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장 1-11절 (하나됨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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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이 두달이 지났습니다.
연말연초에 세웠던 계획들은 아직 잘 지키고 있습니까?
항상 매년 세우는 계획들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영어 공부 입니다.
올해는 영어공부를 좀 열심히 해보자…라고 하지만 10년 넘게 계획과 결심만 하고 있습니다.
10년을 진짜 공부 했으면 미국 사람들보다 더 잘할 텐데 이제는 한국어도 잘 안됩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나름대로 올해 어떻게 공부하고, 취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무엇을 하고, 적금은 어떻게 넣고 등등의 많은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또한 신앙의 계획들도 세웠을 것입니다.
올해 성경 일독하기, 예배 빠지지 않기 등등의 나름대로의 계획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여러분들이 속한 이 공동체를 위한 계획은 세우셨습니까?
길회, 엘림, 장전중앙교회, (중고등부) 를 위해 여러분들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 계십니까?
올 한해 내가 속한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자, 아니면 친구가 만나자 해도, 결혼식이 있어도 무슨일이 있어도 예배의 자리는 꼭 지킨다 등 의 결단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하여 어떤 모습으로 섬길지, 어떤 헌신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를 알고 그것을 실천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마 우리의 실상은 이것과는 좀 더 멀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조장은 죽어도 안해야지, 맨날 불러대고, 챙겨야 되고 … 너무 싫어
적당히 해야지 깊숙히 관여하면 힘들고 골치 아파,, 내 할일도 많은데 대충 예배만 잘 드리면 되지….
오늘 본문은 바울을 통하여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에 합당한 교회와 성도의 삶에 대하여 권면 하고 있습니다.
이 서신을 쓰는 당시의 빌립보 교회는 공동체의 미세한 분열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 입니다.
로마감옥에 갇힌 바울을 돕기 위해 특별헌금을 하여 지도자였던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바울을 도우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연락도 없고, 에바브로디도는 잠적해버렸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로마로 가던 길에 거의 죽을 뻔하였기에 에바브로디도의 로마 도착은 생각보다 많이 늦어졌습니다.
알길이 없는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걱정하는 쪽, 비난 하는 쪽, 바울을 왜 돕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생겨나면서 미묘한 갈등으로 번질 위기에 쳐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의 연합에 흠집이 날 수 있는 상황을 감지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돌려보내면서 서신을 써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하나됨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를 권면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공동체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본문 1절 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공동체가 하나 되기 위한 첫 출발점이 바로 1절 말씀에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너희 교회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어떤 모습인가? 를 살펴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그리스도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큰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말씀의 권면과 사랑의 위로와 성령의 교제와 긍휼과 자비가 임하고 있는 기쁨과 은혜가 흘러 넘쳤습니다.
복음을 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제 2의 로마라 불리면서 다양한 특권을 누리는 빌립보 였지만, 모든 특권을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포기한 자들입니다.
이렇게 받은 은혜를 어떻게 하면 완성할 수 있습니까?
2절 입니다.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이것이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2절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교회는 한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마음을 같이 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사랑을 서로 베풀어야 합니다.
한 뜻을 가지고 화합하여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한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갈망하며 기도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제가 지금 보고 있는 책의 첫번째 챕터의 제목이 이것입니다.
서로 싸우지 말고 서로를 위하여 싸우라
얼마 되지도 않는 이 안에서 우리끼리 서로 갈라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한 덩어리가 되어서
영적인 성장과 복음에 적대적인 자들에 승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는 공동체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먼저 3절 입니다.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우리 안에 다툼이나 허영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의 문제는 어떤 경쟁심을 유발하는 집단을 만들고 그 안에 속하여 자기 자신이나 집단의 유익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무리를 지어 또한 나누어 서로 싸우지 말라고 합니다.
예전에 다녔던 교회에서 자신들의 무리에 들어오지 않으면 왕따를 시켰던 공동체에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잘 지냈는데, 교회를 다니다 보니 소외된 자들이 있어서 그들과 교제를 나눴습니다.
그랬더니 저한테 그들과의 관계를 끊고 자기들과 친하기를 원하고, 모일 때 마다 다른 사람 뒷담화를 까는 것을 보고 아예 손절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다툼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서 우리가 더 높다, 아니면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에 대한 시기와 분노와 질투를 하는 허영의 모습도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교만은 공동체를 무너뜨리지만, 겸손은 공동체를 건강하고 바르게 세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는 4절 입니다.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자기의 일을 잘 돌보라 는 소극적 의미 입니다.
