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회복하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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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어느 목사님께서 집회를 많이 다니시는데… 전세계로 집회를 다니시면서,
수많은 교회를 다니셨는데… 자신이 이렇게 다녔던 교회들을 돌아보니까요,
기억에 남는 교회들이 많이 있잖아요.
찬양이 뜨거운 교회도 있고, 표정이 밝은 교회도 있고, 아멘이 열정적인 교회도 있는데…
이 모든 교회들의 교집합이 뭔가? 생각을 해보니까요, 기도를 뜨겁더래요.
왜 그런가? 기도가 뜨겁다는 것은… 기도의 능력을 안다는거예요.
기도의 응답이 있다는거예요.
그러면, 기도는 뜨거워질수 밖에 없다는거예요.
기도의 능력을 알기에… 기도의 응답이 있기에… 찬양도 뜨거워지고요, 말씀도 열심히 받고, 아멘도 열심히 하고…
기도의 응답이 있기에… 표정도 밝아지게 되더라는거예요.
우리 남서울비전교회가 그런교회되기 원합니다.
호랩산에 올라와서 기도 할때 마다,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서…
문제가 해결되고, 병마도 떠나가고, 불신의 영도 떠나가고,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얼굴에 생기가 돌고, 부르짓는 기도마다 응답되어서…
그 주님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교회…
기도가 살아있고, 말씀이 살아있고, 찬양이 살아있어서…
무엇보다 성령님이 운행하는 교회 그곳이 바로 우리 남서울비전교회 되길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저의 바램이기도 하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램이기도 해요.
이번에 회복하라. 씨리즈를 준비하면서,
제 마음속에 우리 교회가 하나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말씀안에 하나되고, 기도로 하나되고, 정말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주신 비전으로 하나되는 공동체…
그래서, 언제부턴가 제가 사용하는 단어가 있어요. 뭐냐면, 비전의 가족 여러분!!!
한 가족이잖아요. 주님이 주신 비전으로 한 가족이 되면 좋겠다 라는 생각으로 느헤미야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지금 설교 들어보셔서, 알겠지만, 설교가 어떻게 가나요? 계속 기도로 가는거예요.
그 말은 주님께서 지금 우리 교회에 기도가 필요하다는 싸인인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더 열심히 기도할때… 기도의 잔을 채울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You can do more than pray, after you have prayed, but you cannot do more than pray until you have prayed.
존 번연
기도한 후에는 기도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지만, 기도하기 전에는 기도 이상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호랩산에서 함께 기도할때… 기도 이상의 경험을 하게 될줄 믿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시는 우리 교회, 우리 비전의 가족들 되시기 바랍니다.

배경설명

우리가 2주동안 살펴본 내용을 돌아보면요,
느헤미야는 조국 이스라엘의 안타까운 상황을 듣고,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되죠.
그때, 자신의 노력으로 행동을 먼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난후에… 하나님께선 그 기도에 반응하십니다.
아닥사스다이 느헤미야의 슬픔을 보게하시고, 묻게 하셔서…
조서를 내려, 느헤미야가 유다땅으로 가서, 성벽 재건을 할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느헤미야는 유다땅 에루살렘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에 이 조서를 2명이 받게 되는데…
10절 말씀을 다시 보면요,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
그리고, 19절에 한명이 더 등장을 하는데요… 아라비아 사람 게셈
이러는 사람들이 느헤미야를 견제하는 모습이 있어요.

주적을 파악하라

그런데, 이들이 누구인가?
삼발랏이란 사람은 유다의 북쪽인 사마리아의 총독이예요.
그리고, 이 삼발랏이라는 뜻이 달의 신이 생명을 주셨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방종교를 믿는 사람이예요.
그리고, 도비야라는 사람은 유다의 동쪽인 암몬 지역의 총독이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게셈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게셈이라는 사람은 예루살렘 남쪽 지역인 아랍 지역의 행정관으로 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요, 유대땅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총독과 관료들이 다 느헤미야를 견제하고 있더라는거예요.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수많은 문제 앞에서 느헤미야는 어떻게 했는가?
11-12절 말씀 보겠습니다.
4일동안 뭐했데요. 기도했어요.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 기도했을까요?
주님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나를 견제합니다. 저좀 살려주세요…
아니요,. 12절 말씀 보니까요, 내가 예루살렘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기도했어요.
느헤미야의 기도는요, 보이는 주적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진짜 적인 사단과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거예요.
말씀을 잘 보면요, 눈 앞에 견제는요,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 같아 보여요.
그런데, 뒤에가서 다르지만, 2장의 내용만 보면요, 그들의 말은 다 무시에 가까워요.
~~
19절보세요.
~~
그때에 20절에 느헤미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느헤미야의 반응.

