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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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 한경직 목사님께서 돌아가실 때,
많은 목사님들이 문안하기 위해서 찾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때에… 한경직 목사님께서 많은 후배 목사님들에게
유언으로 남기신 말씀이 “예수 잘 믿으세요” 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당시에 한국 교계를 이끌어가던 목사님들에게 한경직 목사님께서 왜 예수 잘 믿으세요!!! 라고 유언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만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요, 수많은 유혹들이 있더라는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는 우리 비전의 가족들 모두 예수님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간절히 바라고 원하셨던 그 천국의 잔치의 기쁨을 다 받아누리는 귀하고 복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인사: 예수님 잘 믿으세요.
배경
배경
우리가 지난주 나누었던 열처녀 비유,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오늘의 달란트 비유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하신 비유들 중의 일부입니다.
이 비유들은 24:43절부터 도둑과 집주인, 선한종과 악한 종, 열처녀 비유, 달란트비유,
그리고, 미지막 양과 염소의 비유까지 5가지의 비유가 쭉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 3가지의 비유의 핵심은 지난주 함께 나눈 것처럼 바로 깨어 준비하라는 것이예요.
그리고, 오늘 본문인 이 달란트 비유에서는 준비하는 모습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계십니다.
이 달란트 비유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어느 주인이 먼 타국을 떠날 때 세 명의 종들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이제 주인이 떠난 후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은 즉시 가서 장사를 해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었는데…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주인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결산을 하게 되었는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 주인에게 고하자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라는 주인의 칭찬을 들었지만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춘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무서운 책망을 듣고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고 말았다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이야기지만, 만약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분이 계신다면…
3번째 종에게 더 동정심을 가질수도 있을꺼 같습니다.
그 이유는요, 우선 우리는 노예제도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죠.
그래서, 노동자가 원할 경우… 노동을 철회할수가 있어요.
이런 요즘의 관점에서 이 말씀을 볼 때, 한 달란트 받은 종을 비난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비유를 들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관계 설정을 먼저 해야 합니다.
관계정리
관계정리
지금 이 비유는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예요.
이 관계 정리는 너무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요,
성경 전체에서 인간은 죄의 노예이거나, 그리스도의 노예로 정의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도요, 둘중 하나 입니다.
죄의 노예 거나, 그리스도의 노예 거나…
바울도 롬6장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그래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예요.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종은 행복한 종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6장)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비록 종의 신분이지만, 구하면, 기쁨과 즐거움을 허락해 주신다는거예요.
오늘 말씀에서도 주님의 종으로 주인의 즐거움에 함께 참여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종은 종이지만, 이 주인과 종의 관계가 억지로 주어지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예요.
그럼에도 착각하면 안되는 것은 우리와 그리스도의 관계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라는 것이예요.
그래서, 오늘 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주인되신 우리 하나님께서 종된 우리에게 15절 말씀을 보니까요,
각각 그 재능대로… 각자에게 맞는 달란트를 주셨다는 것이예요.
달란트의 의미
달란트의 의미
여기서 달란트는요, 당시의 화폐의 단위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만 해도요, 현재 가치로 따지면, 약 10억 정도 되는 돈이예요.
엄청난 돈의 가치예요. 그래서, 이렇게 설교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10억도 큰데… 50억을 왜 부러워하냐? 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시는데…
여러분 만약에 10억 가지고 계시면, 50억 가지고 있는 사람 안 부러워하실껀가요?
록펠러. 인터뷰. “little more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것이 인간이예요.
그리고, 가지면 가질수록… 주님의 뜻과는 반대로 가게 되는 것도 인간이예요.
We have very little, so we have nothing to be preoccupied with. The more you have, the more you are occupied, the less you give. But the less you have, the more free you are.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
우리는 가진 것이 거의 없으므로 집착할 것이 없습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더 많은 것을 차지하게 되고, 더 적게 베풀게 됩니다.
하지만 가진 것이 적을수록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달란트의 의미는 재물의 크기가 아니라,
각자의 재능에 맞게… 감당할수 있는 만큼 주인이 허락해 주셨다는거예요.
