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중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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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문)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의해 이 세상에서 그리고 영원히 형벌을 받아 마땅한 우리가 어떻게 이 형벌을 벗어나 다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까?
제12문)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의해 이 세상에서 그리고 영원히 형벌을 받아 마땅한 우리가 어떻게 이 형벌을 벗어나 다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까?
답) 하나님은 그의 의가 만족되기를 바라시므로, 우리는 이 완전한 만족이 우리 자신이나 타자에 의해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답) 하나님은 그의 의가 만족되기를 바라시므로, 우리는 이 완전한 만족이 우리 자신이나 타자에 의해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제13문)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이 만족을 이룰 수 있습니까?
제13문)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이 만족을 이룰 수 있습니까?
답)절대 없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날마다 죄를 더할 뿐입니다.
답)절대 없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날마다 죄를 더할 뿐입니다.
제14문)그러면 단지 피조물로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자가 있습니까?
제14문)그러면 단지 피조물로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자가 있습니까?
답) 없습니다. 우선 하나님은 사람이 범한 죄 때문에 다른 피조물을 벌하려 하지 않으십니다. 게다가 단지 피조물로서 다른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짐을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답) 없습니다. 우선 하나님은 사람이 범한 죄 때문에 다른 피조물을 벌하려 하지 않으십니다. 게다가 단지 피조물로서 다른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짐을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제15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중보자 혹은 구원자를 찾아야 합니까?
제15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중보자 혹은 구원자를 찾아야 합니까?
답) 참 사람이면서, 완벽하게 의롭고, 모든 피조물보다 더 강력하고, 또한 참 하나님이신 분을 찾아야 합니다.
답) 참 사람이면서, 완벽하게 의롭고, 모든 피조물보다 더 강력하고, 또한 참 하나님이신 분을 찾아야 합니다.
해설
해설
이제 1부를 마치고 2부로 넘어갑니다.
1부에서 사람의 “죄와 비참”을 다뤘습니다. 죄가 얼마나 인간을 비참에 처하게 하였는지 그리고 그 비참에서 우리를 구원 받은 우리가 얼마나 존귀하고 또한 우리의 구원이 값진 것인지 살펴 보았습니다.
제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우리의 구속에 대해 살펴 봅니다. 하나님의 형벌을 피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살펴 볼 것입니다.
1.하나님의 의가 만족되는 방법
1.하나님의 의가 만족되는 방법
죄를 지으면, 그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형법에서 죄인의 신체를 일정 기간 구속하였다가 형량을 다 채우면 풀어주는 방식을 취합니다. 왜 하필이면 범죄자를 감옥에 가두고 죄값을 치루게 할까요? 감옥에 죄인을 가둔다는 개념은 가장 평등하고 공평한 징벌을 “시간” 이라고 보기 때문 입니다. 만약에 구금하는 대신 벌금을 내는 것을 죄값으로 정한다면 부자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죄값을 치르지 못하여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유력한 자든 약한 자든 시간은 동등하게 흐리기에 시간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를 지으면 그에 합당한 댓가를 치뤄야 죄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 과에서 배운 인간의 원죄는 하나님과의 첫번째 언약파기가 그 원인 입니다. 첫 아담과 하나님과의 언약의 파기 입니다. 새로운 두번재 언약을 맺기 위해서는 첫번째 언약파기에 대한 죄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가 만족되는 방법 입니다.
2.사람들 스스로 하나님의 의를 만족 시킬 수 있는가?
2.사람들 스스로 하나님의 의를 만족 시킬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의를 만족 시킨다는 것은 죄의 댓가를 치루는 것 즉, 죄의 해결 방법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가 입니다.
앞에서도 죄에 대해 알아봤지만 더 자세하게 죄는 무엇일까?
죄란 무엇인가?
2부로 넘어가기 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죄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 입니다.
뉴시티 교리문답 해설: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세워 줄 하나님의 진리
문 16: 죄는 무엇입니까? 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면서 그분을 거스르고, 하나님이 율법에서 요구하시는 대로 살지도, 행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죄는 본질적으로 관계다. 잘못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단호하게 하나님에게서 독립한 상태로 그릇 존재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은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죄성을 해결하려는 데 있다.
-뉴시티 교리문답 해설: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세워 줄 하나님의 진리 (오스왈드 챔버스)
뉴시티 교리문답 해설: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세워 줄 하나님의 진리 (존 린 > 해설 > 문 16: 죄는 무엇입니까?)
죄를 이해할 때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죄가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행하지 않으며, 그분이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의도하신 존재로 온전해지지 못한다. 죄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것이다 -존 린-
죄는 “관계이며, 불순종이며 하나님 없는 존재로 사는 것.” 그리고 이 모든 문제는 인간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비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사람은 인생을 사는 날 동안 죄를 더해갈 뿐입니다.
우리 속담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고,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그 누구도 완전하게 깨끗한 사람은 없으며 모든 사람이 적당히 오염된 채 사는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맨눈에 깨끗해 보이는 생수도 현미경으로 보면 별에 별것이 다 보일 것입니다.
아무리 선한 사람도 사람들 눈에는 선하지 율법 앞에 하나님의 의 앞에 그 누구도 선한 이는 없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죄를 없앨 수 없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를 만족 시킬 인간은 없습니다.
3.피조물이 다른 이들의 죄값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3.피조물이 다른 이들의 죄값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제12문)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의해 이 세상에서 그리고 영원히 형벌을 받아 마땅한 우리가 어떻게 이 형벌을 벗어나 다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까?
