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세상의 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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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한복음 8:12(신약 158쪽)
설교제목 : 예수님은 세상의 빛입니다.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어제 새벽에 이어 계속해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7번 소개합니다.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라고 하는데, 이는 ‘나는 무엇무엇이다’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어제 나눈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그리고 오늘 나눌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먼저 빛에 관해 생각해보면 그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빛은 어둠을 밝힙니다. 이는 빛을 통해 어둠이 물러감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어둠을 물리치는 분이십니다. 성경에서 어둠은 악의 세력(엡 6:12; 골 1:13), 영적인 무지함(고후 4:6; 엡 5:8; 요일 2:8-11), 타락함(롬 13:12) 등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어둠으로 상징되는 문제와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입니다.
또 빛은 분별하게 합니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도 빛이 비춰져 주변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 나온 분들이 누군지를 알 수 있고 어떤 색깔의 옷을 입고 있으며 어떤 표정과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빛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곁에 있지만 서로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상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앞서 성경에서 어둠은 ‘영적인 무지’를 상징한다고도 했습니다. 우리가 눈은 멀쩡히 뜨고 있지만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어두우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온전히 바라보고 분별하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를 깨닫게 하시는 분입니다. 저는 이것이 이렇게 이해되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8장에서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하시기 전에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데려와서 예수님께 판결을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자가 돌로치라’고 말입니다. 이에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그 자리를 떠납니다. 그로 인해 한 여인은 구원받았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에게 죄가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시며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다시 죄를 짓지 말라’고 당부하셨기 때문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줄 알고 삽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말씀처럼 상대의 티 곧 작은 흠결은 보면서 자신의 들보 곧 큰 흠결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이를 깨닫게 했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더 어리석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또 어떤 이는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달리 보자면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분별치 못하여 어리석은 잘못을 범하게 되며 나아가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한편 저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이 또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믿고 있기로 예수님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없애버리고 새로 시작하면 될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한다면, 죄 지은 우리를 모두 없애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복잡하게 우리를 고치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거나 고통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마치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이 망가지면 새로 사는 것이 간편하듯이 예수님도 망가진 우리를 버리고 새로운 인간을 또는 다른 존재를 만들어버리는 것이 간편한 일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망가진 우리를 버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쳐쓰기로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신 사건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행하신 놀라운 일입니다.
요사이 저는 피라미드 게임이라는 한국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한 교실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실제이야기는 아니지만 학교의 문제를 반영한 이야기입니다. 그곳에서는 피라미드 게임이라는 것을 합니다. 인기투표 비슷하게 투표를 해서 표를 많이 받은 사람과 적게 받은 사람 순으로 등급을 나눕니다. 그리고 표를 하나도 받지 못한 사람을 게임의 규칙에 따라 괴롭히는 게임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투표를 통해 왕따를 만들고 괴롭히는 게임입니다.
처음엔 이런 드라마 자체도 이상했지만, 대체 왜 그런 게임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지가 더 이상했습니다. 게임을 하지 않는다면, 사실 애초에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이 만들어지지도 않을텐데 모두가 괴롭힘 당하는 학생이 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면서도 게임에 참여합니다. 그 반에 전학을 온 학생은 이 게임을 없애려고 합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게임이고 이것을 하는 이유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만만치 않습니다. 오래도록 이 게임을 통해 유지되어온 계급은 쉽게 붕괴할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전학생의 말을 귀담아 듣거나 신경쓸 학생들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거기에 괜히 가담했다가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여전히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던 게임에서 살아남아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런 드라마의 구성이 참 설득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냥 게임을 안해버리면 문제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게임을 하면서 문제를 풀려고 하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거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의 주인공은 언제나 그렇듯 역경을 뚫고 게임을 없애겠다는 계획을 차츰차츰 현실로 만들어갑니다. 과연 그의 계획이 성공할지 어떨지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깨닫습니다. 문제를 고치고 바로잡으려면 그 문제 상황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드라마 속 주인공이 게임을 없애기 위해 게임을 하듯이 개선하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일을 위해서는 그 일에 참여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드라마 속에서도 그런 장면이 묘사가 되지만, 문제를 인식한 외부 사람들이 그것을 바꾸려고 시도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게임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게임을 통해 어려움을 겪으면서 계속 게임 안에 머물려 있으려 합니다.
저는 이러한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그분이 왜 이 땅에 오셨을까요? 그분은 이 땅에 오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냥 문제상황을 버리고 새롭게 만들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환대를 받기는커녕 멸시를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와 같은 고초를 겪으신 이유를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문제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고치고자 하신 까닭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스스로를 희생하셔서 자신을 이 말도 안 되는 게임과 같은 세상 속에 참여하셨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의 문제를 몸소 겪으시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증해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성경구절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입니다. 빛이 빛다운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둠이 있는 곳에서 비취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빛이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어둠에게 다가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이 죄악되고 어두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참으로 세상의 빛이십니다. 온 세상을 비추셔서 구원하시는 빛이십니다.
바라건데, 오늘 우리가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친히 고초 당하시면서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로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음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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