이들의 견제는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냥 하나님께 맡기더라는거예요.
맡겨야 찾을 것이 있어요.
시편 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잠언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목욕탕에 가도 써 있잖아요. “맡기지 않은 물건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맡겨야 된다는거예요.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맡겼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답을 주시는거예요.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답이 나와요.
맡기다 라는 히브리어의 뜻에는 이런 뜻이 있데요.
큰 돌일 것 같아요 돌을 굴려서 돌을 굴려서 이제 하나님 앞에까지 굴려가는 겁니다
돌을 내 인생의 무거운 짐을 돌이라고 가정해 보시고 그 돌을 들어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굴려서 하나님 앞에 갖다 놓는 겁니다
굴려서 갖다 놓고 거기에 그냥 두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맡기다.라는이 히브리어 언어 속에는 돌이 굴러갈 때 나는 소리도 함께 포함되어 있어요.
돌이 굴릴 때 어떤 소리가 나나요? 털커덕 덜커덕 삐그덕 찌그덕 쿵 이런 등의 소리가 나면서이 굴러가는 돌의 모습을 설명하는게 맞기다라는 겁니다
제가 좀 전에 우리나라 말에도이 단어를 들으면서 소리가 나는 것 같은 단어들이 있잖아요
쿵 삐그덕 그렇잖아요 그런 여유의 단어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 맡길 때 굴러가서 하나님 앞으로 굴려 놓는데 그것 좀 소리가 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 맡길 때 너무 슬그머니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맡긴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맡길때 소리가 날수 있어요.
왜 그러냐면요 그렇게 맡긴 것도 찾아가더라고요 맡겨놓고 찾아가 조용히 내려놓은 건요 또 조용히 집어 가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맡길 때에는
베드로 전서에 나온 것처럼 그냥 하나님 앞에 다 맡겨 버리는 거 나의 너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 버려라 버려라 된다는 것까지 있잖아요
이게 제대로 확 버려져야지 그러니까 좀 소리고 나는 거 같아요
하나님 앞에 맡겨주는 과정이 도를 좀 굴려갈 때 삐그덕 삐그득하듯이 좀 어떤 때는 맡기기도 싫은 것도 있고 이거 맡겨도 되는 고민도 있고
아 이거 지난번 맡겼는데 또 바뀌려고도 되나 이런 고민들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맡기는 무엇을 너의 행사를 다시 한번 너의 행사를 내가 행하는 일들을 내가 인간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성취 여부를 하나님 앞에 비교적 비그득 소리가 나는 모습으로라도
하나님 앞에 이끌고 굴려가서 막힐 때 그때 내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그래서, 맡겨야 되는거예요. 맡길때, 일하십니다.
그런데요, 맡기지 않으면요, 결국 하나님께서 도로 찾아가시기도 하시더라는거예요.
우리가 잘아는 것처럼 성경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부분이 지금의 트루키에 지역이예요.
그런데, 현대 튀르키에 지역이 너무 완전하고 전적으로 무슬림화되어
1975년 이전에는 인구 6천만 명중에서 기독교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75년에는 약 35명이 개종했고, 그 중 절반 정도가 케임브리지에서 틴데일 하우스 대학원 과정을 통해 개종했습니다.
지금은 1,500명 -2000명 정도로 추산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선 언제든지 촛대를 제거할수도 있는 분이세요.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이 멈추지 않고, 맡긴다면… 하나님께선 그곳에서도 일하세요.
현재 이란의 개종율은 놀라울 정도로 높습니다. 마치 무슬림 테러리즘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하 교회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 주마다 세 명의 목사가 죽어요.
개종한 무슬림인 그는 1년에 7~10번씩 출입하는데, 아내와 두 아이를 남겨두고 들어갈 때마다 "내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
오늘 본문에 느헤미야도 맡겼어요.
그러니까요, 답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답이요, 어떤 정치적 움직임이 아니예요.
우리 12절부터 16절까지 읽겠습니다.
~~
보면요, 지금 느헤미야는 야간에 예루살렘을 돌았어요.
그리고, 그 이유는 지금 느헤미야의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는거예요.
그 이유는 자신이 직접 보기를 원했어요. 말로만 전해 들은 내용이 아니라, 지금의 현상황은 있는 그대로 보기를 원했다는 것이예요.
그래서, 전하지도 않은 거예요. 느헤미야가 왕의 조서를 받아서… 왔고, 마을을 순찰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다들 바빠지겠죠.
준비하잖아요.
왜 가정 심방 받기를 꺼려하십니까? 있는 그대로를 보이기 싫어서 그렇잖아요.
우리가 코로나때, 영상으로 예배도 드리고, 소그룹 모임도 하다보니까,
자기방이나, 자신의 집이 공개되는 부분들이 부담스러워 하시는거예요.
그래도, 준비할 시간이 있잖아요.
어제 뉴스에서 화제가 된 일이 하나 있어요.
18일날 윤석렬 대통령이 양제 하나로마트를 방문했어요.
그런데, 대파 한단의 가격이 875원으로 찍혀 있었어요.
그런데, 뉴스에서 보도하기로는 1주일전부터 대파 가격이 내려갔다고 하더라구요. ^^
준비했다는거예요.
