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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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12, 구원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라.
이번 주 우연히 과거에 읽은 조창인씨가 쓴 가시고기라는 책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야기의 스토리는, 백혈병에 걸린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버지, 결국 그 아버지는 간암에 걸려 쓸쓸히 죽어가게 됩니다. 마치 가시고기가, 새끼를 위해 자신의 몸은 던지듯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는 부모, 특히 아버지의 부성애를 잘 담고 있는 책입니다. 혼자 도서관에서 읽다가 책장을 잘 넘기지 못하고 책에 얼굴을 묻고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는 책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한 문구가 오래동안, 마음속의 여운처럼 남아 있습니다.
"오늘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내일 죽어간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한 내일"
당시 이 책이 저에게, 성경책은 아니었지만, 저에게 많은 의미를 전해주었습니다. 오늘 내가 왜 열심을 내야하는지, 오늘이란 이 하루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일깨워주었던 그런 책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지난 주 수요일 밤에 우리교회 권사님의 어머님의 임종예배를 드렸습니다. 마지막 임종예배를 드리고 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맞습니다. 오늘 우리가 지금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은 어제 생을 마감한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임을 기억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다윗의 12번째, 마지막 시간, 인생레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다윗의 인생을 살펴보면서, 다윗속에 있었던 수많은 인생 레슨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그 스토리를 마무리하면서, 이것만큼은 꼭 놓치지 말아야겠다, 이것만큼은 꼭 기억해야겠다는 귀한 말씀을 한번 더 찾아보기 원합니다. 특히 오늘부터 고난주간의 시작입니다. 무엇보다 이 말씀을 고난 주간을 보내는 저와 여러분의 영혼을 깨우는 또 하나의 레마의 말씀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다윗의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배워야 할, 다윗의 인생 레슨, 무엇일까요? 1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께 있음을 알라.
여러분, 다윗이 어떤 인생이었을까요? 다윗은 유명세에 비해, 다윗은 인생초기, 전혀 존재감이 없었던 인생이었습니다. 사무엘에 차기 이스라엘 왕을 선정 때, 다윗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습니다. 아니 부모가 그의 존재를 잊을만큼 그의 영향력은 미미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게 되자, 당대 어떤 장수도 이길 수 없었던 골리앗을 이기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존재감 1도 없었던 그를 하나님이 붙드시게 되자, 그 어떤 왕도 이룰 수 없었던 통일왕국이 대업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다윗의 비밀이 뭘까요? 다윗 스스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대상29:13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저는 이게 다윗의 인생 철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아무 것도 아니었던 그를 하나님이 붙들게 되자, 골리앗을 이기는 전사가 되었습니다. 부모에게조차 외면받던 그를 하나님이 붙들게 되자, 통일왕국을 이루는 탁월한 리더가 되었습니다.
저도 사사 기드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드온의 300용사로 알고 있는 사사 기드온은, 원래 처음에는 겁쟁이 소심한 농부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실제 미디안의 침략이 두려워 밀을 포도주틀에 짜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자, 미디안 수만명을 이기는 민족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삿6:12,34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자 말씀에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 비결이 뭘까요? 그리고 난 다음 중요한 게 있습니다. 삿6:34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임하시니에 쓰인 단어가 히브리어로 라바쉬라는 단어입니다. 라바쉬: 옷을 입다, 의복을 입다할때 쓰이는 단어가 바로 이 단어입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기드온은 그냥 두면 졸보, 겁쟁이 소심남에 지나지 않지만, 성령께서 옷입혀 주시고, 성령께서 힘을 주시고, 성령께서 능력을 주시자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사 기드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들의 삶(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각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볼 때 연약하고 부족할 수 있지만, 성령께서 기름 부어 주시고, 은혜 주셨을 때 이 모든 사역들이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제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책 한권이 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님입니다. 워낙 이 목사님은 워낙 말씀도 좋고, 위트도 있고 정말 모든 것을 다 갖춘 그런 목사닙니다. 그런데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은 목사님에게 있는 질병인데, 바로 간질이라는 병입니다. 아들도 정신과적인 질병이 있었습니다, 간질이라는 병을 아시는 것처럼 갑자기 쓰러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항상 강단 사역할 때 항상 한 분이 대타로,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혹시 쓰러질지 모르니까... 한국에 초청을 받을 때, 항상 2명의 목사님과 함께 대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목회자게에 이게 얼마나 힘든 것일까요? 