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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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11 죽기 전에 물어야 할 인생질문 세 가지(시27:1-4)
이번 주 말씀을 준비하면서 팀 켈러 목사님이 쓰신 인생질문이라는 책을 좀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최고의 지성인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옥스퍼드와 하버드에서의 강의로 토론을 책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안에 인생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한 서평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팀 켈러의 인생질문은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해 봤을 법한 질문에 대한 답을 요한복음을 통해 찾는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인생의 질문이 많은 이들을 만나셨고, 그때마다 개개인에게 맞는 혜안의 답을 주심으로 그들을 복음의 길로 인도하셨다. 회의론자였던 나다나엘과의 만남, 지성인이었던 니고데모와의 만남, 사마리아 여인, 마르다와 마리아와의 만남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과 예수님의 만남들을 명쾌하고 설득력 있게 해석한다. 이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막론하고, 삶의 질문으로 가득 찬 이들의 마음을 시원케해 준다. 그리고 특히 이 책은 이 한 가지의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답을 주로 오신 분인가? 아니다. 예수님은 답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진짜 답이시다. 여러분 맞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에 답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인생의 답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다윗의 인생속에 우리가 묻고 답해야 할 인생질문, 세 가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1월부터 다윗을 묵상하면서 정말 전에 잘 알지 못했던 다윗의 인생을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다윗의 인생속에 있었던 성공과 실패, 그 속에서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참 크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 우연히 한 목사님이 다윗의 인생을 묵상하며 던졌던 인생질문 세 가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질문을 보는데, 제 안에 쿵하는 울림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다윗의 인생을 다윗되게 한 질문이고, 동시에 오늘 우리가 꼭 물어야 할 인생 질문이 아닌가 생각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다운 인생의 길을 걷기 위해 물어야 할 인생 질문이 뭘까요? 오늘 여러분도 이 말씀을 들으며 꼭 답해 보십시오.
자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할 세 가지 인생질문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 그 한 분만으로 만족해 보았는가
성경 시편23편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양과 목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왜 하필이면 우리 인생이 양일까? 양은 특히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양은 쉽게 더럽혀진다. 저는 이스라엘 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달력에 있는 뽀사시한 양만 생각했는데, 엄청 지저분하고 더러운 양들을 보았습니다. 둘째, 시력이 약하고 방향 방각이 없다. 양들의 시력은 보통 3-4미터 정도 밖에 구별이 안되는 아주 지독한 근시입니다. 그래서 한 마리가 이상한대로 가면 그냥 막 따라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 특별한 자구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뿔, 날카로운 이빨, 자신을 방어할 방어책이 거의 전무합니다. 여러분, 어쩌면 양은 정말 우리 인생을 너무 많이 닮지 않았습니까? 죄에 대해서 쉽게 더렵혀지고, 방향 감각도 없고,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도 잘 모르고, 게다가 특별한 자구책도 없는 인생, 우리 인생과 너무 닮아 있지 않습니까?
저는 어릴 시절 결핍이 많던 사람이었습니다. 4형제의 막내로, 정말 가난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저는 옷을 사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냥 형들의 것을 입는 게 그냥 너무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교회 나가서 성경을 보는데 깜짝 놀랄 표현을 보았습니다. 시23:6 (전체절 자막) 내 잔이 넘치나이다. 어떻게 인생이 잔이 넘칠 수 있을까요? 제가 키가 170정도 되는데, 조금 안되는데, 여기에 뭘 채워도 잘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그 비결은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첨에는 잘못된 번역이라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양들은 눕지 않는 동물입니다. 왜냐하면 소리나면 뛰어하기 때문에 눕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스라엘 갔을 때 가이드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양들은 눕지 않습니다. 딱 하나의 조건이 만족되면 이 아이들은 눕고 졸고 잡니다. 그것은 바로 목자가 옆에 있을 때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는 하나님이 여러분이 인생에 목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인생의 목자로 구한 그가 평생에 구한 것이 무엇인가 보십시오. 시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One thing I ask of the LORD, 저는 이게 뭔지 좀 알 수 있을 거같습니다. 저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일을 했습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했기 때문에 주중에 공부하고 저녁에 알바하고 주말이면 사역을 했습니다. 그렇게 주말 사역, 파트타임이었지만, 주말 사역은 월요일 새벽예배까지 하고 학교로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월요일 새벽, 지옥철이라 불리는 1과 2호선 갈아타고 부천에서 반포까지 오면 거반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서울에서 대전까지, 대전에서 학교까지, 그냥 바로 방에가서 그냥 쉬고 싶습니다. 그런데 근데 학교 기숙사로 가지 않고 학교강당으로 갔습니다. 왜냐면, 기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당에 들어가 고래고래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이럴거면 왜 저를 신학교 보냈냐고? 남들 다 쉽게 가는 길, 왜 나는 이렇게 힘들고 돌아 돌아가느냐고 한 참을 기도하다보면... 저도 모르는 주님의 임재가 느껴집니다. 주님의 함께하심, 저를 폭 안아주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 제가 자주 부르던 찬양이 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저는 그때 그 찬양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찬양을 부르고 나면 제가 고백하는 게 있습니다. 주님 주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2)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인생의 만족은 돈, 빽, 힘이 있어야 되는 걸로 알았습니다. 근데 아니더라구요. 인생의 고난, 어려움 중에서도, 내가 주님을 만나게 되면, 진짜 주님을 만나게 되면, 그 주님앞에 이런 고백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 한분이면 충분합니다!(2) 저는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고백이 이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운 삶, 그래서 내일이 어떻게 되고, 앞날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오늘 예배하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이 고백이 있길 원합니다. 주님 주님 한분이면 충분합니다! 이 복날 우리가 던져야 할 인생 질문 뭘까요?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해 보았는가?
