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순종을 원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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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순종에는 실패했던 사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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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본문은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신앙에서는 패했던 사울 왕의 이야기에 대해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보내 사울에게 이스라엘의 대적인 아말렉과 그에게 속한 짐승들을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사울은 말씀을 따라 아말렉으로 진격하게 되고, 아말렉 왕을 제외한 모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속한 가축들을 죽이고, 그것들 중에 좋은 것들은 살려서 전리품으로 가져옵니다. 전쟁에 승리한 사울, 기념비까지 세우며 그 승리를 자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울의 이 행동을 보시며, 그를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십니다. 사울이 하나님에게 돌이켜서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바로 “온전한 순종”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온전한 순종이 아니고, 부분적인 순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부분적인 순종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을 다르셨습니다. 끝까지 순종하지 않았던 사울의 부분적인 순종, 불순종이었다고 판단하십니다.
존 비비어의 [순종]이라는 책에서 그는, 사울의 이 이야기를 다루면서, “99% 의 순종이 사람에게는 순종으로 보여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결코 순종아 아니다”라고 그는 강조합니다. 사울이 생각했던 순종에 대한 잘못된 이해, 우리도 동일하게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부분적 순종을 순종으로 인정하지 않으셨고, 자신의 명령을 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결론 내리셨습니다.
우리도 순종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 부분적인 순종에 만족하며, 자신은 순종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지는 않는지 오늘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한번 나의 순종의 삶을 점검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순종의 삶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온전한 순종이 되려면, 겸손한 마음에서 교만한 마음으로 변질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불순종을 깨닫지 못하는 사울에 대해,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17절 “사무엘이 사울에게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으로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먼저 사무엘은 사울이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를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이유는, 그가 다른 사람보다 지혜가 많거나 능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블레셋의 압제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께 왕을 구하자, 하나님은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여 주십니다. 어느날 아버지의 암나귀를 찾고 있던 사울 앞에 사무엘이 나타나게 됩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기대가 사울에게 있음을 알리게 되자, 사울은 자신의 지파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이고, 자신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에서도 가장 미약하다고 말하며 그는 스스로를 낮춥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서 스스로를 가장 작은 자로 여기는 사울에게,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왕으로 삼으십니다. 사울은 스스로를 가장 작은 자로 여겼지만, 하나님은 그를 가장 큰 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택하시고 그에게 기대하셨던 모습, 바로 겸손함 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울 왕의 현실, 겸손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교만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음을 성경은 지적합니다.
사울 왕의 변질된 모습에 대해 사무엘은 다음과 같이 책망합니다. 19절에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사울이 지금 얼마나 교만한 자로 변했는지, 스스로가 하나님의 명령을 바꿔도 된다고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전리품을 탈취하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사울의 마음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한 예로, 그가 전쟁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기를 위해 기념비를 세웠던 것에서 잘 드러납니다. 사무엘상 15장 12절 중간절에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말씀합니다. 사울이 전쟁을 이기고 처음으로 한 행동, 바로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해 기념비를 세운 것이었음을 성경은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분을 주실 때, 우리의 신앙이 완전하기 때문에 주시는 것을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부족한 자이지만, 우리가 그 일을 잘 감당해 나가기를 기대하시면서 우리에게 직분을 맡겨 주십니다. 처음에 직분을 맡을 때는 모두가 자신은 부족한 자임을 시인하며, 하나님의 은혜 아래, 낮은 자세로 그 직분을 감당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신의 열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고, 사역의 성취를 자신을 높이는데 이용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직분을 맡은 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계속해서 겸손한 마음을 지속할 수 있는가에 달여 있습니다.