어떤 미국 사람이 복권에 미쳤습니다.
그래서 돈이 있을 때마다 복권을 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사고 또 샀어도 복권은 당첨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사람은 복권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남의 돈까지 빌려
복권을 샀고, 그로 인해 결국 많은 빚을 진 사람이 되어
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동냥으로 모은 돈을 다 털어 복권을 한 장 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복권이 1등에 당첨되었습니다.
상금은 자그마치 2억 달러, 요즘 환율로 계산하면
우리 돈으로 약 2650억입니다.
복권회사에서는 그 큰 상금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지입니다.
그래서 혹시 그 거지가 1등으로 당첨되었다는 소식에 쇼크를 받아
쓰러지지 않을까 고심하다가 그 거지가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알고,
그 거지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을 통해 그 상금을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 거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충격을 줄이기 위해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이번에도 복권을 샀습니까?”
“예. 샀습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1등에 당첨된다면, 그 상금이 2억 달러라던데
그 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 같은 사람에게 그런 행운이 오겠습니까?”
“그래도 이야기나 한번 들어봅시다.”
목사님의 재촉에 그 거지가 대답을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상금 2억 달러 중 절반을 뚝 잘라 1억 달러는
목사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하는데 목사님이 갑자기 쓰러져 소천하셨다고 합니다.
목사님이라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받게 되면 이렇게 잘못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감당할수 있는 능력과 재능을 주신다는거예요.
그래서, 시험도 감당할수 있는 시험만 주시잖아요.
왜냐면, 우리를 아시기 때문에… 우리의 주인되시기 때문에…
그래서, 자꾸 남과 비교하려고 하지 마세요. 비교할수록 점점 삶이 피패해집니다.
욕심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나로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넘보는 것이 욕심이예요.
우리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꾸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을 평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요, 세상의 교육이나 문화의 특징은 비교에 있습니다.
로버트 글레이저 박사
피츠버그 대학에 세계적인 학습연구 개발센터 (LRDC)를 창설한 로버트 글레이저 (Robert Glaser) 박사는
1960년대 초, 미국 교육계에 절대 평가 방법이라는 획기적인 교육측정 평가법을 도입시켰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의 학교들에선 인간을 평가할 때 그 집단에 속해있는 다른 이들과 비교하거나,
그 집단의 평균치(norm)를 만들어 그것과 비교하는 것이 평가방법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이것을 상대적 평가(relativistic evaluation)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아이들의 평균 점수를 내고 학급 석차, 학년 석차를 매기는 것이 바로 여기서 비롯됐던 것입니다.
그러나 글레이저 박사는 모든 인간에겐 각자 주어진 기본 능력의 분야와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정말 정직하게 사람을 평가하려면 각자 주어진 기본 능력을 기준으로 해서 그것을 오버해서 성취하면 성공한 것으로 여겨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계적 석학 글레이저 박사의 이 절대평가 원리는 놀랍게도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달란트의 비유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 비유에서 주인은 세 명의 종들을 평가할 때 서로를 비교해서 상대평가 하지 않고 각각에게 주어진 5 달란트, 2 달란트, 한 달란트를 기준으로 해서
그 기준에 얼마나 도달하는 성취를 했느냐에 따른 절대평가를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달란트를 묻어둔 한 종 외에 두 종은 각각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다른 장사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것이 무슨 장사이든 상관 않고 주어진 자본을 극대화 한 것을 칭찬하였습니다.
달란트라는 말은 히브리어론 “재물”이지만, 영어로는 “talent" 즉 ”재능“이라는 뜻입니다.
공평하게 주셨다는거예요.
“나”라는 찬양을 작사한 송명희 시인의 고백을 보세요.
~~
~~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의심하지 않고, 따를수 있는거예요.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마세요.
적극적 기다림
적극적 기다림
이제 말씀을 보니까요, 그 재능대로 각각 달란트를 맡기고, 주인은 떠납니다.
그리고, 19절에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결산을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사람이 배나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5 달란트를 더 남겼을까요?
16절 말씀보니까요, 달란트를 받음과 동시에 바로 나가서 장사를 했어요.
