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에 힘씁시다.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사무엘상 3:9-10(구약 412쪽)
설교제목: 듣기에 힘씁시다.
1. 찬송가: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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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봉독: 사무엘상 3:9-10(구약 412쪽)
9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3. 말씀나눔: 듣기에 힘씁시다.
저는 최근에 청년주일을 준비하면서 청년에 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참으로 청년에 관해서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몇몇 대학에서 1000원 밥상이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2015년 4월 전남대에서 시작하여 서울대와 부산대 충남대 등으로 확대되어 현재 41개 대학에서 시행하는 것입니다. 아침식사 또는 저녁식사를 1000원에 제공하는 것인데요. 정부와 학교가 보조하여서 재학생들에게 아침 또는 저녁 혹은 둘 다를 1000원에 제공하는 것입니다.
저는 2003년도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제 기억에 그 때 학교에서 정식을 사먹으려면 2000원인가 2500원인가 그랬습니다. 밖에서 음식을 사먹으면 대략 5000원 이상이 들었는데 절반 가격에 학교에서 밥을 먹을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교의 밥을 싼맛에 먹기는 하지만 보통은 밖에서 밥을 먹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대체로는 밥 한끼 먹는 것이 크게 어려움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이상의 비용을 활동비로 쓰는 이들이 대학생이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저 또한 넉넉한 편은 아니어도 밥 한끼를 밖에서 사먹는 일이 크게 부담이 되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좀 넘게 흐른 후에 1000원 밥상이라는 것이 나타나고 대학관계자에 따르면 꽤 많은 학생들이 줄을 서서 먹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제게는 좀 충격으로 다가 왔습니다. 밥 한끼를 해결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거나 밥 한끼 비용을 아껴야 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반증이었으니 말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내용을 소개하는 책에서는 실제로 대학생들이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가장 쉽게 가장 많이 택하는 방법이 식사비를 줄이는 일로 소개합니다.
농담삼아 요즘에 밥 못 먹는 사람이 어딧냐고 얘기하곤 하지만, 어쩌면 요즘 대학생들은 밥 한 끼 먹기 쉽지 않은 이들이기도하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물론 지역차가 있습니다. 확실히 고물가인 수도권 지역의 대학생들이 경제적인 문제에 더 많이 부딛치고 더 나아가서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이 밥 한끼를 굶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청년들의 이러한 사정이 청년들의 현실에 관계되어 있을줄은 미쳐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기로 내가 경험한 청년기에 관한 생각에 의존하지 말고 실제 오늘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좀더 읽고 듣는 일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청년주일을 준비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를 고민했는데, 이야기를 하기 전에 듣는 일이 더 선행되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한편 성경도 들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도 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시다시피 영적인 눈이 어두워진 대제사장 엘리는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반면에 그에 곁에 있던 어린 사무엘은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엘리가 영적인 귀가 어두워졌음에도 그가 하나님에 음성에 어떻게 반응해야하는지는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는 경청의 자세입니다. 실제로 엘리의 조언은 적확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의 조언대로 말하였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뿐만아니라 성경에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듣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했고 모세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들과 심지어 예수님 마져도 그러했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창조의 과정 속에서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 말씀의 결과물로 만물이 창조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듣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저는 어리석게도 듣는 일에 힘쓰기 보다 말하는 일에 힘써왔음을 고백합니다. 설교를 한다는 이유로 성경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에 더 집중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진정으로 말씀을 듣는 일에 힘쓰기 보다는 내 기준과 잣대에 의해 성경 말씀을 전할 대상을 평가하고 심지어 성경 말씀을 입맛대로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리석은 판단에 부족한 경험을 우겨넣어서 위험한 일을 많이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꾸로 말하면 저는 안다고 생각했기에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듣지 않는 것은 안다는 착각에서 비롯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이번에 청년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봅니다. 저도 분명 청년의 시절을 지나왔지만 제가 경험한 것은 청년의 문제와 고민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먼저 듣는 일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어쩌면 그것은 저의 안다는 착각을 버리고 모른다는 겸손한 태도로 공부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서 좀더 듣기 위해 책을 열심히 읽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듣는 것에 한 모양이 아닐까 합니다.
바라건데, 우리가 오늘 사역의 자리에서 저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말씀에 먼저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전할 대상을 잘 살핌으로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겸손한 자세로 서기를 바라니다. 그와 같은 들음을 통해 우리의 사역이 진정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교우들을 위한 것이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