우리가 인생에서 꼭 물어야 세 가지 인생질문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 그 한 분만으로 만족해 보았는가 2. 하나님 그 한 분만이 나의 목적이 되었는가?
여러분, 다윗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누군가 묻는다면, 다윗은 하나님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았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다윗의 인생의 역경 가운데 가장 큰 역경 중의 하나인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꽤할 때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의 반역 때문에 피난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자 이 비상시 상황에서 제사장 아비아달과 사독이 언약궤를 가지고 다윗에게 왔습니다. 당시 언약궤는 영적인 의미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권력의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옥새를 누가 가지고 있는가 이런 점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말합니다. 삼하15:24 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지금 다윗은 도망자 신세이고,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왕권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될 수도 있었던 하나님의 언약궤,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라고 이야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왜 그렇게 했을까요? 저는 이 순간 다윗이 법궤를 가지고 갔어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왜 법궤를 다시 가져가게 했을까요? 왜냐면, 하나님의 법궤를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수단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법궤를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데 이용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평생 다윗의 하나님은, 그의 삶의 이유, 목적이었고 동기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수단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주 이 다윗의 마음이 느껴지면서 참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반면 사울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사울은 인생에서 하나님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컨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에 아말렉을 진멸하라 명령하셨습니다. 근데 아말렉와 아각을 비롯한 좋은 것들은 죽이지 않습니다. 핑계는, 제사에 쓸려고 합니다. 그러자 불순종한 사울을 찾아와, 사무엘이 아말렉와 아각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렸음을 선포했습니다. 자 이러한 때에 사울이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회개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 사울이 사무엘에게 어떻게 말하는지를 보십시오. (삼상 15: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무슨 이야기일까요? 철저하게 하나님을 자신의 성공을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생각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인생은 결국 두 종류의 인생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하나님: 이유와 목적으로 삼는 인생, 또 하나하나는, 하나님: 수단과 방법으로 삼는 인생. 저는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을 그 어떤 여러분의 성공을 위한 수단/방법이 아닌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 이유가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2017년 당시 개척의 시간이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20년의 지구촌 사역을 정리하고 개척을 시작할 때, 개척을 준비하는 저에게 정말 까다로운 두 가지 질문을 주님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박목사야, 너의 목회를 위해서 성도가 필요한 것이냐? 아니면 성도님들을 위해서 네가 필요한 것이냐? 이 질문은 저에게 집요하면서도 참 까다로운 질문이었습니다. 왜 내가 개척하는 거지?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왜 내가 개척을 하지, 그리고 또 하나는 나의 목회에서 하나님은 수단인가? 아니면 정말 주님은 나의 삶의 이유와 목적인가?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하나님앞에 씨름을 했습니다. 그때 주님앞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주님 제가 예수님을 나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게 해 주십시오. 나의 영광, 성공을 위해서 주님을 이용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여러분이 예배하는 이유, 매주 빠짐없이 예배/기도하고 얘쓰는 이유, 무엇입니까? 혹시나 우리안에 하나님을 나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길때가 있지 않습니까? 아니 정말 여러분의 주님은 여러분의 삶이 이유이고 목적이고 동기가 되고 있습니까? 새로운 한 주간, 저는 예수님이 여러분의 수단/방법이 아닌 삶이 이유/목적, 삶을 살아가는 동기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가지 인생질문 무엇일까요?1. 하나님 그 한 분만으로 만족해 보았는가 2. 하나님 그 한 분만이 나의 목적이 되었는가? 3 하나님께 나의 인생의 최선을 드려 보았는가?