삶의 성공과 사역의 성취가 하나 둘 씩 쌓여가는 것, 인간적인 마음으로 기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한 일과 성공에 집착하게 되면, 우리는 자만에 빠지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큰 자로 여길 수 있는 영적 교만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사람, 하나님은 그 사람을 가장 낮게 자로 만드십니다. 마태복음 23장 12절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자신을 높이는 교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잘 될 때 더 조심해야 합니다. 항상 잘 되는 것이 꼭 신앙적으로 나에게 유익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아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개인의 성취, 사역의 성공이 우리의 마음을 높아지게 할 수 있음을 알고, 이 때 더욱 나의 마음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자신의 내면을 겸손하게 잘 지키시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반대로 나에게 찾아오는 시련의 시간,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은혜가 될 수 있음을 아는 믿음도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을 보면, 큰 시련의 연단의 과정을 겪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시기 전에, 광야에서 사십 년을 목자로 지내며 철저히 자신이 무능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사울의 핍박으로 많은 시련을 겪었고, 왕이 되고 나서도 그는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셔야 하는 양에 불과하지 않음을 고백했습니다. 때로는 이러한 믿음의 시련과 연단으로도 부족해서 하나님이 가시를 남겨 놓으시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에게 육체의 질병인 가시가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절히 구하며 가시가 떠나기를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시며, 그에게서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공에 마음이 높아지지 않고,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삶의 시련이나 육체의 가시를 불평과 원망으로 대하지 않을 때, 우리는 나를 겸손케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으시는 믿음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쁜 목사는 나쁜 목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역으로 바쁜 목사는 사람들이 볼 때, 목회를 잘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일에는 소홀하여 영적으로 병들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쁜 성도, 나쁜 성도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이 바쁘고, 교회 봉사에 바쁜 사람, 분주함에 빠져,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의 시간을 갖는 일에 소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이 영적으로 병들지 않도록 일상의 분주함에서 물러나, 조용히 주님을 묵상하며 자신의 내면을 겸손으로 잘 가꾸시는 삶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온전한 순종의 삶으로 인도하는 겸손한 마음을 지속하며 살아가시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온전한 순종이 되려면, 하나님의 목소리를 잘 듣고,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순종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느냐고 책망하자, 사울은 자신은 순종했다고 대답합니다. 20절에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사울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길로 갔고, 아말렉 왕 아각을 제외하고 모두 죽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21절에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사울은 말합니다. 양과 소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죽였고, 다만 가장 좋은 것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가져 왔다고 그는 설명합니다. 합리적인 시각으로 보면, 사울의 말대로, 죽여서 다 없애는 것보다, 가치 있는 것들은 살려서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다름을 깨닫게 됩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대적이었던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 과정이 어떤 지는 그에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을 다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사무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본문 22절에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보다 좋아하지 않으시다고 사울에게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말씀을 전합니다. 22절 후반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성경은 강조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럼 순종은 중요하고, 예배는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예배를 드리는 것과 순종하는 것은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는 이유, 불순종의 삶을 자복하고 씻음 받음으로,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 위함 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고 있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한 것은, 사울이 말하는 제사는 단지 형식적인 제사를 위한 제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은 제사를 단지 좋은 짐승을 잡아 드리는 것이 예배라고 그는 오해했습니다. 좋은 재물로 풍성한 제사를 드렸으니, 이제 나는 할 일을 다했다고 그는 제사의 본질을 철저히 왜곡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종이 빠진 제사를 결코 기뻐하지 않으심을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우리는 혹시 삶의 순종은 없으면서 열심히 예배 드리는 것으로 신앙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순종할 마음 없이 형식적으로, 의무적으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예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바로 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순종의 제사임을 믿으시는 저와 여러분의 믿음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배의 감격이 사라지고, 예배의 기쁨이 약해지는 이유,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일을 가볍게 여기고, 순종하는 삶을 성실히 살아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지, 우리는 다시한번 말씀을 경청하는 일과 일상에서 순종의 예배를 회복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진정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려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하기 보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에 우리는 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삶이 되려면,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먼저 지금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공동체의 목소리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앙 행위에 앞서, 먼저 그것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인지, 공동체에 유익한 것인지 잘 분별하는 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나의 생각, 나의 열심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뜻에 더 귀를 기울이고, 내 방식대로 순종하려고 하기보다,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의 삶, 순종의 예배를 드리시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온전한 순종이 되려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계속되는 책망을 듣고 비로서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다. 24절에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처음에 사울은 사무엘에게 자신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사무엘의 책망 앞에,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다고 시인합니다. 그리고 왜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는지 그 이유를 말합니다. 24절 중간절부터 보시면,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다”.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백성을 두려워해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말을 따른 것이었다고 그 책임을 전가합니다.
순종의 삶, 결국 누구의 말을 따를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 요구됩니다. 무리의 목소리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목소리를 따를 것인지,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믿음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사실 사람의 말을 따를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지, 이 질문 앞에 우리는 당연히 사람의 의견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따르는 일,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수의 소리를 거부하면, 그 대가로 우리에게 비난이 쏟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좋은 말을 듣고 싶어하지, 싫은 말을 듣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이 되려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듣기 싫은 말을 들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다수의 의견을 거부한 결과로 찾아오는, 비난의 목소리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은 사울, 죄의 문제를 해결 받기를 원합니다. 25절에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사울은 선지자에게 당장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기를 간청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도록 함께 가줄 것을 요청합니다.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회개를 구하는 사울, 그런데 사무엘은 이러한 사울의 간청과 요구를 단호히 거절합니다.
