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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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뜻 : 생명을 살림.
말씀의 뜻 : 생명을 살림.
지난 주에 살펴본 일: 안식일의 의미. 사람을 쉬게 하고 너무 괴롭지 않게 하려는 것. 다른 말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생명을 살리고 질서를 바로 잡고 그럴 때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잊지 말자.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고 또 회복시켜 새롭게 하시려는데 엉뚱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사람의 욕심과 죄성이 이걸 거꾸로 바꾸어 놓는다. 겉은 그대로 유지하고 지키는 듯하지만, 사실은 본래의 의도와 뜻을 거꾸로 하는 경우도 있다.
도리어 바른 믿음이 되지 못하면, 평안과 치유, 회복을 뜻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사람을 살리는게 아니라 죽게 할 수도 있다.
말씀의 왜곡 : 생명을 죽임.
말씀의 왜곡 : 생명을 죽임.
오늘 본문도 보라.
고발하려 하여(2절) - 회당에는 말씀 듣고 기도하러 가야지 왜 고발하러 들어가는가?
고치는가 주시하고 (2절) -
자기들 기준에는 고치면 안된다. 안식일이니까.
아주 고소하고 죽이려고 유심히 보고 있었다.
“주시하고 있거늘” -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계속 보고 있었다는 일이다. 사람을 살려야 할 안식일에, 쉼을 주고 즐겨야 할 안식일에 이런 짓을 하고 있었다. 말씀에 눈을 떼지 않아도 부족할 판에 말이다. 늘 가난하고 아프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눈이 가있어도 아쉬울 상황에 말이다.
우리는 마음 속에 바르지 못한 욕구가 생길 때 주의해야 한다. 그것이 나를 해칠 수 있다. 잘못된 욕구는 그릇된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런 행동이 사람과 사람, 상황과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어 치명적으로 만들 수 있다.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사람들의 생각.
1. 자기들만 인정받으려, 인기와 존경을 받으려 함. - 육심: 자기가 큰 자, 하나님이 되려는 마음이다. 하나님을 높여야 하는데, 자기가 커지고 높아지려고 한다. 별 생각 안하다가도 다른 이의 인정받음을 견디지 못할 때가 많다.
2. 죄 - 하나님의 뜻과 다른 것을 행동함.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하는데, 자기가 앞서려 한다. 사람 살리려는 뜻이 있는 하나님의 안식일을 도리어 미워하고 죽이는 일을 만듦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신앙이라는 주제로 우리는 스스로 점검해 보자. 말씀이든 믿음에 관한 무엇이든 내가 잘나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가, 아니면 그것이 습관이 되지 않았는가?
3. 사망: 예수님 죽이려 하지 않는가?
미워하면 죽이고 싶은 것이다.
왜곡된 믿음은, 아예 믿음 없음 보다도 훨씬 더 큰 죽음과 상처를 남긴다. 가장 큰 증오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이른바 “믿음”이다. 나에게서도 그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말씀의 회복
말씀의 회복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조금 바꾸어도 좋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 나만 드러나려고 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세우고 칭찬해 주는 것 무엇을 기뻐하실까?
갈등이 생기고 미움이 생길 때 우리는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살다가도 꼭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말씀이 무어라 하시는가, 말씀의 기준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끊임없이 성찰하면 너무 멀리 길을 잘못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누구에게 속한 자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놓치게 되면 너무 멀리 길을 잘못 든다. 그저 나에게 익숙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생각하면 안된다.
말씀을 거부함
말씀을 거부함
마음의 할례를 받으면, 마음이 무른 사람이 되면 사인을 주셨을 때 금방 알아듣고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는데, 지금 회당에 온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바로 수정하면 좋은데 완악하면 너무 멀리 돌아간다.
“완악함” - 마음이 굳어져서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말씀이다.
신명기 30:6 (nkrv)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굳어진 마음, 굳어진 귀를 무르게 해야 한다. 마음 바꿀 줄 모르고, 말씀 들을 줄 모르는 것이 굳어진 마음과 귀다.
10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마음 - 생각을 바꿀 줄 모름.
귀 - 그냥 흘려들음.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지 못함. 계속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이 아니라 고소하고 미워하고 사람 죽이는 마귀 나라 백성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도 그러하다. 미워함에 갇혀 있으면, 그것에만 열심을 내면…가장 큰 은혜와 행복의 순간이 거꾸로 된다. 지혜를 가지자 믿음을 보이는 것으로 완전히 반대의 역전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우리에 대해서도 예수께서 슬퍼하고 탄식하지 않으시겠는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데도.
말씀으로 회복시키심
말씀으로 회복시키심
그런데 새삼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화가 나서 주변을 둘러 보셨는데,
막상 손이 마른 사람을 어떻게 고치셨는가? 말씀으로!
하나님의 스타일, 예수님의 스타일이 그러하다.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 진다.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 진다!
말씀하셔도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완악한 마음이 문제고 우리의 믿음이 문제다.
예수님의 스타일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안식일을 어기셨는가? 어기지 않으셨는가?
예수님의 의도와 보이시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3절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사람들이 책잡을 수 없이. 예수님은 말씀만 하셨으니까.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한 것이다.
낫고 회복되고, 건강해 질 수 있는 자리를 더 다치고 상처입으며, 서로 죽이려는 자리가 되면 되겠는가.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