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④ - 주님을 맞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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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들어가며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함께 예배 드리는 이 시간, 우리가 그냥 왔다 가는 것이 아니라, 또 아무런 기대 없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마음으로 활짝 열고, 기대와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나아갈 때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분명히 있을 줄로 믿습니다.
계속해서 3월 한 달은 예배의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저번 주 말씀을 기억하시나요? “삶, 일상의 예배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눴었죠. 예배는 교회 안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일상의 자리에서도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했었습니다. 이번 한 주를 보내면서 삶의 예배자로 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일에 말씀을 듣고 결단은 하지만, 막상 삶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 예배자로 사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고통스러운 문제들을 바라보면 예배자로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삶의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 혹시 오늘이 어떤 주일인지 아시나요?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이 종려주일,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사건을 보면서 계속해서 나누고 있는 예배의 주제로 비추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주님을 맞이하라”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맞이하고 계신가요? 예수님을 맞이한다는 건 어느 한 날만이 아닐 것입니다. 매일의 삶 가운데서 예수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 주님의 날에 아침을 시작하고 예배의 자리에 나오면서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한 번 상상을 해보았을 때,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맞이하고 있나요? 오늘은 이 맞이하는 모습을 보며 예배에 비추어 보려고 합니다.

본문의 내용

오늘 우리가 함께 보았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때 주위를 보니 제자들이 환호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도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제자들과 예루살렘의 군중들은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열렬히 맞이하였던 걸까요?
그리고 또 이 장면이 넘어가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그날, 기쁜 날인 것 같은데 예수님께서는 왜 눈물을 흘리셨을까요?
1. 열렬히 예수님을 맞이한 군중과 제자들
먼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그 사건 가운데 예수님을 환영했던 제자들과 군중들의 모습을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이들의 마음은 분명히 기뻤습니다. 그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환영했죠. 그런데 그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것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그렇게 맞이하였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로 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을 주신 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럼 그들이 기대하는 메시아는 어떤 메시아, 어떤 구원자냐? 한 마디로 잘 먹고, 잘 살게 해줄 구원자로 여겼습니다. 과거 다윗의 때, 솔로몬의 때 어떤 나라도 꺾을 수 없었던 부강한 나라를 회복시켜 줄 구원자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당시의 상황을 보면 강대국인 로마 제국의 압제 하에 있었죠. 곧, 이스라엘은 굉장히 암울한 상황에 있었고, 먹고 사는 것이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들은 구약의 말씀에 기록된 구원자를 계속해서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그들의 환호는 죽음에서 생명을 주신 메시아로 환영한 것이 아니라, 잘 먹고 잘 살게 해줄 구원자로 예수님을 맞이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라고 달랐을까요?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니까 다를 것 같죠. 그렇지만 그들도 별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군중들과 달리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수 많은 놀라운 기적들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죠. 그럼에도 그들은 그러한 기적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예수님이 오신 진정한 목적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한 예로, 베드로는 예수님이 이후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을 때,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강한 어조로 말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놀라운 일들은 수도 없이 경험하였지만, 오히려 그런 놀라운 일들을 직접 보니 그들이 갖고 있었던 기대에 훨씬 확신을 더했을 것입니다.
2. 예루살렘을 바라보시고 우시는 예수님
그렇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면서 눈믈을 흘리십니다. 왜 우셨을까요? 방금 우리가 보았던 그들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시는 마음과 동시에 안타까움으로써 눈물을 흘리셨던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확인을 해볼까요? 42절부터 44절까지 말씀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42절 말씀에서 보았지만 그들은 평화에 관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관심이 없었던 것이었죠. 그래서 그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나오는 43절에서 원수들이 그들을 에워싸고 포위한다고 말합니다. 44절에서도 그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짓밟힘을 당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온 때를 그들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예루살렘은 70년에 무너지게 되는 비참한 일을 마주하고 맙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우리가 보았던 본문의 내용입니다.