26절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 왜 사무엘은 용서를 구하는 사울의 간구대로 따라주지 않았던 것일까요? 하나님이 이미 사울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26절을 중간절에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음으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사울을, 하나님께서 버리셨음을 거듭해서 말합니다. 23절에서도 이미 사울의 거역과 완고함에 대해 지적하며, 이는 점치는 죄와 같고,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다고 말하며,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에 하나님께서도 왕을 버리셨음을 사무엘은 말합니다.
우리는 사울의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너무 가혹하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신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윗도 밧세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하는 중죄를 범했지만, 다윗의 왕의 자리를 빼앗지 않으시고, 그를 버리지 않으시며, 다시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하면 아말렉 왕과 제사를 위해 가축을 살려준 사울의 행동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왕에서 폐위될 만큼 더 중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하게 이 일로 사울을 버리시기로 결정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아말렉 전쟁에서의 불순종으로 사울을 왕의 자리에서 내리시고, 버리시는 결정을 하셨던 것일가요? 짐작해 보건데, 하나님은 이 하나의 사건을 통해, 앞으로도 사울이 결코 변하지 않으실 것을 아셨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에 힘을 얻는 이유는,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 절대로 바꾸시지 않으실 것을 사무엘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9절에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이유, 사울의 회개의 모습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사울은 자신이 불순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백성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지금 자기의 죄를 사하고 함께 가서, 백성들 앞에서 예배를 드리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회개는 진정성이 없었습니다. 만약 사울이 사무엘의 말을 듣고 진정으로 회개를 했다면, 즉시 자신의 불순종의 열매인 아각과 데려온 가축을 모두 죽이게 했을 것입니다.
불순종의 행위를 버리는 것이 없이 하는 회개, 진정한 회개가 될 수 없습니다. 죄의 습관들을 제거하는 것 없이, 입술로만 하는 회개, 참된 회개가 될 수 없습니다. 사울의 회개는 말로만 하는 회개였을 뿐, 자신의 생각과 행동까지 바꾸는 진정한 회개는 아니었음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28절에 보면, 사울은 돌아서는 사무엘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울의 이러한 간절함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기 위한 간절함이 아니라, 여전히 백성들 앞에서 높임을 받기 위한 것이었음을 성경은 말합니다. 30절에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선지자의 책망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자신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기보다, 사람들에게서 그의 명예가 회복되고 높임을 받는 일이 더 중요했습니다. 사울은 가장 진실해야 하는 회개의 자리 앞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기 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고 있었음을 성경은 폭로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만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가장 의식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온전한 순종한 삶이 되기 위해, 사람을 두려워하는 병든 신앙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건강한 신앙으로, 사람을 의식하는 인본주의 신앙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는 신본주의 신앙으로 나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가는 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순종, 끝까지 하는 순종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모범이 되시는 예수님, 하나님께 순종 하시되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 이셨습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순종하셨음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끝까지 순종하셨 수 있으셨던 것일까? 성경은 예수님의 겸손하신 마음 때문이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끝까지 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의 능력도, 지혜도, 경험도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가 끝까지 순종의 삶을 살아내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겸손함을 잃어버리고 부분적인 순종에 머무는 삶이 아닌, 겸손함으로 온전한 순종을 이루시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의 목소리를 잘 듣고, 무엇보다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순종의 예배를 드리시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순종의 삶을 위해,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람을 의식하기 보다 하나님을 더 의식하는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다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자격 없는 저희들에게 귀한 직분을 맡겨 주시고,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를 섬기게 하심을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우리가 순종의 삶을 살아가되, 부분적인 순종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순종하는 삶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겸손함을 본 받아, 삶의 성공과 사역의 성취 앞에 스스로 마음이 높아지지 않게 하여 주시고, 항상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듣지 않도록 경청의 마음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고, 형식적인 예배를 넘어 순종의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의식하는 삶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더욱 의식하는 마음 주셔서, 온전한 순종의 자리로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의 모두의 삶이 되도록 성령님으로 충만히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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