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22. 금요기도회 설교 (단 9:17-2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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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안에 있는 회복”
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20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21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성도님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다니엘 9장을 가지고, “예수 안에 있는 회복”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서론 -
설교를 시작하면서, 지인의 이야기를 가지고 시작하길 원합니다.
이 분은 - 40대 중반의 가장으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좋은 직장(호텔신라)을 가지고,
좋은 집도 있고,
청년부 시절에는 회장을 할 정도로 신앙심도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갑자기 귀에 이명이 생겼고, 어지러움 증세를 호소하면서,
여기 저기 병원을 다녀보았지만, 뚜렷한 병명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 받아서 약을 먹으면서, 가장이기 때문에, 직장을 관두지도 못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를 볼때마다,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분은 여러 가지 스트레스 때문에, 공항 장애가 온 것 같습니다.
2022년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최근 5년간 꾸준히 “우울증 환자와 불안장애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17년도에는 병원을 찾은 우울증 환자 – 69만명 + 65만 = 134만
2018년도 – 76만명 + 71만 = 145만
2019년도 – 81만명 + 74만 = 155만
2020년도 – 85만명 + 78만 = 163만
2021년도 – 93만명 + 86만 = 180만
이 추세라면, 병원을 찾는 우울증 환자 + 불안장애 환자가 200만명을 넘었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사실 우리가 병원에 가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 모두 마음에 불안과 염려의 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가 살기는 좋아지고, 먹는 것은 걱정이 없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계속해서 / 불안하고/ 우울하고/ 더 병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등부 선생님 중에 심리상담학 박사님이 계신데요.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이런 마음의 치유가 필요하신분들이
계속해서 오신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죠?
아까 지인의 이야기도 저의 가족 중에 한 분의 이야기이고,
우리 모두 이런 문제가 가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제 - 그래서, 저는 오늘 다니엘 9장의 말씀을 가지고, 말씀에서 해답을 찾기를 원합니다.
본론 - 우리가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수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육체적으로 아픈 사람들과 ,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일례로, 마가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 귀신들린 사람들 고쳐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마가복음 1:34 “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런 이적을 보여주신 것이 - 단지 이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을 통하여만 가능하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 사복음서에는 이렇게 / 예수님께서 회복시켜 주신사람들이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이런 “회복 사역”이 오늘 다니엘서 9장의 말씀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 9장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다니엘 9장은 다니엘이 하나님께기도한 내용 (1-19절)과
기도 응답 (20-27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를 읽어 보면/
우리의 기도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번째, 다니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1-2절 / 같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성경에는 - “아하수에로” 라는 단어와 “다리오” 라는 단어가 다른 시대의 왕들에게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단어들은 사람 이름이 아니고
“페르시아 왕들이 사용한 왕들의 호칭입니다”
애굽의 왕들을 - 바로라고 표현하였듯이
페르시아 왕들을 어떤 사람은 자신을 아하수에라고 불렀고,
어떤 사람은 다리오 라고 불렀고,
어떤 사람은 아닥사스다 라고 불렀습니다.
여기/ 다리오가 갈대아 왕 (바벨론 왕으로)세움을 받던 첫해에 /
다니엘이 말씀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때가 언제냐 ? 주전 538년입니다.
이때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은 바벨론이 망한 것을 보고 /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9 장을 같이 보겠습니다.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기서 포로로 끌려간 사람 중에 다니엘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이 말씀을 어려서 읽어 보았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겠죠?
70년이 너무 긴 시간이라서 아마도 희망을 가지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정말 바벨론이 망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을 보고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적용) 그런데요. 우리가 참 말씀을 아는 것 같으면서도
우리는 말씀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는 머리로는 아는데요.
마음으로 깊은 깨닮음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2. 오늘 본문을 보면/
다니엘은 말씀의 깨닫고 + 더 나아가서 완전한 말씀의 성취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같이 읽지는 않았는데요
4절 부터 19절까지 내용을 읽어보면, (요약)
우리가 하나님앞에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고,
우리가 수치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치를 당한 것은 당연한 죄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11절을 보시면
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주의 긍휼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18절 보시면,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다니엘이이 지금금 무엇을 위해서서 기도합니까까?
