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3주일예배_신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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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역사

Deuteronomy 34:1–9 NKRV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오늘 본문 말씀은 모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모세가 그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이르러 그 땅을 목전에 두고 죽음에 이르렀을 때 그를 대신하여 여호수아가 지도자로서 몫을 감당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왜 그토록 온 평생을 다하여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혼신을 다했던 지도자가 그 약속의 성취를 맛보지 못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야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본문 말씀을 보면, 모세가 죽을 당시 120세이기는 했지만 눈이 흐리거나 기력이 쇠하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소위 ‘연로한 나이에도 정정하게 정력적으로’ 백성들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몫을 감당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그를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항상 떠오릅니다. 우리의 이런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실마리가 신약성서 히브리서에 나옵니다. 아마도 성서시대의 저자들도 우리와 비슷한 의문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에 관한 장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이렇게 시작되는 이 말씀은, 믿음의 조상들의 본보기를 하나하나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벨에서 시작하여 아브라함, 그리고 오늘 본문의 주인공 모세, 그 다음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 히브리서 저자는 “다 열거하자면 시간이 모자랄 판”이라고 하면서 믿음의 선진들의 본보기를 말합니다. 그리고 39~40절에서 결론을 내립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좋은 증언을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이 39절의 말씀은 오늘 우리의 의문을 다시 확인해 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만큼 믿음이 확고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보상을 해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까닭을 40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두셨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가 없이는 완성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이 마지막 결론이 바로 우리의 의문을 풀어주는 실마리입니다. 결국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살았으나 그 희망이 자신의 세대에 완전히 실현됨으로써 끝난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우리들’에게 그 완성이 맡겨져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히브리서에 말하는 ‘우리들’이란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 ‘우리’는 오늘 우리의 입장에서는 바로 ‘오늘 우리’를 지칭합니다. 역사의 사명을 계속 이어가야 할 종말론적 주체로서 ‘우리’입니다. 이 ‘우리’란 어떤 한정된 시대에 제한된 대상이 아닙니다. 언제든 이 역사를 지속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이러한 의식은 ‘철없이’ 또는 ‘순진하게’, ‘역사의 종말’ ‘역사의 완성’을 말하는 발상을 거부합니다. 이 역사는 지속되고 있고, 그 역사의 맥을 이어갈 주체는 항상 부름을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매번 새로운 시점마다 새로운 주체들이 역사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당대에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 바꿔 말해 ‘당대에 헌신한 이들이 당대에 완전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계속되는 역사의 사명’을 일깨웁니다. 그것은 지금도 진행중인 역사,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통찰이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 ‘남은 여백’을 통해 우리를 불러 세우십니다. ‘당대에 내가 모든 것을 다 이루겠다’ ‘그 결과를 꼭 맛보겠다’는 의식은 항상 위험한 사태를 초래합니다. 과도한 욕망 때문에 순리를 따르기보다는 무리를 범합니다. 권력을 절대화하고 체제를 절대화하는 것이 다 이런 발상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이 사람 사이를 병들게 하고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혼자서 당대에 다 이룰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니까 사람들이 그 대체방편으로 ‘세습’을 도모합니다. 여백을 남겨 넘겨주고 이어받는 것이 순리를 따르는 방식입니다. 물론 때로 진취적인 발상이 필요하고 자를 것은 자르고 이을 것을 잇는 과단성이 필요하지만, 그 모든 일이 당대에 완전히 성취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은 모세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젊은 여호수아에게 역사적 소임을 넘겨주는 사건을 전하는 오늘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 그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심지어 ‘다 이루었다’고 선언한 것으로 알려진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다시 오시겠다고 했습니다. 이 사실은 아직도 남은 여백이 많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제 그 동안 함께 하던 시간을 마무리하고 각자의 새로운 길을 찾아 흩어지게 됩니다. 여기는교회로 뭔가 눈에 보이는 결과를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이제 우리는 새로운 걸음을 위해 출발합니다. 여기는교회에서 함께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들을 기억하며 이제 결핍을 채워줄 새로운 공동체와 함께 해 나갈 과제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과거의 답습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추모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새 하늘 새 땅을 바라는 희망의 공동체인것처럼 오늘 새로운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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