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마 27:35-50)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2024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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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성금요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을 기념하는 금요 정사예배가 있습니다. 여러분 참조하셔서 오늘 저녁 정사예배에도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돌아가신 장면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 위해서 수치와 모멸과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이 세가지 사건을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35절은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십자가형이란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십자가형은 두가지를 의도하는 사형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못을 통해 흐르는 피와 체액을 통해서 공포와 고통을 주는 것이고, 두번째는 못이 박히고 십자가에서 자세를 지탱하기 위해서 움직일때마다 몸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고통을 받게 하여 기절하고 기진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짧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경험하도록 함으로써 당하는 자나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자나 같이 고통받는 형벌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아 사람들을 죽일때는 고문을 잘 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달리면 팔이 늘어지면서 몸이 처지고 이어서 어깨가 빠지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숨쉬는 것 자체가 매 순간 고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멀쩡한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시지 못했습니다. 어제 살펴본것처럼 이미 채찍질을 통해 살이 찢기고, 갈비뼈도 성치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형은 단순히 고통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로마시대의 십자가형은 보통 죄인들의 옷을 모두 벗겨버립니다. 그리고 알몸으로 십가가에 못박았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수치를 경험하셨습니다. 35절에 보면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평범하게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가장 흉악한 죄인이 받는 십자가형에서 고통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알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땅에 오셔서 일반 사람들도 경험할 수 없는 고통과 수치를 안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수치는 십자가와 알몸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군인들은 십자가에 힘없이 달려 찢어지고 늘어진 몸의 예수님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를 붙였습니다. 이것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결코 로마에 반란을 꿈꾸지 말라는 것을 대중에게 경고하는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죄패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수치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강도 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서 죄인들과 동급으로 취급받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고통의 자리이지만 또한 수치의 자리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알몸으로 그냥 서 있는 것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정말 부끄럽고 아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그 알몸으로 십자가에 못이 박혔다면 어떨까요? 고통으로 아찔해서 아무런 생각이 안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알몸으로 온갖 고통에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대적자들은 얼마나 우스워하며 바라보았을까요? 그 얼굴을 생각하고 바라보면 결코 이 수치는 너무나 큰 사랑이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죄패는 예수님의 그동안의 모든 사역을 부정하는 것이었고요, 강도와 함께 달리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신이 메시아라고 가르치신 말씀에 치명타를 가하는 수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 모든 수치를 감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등을 떠밀어서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해 주셔서 몸소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솔직히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어느 사람이 맨정신으로 자원해서 이런 수치를 대신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평생 일구어 놓은 모든 것을 부정받으면서 수치스럽게 죽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사랑이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런 수치를 당하였습니까? 죄가 그만큼 무섭다는 것을, 죄가 우리를 이것보다 더 한 수치로 몰아넣는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수치를 덮기 위해 몸소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죽어야하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몸소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 고난주간에 우리 이 사실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죽으심에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두번째로 예수님은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39절 이하에 보면 세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첫번째는 지나가는 자들, 두번째는 대지사장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 마지막 세번째로는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즉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유대인을 대표하는 군중들에게,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그리고 심지어 십자가에 함께 달린 강도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다. 먼저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하면서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라고 조롱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수님이 했던 말을 곡해하여 조롱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도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무능함을 조롱합니다.
심지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있던 강도들마저 예수님을 욕합니다. 이와 같이 인류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자신이 구원하고자 하는 이들로부터 철저하게 희롱과 조롱을 당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조롱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여기서 죄인들의 어리석음과 의인의 사랑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희롱하고 모욕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능력이 없고 힘이 없어서 십자가에 달려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죄인줄도 모르고 신나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희롱했습니다.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요? 예수님을 향한 적개심 때문이었습니다. 너무나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서, 너무나 예수님의 행동이 마음에 안들어서 그들은 이런 악한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탄이 그들의 마음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탄의 영에 사로잡히게 되었을때에 이렇게 파괴적이 되고, 상식을 잃고 악한 일을 도모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사탄의 유혹에 결코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자만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기적입니다. 이익 중심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아무리 악한 일이라도 나에게 이익이 된다면 거기에 가담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종교지도자들은 자기들의 눈에 가시를 제거할 수 있게 되었고, 유대인들은 유명했던 사람의 몰락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고, 강도들은 자칭 메시아라는 자가 같이 사형을 당하며 자기의 범죄에 대해서 나름 합리화를 할 수 있었기에 사탄의 계략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의로움이 아니라 이기적인 것에 골몰할때 우리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조롱했던 자들과 같이 사탄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 주간을 맞아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바로 잡고, 죄의 유혹으로 부터 벗어나 의로운 삶을 살아가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버림을 받으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여러분 46절을 보십시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 당하는 와중에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음을, 하나님의 철저한 외면속에서 고통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말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있는 동안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 외침은 이순간 예수님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당하시는 가장 큰 고통은 육체의 아픔에서 기인한 고통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바로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말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순간 하나님은 철저히 침묵하고 계십니다. 아들의 고통을 바라보면서도, 그 고통을 지켜만 보실뿐 고통받는 아들을 외면하고 계십니다. 그 외면에 예수님은 고통하시며 부르짖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비참하게 죽이면서도 끝내 외면하며 우리를 살려내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이 이 외침을 통해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자녀가 아파도 잠못자고 같이 아파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럴진대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은 예수님의 마음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왜 이 고통을 겪으셨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이 하나닝과 예수님의 고통과 버림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더 감사하고 이 크신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될때, 이 고난주간에 그냥 우리가 의미없이 보내는 하루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묵상하는 복된 날이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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