자기기 출세를 위해서 기도합니까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회복, 파괴된 예루살렘 성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17-19절을 보겠습니다.
다니엘 9:17–19 (NKRV)
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다니엘의 기도를 보십시요?
무엇을 위해서 기도합니까?
바벨론을 잡혀올 때에 파괴된 성
/ 70년간 방치된 성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니엘의 기도를 귀하게 보았으면
하나님께서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할 때에에 이미 응답을 준비를 하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4. 이런 기도의 응답으로 / 하나님께서 70이레의 응답을 주십니다.
23절-2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다니엘 9:23–27 (NKRV)
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여기보시면/
다니엘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데요.
하니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세 기간을 정하셨다 라고 말합니다.
just as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데에 7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였듯이/
이제 우리들이
영원한 성 예루살렘,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거처로 돌아오는데에 70이레를 정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깨닫기 위해서, 이 세 기간 (7이레, 62이레, 한 이레)을 알아야 겠습니다.
히브리 원어로 보면/ 70 이레 = 70 7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일흔 번씩 일곱번 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70 이레를 = 490년 이라고 해석하면서 숫자를 역사 속에 끼워 맞추려고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성경 말씀의 문맥내에서 해석하는 것이 바른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1) 첫번째 기간이 7이레 - 예수살렘 성이 중건되는 기간입니다.
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2) 두번째 기간 62이레이후에 - 예수님이 오셔서 죽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6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기름 부음 받은자 = 메시아를 말하며/
우리가 잘 아는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였습니다.
3) 세번째 기간 한 이레 동안 - 예수님이 언약을 세우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실제로 예수님께서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동물 제사를 폐하셨습니다.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 장을 보면은요 /
모형 (그림자)와 실체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이 있고 /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이 있습니다.
옛 언약이 있고 새언약이 있습니다.
옛 언약으로 성막을 짓고, 제사 제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모형이고 그림자라는 것 입니다.
동물의 제사로 완전한 속죄를 이룰 수 없습니다.
진짜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성전도, 제사도, 모두 예수님이 이루신다는 것이 새언약 입니다.
9장 1- 10절까지 눈에 보이는 성전과 제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1-12절에서/ 실체 되시는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다라고 말합니다.
15절 을 보면/ 예수님을 새언약의 중보자라고 말하고 있어요.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다니엘서의 한 이레의 언약이 / 히브리에서 / 예수님으로 인해 이루어졌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기도응답을 하고 있는 것을 보십시요.
그동안 온전하지 못한 제사들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완전히 회복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니엘 9 장은 예수님을 인한 완전한 회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1) 하나님은 1차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전 재건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에스라, 학개를 통하셔 스룹바벨 성전을 재거하시고, 느헤미야를 통하여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다니엘의 기도에 응답해주었습니다.
2) 그리고 궁극적이고 본질적으로 우리들의 완전한 회복을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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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설교 제목을 “예수 안에 있는 회복”이라고 정했습니다.
이렇게 정한 이유는 오늘 본문 말씀이 “회복이 예수 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 제기) 우리는 예수 없는 회복을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설교 서두에 현대인들이 많이 정신적인 문제, 마음의 질병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병원도 찾고, 심리상담도 받고 여러가기 해결책을 찾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우리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적용 ) 제가 설교시간때 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이었습니다.
내가 죄를 지으면 - 그대로 나에게 벌을 내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무서워서 주일 성수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주일 성수 안하면 나에게 벌을 내릴 것 같았거든요.
이런 신앙 생활이 나에게 무슨 기쁨을 가져다 주었을까요?
나에게 신상 생활은 커다른 짐, 무거운 짐에 불과하였습니다.
‘
나의 행위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어보려고 한 것이죠.
나중에 깨닫고 보니까/ 이것은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마음에 쉼을 얻고, 기쁨을 찾은 것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입니다.
제가 원해서도 아니고, 주님께서 나에게 찾아와 주셨습니다.
진정한 회복을 원하십니까?
신앙 생활에 기쁨? 마음에 안식? 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오직 예수 안에만 있습니다.
오늘 다니엘서는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를 보십시요.
“하나님 우리를 긍휼이 여기시고,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회복시겨 주십시요”
“다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해주십시요!!!”
