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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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가복음 3:34-35(신약 58쪽)
설교제목 : 새로운 가족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2006년에 개봉한 소설원작의 미국 영화중에 ‘다빈치코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기독교계를 들썩이게 만들었습니다. 그 까닭은 이 영화에서 기독교계에서 반감을 살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의 후손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결말부에 그가 누군인지 밝혀지는데, 궁금하신 분은 영화를 보시면 됩니다. 당시의 분위기는 그랬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모독하는 일이며 우리 신앙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으로 여겨져서 상영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약간의 여담이지만, 우리가 문화라는 요소를 또는 예술이라는 요소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나 소설 이것은 문화의 영역이고 그저 작가나 감독의 어찌보면 좀 발칙한 상상력의 영역인데, 그것을 진리수호의 잣대로 평가해버리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그런 겁니다. 예능을 다큐로 받는 것 말입니다. 유머나 농담을 가지고 싸움을 벌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요. 우리의 신앙은 그렇게 속좁은 것이 아니고 작은 요동에 무너지는 부실한 것이 아닙니다. 무려 2000년이 넘는 시간을 굳건히 버텨온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능은 예능으로 받을 수 있는 문화적 소양을 넓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째든 다빈치코드에서 좀 발칙한 작가의 상상력이 예수님의 후손으로 나타나는데요. 인간에게 있어서 핏줄이나 가족이라는 것이 어떤 제한된 영역에 속한 것인지 몰라도 하나님 또는 예수님께는 보다 넓은 영역에 속한 것임을 이해한다면,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것은 귀여운 웃음거리에 불과합니다. 뭐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고전문학으로 알려진 그리스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일찍이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통해 펼쳐보인 상상력이기도 합니다. 거기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 가정을 꾸려서 사는 이야기까지 합니다. 물론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보다 묵직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요. 마찬가지로 궁금하신 분은 책을 찾아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다소 불경스러운 이런 얘기를 늘어놓는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은 가족에 관해서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신앙 안에서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마가복음 3장 34절에서 35절의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마가복음 3:34-35(신약 58쪽)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군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곧 우리는 신앙 안에서 한 가족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고 하고 혈연에 의한 관계를 중심으로 가족을 이야기합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우리의 가족에 관한 이해는 가족이라는 범위를 협소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그러한 협소한 범위의 가족에 관한 이해가 예수님의 후손 또는 예수님의 가정에 관한 생각으로 뻗어나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지 혈연관계가 아니라, 그것 이상의 가족이 가능함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모두가 형제 자매가 될 수 있음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을 우리를 모두 자녀로 여겨 주시기도 하고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 남자 신이라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으로부터 나왔고 주님께 속하였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흔히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라고 얘기하고 이로써 우리는 한민족이라고 얘기하는 것과 비슷한데, 사실 그것보다 좀더 확장해서 세상에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하였으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자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어떤 것입니까? 일전에 청년부 소그룹모임을 인도하는 청년들과 만나서 소그룹모임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중에 흥미로운 얘기가 나왔습니다. 가족은 우리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에요. 결혼을 하려는 연인이 그 결혼을 부모님에게 또는 가족들에게 알리면서 허락을 맡습니다. 저도 결혼을 앞두고 아내의 언니를 시작으로 어머니, 동생 그외 친척들에 이르기까지 인사를 드리고 또한 허락을 맡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참 다행스러운 것은 양가 모두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셨고 오히려 서로가 서로의 구원자라 추켜세워주며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저와 달리 어떤 이들은 가족의 반대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남이라면 무시할 수 있지만 가족의 반대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처럼 어떤 일을 결정하는 것에 가족은 꽤 상당한 영향력을 줍니다.
저는 이를 놓고 생각해 봅니다. 가족이란 존재는 그렇게 큰 영향력을 주고받는 것인데, 과연 우리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그와 같은 가족됨을 이루고 있는지 하고 말입니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나의 형제와 자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고려하면서 행하고 있는지 반대로 내가 나이 형제와 자매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 하고 말입니다. 달리 보자면, 교회 안에서 또는 신앙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특별한 존재로 여기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쉽게 아마 우리는 잘 그러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우리의 가족은 혈연을 넘지 못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나의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 속하였을 때 우리는 한 가족이고 그와 같은 가족됨을 이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족됨을 이루는 것에 있어서 물론 여러 가지 정의가 있을 것입니다. 가족마다 가훈이 있고 가족마다 다른 문화적인 풍습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가족을 이뤄가는 방식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분명한 것은 적어도 우리가 서로를 가족과 같은 존재로 여기게 될 때는 결코 상대를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모든 가족이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만해도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세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관계되어 경험한 불편하고 불행하다 느껴지는 기억과 경험이 있습니다. 그것이 여전히 해소가 되지 않고 있을 정도로 그 앙금은 무겁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버지에 관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가족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나랑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쉽게 치부할 수 없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여전히 내게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나타나는 것일 겁니다.
어떤 집사님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아직 부모님이 모두 생존해 계셔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일이 자식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주는지 잘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근래에 몇 차례의 장례 가운데 부모님을 잃은 것에 꽤 크게 상실감을 경험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대체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경험인지를 도무지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좀 섣부른 말이지만 어쩌면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그 상실감이 어머니에 비해서는 크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심정으로써는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렷듯이 아버지와의 관계가 편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집사님은 말씀해주셨습니다. 자신도 아버지와의 관계가 썩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깐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힘듦이 있었다고 말입니다. 저는 가족은 이런 존재가 아닐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 존재가 내게 너무 특별해서 좋든 싫든 나에게 큰 영향력을 남기는 존재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신앙 안에 있는 우리가 그러한 존재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내 옆에서 함께 예배하고 같이 신앙생활하는 아무개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목사님, 전도사님 모든 성도가 내게 의미 있고 특별한 존재라고 말입니다. 때로는 그들이 내게 괴로움을 줄 수도 있지만, 그러나 미우나 고우나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임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더 나아가서 내가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도 특별한 존재일 수 있음을 생각하고 나의 언행을 잘 다스려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내 옆에서 함께 신앙생활하는 이들에게 충분히 영향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그 영향력이 옆에 함께 있는 형제자매에게 선하게 나타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바라건데, 오늘 우리가 주안에서 하나된 가족임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서로를 귀히 여기고 서로에게 선하고 좋은 영향력을 펼쳐나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