정작 릭 워렌 목사님은 오히려, 이것이, (연약함, 부족함)이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매주 목사님은 이런 자신의 연약함을 때문에 매주일 강단에 올라갈 때마다 다른 분들의 기도를 받고 올라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뭘까요? 늘 건강하고 강건했다면, 모든 풍족했다면 이 목사님, 그렇게 엎드렸을까요? 아니 오히려 이런 연약함, 부족함, 결핍때문에 더 엎드리고 겸손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았을까요? 여러분 맞습니다. 때론 연약함, 부족함이 우리의 능력이 되고, 우리가 가장 연락할 때가 가장 강한 때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맞습니다.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은 주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매번 매일 성령께서 옷입혀 주실 때,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저 역시 매주일 참 이것을 많이 느낍니다. 저 역시 두려움많고 겁많고 소심한 저의 인생이지만, 주님께서 힘주시고, 성령께서 옷입혀 주실 때 이 모든 것 감당할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새로운 한 주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모든 자를 크게하심/강하게 하심이 주님의 손에 있음을 믿고, 무엇보다 성령께서 옷입혀 주시는 한주간을 살아갈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다윗의 인생 레슨, 무엇일까요? 1 모든 자를 크고 강하게 하심이 주께 있음을 알라.
2 구원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라.
제가 신앙생활 초기에 참 어렵게 푼 문제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은 믿고 천국의 소망은 분명한대, 왜 내게는 이렇게 기쁨이 잘 없는가, 아니 오히려 상실과 좌절과 정말이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왜 뭐가 문제일까? 그때 제가 눈뜨게 된 것이, 바로 우리의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지만, 구원의 기쁨은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가장 잘알았던 사람이 바로 다윗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난후, 그는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그가 지은 시편이 있습니다. 시51:11-12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영어, the joy of your salvation, 다윗의 구원과 구원의 기쁨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잃어버리는 것은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기쁨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잃어버린 구원의 기쁨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전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구원의 기쁨을 빼앗은 죄의 회개. 하나님앞에서의 진정한 회개, 그 회개를 통해서 구원의 기쁨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대표적인 참회시, 51편과 함께 쓰이는 것이 시편 6편입니다. 시6: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여러분 다윗이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는 비결, 뭘까요? 그것은 회개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둘째, 구원의 기쁨을 위해 다시 십자가를 붙드는 것. 여러분 언제 구원의 기쁨이 회복될까요? 죄를 회개하고 다시 십자가앞에 서는 것, 여러분, 정말 그럴까요? 성경 에배소서를 연구하다보면, 바울의 놀라운 찬송의 고백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에배소서는 옥중서신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이 로마의 감옥에서도 찬송했을까요? 엡1:3-4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찬송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령을 복을 주시되, 여러분 바울이 복받은 사람입니까? 어쩌면 예수 믿고 패가 망신한 사람이 아닙니까? 하지만 바울은 그 인생에 진짜 복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가 말한 진짜복, 신령한 복은? 세 가지 복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선택의 복, 둘째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의 복, 마지막 성령 하나님의 인쳐주심의 복, 바로 이 놀라운 십자가의 복이 로마의 감옥에서도 바울을 찬송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이 뭘까요? 하나님이 이렇게 부족한 나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고, 십자가 복음으로 구속하여 주셨고, 그 은혜로 우리를 이끌고 계심을 깨닫고 경험하게 될 때, 우리는 다시 찬송하고 다시 노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입니까>
한번은 아프리카 아이들이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엄청 많이 반성하고 회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행복’이라는 찬양을 하는데, 너무 해맑게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국민소득도 낫고, 사는 형편, 먹는 것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 찬양을 부를 때 정말 진심이었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후렴)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그 찬양속에 아이들이 저에게 이런 눈빛을 보내는 거같았습니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요즘 뭘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니 지금 우리가 다시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이게 기쁨이고 감사가 아닐까요? 새로운 한주간, 세상의 염려와 근심과 걱정에 여러분의 구원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는 여러분의 한 주간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다윗의 인생 레슨, 무엇일까요? 1 모든 자를 크고 강하게 하심이 주께 있음을 알라.
2 구원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라. 3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라.