스스로를 3절에서 권면하는 다툼과 허영의 중심에 있지 않는지를 잘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적극적 의미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공동체와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라는 것 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견의 불일치가 있고, 마음이 잘 안맞을 때 무조건 들어주라, 동의하라 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참아주고 세워줄 의무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참 모습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서로의 차이점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5절입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겸손한 마음,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 공동체를 위하여 자신의 고집과 경험을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이 우리가 품어야 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주님이 우리에게 먼저 보이신 모습입니다.
6절 에서 부터 8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은 하나님의 본체, 하나님의 형상 이십니다.
골로새서 2장 9절 입니다.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주님은 곧 하나님 이십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낮고 천한 세상에 오셨습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고,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그 생명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주님은 단 한번도 다툼과 허영을 보이지 않으셨고, 단 한번도 사람들을 천하게, 낮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이 모습은 지금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 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이, 모습이 어떠하든 단 한번도 천하다고 생각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위해 고난과 생명을 주시기를 기뻐하셨고,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겸손의 왕이십니다.
우리도 주님의 낮고 천한 이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하는 자들입니다.
주께서 주신 교회와 공동체가 주님의 사랑과 한 마음으로 한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우리의 수고와 헌신과 낮아짐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공동체에 높아져야 할 것은 나의 생각과 목소리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이 은혜로운 고난의 길을 그냥 걸어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서로를 사랑하고 세우기 위해서는 굳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사람을 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힘이 듭니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올해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혼은 하면 좋고 안하면 더 좋다.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겠습니까? 결혼을 한다고, 혼인신고 한다고 가정이 세워지고 화목해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책임을 져야 하고, 포기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결단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 결혼했을 때 안맞는게 많음.. 특히 난 이성적, 감성적인 사람의 충돌
밥 양도 충돌(어디 갈때 본인 밥 양 만큼 얼려 놓고는 두 개 먹었다고 뭐라함) , 야식 못먹게 함, 본인 라면 반개 끓여 먹으니까 둘이 먹는데 라면 하나 끓여 먹음…밥 말아먹는다고
어제 저녁에 둘이 수림식당 갔는데 탄탄면에 가지만두는 국룰이며 근본인데 배 안고프다고 안시켜 줌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엄청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공동체도 그렇다.
서로 다른 배경, 삶과 생각을 가진 사람이 모여 있다.
당연히 다투기도 하고, 마음에 안맞다.
그런데 기억하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생명으로 하나된 자들이다.
힘들고 자존심 상하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됨을 위해 애써야 하고, 그리스도의 겸손을 닮아야 한다.
성육신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겸손의 결과가 어떻습니까?
9절에서 부터 11절까지 읽어봅시다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예수님의 낮아짐의 순종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높이시고 모든 이름위에 가장 뛰어난 구원의 이름으로 세우셨습니다.
이 원리 또한 똑같이 교회에도 적용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고 닮아가며, 겸손함으로 교회를 섬기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교회와 공동체를 높이 십니다.
교회가 높아지는 방법은 낮아질 때 가능합니다.
세상의 방법을 쫓아 스스로 높아지려 한다면 하나님은 교회와 공동체를 낮추십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아니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자들로 인해 공동체가 분열되고 힘들어진다면,
반대로 이기적인 욕망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순종과 마음을 배워 하나됨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을 높이시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공동체를 세워나가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 뜻 앞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힘들고 자존심 상해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마음을 닮아가는 한 사람이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속한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공동체, 겸손과 자기희생적 사랑으로 하나되는 공동체를 꿈꾸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본체와 본질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것처럼, 교회 안에 예수그리스도를 우리가 보여주어야 합니다.
축구 국대 문제로 시끄럽다.
아시안컵에서 선수들간의 내분과 다툼이 있었다는 말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난리가 났다.
결국 요르단과의 4강을 이것 때문에 망쳤고, 협회도, 감독도, 선수도 서로 탓하면서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 문제는 이들이 국가대표로 나라를 대표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더 시끄럽죠
그런데 우리도 똑같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복음의 대표자들입니다.
교회 또한 하나님이 복음과 사명을 위해 세우신 대표기간이며, 우리가 속한 공동체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질타를 받지 않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복음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중보하는 믿음의 원팀이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를 위한 불평 불만을 하기 전에 먼저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는 하나된 공동체를 위해
주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우리 모든 지체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