삶의 적용

1.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예배에 대한 주제로 비추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예배에 임하는 자세를 오늘 말씀에 비추어 보려고 하는데요. 먼저는 오늘 말씀에서 보았던 예수님을 환영했던 제자들과 군중들의 모습입니다. 앞서 말씀을 나누어서 알겠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진정한 목적을 보고 환영한 게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욕심, 자신들의 안위를 위한 환영이었죠.
오늘 말씀을 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벗고 길거리에 펼쳤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왕을 맞이할 때 예를 갖추는 모습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자신들을 구해줄 왕으로 생각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환호하며 찬양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모습을 볼 때 참 안타까운 모습으로 느껴지는 것이죠. 동상이몽이니까요.
그런데 여러분, 이 모습을 볼 때 참 안타깝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예수님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 예배의 자리 가운데 그들과 같은 모습 조차도 없지는 않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유익을 위한 구원자로 맞이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예를 갖추고, 기쁨으로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아무런 마음이 없이 올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마음, 기대 없는 마음으로 가득한 모습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예배를 빠지는 것을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예배의 자리에 와서도 졸거나 핸드폰을 하거나, 다른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그런 모습이라면 오늘 우리가 보았던 어리석고 안타까운 그들의 모습들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이죠.
2. 욕심으로 가득한 모습
두 번째로 우리가 생각할 것은요. 예수님을 맞이하는 모습 가운데 나의 유익과 욕심으로 가득하지는 않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았던 그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잇속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맞이하였죠. 그런데 이런 어리석고 안타까운 모습은 오늘날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에게서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나의 소원을 들어주는 자로 생각을 하는 거죠. 내 앞에 있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줄 분, 잘 먹고 잘 살게 해줄 분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오면 “돈 잘 벌게 해주세요.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취업하게 해주세요.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게 해주세요. 시험 잘 보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이런 것만을 바랍니다. 물론 주님께 기도하며 구하는 것을 마냥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저런 모습이 교회에 나오는 전부라고 한다면, 다른 종교랑 무엇이 다른가요? 절에 가서 108배 하는 거나, 옛 조상들처럼 물 떠놓고 나무에 기도하는 거랑 무엇이 다릅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이 다른 종교보다 더 있어보여서 그러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러한 모습은 오늘 본문에 나왔던 제자들과 군중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순전히 나의 유익을 위한 믿음이라는 것이죠.
3.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해보자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보았던 말씀에서도 보았지만,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했고,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흘리셨던 눈물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눈물은 군중들과 제자들 때문으로 끝났을까요? 혹여나 오늘날 나의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눈물을 흘리고 계시지는 않으실까요? 예배의 자리에는 있지만, 예수님을 맞이하며 찬양하고 말씀도 듣고 기도도 하기는 하지만, 진정한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믿지 못함으로 인해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고 계시지는 않을까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해야 할 것&결단

1. 마음을 다해 맞이하라
여러분, 우리가 해야 할 것을 깨닫고 결단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비추어서 결단하기를 원하는데요. 먼저는 주님을 맞이할 때 마음을 다해 맞이할 수 있기를 결단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처음 시작할 때도 말씀을 드렸고, 자주 예배 때마다 말씀을 드리지만, 예배의 자리에 나아올 때 우리가 아무런 기대 없이 나오지 않기를 원해요.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로 드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오늘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 ‘이 말씀을 통하여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실까?’이런 마음이 있기를 원하고, 예배에 임할 때, 예수님께서 하시면 하실 수 있다는 그 믿음을 갖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경에 주님의 역사와 은혜를 경험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이러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반면에 그 은혜와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은 의심한 자들이었습니다. 마음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님을 맞이할 때, 마음을 다한 맞이가 되기를 원하고, 그런 예배로 드리기를 소망합니다.
2. 내 욕심으로 나오지 말아라
두 번째로는 우리가 주님을 맞이할 때, 욕심으로 맞이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아까 말씀을 드렸지만 내 유익만을 놓고 주님을 맞이하지 않기를 원해요.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는 아직 누구에게 용돈을 주는 일이 별로 없겠지만, 제 이야기로 비춰서 얘기를 해볼게요. 저한테는 조카가 있는데, 제 눈에는 참 예쁘죠. 그런데 설날이 돼서 만났는데 만약 저를 보자마자 새뱃돈을 달라고 하면 마음이 어떨까요? 그리고 새뱃돈을 받은 후에는 아는 척도 안 하면 어떨까요?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지만 당연히 서운하겠죠. 조카는 저를 돈으로 밖에 보지 않는 거니까요.
이런 모습이 예배를 드리는 자들의 모습에 있다는 것이죠. 내 유익만을 위해 주님을 바라보는 모습이요.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시길 원하시고, 기뻐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신 건 확실하지만, 우리 모습 가운데 그런 모습만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마음은 당연히 슬퍼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나왔지만, 그러한 모습으로 가득했던 예루살렘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죠.

정리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사건을 보면서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면서 예배에 임하는 우리의 모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을 마음을 다해 환영할 것, 두 번째는 내 욕심으로 채운 모습으로 맞이하지 말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기억하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맞이하며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그런 모습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처럼 우리를 바라보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 눈물이 기쁨의 눈물이기를 우리가 결단함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한 가지 도전의 마음을 갖고 다시 돌아가기 원하는데요. 다음 주는 부활주일입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 있어서 어느 때보다도 가장 기쁜 날인 부활주일,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할지 깊이 생각해 보며 달라진 모습으로 다시 모이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주님을 깊이 생각하는 이번 한 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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