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성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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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님이 필요한가?
나는 예수님이 필요한가?
오늘은 종려주일로 함께 읽은 요한복음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날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까? 그분이 필요하다면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에게 예수라는 분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우리 중에는 이 질문들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 입니다. 만약 여러분 다수가 생각해본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바로 오늘 그리고 내일부터 시작될 고난주간 동안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서 제가 여러분에게 던진 질문들을 고민해 보기를 간절히 제발 부탁합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종교입니다. 우리가 기독교라는 울타리 속에 있는 교회라는 곳에 모여서 매주 예배를 드리고 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과 내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그리고 예수님이라는 분이 나의 말과 행동과 생각에 1%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성경을 통하여 예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과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이 내안에서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인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다
오늘 말씀 속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많은 유대인들은 자신의 옷을 벗어 길을 만들고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환대했습니다.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로마의 핍박과 압제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줄 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의 말씀대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승리를 의미하는 종려나무의 가지를 흔들었고, 호산나-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환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존귀한 위치를 포기하시고 이 땅 가운데 오신 이유는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그런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세상에 가득한 죄와 그로 인한 대가인 죽음을 극복하심으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시키시는 것이 목적이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부워주신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 형상의 회복, 영원하신 창조주와 함께 우리 또한 영원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넘치는 기쁨과 만족으로 살아가는 삶!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과 그 사랑 안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우리에게 주셨던 것이며,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해 세상 안에 들어온 죄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다시 우리에게 주시고자 십자가에 죽게 될 것을 아시면서도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게 계십니다. 많은 유대인이 욕심 가득한 소망을 품고 예수님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음에도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도 입성하셨다!
예수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도 입성하셨다!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환대를 들으며 예루살렘 입성하셨던 예수님은 억울한 누명을 쓰시고 자신이 메달릴 그 잔혹한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러 나오셨습니다. 영웅과 같이 환대를 받으며 성으로 들어가셨던 예수님이 죄인의 신분으로 성 밖으로 끌려 나오신 것입니다.
이는 정말 비참하고 잔인한 사건입니다. 죄인으로 누명을 쓰시고, 십자가를 지고 조롱과 멸시 가운데 끌려나오시는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출성된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패한 영웅의 사건 따위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또 다른 입성을 위한 거룩한 희생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혈육인 유대인을 넘어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우리에게 입성하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오시기 위해 그 십자가의 죽음은 반드시 필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담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구약 시대 제사장들이 소와 양에게 자신의 죄를 전가하고 그것을 제사법에 따라 도축하고 그 법에 따라 피를 뿌리고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과 같습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은 소와 양을 통해서 일시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없고 흠이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로 인해,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 사이를 가로 막던 죄의 벽이 무너졌고 피조물이 하나님께 나아갈 믿음의 길이 생겨났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일5:1
1 누구든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입니다.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에게서 나신 분도 사랑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라고 칭함받는 사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즉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 받은 하나님의 독생자임을 믿는 사람이라는 의미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보이신 믿음의 길입니다. 이 믿음의 길만이 우리에게 참된 회복을 말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됨으로 얻게되는 행복은 이것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와 교회를 다니며 예배를 드린다고 말하는 나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는 일은 정말 중요한 사건입니다.
고난주간을 넘어 부활절을 맞는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고난주간을 넘어 부활절을 맞는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대하여 성경은 말합니다. 히11:6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어 질 때, 우리를 보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가 처음 한말은 아니지만 정말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허다한 종교생활에 함몰되어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더 이상 가슴을 뛰게 만드는 감동이 아닙니다. 여러분 앞에 저도 그랬습니다. 내가 예수님께 관심이 없다는 것을 모를 때, 그냥 교회와서 노는 것이 좋았습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면 천국은 가겠지 생각했습니다. 노래를 나름 잘 부르니까 찬양 열심히 하면서 칭찬 받으면 그것이 교회가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교회는 다녔지만 십자가 지신 예수님는 나와 아무 관계 없었고, 앞서 말한 허다한 종교 생활들이 나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몇년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면 살수록 내 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공허함 뿐이었습니다. 그 공허함은 지독한 외로움과 가식과 실패감, 낮은 자존감과 함께 열심히 종교생활을 하는 나를 괴롭혔습니다. 복음을 말할 수 있었지만, 내가 말하는 복음은 주입식 교육과 같은 것이었기에 나의 말과 행동과 생각을 바꿀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진지하게 예수님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10년이 넘는 종교생활을 부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비로소 예수님 안에서 믿음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의 공허함은 없었습니다.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은 떠나 상황에 짓눌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실패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기 시작했고, 가식이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믿음과 책임 안에서 자유라는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앞에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예수로 인하여 성령의 일하심을 지켜보는 사람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놀라운 ‘관계’로 역사하시는 삼위의 하나님께서 저 또한 그 관계 가운데 초대해주셨습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을 경험했기에 이것이 가장 좋다고 여러분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도 없다고 한다면 성경의 말씀과 같이 저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이며, 또한 미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경험하는 사람이 이를 어찌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 안에서 삶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은 없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에게 처음의 질문을 다시 던지며 예배를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그리스도, “나를 구원하실 혹은 구원하신 분” 맞습니까?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왜 필요합니까?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내일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 제가 여러분에게 던진 이 질문을 갖고 치열하게 씨름하다가 나를 변화시키는 그 믿음에 직면하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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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 주 31일 주일예배는 2층 본당에서 연합예배로 드립니다. 학생부가 항상 앉던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혹시 모르니 자리는 카톡으로 안내하겠습니다.
2. 6여선교회 권사님들께서 학생부 예배당 및 3층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셔서 이번 달은 청소를 하지 않겠습니다. 권사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품으셨으면 좋겠구요 또한 저는 우리 학생부가 함께 생활하는 교회의 모든 장소를 깨끗하게 사용했으면 합니다. 내 이웃을 위해 내가 있던 자리를 깨끗하게 사용하는 것도 이웃 사랑의 방편입니다.
3. 오늘 분반 모임은 없고 고난주간을 맞아 특별활동을 하겠습니다. 특별활동은 곽영신 부장선생님께서 인도해 주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