여러분, 다윗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했던 사람, 그리고 삶의 이유과 목적으로 삼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다윗은 자기 인생이 최선을 하나님께 드려보았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가지고 올 때를 기억하십니까? 삼하6: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삼하6: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동원된 군중의 수가, 3만명, 거기에 여러분이 기억하시지요 6 to 7, 원칙을 지키며 매번 7마리의 양과 소를 드리는 삶, 그리고 그 거리가 오벱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에서 21킬로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성전은 솔로몬이 짓지만 정작 준비는 다윗이 다하였습니다. 그때 그가 어떻게 헌신했을까요? 대상29:2-5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준비하였나니 곧 기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내가 사유한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내가 사유한 금은으로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여러분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일까요? 저는 자기 인생의 최고를 드려본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한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정말 행복한 사람인가? 미치도록 사랑할만한 일을 만난 삶, 그리고 미치도록 사랑할 사람을 만난 사람, 그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다. 여러분 다윗이 이렇게 많이 드리고도 행복했을까요? 이만큼 드려서 아까웠을까요? 저는 절대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 요13장에 보면 마리아의 향유 옥합을 깨뜨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당시 향유를 결혼 지참금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여인과 부모는 평생을 그것을 모으고 시집을 갈 때 그것을 팔아 결혼 지참금으로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가룟유다가 말합니다.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차리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겠도다. 여러분 얼마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입니까?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허용하셨고 용납하셨습니다. 왜 허용하셨을까요? 사실 제가 이 모습을 보면서 제 인생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여러분, 왜 주님은 이것을 막지 않으셨을까? 사실 제가 볼 때도 이거는 너무 낭비고 비생산적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묵상하다가 이게 낭비/허비가 아닐 수 있는 이유가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정말 주님께 드림이 될 때(내 인생 최고의 사랑이신 주님앞에 이것을 드릴 때), 이것은 낭비, 허비가 아닌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정말 마리아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 주님을 그렇게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자기가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주님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마 마리아에게 더 있었다면 더 드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만난 예수그리스도앞에 그 앞에 드리는 헌신, 희생, 그것은 결코 낭비가 아닌 것입니다. 저는 이 한 가지가 제 인생의 삶을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과거 지구촌에 있으면서 늘 이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해는 마십시오. 헌금할 때 주님 우리 목사님들 가운데 헌금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제 마음에 늘 그 마음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건축할 때, 주님 제가 가장 많이 드리게 해 주십시오. 물론 금액은 목회자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겠지만, 주님 횟수만큼은 주님 제가 가장 많이 드리게 해주십시오. 모르겠습니다. 제가 따져보지 않았지만, 주님께 드림에 있어서는 늘 최선이고 싶습니다. 언젠가 wec선교사셨던 시티 스터드, ”만일 그리스도 예수가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분을 위한 나의 어떤 희생도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맞습니다. 정말 내가 마난 것이 주님이 맞고, 그 주님이 나의 삶이 이유(목적)가 되었다면, 그래서 복음이 내 영혼을 새롭게 했다면, 그 주님앞에 드리는 그 어떤 희생, 헌신도 결코 낭비, 허비가 아닌 줄로 믿습니다.
마무리 반주, 이번 주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번 주 지난 수요일에 오셨던 선교사님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인생의 삶을 다시 한 번 많이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한 여인의 몸으로, 자신이 암환자이면서 암환우 목장을 통해서 암환우를 돌보고, 주님의 부르심으로 스리랑카로 달려가고, 자신이 공항장애로 아프면서 노숙자를 돌보는 그의 삶을 보고 다시 한 번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선교사님 간증을 듣던 중 귀한 글 하나가 생각이 났습니다. “오직 한 번 뿐인 인생 (Only One Life)이란 시입니다. C.T.스터드
오직 한 번 뿐인 인생, 단 한 번 뿐인 인생, 흐르는 그 시간도 머지않아 멈추겠지, 이내 주님 만날 그 날이 오고 나는 그분의 심판의 보좌 앞에 서겠지. 오직 한 번 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일만이 영원하리라.