대통령도 있는 그대로를 보기를 원했지만, 준비하고 있더라는거예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정치적 어떤 사견이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냥 뉴스에 나온 내용이예요.
느헤미야도 마찬가지였을꺼예요.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길 원하시는 거예요.
그래야 진짜 모습이 보이는거든요.
그래서, 느헤미야는 야간순행을 나선거예요.
오늘 본문 13-15절에 나오는 ‘보다’ 라는 단어는 의학 용어라고 합니다.
그래서, 쌓쌓이 보고, 직접 확인했다는 거예요.
우리의 신앙의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감추면요, 절대 해결되지 않아요.
온전히 주님께 기도할 때,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기도할때, 주님께서 일하여 주십니다.
주님 나에게 이 어려움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지혜를 누가 주셨는가? 하나님께서 기도할때, 허락하셨다는거예요.
그래서, 느헤미야는요, 믿고, 맡겼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그 결과, 52일만에 완전히 무너졌던 성벽을 회복하게 됩니다.
https://youtu.be/wGzW9trHmtM?si=bxryMwOvMfm2Y1Ei 29:00
존 에거
맡기고, 순종하면… 이런 평안함이 오는거예요.
성경은 계속 이야기 하잖아요. 맡기라는거예요.
맡기시고,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럴때, 주님께서 우릴 통해 일하시는거예요.
우리 아까 함께 찬양했던 same god이라는 찬양의 가사를 보면요,
성경의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이예요.
야곱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 다윗의 하나님. 마리아의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고, 바다를 가르시고, 골리앗을 무너트리고, 낮은자를 들어 쓰시는 그 하나님이
성경속의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처럼 믿고, 기도할때,
그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일하신다는거예요.
그리고, 후렴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 나의 하나님을 지금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이저녁이 그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시간 되길 원합니다.
오늘 이저녁에 그 주님께서 일하시는 밤 되길 원합니다.
우리 이런 마음으로 함께 고백하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일하시고, 치유하시고, 구원하시는 그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기도로 준비하고, 답을 얻었다.

러디어드 키플링의 유명한 시를 아시나요? "영국만이 아는 영국에 대해 그들이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문화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문화를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도시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도시를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자신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관점입니다.
하나님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삶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기 전까지는 삶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철학자들은 그것을 인정합니다. 이 삶이 전부라면, 죽으면 썩고 태양이 죽으면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아무도 남지 않는다면,
결국 당신이 착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그것은 모두 의견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이 삶이 전부라면 이 삶은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당신부터 시작한다면 당신은 결코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삶을 넘어설 때까지 삶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당신에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을 넘어서지 않으면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가 말한 것처럼 "...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니..."라고 말할 수 없다면 이 삶은 결코 위대하게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목숨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있기 전까지는, 죽을 가치가 있는 무언가, 죽을 가치가 있는 많은 것들이 있지 않는 한 인생은 당신에게 더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며, 복음은 어쨌든 당신을 무너 뜨린 자기 중심성에 대해 무언가를 할 것을 처음부터 요구합니다.

말씀대로 반응하라

이제 느헤미야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12절 부터 읽겠습니다.
정치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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