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 히브리서 3:1(신약 412쪽)
설교제목 :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저는 어제 사역을 마치고 아내와 저녁으로 치킨을 먹었습니다. 치킨을 먹으면서 최근에 방영한 우리나라 드라마 한 편을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저녁 먹을 때 잠깐 볼 생각으로 시청한 드라마였습니다. 그리고 내용도 좀 기괴한 구석이 있어서 대체 무슨 드라마가 이런가하며 투덜거리며 드라마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드라마 이른바 K-DRAMA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투덜거리며 보던 드라마를 현재 방영된 4화까지 내리 본 것입니다. 온통 정신이 과연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으로 1화부터 4화까지 정신없이 보게 되었습니다.
참 놀랍게도 그 드라마를 보면서는 다른 생각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오늘 새벽예배를 인도해야하니깐 설교준비를 해야하는데요. 그것마져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온통 정신이 그 드라마의 내용이 어떻게 끝날지에 관한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가득찼습니다. 그로 인해서 늦은 시간까지 설교를 준비해야했지만, 한편 이것이 설교의 소재가 되기도 했으니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어떤 것에 빠져 있으면 다른 것을 생각지 않게 됩니다. 저는 어쩌면 오늘 성경의 이야기가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깐 오늘 성경 구절을 통해 히브리서의 기록자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다른 것에 마음을 쏟기 보다 예수님께 관심을 집중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마치 제가 드라마에 쏟았던 관심처럼 오롯이 그 일에 향방에 관심을 집중하고 그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것 말입니다.
물론 실제로 이렇게 산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예수님만 생각하고 있으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제가 앞서서 드라마를 보면서 저녁으로 치킨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치킨은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러나 치킨을 먹으면서도 저의 관심이 드라마에 쏠려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해해 보는 것이 조금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접한 글인데요. 유명한 톨스토이가 쓴 인생독본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수도사가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어떻게 하면 주님께 충실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어디 어디를 가면 나에게 아주 충실한 농부 한 사람이 있는데, 너는 가서 그 농부가 하는 것을 잘 살펴보아라”
수도사는 기대를 품고 농부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먹고 자면서 농부를 살피게 되는데,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성경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서 “주여!”, 부르고,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식사하고 난 후 “주여!” 한번 하고 피곤에 쓰러져 잡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저 그 일을 반복할 뿐입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수도사는 주님께 묻습니다. “배울 것이 없습니다. 무엇을 배우라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조그만 항아리에 물을 가득 담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라. 항아리에 물이 엎질러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수도사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행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 수도사에게 묻습니다. “잘 했다. 그런데 너는 물 항아리를 들고 마을을 도는 동안 나를 몇 번 생각했느냐?”
수도사가 말합니다. “물이 엎질러지지 않게 하느라고 한 번도 주님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것 보아라 너는 그 단순한 한 가지 때문에 나를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농부는 그렇게 바쁘게 농사를 지으면서도 하루에 두 번씩이나 나를 생각하고 부르고 있느니라.”
사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삶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삶을 살아내기 바뻐서 사실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살 때가 더 많습니다. 마치 수도사가 물이 엎어질까 그 일에 집중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의 삶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며 그 일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다시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입니다.
히브리서 3:1(신약 412쪽)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방금 읽은 성경구절은 이야기 합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입니다. 앞서 얘기했듯 그것은 예수를 중심에 두고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관심을 떼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 고전 중에 이런 책이 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사실 이 책은 이 제목이 거의 책의 내용을 다 말해준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것이 신앙인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중요한 의사결정들을 함에 있어서 예수님께 그 자리를 내어드려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때 보다 명확해집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에서는 예수님을 사도와 대제사장으로 소개합니다. 사도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사도 또는 사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중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기도함으로 또 직접 예배함으로 하나님을 직접 만나지만,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대제사장이 필요했습니다. 마치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중개자가 되었던 것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에 백성들 사이에는 대제사장이라는 중재자가 필요했습니다.
특별히 대제사장에게만 부여된 특별한 권한이 있었는데, 그것은 1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속죄예식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연결해주는 중재자였을 뿐만 아니라 죄를 대속하는 통로의 역할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히브리서의 기록자가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그분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를 잇는 중재자의 역할을 해주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시는 역할을 해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고 믿고 있기로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스스로가 해결하지 못합니다. 이는 마치 늪에 빠진 사람이 스스로를 구해내지 못하는 꼴과 같습니다. 도무지 죄의 늪에 빠진 사람은 그곳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탈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이로부터 탈출케 하시고 또는 구원하신 분은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우리의 아주 큰 은인이고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를 깨달은 모든 이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달리보자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지 않는 것은 죄의 문제를 가볍게 여기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 불을 끄는 일보다 급선무가 어디에 있습니까? 죄의 문제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복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죄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의 관심이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 죄의 심각성을 깨닫는 일이 될 것니다. 우리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가 우리 가운데 있음을 알고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함으로 하나님께만 관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살면서 여러 관심사가 우리를 뒤흔들지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중심에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바라건데,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에 우리는 우리 죄의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깨닫게 되리라 여겨집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의 삶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