여러분, 만약 하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신다면 어떤 성전을 다시 세우기 원하실까요? 지금도 우리는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다시 세우기 열망하시는 성전은 어떤 성전일까요? 사도행전 15: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여러분, 왜 하필이면 다윗의 장막일까요? 사실 성전의 크기와 웅장함으로 보면 솔로몬의 성전이 훨씬 더 큰데, 왜 하필이면 다윗의 장막일까요?
제가 다윗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이 정말 그리워하셨던 다윗의 장막의 비밀이 무엇일까를 좀 조사해보았습니다. 세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 다윗의 장막에는 장벽이 없었다. 모세의 성막에는 성소와 지성소의 구별이 있고, 성소와 그밖에 뜰에도 장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장막에는 임시처소였기 때문에 이런 벽들이 없었습니다. 단지 법궤를 천으로 둘런싼 엉성한 가림막 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솔로몬의 성전에도 보면, 성전에 들어가려면, 제약들이 많았습니다. 유대인/남자인가 아닌가? 또 제사장인가 아닌가? 하지만 다윗의 장막에는 이런게 없었습니다. 언제나, 누구나 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다윗의 장막에는 꺼지지 않는 열정이 있었다.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에서 돌아온 후, 매일같이 한 것이 무엇인가하면 예배였습니다. 21킬로의 달려온 그들이 좀 쉴법도 한 대 다윗이 이때부터 조를 짜고, 번을 돌면서 24시간 예배를 시작하였습니다. 실제 다윗의 시대에 수많은 예배와 제사와 관련된 곡들이 배출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파란 불꽃이 있었다. 토미 데니가 그의 책 다윗의 장막에서 말합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되가져 오고자 했을 때, 그의 관심은 도금 상자에 있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언약궤 위에 있는 두 그룹의 펼친 날개 사이에 머물던 파란 불꽃에 있었다. 다윗이 원한 것은 그것이었다. 그 불꽃이 하나님 자신의 임재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저는 다윗이 사랑했던 것, 다윗의 추구했던 것은 결국 바로 임재의 파란불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바로 이 임재의 파란 불꽃을 사모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겉으로 화려한 어떤 성전보다, 주님의 임재가 있는 곳,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파란 불꽃이 머무는 곳이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언제든 나와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성전, 마치 다윗의 장막같은 교회가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무리 반주, 저는 1월부터 약 12주간 다윗을 묵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다윗을 묵상하면서 참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다윗을 묵상할 때마다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왜 하필 다윗일까? 흠도 많도 탈도 많은데, 왜 하필 다윗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을까?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 질문에 많은 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그토록 사랑했던 그에게, 하나님이 친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육신(그 분의 임재)을 보여 주셨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다윗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다윗을 통해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사모해야 할 것이 뭘까? 두 가지가 정리가 되었습니다. 첫째,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건물을 세운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가진 열심, 그가 가진 열정으로 다시금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세우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고 사명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다윗이 사모했던 그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설교를 통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포지션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름 부으심이 중요하다. 우리교회의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기름 부으심이 있는 교회인가? 은혜가 있는 교회인가 이것이 우리가 싸워야 할 미션이고 사명인 줄로 믿습니다.
이번 주 말씀을 준비해놓고 월요일 아침, 귀한 찬양이 하나 생각이 났습니다. 주일에 우리 모든 성도님이 같이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제가 한 주간 예배한 찬양입니다.
지극히 높은 주님의 나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세상의 신을 벗고서 주 보좌앞에 엎드리리
내 주를 향한 사랑과 그 신뢰 가사 그러져 갈 때 하늘로부터 이곳에 장막이 덮이네
이곳을 덮으소서 이곳을 비추소서 내안에 무너졌던 모든 소망 다 회복하리니
이곳을 지나소서 이곳을 만지소서 내안에 죽어가는 모든 예배 다 살아나리라
저는 오늘 예배하는 이 시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보좌앞에 나아가길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신을 벗고 주님의 임재하심앞에 엎드리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리고 하늘로부터 임재의 장막이 이곳을 덮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 이것을 지나시옵소서, 이것을 비추시옵소서. 덮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안에 모든 무너졌던 소망들이/죽어가는 모든 예배들이 다시 회복되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기도제목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놀라운 주님의 임재의 기도가 이번 고난주간, 다시 다가올 부활절 예배 가운데 넘쳐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