이 화려한 세상이 쓰리게 나를 유혹할 때, 사탄이 싸움에서 나를 누르려 할 때, 못난 자아가 사욕을 채우려 할 때, 주님이여 도우사 기꺼이 말하게 하소서, 오직 한 번 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일만이 영원하리라
오직 한 번 뿐인 인생, 단 한 번 뿐인 인생, 나 지금 구하오니 주님의 뜻 이루소서
마침내 하늘로 부름 받는 그 날, 난 고백하리 주님 위해 살 가치가 있었다고
오직 한 번 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일만이 영원하리라
여러분, 꼭 한번 뿐인 인생, 딱 한번 뿐인 인생, 언젠가 우리 역시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 우리 모두는 그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한 번 뿐인 인생, 여러분은 주님 앞에 무엇을 남기겠습니까? 아니 여러분을 무엇을 지금 사모하시겠습니까? 이번 주 저에게 이 질문이 여러분 묵상이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주님 그 한 분으로 만족하고 있는가? 나는 정말 주님이 나의 수단과 목적이 아닌 삶의 이유와 목적이 되고 있는가? 아니 난 지금 나의 인생에 주님께 최선을 드려 보았는가? 이제 여러분이 답할 때입니다.
(주님 한분이면 충분합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1
우리가 인생에서 꼭 물어야 세 가지 인생질문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 그 한 분만으로 만족해 보았는가
저는 한때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만족은 돈, 빽, 힘이 있어야 되는 걸로 알았습니다. 근데 아니더라구요. 인생의 고난, 어려움 중에서도, 내가 주님을 만나게 되면, 진짜 주님을 만나게 되면, 그 주님앞에 이런 고백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 한분이면 충분합니다!(2) 저는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고백이 이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주님 한분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 그 한 분만이 나의 목적이 되었는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은 여러분의 수단입니까? 아니면 정말 여러분의 주님은 여러분의 삶이 이유이고 목적이고 동기가 되고 있습니까?
이 시간 기도할 때, 주님 새로운 한 주간 주님이 나의 안위를 위한 수단이 되지 않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이 내가 살아아는 이유가 되고 목적이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주님 새로운 한 주간, 세상의 물질 명예, 성공 다 좋지만, 주님이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 이것이 나의 고백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분, 내 삶의 이유가 되시는 분이 예수님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기도제목2.
꼭 한번 뿐인 인생, 딱 한번 뿐인 인생, 언젠가 우리 역시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 우리 모두는 그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한 번 뿐인 인생, 여러분은 주님 앞에 무엇을 남기겠습니까? 아니 여러분을 무엇을 지금 사모하시겠습니까?
오직 한 번 뿐인 인생, 단 한 번 뿐인 인생, 나 지금 구하오니 주님의 뜻 이루소서
마침내 하늘로 부름 받는 그 날, 난 고백하리 주님 위해 살 가치가 있었다고 오직 한 번 뿐인 인생, 속히 지나가리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일만이 영원하리라
이 시간 기도할 때 주님 주님앞에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을 나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삼지않게 하옵소서. 나의 안위를 위해서 주님을 이용하지 않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이 나의 삶이 이유와 목적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무엇보다 꼭 한번 뿐인 인생, 주님앞에 부끄럽지 않게,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게,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는 삶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앞에 가치있는 인생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복음앞에 가치있는 인생이 되게 되게 하옵소서. 십자가앞에 가치있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찬양전 기도
이 시간 기도할 때, 주님 새로운 한 주간 주님이 나의 안위를 위한 수단이 되지 않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이 내가 살아아는 이유가 되고 목적이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주님 새로운 한 주간, 세상의 물질 명예, 성공 다 좋지만, 주님이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 이것이 나의 고백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분, 내 삶의 이유가 되시는 분이 예수님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 주님앞에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을 나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삼지않게 하옵소서. 나의 안위를 위해서 주님을 이용하지 않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이 나의 삶이 이유와 목적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무엇보다 꼭 한번 뿐인 인생, 주님앞에 부끄럽지 않게,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게,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는 삶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앞에 가치있는 인생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복음앞에 가치있는 인생이 되게 되게 하옵소서. 십자가앞에 가치있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제목3
주님, 이번 한 주간, 주님앞에 가치있는 인생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꼭 한번 뿐인 인생 복음앞에 가치있는 인생이 되게 되게 하옵소서. 십자가앞에 가치있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이번 한 주간, 지난 주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옵소서. 작년보다 더욱 뜨겁게 복음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십자가를 사랑하게 도와 주옵소서. 무엇보다 주님이 수단이 되지 않고 세상의 성공, 명예, 축복보다, 주님이면 충분합니다(2) 그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축도전 기도
주님 꼭 한번 뿐인 인생 복음앞에 가치있는 인생이 되게 되게 하옵소서. 십자가앞에 가치있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이번 한 주간, 지난 주보다 주님을, 복음을,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랑하게 도와 주옵소서. 무엇보다 주님을 나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게 하옵소서. 나의 안위를 위해서 주님을 이용하지 않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이면 충분합니다. 주님이면 만족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