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에서 조심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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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신앙생활을 할 때 꼭 필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조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요?
신앙의 본질에 대해 ‘조심’해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에 대해 ‘조심’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교회 생활을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거나, 봉사 활동을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거나, 교회 다니는 사람들과 인맥을 형성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는 등 많은 잘못된 개념의 신앙 생활을 합니다.
그렇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신앙 생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실컷 시간과 재정과 에너지를 투자하고서도 예수님으러부터 책망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가르치실 때 사람들의 반응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많은 무리가 ‘즐겁게 들었다’는 반응입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말씀입니다. 올바른 설교, 올바른 강론, 올바른 성경공부 등을 ‘기쁘게 듣는 것’이 신앙 생활의 본질과 관련이 깊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설교는 어떤 설교일까요? 어떤 가르침을 들어야 할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서기관(율법학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 달랐습니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의 가르침은 율법을 잘못 해석하거나 고리타분하게 해석해서 당시 사람들의 일상의 삶과 연결되지 않는 가르침이었고, 사람들이 신앙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는 가르침이었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달랐습니다.
잘못된 해석을 고쳐주셨고, 사람들이 고민하는 신앙의 본질을 건드려 주셨고, 참된 신앙인의 삶이 무엇인지 그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쁘게 들었던 것이죠.
신앙의 본질은 ‘기쁘게 들을 말씀’을 잘 분별해서 듣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고리타분한 해석을 들으면 삶이 변할 수 업습니다.
올바른 해석을 기쁘게 들어야 신앙인 답게 삶이 변할 수 있는 것이죠.
신앙 생활의 본질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고 헛된 것에 집중하는 신앙 생활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함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를 조심하라
종교지도자를 조심하라
예수님은 율법을 가르치던 서기관들(율법학자)에 대해서 조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을 왜 조심해야 했을까요? 그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말씀을 가르친다고 해서 모두 좋은 사람일수 없습니다. 사람은 예외 없이 모두 죄인이기 떄문이죠.
말씀을 가르치는 신분을 가진 사람 중에서 자신이 높아지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 하고 외식하고 자기 배를 불리는 짓을 하는 자들을 분별해서 조심해야 합니다.
서기관들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 한가지 조심해야할 것
또 한가지 조심해야할 것
또 한가지 조심해야 할 일이 있는데, “과부”라는 표현이 그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을 조심해야 할 이유를 말씀하시면서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과부들이 어떤 존재들이었을까요? 어찌보면 그 시대에 가장 불쌍한 신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자가 일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과부라면 생계를 이어나가기가 더욱 어려웠습니다.
서기관들은 그런 과부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보살피기는 커녕 그 불쌍한 사람들의 가산을 삼켰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이었던 겁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그 가르침 후에 가진 것을 전부 헌금함에 넣는 ‘과부’가 등장합니다.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렙돈 두닢은 그 가난한 과부가 가진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드려진 생활비 전부는 어떻게 사용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말을 연결해 보자면, 서기관들이 과부가 드린 생활비 전부를 삼켜버리게 된다는 말로 이해가 되더라구요.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요? 헌금을 조심해야 합니다.
헌금을 드리는게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헌금을 드리되 분명히 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다는겁니다.
바로 “그 헌금이 어떻게 쓰이는지”입니다.
헌금을 드릴 때는 아까워하지 않는 마음,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드리는게 맞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하나님꼐서 주심을 우리가 누리며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헌금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올바른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진짜 누군가 귀한 헌금을 삼키도록 방치할 수 밖에 없게 되겠지요.
이상하게 가난해서 생활비도 없는 사람은 자신이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헌금을 내려 합니다.
반대로 충분히 생활하고도 남는 재정을 가진 사람은 헌금하는데 인색하기도 하더라구요.
여러분 가난해도 부유해도 헌금의 원리는 같습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고,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헌금을 하는 것”이죠.
그런데 생활비가 없는 과부 같이 가난한 상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헌금을 드리고 싶지만 참야할 수도 있고,
참을 정도를 넘어서는 은혜를 받아서 생활비 전부를 헌금할 수도 있을 겁니다.
만약 그렇게 생활비 전부를 헌금하고서 생활이 어렵게 된 교인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렇게 드려진 헌금을 누군가가 삼키도록 해서는 안되는 것이겠죠.
도리어 가난해서 생활비가 없는 교인에게 헌금의 일부가 흘러가도록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교회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면서까지
교회의 건물이 커지고 목회자가 부자가 된다면?
그건 사악한 짓이겠지요.
그런 교회와 목회자는 예수님의 책망과 저주를 받게 될것입니다.
헌금에 대해서 조심하되
인색하게 드리고 있지 않는지 조심해야 하고,
특히나 드려진 헌금을 누군가가 잘못되게 사용하지는 않는지 조심해야 하며, 헌금이 성경의 가치관에 따라 귀중하고 가치있게 사용되는데 힘써야하지 않을까요?
청년에 때에 이런 훈련이 잘 되어 있다면?
후에 우리 성산교회는, 여러분이 섬기게 될 교회는, 이 땅의 한국교회가 더욱 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심!!
신앙의 본질(말씀), 높임받는 것(교만), 헌금(마음을 드리는 것)
신앙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 우리 청년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축도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 충만하신 역사가
청년에 때에 하나님의 뜻을 잘 구분하고
드리는 마음과 물질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드려지고
이에 쓰임받는 인생으로 ,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교회로 세워져가길 원하는 사랑하는 성산의 청년들의 머리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