그는 달란트를 받음과 동시에 즉시로 도전에 나섰습니다.
지금으로 이야기 하면, 주식에 투자를 하고요, 기업에도 투자하고요,
잘 팔릴만한 물건을 가서 사고… 또 팔았다는거예요. 사람들과 거래를 했습니다.
회사도 설립하고, 설립된 회사에 자본을 투자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보니까요, 5달란트가 10달란트가 되었어요.
그리고, 후에 ~~~ 주인이 돌아오자 그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5장)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보소서, 내가 5달란트를 넘겼습니다. 하고 주인에게 다시 돌려줍니다. 모든 것을 돌려주었습니다.
2달란트 받은 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종의 공통점은요, 주인의 명령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 즉시 순종했다는 것이예요.
오늘 본문의 ‘바로’ 라는 단어를 에우데오스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가요, 사도행전 16장에 등장을 합니다.
바울이 마게도냐로 가기를 썻어요.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6장)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6장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그 즉시로 사모드라게 로 직행…
이처럼, 우리가 주님의 종된 인생을 산다면요, 이 즉시의 순종이 필요합니다.
말씀이 떨어지는 순간 바로… 주인되신 주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예요.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은
고민하지 않고 믿음을 행동으로 보인 것입니다.
행동으로 잘 옮기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고민하지 않고,
굉장히 심플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행동하는 신앙의 증거는 ‘바로 가서’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적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이라도 주님이 오라고 하시면 모든 것을 두고 가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주어진 기회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이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가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반응이 가능한가요?
주인되신 주님의 관심에 함께 할 때, 가능한거예요.
우리교회 안에도 참 많은 성도님들이 계세요. 그런데, 이 성도님들 중에 우리교회 성도님이 계시구요, 그냥 성도님이 계세요.
그것을 구분할수 있는 방법은요, 언어를 들어보면 알아요.
우리 남서울비전교회 성도님들은 남서울비전교회를 뭐라고 이야기하나요? 우리 교회.
그런데, 남서울비전교회 성도님이 아니면요, 이 교회는…
목사님을 부를때도 마찬가지죠. 우리 목사님. 혹은 최 목사님.
최 목사님. 대한민국에 최 목사가 3000명이라고 합니다.
이런 차이는 소속감 때문에 함께 아파하고, 함께 눈물흘리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도하는거에요.
조금 부족해도 품어주고, 서로 보듬어 주고, 서로 격려하면서, 함께 가는거예요.
그렇게 작은 천국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 것이 교회예요.
그런데, 함께 하지 않으면, 상관 없어요. 이교회 싫으면, 저교회 가면되고, 저교회 싫으면, 다른 교회 가면 되죠.
교회가 여기만 있나?
교회에 빗대서 말했지만, 우리의 신앙의 모습도 마찬가지라는거예요.
노예가 주인의 자산을 늘리는 데 관심이 없다면… 그는 그 주인의 노예가 아닌거예요.
"내 인생이잖아요. 내가 원하는 대로 할 거예요" 아니요, 우리는 노예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계속 반복되는 주제가 무엇인가요? 우리들은요, 대가를 치르고 살았다는거예요.
우리는요, 그리스도 피값으로 사는거예요.
우리는 죄의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었어요. 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이 두 가지 선택지만 있다는 것이예요.
그리고, 그곳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의 말씀으로… 더 적나라게는요,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께 속한 자라고 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N. T. 라이트라는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His overall point is to make them see that Christian freedom is not freedom to do what you like, but freedom from all the things that stop you being the person God really wants you to be, which is freedom for the service of God and the gospel.
기독교인의 자유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로부터의 자유, 즉 하나님과 복음을 섬기기 위한 자유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예요.
그래서, 그렇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 주인의 즐거움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예요.
그런데, 1달란트 받은 종은 어떤가요? 이런 즉시의 순종이 아니라, 주인의 말에 불순종합니다.
그 이유는요, 주인을 완전히 오해했기 때문에 그래요. 24절 말씀 보겠습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5장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이 말의 뜻은요, “주인님은 씨를 뿌리지 않은 곳에서 수확하고
뿌리지 않은 곳에서 거두는 사람인 줄 내가 알고 있습니다.” 라는 뜻이예요.