하나님은 그 회복이 예수 안에 있다고 70이레의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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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회복을 경험하기 위해서? 기억해야 하는 것?
1. 내 기도는 “주를 위한 기도인가” “나를 위한 기도인가” 질문해 봐야 합니다.
다니엘 9:17–19 (NKRV)
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19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다니엘 기도를 보면/ 자기를 위한 기도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악이 많고/ 그로 인하여/ 예루살렘이 황폐하게 되었는데
주를 위하여 회복시켜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내가 먼저가 아니고/ 주가 먼저 라는 것입니다.
(요즘 대심방)중입니다.
대심방 하면서 제가 은혜 받을때가 많습니다.
어떤 권사님(오)께서 예수 믿고/ 기도를 하는데요.
내 모습을 보니까 도저히 덕이 안되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요.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지금 이 모습 이대로는 도저히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말을 할 수 없으니
저를 좀 변화 시켜 주십시요.
제 성격도 바꿔주시고, 내 마음도 변화 시켜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해요.
권사님께서 그러시는데요. 예수 믿고 정말 많이 달라졌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또 어떤 집사님은
몸을 쓰셔서 일을 하시는데요.
오른쪽 팔이 너무 아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주님 제 팔이 아프니까 제 팔좀 낫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할때가 많아요.
그런데 이 집사님은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해요.
주님 이번주 안내 봉사를 해야 하는데요.
제가 팔이 아프면 안내 봉사를 못합니다.
주님 제 팔이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해요..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다 부족하고 약해서요 -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지 몰라요
말씀을 듣고 기도하다가/ 또 하다보면/
나만 살려달라는 기도를 할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죠.
늘 주님 먼저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2. 우리는 얼마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는가?
다니엘은 기도의 시작부터 말씀을 깨닫고 기도하였고/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의 시작도 말씀이었고, 기도의 과정도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의 끝(응답)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합니까?
우리가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상 숭배의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 27절을 보시면
다니엘 9:27 (NKRV)
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이것을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면서요.
다니엘서 이 본문을 인용하고 있어요.
뭐라고 말합니까?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이 말씀은 본질적으로 “가증한 것” = “우상 숭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역사속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고, 그 성전은 AD 70년에 완전히 파괴되어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무슬림 사원이 서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 성전은 아무 의미가 없죠.
성경은 우리 =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에는 말씀으로 가득해야 하는데,
그 성전에 말씀이 없고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Key point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우리 마음에 우상이 가득하면/ 진정한 회복이 있을 수가 없어요.
오히려 우상 숭배로 인하여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 전도회가 우리 셀이 우리 가정이 얼마나 예수 안에서 화목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전도회 회원 한 명 한 명이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해서 -
내가 죄인 중에 괴수 인것을 알고/ 내가 우상 숭배자인줄 알고 /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꿇는 심정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우리 전도회 “회복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죠.
우리 가정이 말씀으로 가득하다면, 서로를 사랑으로 섬기고, 긍휼이 여기면
우리 가정 “예수 안에서 회복”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회복을 경험하기를 원하다면
말씀을 깨닫고, 말씀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3.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하나님의 성전 다움에 간절함이 있는가?
다니엘의 기도를 자세히 보면/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기쁨보다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
이제는“회복되어야 한다”는 그런 무거운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3절에 보면/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라고 말합니다.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여기 금식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때를 쓰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 자기가 필요한 것을 들어줄때까지 기도하려고 금식을 한다고 하는데
그런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한 죄를 슬퍼하는 기도였고/ 회복시켜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적용) 우리는 어떻씁니까?
다니엘 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 회복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까?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으로 완성이 되었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예수 안에 있고, 예수님과 연합된 사람들로서
우리의 삶의 모습속에/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다닐엘이 이야기하는 황폐한 성소라는 것입니다.
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우리 안에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황폐한 성소이고
우리 안에 용서가 없으면 - 우리는 황폐한 성소입니다.
우리 안에 우리 마음이 우상으로 가득차 잇으면 - 우리는 황폐한 성소입니다.
오늘 이런 것들을 놓고 기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의 관계의 회복 없이?
우리 주변의 형편들만 좋아기를 원한다면/
이것이 우리가 황폐한 성소라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 주님과의 관계에 더 집중하며/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위해서 기도하였으면 좋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