게 집중해야 합니까? 하나님에게게 집중을 하는 삶이 되어야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수 있는 것입니다.
이세상을 보통 바다로 비유를 합니다.
거기에 선장은 누구 입니까? 선장은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배는 무엇입니까? 배는 내가 타고 있는 이 배는 교회인것입니다.
교회에 누가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타고 선장대신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이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 그 배의 닻은 얼마나 클까요!
배의 닻을 이세상의 배의 것으로 비교 할수 있을까요.. 할수 없을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 19절
19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우리의 닻은 튼튼하고 견고하기 때문에 소망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에게 모든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소망을 품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데 그런데 우릴 보면 거기서 무너져 버릴때가 있죠, 기다리지 못해서 무너질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민수기 13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해서 가나안땅을 앞에두고 정탐꾼을 보내잖아요..
12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렇죠. 그 정탐꾼들은 하나님이 가나안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허락하셨다는것을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 땅에 들어가길 소망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갔다가 온 10명의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그렇게 말을 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홍해바다를 가르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엘림에서 물을 경험하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경험하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경험했던 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메뚜기 같다고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냐고.. 우리는 죽었다고 그냥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울면서 말을 하고 있잖아요.. 왜 그렇게 되었겠냐는거에요.. 소망을 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잊어버리고 살았던 거에요. 아무런 목적과 생각없이 이 광야의 길을 걸었던 거죠.
그러니깐 하나님의 뜻도 잊어버리게되고.. 하늘을 바라봐야 하는데 무엇을 보게 되는거죠. 나의 바로 앞에 닥쳐있는 상황만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깐 원망을 하게되고 불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이 그 상황에 같이 갔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옷을 찢으면서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렇게 담대하게 말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말을 할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소망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음의 결과인것입니다. 우리도 같습니다. 우리도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소망을 굳건히 잡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환란과 역경이 와도 해쳐나갈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그 소망이 내 마음에 가득차 있다면 다윗의 간증처럼 아무리 환란과 역경이 있더라도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리이다 라는 시편 71편 말씀처럼 찬송을 할수 있는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계시는 형제 자매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어떠한 자매님은 교회에 올 차비가 없어서 빈병을 모아서 겨우 차비를 만들어서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본래 교회에서 차량 수송을 해 줍니다. 그런데 왜 차비를 모으냐고요.. 그 자매님의 직분이 바로 찬양대여서 그 찬양대를 할려면 일찍 교회에 와서 연습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차비를 모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이 자매님의 소망이 바로 하늘에 있다는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환경이 닥치면 나는 어떻게 할수 있을까? 저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님은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고 있습니까? 지금 잠시 힘듭니까? 지금 잠시 어렵습니까?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히브리서 10장에 있는 말씀처럼 지체하지 않고 오실 그분을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럼 지금 역경을 해쳐 나갈수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소망이 있는것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저도 소망을 품고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떠한 소망을 품고 있는가 하면 주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저 천국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지만 우리 집에 복음을 위해서 한 영혼을 주님이 취하신것입니다. 그게 바로 저희 형입니다. 그래서 저 천국에서 만나야 그 분이 있기에 지금 이곳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전 항상 이러한 마음을 품고 있거든요 하나는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고 또하나는 나를 전도하기위해서 죽은 형의 몫을 하기 위해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재회를 하기 때문이죠!
혹시 국제 시장이라는 영화를 보셨나요..마지막 주인공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나 진짜 열심히 살았지요.. 그렇게 하면서 독백의 대사가 있는데요..
저도 재회의 순간에 그말을 하고 싶습니다.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요..
그래서 지금 즐겁습니다. 슬픔이 역경이 즐거움으로 바뀌었습니다.
공주에 가면 소망의 동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가보셨습니까? 그곳에 가면 예수님의 동상도 있고요 또한 소망의 동산이라는 비석이 있습니다. 그곳에 많은 분들이 왔다갑니다. 왜 왔다 갈까요?
그분들을 저 천국에서 다시 만나기 때문에 그 곳에 갑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저 천국에 가면 누굴 만날까 그러한 꿈을 꾸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소망이 있는것은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고 기쁨인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을 보면 어떠한 환란을 받았습니까?
히브리서 11장이 바로 믿음장 이잖아요.
히브리서 11장 35-37절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지금 시대는 이러한 환란을 받은 분들은 없지 않습니까?
그때의 믿음의 선진들은 어떻게 그것을 견딜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단 하나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예수를 바라보자
이 일곱의 말로 다 이해가 되는 것같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선지들 처럼 소망을 품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입니다.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은 확신에 차서 힘차게 환란과 역경을 해쳐나갈수도 있지만 가장 큰것은 소망을 품는 사람들은 더욱더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산다는 것입니다.
2)소망을 가진자는 거룩하게 산다
요한일서 3장 2-3절 말씀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우리가 이러한 소망을 가진자 입니다. 그러니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먼 나라에 남편이 돈을 벌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는 남편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언제 올지 모른다고 해서 다시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합니까?
혹 생사가 확인이 되지 않은다면 그럴수 있죠..
그런데 우리가 가진 소망은 생사가 확인된 기다림 아닙니까? 반드시 돌아올 믿음이 있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죄에 빠져서 해어나지 못할정도로 세상에 뭍혀서 살아야 합니까? 아니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답이 정해져 있죠..
주님은 언제 오실까요?
일주일 뒤에 기말고사를 본다고 합시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네 그렇게 생각하고 시험공부를 않합니까? 아니잖아요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지 않습니까?
저도 자격증 공부를 할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 자격증은 1년을 준비해야 딸수 있는 자격증입니다. 그럼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을까요? 너무 오래 준비한다고 그냥 잊고 살면 그 자격증을 취득할수 있을까요? 아니잖아요 긴장의 끈을 놓치않고 끝까지 준비하지 않습니까?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됩니까? 나의 신앙생활이 느슨해져버립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은 주님이 곧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는 마음을 가지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자기를 채찍질 하면서요 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정말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주님보시기에 떳떳한 삶을 살아야 할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소망을 소망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소망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더 우리의 삶속에서 누가 나타나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나타내야 할것입니다.
4.결론
로마서 15장 13절 말씀 보겠습니다.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속에서 모든 소망으 즐거움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그 소망이 넘쳐나길 기도해야합니다.
정말 그것을 바라는 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망이 넘쳐야지 우리의 삶이 기쁨이 되고, 평강가운데서 살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여기 계신 모두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소망을 품고 주님 오실때까지 화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꼭 오늘 본문 말씀이었던 에베소서 1장 18절 말씀에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그 말씀처럼 내가 품고 있는 소망이 무엇일까? 고민해보고 마음에 새기면서 살아가면 나의 신앙생활이 더욱더 즐거운 신앙생활이 될것입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