지금 1달란트 받은 종이은요, 주인을 자신이 판단합니다. 자신이 생각합니다.
주인에게 말하는 것은 주인님은 착취하고 움켜쥐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이용하며 가혹한 판단을 내리십니다.
그는 뿌리지 않은 곳에서 거두려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예요.
그러자!!! 그에 대한 대답이 26절 말씀입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5장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주인의 대답은 뭔가요?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무엇인가 라도 해서 남겨야 되지 않느냐? 라는 것이예요.
믿고 맡겼는데… 이 종은 핑계만 대고 있더라는거예요.
그러면서,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고 책망하십니다.
이 악하고 할때, 단어가 포네로스 라는 단어로 쓰이는데요,
이 악하고 라는 단어가 24장에도 나옵니다.
이24장 48절에 악한 종이라고 할때 악하다의 단어는 κακός(카코스) 라는 단어가 사용되는데…
이 뜻은 악한 행동을 표현할때 쓰는 말이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의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할때,
πονηρός (포네로스) 라는 단어는요, 모든 악한 요소들이 다 포함되어 있어요.
부도덕함, 부정적인 반응, 악한 행동, 욕설, 평판, 불신,
행동뿐만이 아니라과 마음의 악함과 관계의 악함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거예요.
훨씬더 광범위한 악함을 이야기 합니다.
무슨 뜻인가요?
지금 이 한달란트 받은 종의 모습은
완전히 주종의 관계를 부정하고, 본인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서,
사회통념상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불순종을 행했다는 것을 의미하는거예요.
그런데, 이 종의 모습은요, 그럼에도 떳떳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완전히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결국 책망을 받고, 내쫓김을 당하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적용.
사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이런 오해를 할때가 있습니다.
D.A칼슨이라는 목사님께서 미국의 대학들을 돌아다니면, 강연을 할때, 예전에는 한번도 받지 못했던 질문들을 요즘에 종종 받는다고 합니다.
그 질문은 “왜 성경은 항상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춰야 하나요?"
만약에 우리 중 한 사람이 항상 자신을 홍보하고 모든 애정의 중심이 되고 모든 숭배의 중심이 되는 친구들과 그런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자기애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그에게 집중하고 그의 자산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요구할 때,
그것은 하나님을 나르시시즘으로 만드는거 아닌가요? 라는 질문을 하더라는 것이예요.
거기에 대해서 이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모두 사실이이고, 어찌보면 그 이상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요점은, 우리는 그분에 의해 그분의 형상대로, 그분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중심이 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것이예요.
우리가 그분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분을 예배하는 것은 이것이 우리의 유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은 모두 이런 하나님의 성품에 촛점이 마춰져 있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을 오해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가 다르기 때문에…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이해하는 하나님에 따라서…
마무리.
마무리.
https://youtu.be/ErjJ_uhTFaI?si=hKgORGnHDMhyGgBj 28:00
하나님께서 절대 하찮은 달란트 주지 않으십니다.
세상의 말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 믿음으로 적극적 기다림으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처지가 어떻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충성’은 ‘최선’이란 말과 같은 뜻입니다.
여기서 ‘맡은 자’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라 관리인입니다.
그러니까 청지기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이런 평가 기준을 깨닫게 되면 비교당하는 부담에서 해방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우월감도 열등감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게 되면 평생을 엉뚱하고 잘못된 비교에 의해서
콤플렉스에 묶여 살아요
나는 왜 저 친구처럼 저렇게 못 살지
심지어 목회자들도 그런 마음을 갖고 살 때가 있어요.
왜 나는 왜 저 목사님처럼 저렇게 좀 큰 목회 못 하나
이런 콤플렉스에 붙들려 있어요 자유 하지 못한 거죠.
계속 비교당하고 비교하고 스스로 자기를 감옥에 집어넣고 사는 거죠
하나님의 평가 기준을 알게 되면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달란트를 주시고 그 달란트를 받은 우리는 평가의 날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잘 활용해서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종들처럼
잘했다 칭찬받는 충성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