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되는 판결,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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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비하
그리스도의 비하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사랑합니다! 드림인 예배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은 무슨 주일인가? 그렇다. ‘종려주일’이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러면서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에 들어가실 때 주변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산나 찬송하며 이스라엘 왕이라고 노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때 환영했던 나뭇잎 가지는 종려나무였다. 종려 꽃의 꽃말은 ‘승리, 정복, 불변의 우정, 축하’이다.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도 ‘황금종려상’이라는 이름으로 ‘승리, 정복, 축하’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 종려나무의 생명력은 어마어마하다. 식물학에서 종려나무는 ‘불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강력한 태풍이 불어도 서너 시간 정도 구부러져 있다가 다시 일어난다. 생물학자들은 종려나무는 구부러져 있을 때 그 뿌리가 오히려 강해진다고 한다. 강풍을 이겨낸 후 더 튼튼하고 크게 자라난다. 종려나무의 그루터기를 불태워도 그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나고 자란다고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종려나무는 로마에 대항하는 유대인들의 민족주의를 상징한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유대인의 최고 법원인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고발하여 빌라도 총독 앞에서 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대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들이 고발한 내용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고소한 것이다. 원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야라는 것을 인정하자 바로 신성모독이라며 죄인 취급을 한 것이다. 그렇게 빌라도에게 갈 때는 그들이 종교적인 문제로 예수님을 고발하면 사형을 시킬 수 없기에 로마황제를 대항하는 정치적인 반란자로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고소한 것이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죄가 세 가지라는 것이다. 첫 번째로 백성을 미혹했고, 백성을 선동했다는 죄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못하게 막았다는 것이다.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안내겠다는 것은 로마에게 반항하는 죄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자신을 왕이며 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했다고 하는 것이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은 로마의 지배를 완전히 거부하고 로마로부터 유대를 승리로 이끌게 만드는 반란자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 메시야는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자를 의미한다.
생각해보면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고발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상황이다. 예수님은 어떠한 군사적인 것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로마에게 위협이 될만한 요소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제사장이나 이스라엘의 장로들 등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고소한 것은 그저 예수님이 너무 꼴보기 싫어서 죽이고 싶은 마음으로 억지로 가득한 고소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 아니다라고 말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오히려 “네 말이 옳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것은 구약성경의 예언 중에 하나로 성취하시기 위해 일부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고발했지만, 아무 대답을 하지 않으셨고, 빌라도가 말도 안되는 여러 죄목을 가지고 고발하는게 들리지 않냐고 물어보았지만 아무 대답하지 않으셨다. 보통은 고소를 당하면 억울해서 변명을 하는게 정상적이다. 뭐라도 변명을 하든지, 확실한 죄가 있든지 해야하는데 자신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아무 죄가 없는 분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싶을 정도로 빌라도는 크게 놀라게 되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원하는 죄수 한 명을 총독이 특별히 사면해주는 관례가 있었다. 이때 시기적으로 보면 유월절이다. 유대인들의 가장 큰 명절이기에 민심을 얻기에 좋은 제도인 것이다. 그때 바라바라는 사람을 풀어 주기를 원하지는지 예수님을 풀어주는게 좋을지 예루살렘의 백성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바라바라는 사람은 이스라엘의 자유를 위해 항쟁했던 사람이었기에 로마 사람에게는 폭도지만 유대인에게는 영웅처럼 우리나라의 홍길동이나 로빈 후드와 같은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당장에 자신을 로마로부터 구출해줄 영웅같은 사람을 원했던 것이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 메시야를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빌라도가 이 일들을 가만히 예수를 왜 재판에 데려왔을까 이 상황들을 보며 생각해보니 불법을 저지른 처벌이 아니라 유대 지도자들 자신들의 지위와 권위에 위협이 되는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빌라도가 재판하려고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 자신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저 죄없는 사람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마세요. 어젯밤 꿈 속에서 제가 이 사람 때문에 몹시 고통을 받았습니다.”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여러분 같으면 죄없는 사람을 풀어주겠는가? 아니면 잘못된 민심이 중요한가? 고대 사회에서는 꿈은 대체로 신의 메시지로 생각했다. 꿈에서 예수님이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셨겠는가? 꿈을 통해 하나님이 알려주셨기 때문에 빌라도의 아내는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마태는 이 이야기를 기록함으로 유대 지도자들의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루살렘의 사람들을 설득해서 점점 분위기는 살벌해져가고 있었고, 처음에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만 호소하다가 사람들이 하나둘씩 예수님을 죽이자는 분위기로 예루살렘에 덮어지고 있었다. 예수님의 죄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지만, 십자가 사형을 하라는 요구만 하고 있다. 빌라도는 모두가 예수님을 대적하는 분위기에서 자칫하다가 폭동이 일어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물을 떠다가 사람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이 없으니 너희가 알아서 해라” 그러자 유대인들이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 만 것이다.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정말 무서운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 값을 유대인들이 치르겠다는 말이다. 결국 유대인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큰 죄를 저지르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피 값을 자신들 뿐만 아니라 자손들까지 말이다. 예수님을 죽인 죄와 유대인들이 모든 세계 역사 속에서 당한 고난과의 역사적인 일들을 정확하게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이후 바로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망하고 유대인들이 세계 역사 속에서 당한 고난은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그렇게 지키고 싶어했던 이스라엘은 결국 로마에 의해 망하게 된다. 그 후로 유대인들은 세계 각처를 떠돌아 다녔다.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도 환영받지 못하는 민족이 되어버렸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예언하신 것을 성취하는 사건이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배신할 것을 말씀해 주시면서 구약성경에 쓰여진 대로 자신은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예수님의 죽음이 역사 속에서 준비된 사건이고 구약에 기록된 말씀이 역사 속에서이루어진 것이다. 또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언하신 것을 이룬 사건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여러 차례 자신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도 미리 말씀하셨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는 것은 역사적으로 우연이 아니라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것이었다. 성경에서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끊어진 관계를 말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성경의 말씀을 이루는 사건이라고 말하며 우리가 마땅히 가야할 저 십자가가 예수님이 대신 못박히시고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제가 여러분에게 서두에서 종려나무의 이야기를 했었다. 종려나무의 뜻은 승리, 정복, 축하가 있지만 ‘부활’이라는 뜻도 있다.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실 때 호산나 찬양하면서 종려나무가지를 흔들었던 것은 진정한 부활이요,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기 원한다. 하루에 5분이라도 좋으니 여러분에게 오늘 나눠줄 필사책에 직접 손으로 말씀을 적어보자. 그러면서 잠잠히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가슴 깊이 생각해보기 원한다. 그리하여 이번 고난주간이 예수님께 감사가 넘쳐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커져서 날마다 풍성한 은혜의 교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