제12문)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의해 이 세상에서 그리고 영원히 형벌을 받아 마땅한 우리가 어떻게 이 형벌을 벗어나 다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까?
답) 하나님은 그의 의가 만족되기를 바라시므로, 우리는 이 완전한 만족이 우리 자신이나 타자에 의해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답) 하나님은 그의 의가 만족되기를 바라시므로, 우리는 이 완전한 만족이 우리 자신이나 타자에 의해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12문의 답에서 첫번째인 스스로 죄값을 치룰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치룰 수는 있는가?
14문에서 타자 중에서도 하나님을 만족 시킬 존재는 피조물 중에는 존재 하지 않는다고 답합니다.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신 포도를 먹은 사람은 아들인데, 아버지가 대신 이가 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의 형벌은 당사자가 받아야 합니다. 신포도를 아들이 먹었으면 당연히 아들의 이가 신것처럼,
만약에 자식의 앞날이 창장하다고 하여 부모가 자식의 살인죄를 덮어쓰고 대신 감옥에 간다고 한다면 그 어떤 판사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예전에 월북자나 공산주의 사상범의 친족에게 공무원직을 할 수 없게 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자기 행위 책임” 이라는 형법의 원칙에 어긋나는 개인의 기본권 침해인 위헌 이었습니다.
그래서 1980년에 연좌제 폐지 법안이 통과 되었습니다.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제13조 제 3항)
남미에는 고난주간을 전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실제로 체험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실제로 십자가를 지고 팔에 못을 밖는 등의 고행을 자처 합니다. 아무리 그들이 인류의 죄를 생각하며 십자가를 지고 못을 스스로 박는다고 하여도 그 고행은 개인 신앙의 유익이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는데는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선행을 한다 하여도 동시에 큰 죄를 짓기 때문에 종합적으로는 선이 아니라, 결국은 하나님의 의에 턱없이 모자란 그 순결함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오염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 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
누구나 그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죄 때문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 스스로도 다른 어떤 타인의 희생으로도 나의 죄는 해결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만족할 수 없습니다.
4.어떤 중보자와 구원자를 찾아야 하는가?
4.어떤 중보자와 구원자를 찾아야 하는가?
인간은 죄를 해결하기는 커녕, 매일 쌓이는 죄도 해결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현실 입니다.
해결은 커녕 더 쌓으며 살아갑니다.
나 스스로도 안되고 웬만한 타인으로도 안된다면 이 죄의 해결, 의의 만족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우리 스스로는 절대 안되니, 그 타인이 자격을 갖추면 됩니다.
그 자격은 죄가 없고 죄가 쌓이지 않는 존재 이면 됩니다. 그리고 죄를 이기는 권세를 가지면 됩니다.
사망을 이길 권세가 있는 분이면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문제, 의의 만족의 문제를 해결 하실 수 있습니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그런 분은 오직 하나님 이십니다. 그런데, 또 한분계신데, 성자 예수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당에 오셔야 했던 이유 입니다.
두번째 아담이시고 은혜의 언약의 중보자 이신 예수는 어떤 분이신가? 성자론
36문. 은혜 언약의 중보자는 누구입니까?
답. 은혜 언약의 유일한 중보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1)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시며, 성부 하나님과 본질이 같고 동등하십니다.
2) 그리스도는 때가 찼을 때 사람이 되셔서3) 그때부터 계속해서 영원토록, 한 위(person)에 구별된 두 본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십니다.-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노트 (36문)-
뉴시티 교리문답 해설: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세워 줄 하나님의 진리 마이카 에드먼드슨 > 해설 > 문 19: 형벌을 면하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방법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아무 대가 없이 자신의 공의가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키셨다고 우리에게 말해 준다. 이사야 53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불의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종(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삶을 대속 제물로 삼으셨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감당해야 했던 삶을 사셨고, 그래서 우리 대신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공의를 충족시키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시키는 일에 양가감정을 가지고 계시다고 성경은 증언 합니다. 슬픔을 느끼는 동시에 우리 인간으로는 이해 할 수없는 감정인 기쁨이다. 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나면, 자신의 아들의 상함과 질고 당함을 보고 누구도 하나님처럼 반응 할 수 없기 때문 이다.
이사야의 말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여호와께서 이 맞바꿈을 “기뻐하신다”는 표현일 것이다. 실제로 여호와는 자신의 죄 없는 아들이 넘겨져 조롱당하고 상함 받고 십자가에 달리는 것을 기뻐하셨다. 하나님이 이것을 왜 기뻐하셨는지 깨닫지 못한다면 이 진리를 제대로 헤아릴 수 없다.
뉴시티 교리문답 해설: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세워 줄 하나님의 진리 (마이카 에드먼드슨 > 해설 > 문 19: 형벌을 면하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방법이 있습니까?)
아들은 하나님 자신 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그 비참과 고통 속에 살게 내버려 두느니 자기의 분신이자 자기 자신 그 자체인 아들을 희생 시키는 와중에도 자기 자신을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 이 일로 구원 받을 우리를 보며 기뻐 하셨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이 아가페를 이해한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요?
이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을 이렇게 사랑 하십니다.
예수님은 완벽하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성령께서도 같은 마음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이런 사랑을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나요?
그런데도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사, 스스로의 몸을 내어 던지 그 사랑을 우리는 받았습니다.
건방지게 보답한다 말하지도 못합니다.
내가 뭐라고 그 크고 깊은 사랑을 갚을 수 있을까요?
오직 감사 뿐 입니다.
가슴 벅찬 경배 뿐입니다.
이 사랑으로 오늘도 잠드고 일어나시기를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